102화. 신명 재판 (1)
“오랜만이네요, 라일라 자매님.”
산 마르코 대성당의 예배당 끄트머리. 묵묵히 오크들의 세례를 지켜보는 빌헬미나 아퀴나스의 곁에 실루엣 하나가 걸터앉는다. 기척조차 없이.
“설마 아퀴나스 추기경 예하가 이곳까지 걸음을 하셨을 줄이야.”
암살자들의 어머니, 라일라 나이트워커.
어느새 그녀를 필두로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가 소리 없이 일대를 포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럼에도 빌헬미나는 결코 당황하지 않았다.
“달리 이곳까지 어려운 걸음을 하신 이유를 여쭈어도 될까요, 추기경 예하?”
“물론이랍니다, 나이트워커 공작 각하.”
그 말에 빌헬미나가 정중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저는 어디까지나 제국 국교회의 이름으로, 교회의 법(法)을 집행하고 감독하며 수호할 의무를 갖고 여기 왔지요.”
《죽음의 성모》 빌헬미나 아퀴나스.
공식적으로 신성 로마누스 제국 국교회의 정점에 서 있는 열두 명의 최고위 추기경 중 하나이자, 그중에서도 무소불위의 힘을 가졌다고 불리는 「감찰성성(S. Congregatio Inquisitionis)」의 장관 추기경.
나아가 교회의 모든 공안들과 이단심문관의 정점에 서 있는 「이단심문관장(로드 인퀴지터)」.
“설마 모르겠다고 말하지는 않으시겠죠?”
빌헬미나가 말했다.
“저는 제국 국교회의 이단심문관장으로서, 시엔 나이트워커 형제님의 「이단 혐의」를 직접 심문하기 위해 이곳에 왔답니다.”
그날, 스카디 제도에서 벌어진 교회의 참사를 절대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누구의 입회도 없이, 오직 단둘이서 말이죠.”
“…….”
그 말에 라일라가 나지막이 침묵했다.
아무리 나이트워커 가문과 공화국이라 해도, 명분으로 이루어진 세계에서 그것을 거절할 방법 따위는 없었던 까닭에.
* * *
산 마르코 대성당의 고해성사실.
“어서 오세요, 시엔 형제님.”
서로의 얼굴을 볼 수 없도록 촘촘히 가려진 고해창(告解窓) 너머, 칠흑의 베일을 쓴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의 죄를 고백할 준비는 되셨나요?”
“무슨 죄 말이죠?”
시엔 나이트워커가 차가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형제님께서는 이교도의 땅에서 거짓된 신을 믿는 이들을 위해 교회의 인간을 학살했지요.”
“글쎄요.”
고해창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시엔이 조소했다.
“제가 ‘이교도의 땅’에서 본 것은, 기꺼이 하느님의 백성이 되기를 자처한 어린 양을 몰살시키던 학살자의 군세(軍勢)였는데 말이지요.”
그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되물었다.
“죽은 이들을 구울로 되살려 산 자들을 잡아먹고, 기꺼이 개종하겠다는 이들을 의심스럽다는 이유 하나로 학살하고, 그것도 모자라 이 땅의 생명을 남김없이 몰살시키는 것이 정말 ‘자비로운 하느님의 뜻’입니까?”
“…….”
“그것이 정녕 자애로운 신의 뜻이라고, 모두의 앞에서 당당히 말할 수 있습니까?”
시엔이 말했다.
“정말로 자애로운 하느님께서는 일단 의심스러운 자를 모조리 죽이고 나서, 그렇게 죽은 이들 사이에서 백성을 가려내길 바라십니까?”
그럴 리가 없었다.
“한낱 인간 따위가 신의 뜻을 헤아리려 들다니, 참으로 어리석네요.”
그 말에 고해창 너머에서 빌헬미나가 차갑게 조소했다.
“저 역시 동의합니다.”
시엔이 대답했다.
“한낱 인간 따위가 감히 위대한 하느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을 리가 없죠.”
그런데 무슨 이유로 제국의 인간들, 교회의 인간들은 자기가 신의 뜻을 대행하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걸까.
“그럼 시엔 형제님께서는, 기꺼이 자신의 무고함을 ‘신의 뜻’에 맡기겠습니까?”
그 의미를 헤아린 시엔이 나직이 침묵했다. 그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맡기겠습니다.”
“자, 그럼 재판의 방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어볼까요?”
그렇게 말하며 고해성사실에 앉아 있던 빌헬미나가 몸을 일으켜 나왔다. 시엔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느덧 고해소 바깥에는, 얼어붙을 듯한 정적 속에서 각자의 세력들이 대치하고 있었다.
나이트워커 공작과 가문의 가족들.
빌헬미나 아퀴나스와 휘하 최고위 이단심문관들.
암살자들의 어머니와 죽음의 성모.
“시엔 형제님께서는, 기꺼이 신의 이름으로 형제님의 이단 혐의를 가려내는 데 동의했습니다.”
“…….”
이렇게 흘러갈 거란 상황 자체는 모두가 어느 정도 예상하고 있었다.
오직 신밖에 결과를 알지 못한다고 해서 붙여진 신명 재판, 내용 자체는 간결하다.
죄가 있다면 재판에서 패소한다. 죄가 없다면 재판에서 승소(勝訴)할 것이다. 신이 그렇게 정해줄 테니까.
그럼 도대체 무엇을 기준으로 재판의 승패를 가리냐고?
“추기경 예하 밑의 최고위 이단심문관 하나와 생사결을 치르는 것은 어떨까요?”
이제부터 그것을 정할 차례였다.
“최고위 이단심문관 정도의 사제님께서 결투 상대일 경우, 필시 시엔의 죄를 명백히 가려낼 수 있겠지요.”
라일라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감찰성성의 장관 추기경 빌헬미나 직속의 최고 전력이자, 일명 ‘십이사도’라 불리는 교회의 열두 강자들.
“신 앞에서의 재판은 강함을 과시하는 자리가 아니랍니다, 라일라 자매님.”
라일라 자매님. 평소와 달리 의미심장한 목소리가 깃든 채 빌헬미나가 속삭였다.
그 말처럼 시엔은 강하다. 이미 어엿한 나이트워커 가문의 하이마스터가 된 것도 모자라, 그곳 스카디 제도에서 뜻하지 않은 신기 ‘묠니르’의 힘까지 손에 넣었으니까. 아마 지금의 12사도와 맞선다 해도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것이다.
“제가 상대하죠.”
“……!”
‘그녀’는 아니었다.
일찍이 시엔이 쓰러뜨린 교회의 강자, 시궁쥐 추기경 로드리고 보르자조차 공식 직함 자체는 어디까지 감찰성성 산하 공안감찰부 수장…… 공안부장(公安部長)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눈앞에 있는 그녀는 감찰성성의 장관 추기경.
제국 공안과 이단심문관의 정점, 이단심문관장(로드 인퀴지터)이란 이명과 함께 직속으로 12사도를 거느리고 있음에도 그녀 자신은 결코 사도를 자청하지 않는 성직자.
비공식적으로 대륙 제일의 강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당대의 최강자 중 하나.
죽음의 성모, 빌헬미나 아퀴나스.
“제가 듣기로, 하느님 앞에서의 재판은 힘을 과시하는 자리가 아니라 들었는데 말이죠.”
그 말에 라일라가 차가운 목소리로 시엔 앞을 가로막았다. 결코 이 싸움을 허락할 수 없다는 듯이.
“그 말씀대로랍니다, 라일라 자매님.”
빌헬미나 역시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했다.
“그렇기에 규칙을 걸죠.”
“무슨 규칙을 말이죠?”
“13의 규칙.”
빌헬미나가 말했다. 그 의미를 헤아린 라일라가 나지막이 숨을 삼켰다.
“13분이 지나고도 제 손에 시엔 형제님이 살아 있을 경우, 시엔 형제님은 이단 혐의를 벗게 될 겁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유죄와 함께 합당한 ‘처분’이 내려지는 셈이지요.”
“제의를 받아들이죠.”
시엔이 대답했다. 라일라가 일순 당황했으나, 이내 암묵의 침묵을 보내며 긍정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제국 국교회는 그 이름 자체로 대륙에서 가장 강력한 명분을 휘두를 수 있는 존재들이다. 아무리 스카디 제도에서 그들이 광기 어린 학살을 저질렀다고 해도, 이 세계에서 그들 세력과 ‘정당성’을 다투는 것은 자살 행위에 가깝다.
“그럼 자리를 마련해 주시죠, 라일라 자매님.”
빌헬미나가 말했다. 라일라는 짧게 침묵하고 나서,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 * *
신의 이름으로 치러지는 신명 재판.
시엔의 ‘이단 혐의’를 가려내기 위해 장소가 결정되었다.
베네토 공화국 남부의 시실리아 섬.
사방이 바다와 암초로 가로막혀 있는 천혜의 대지. 서펀트 가문의 허락 없이는 결코 발을 들일 수도 없고 나갈 수조차 없는 고립된 영지, 서펀트 후작령.
갈매기들이 끼룩거리는 소금 냄새, 부서지는 파도와 바닷소리.
전투의 승패를 결정 짓는 것은 결코 실력이 전부가 아니다.
바다를 곁에 두고 살아온 베네토 공화국의 인간에게 있어, 비록 그들의 영지가 아닐지라도 이곳은 고향과 다름없는 곳이었다.
평생을 내륙(內陸)에서 살아온 제국의 인간에게는 그렇지 않다.
‘어머니가 최고의 수를 뒀다.’
그럴싸한 콜로세움도 알기 쉬운 공터조차 아니다.
동시에 제국 측에서도 적지 않은 숫자의 인간들이 그곳에 모여 시엔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공식적으로 재판의 입회인단(立會人團)을 표방하고 있으나, 그 정체를 모를 시엔이 아니었다. 하물며 이곳에서 빌헬미나가 제시한 13분, 거기에 숨겨진 의미 역시도.
빌헬미나는 시엔이 13분을 버틸 가능성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있었다. 아니, 그녀라 할지라도 설령 여기서 진심으로 시엔을 죽이려 들었다가는 그 후폭풍을 쉽사리 감당하지 못하리라.
그렇기에 저들이 있는 것이다.
─저들은 그냥 알기 쉬운 재판 입회인이 아니다.
신성 제국의 전력분석관(Performance Analyst).
‘에인션트 리그의 분석 학파에 소속된 실증주의 마법사들.’
이곳에서 펼쳐질 시엔의 활약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정확하게 분석하며 그 위협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는 자들.
다시 말해, 이제는 시엔 역시 이 대륙의 강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리고 그 정도의 강자조차, 눈앞의 그녀를 상대로 13분을 버티는 게 승부의 내용이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었다.
그렇기에 여기서 주저하고 있을 여유 따위는 없었다.
‘13분.’
죽이는 것이 아니다. 그저 버티는 것이다. 상대를 죽이는 것을 전제로 하는 싸움과 그렇지 않은 싸움의 차이를 모를 시엔이 아니었다. 그녀 역시 마찬가지였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재판을 시작하죠.”
빌헬미나의 말과 함께 재판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1초가 아까워야 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느긋이 시엔을 지켜볼 따름이다.
째각, 째깍. 그 와중에도 초침(秒針)이 끝없이 움직이고 있다. 그러나 결코 조급하게 굴지 않는다.
“그나저나, 나이트워커 가문의 가장 커다란 죄악을 알고 있나요?”
바로 그때, 여유롭게 침묵하고 있던 빌헬미나가 입을 열었다.
“글쎄요.”
“당신들 가문의 죄는, 이 세상 사람들의 가장 소중한 것들을 빼앗았다는 거랍니다.”
그 목소리에, 지금까지의 알기 쉬운 여유는 느껴지지 않았다.
“La famiglia è tutto(가족이 전부다).”
나이트워커 가문의 가언을 입에 담으며, 참으로 우습다는 듯이 빌헬미나가 조롱했다.
“그렇게 말하는 당신들 가문의 이익을 위해, 얼마나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이 사랑하는 가족과 그 전부를 잃고 슬퍼했는지 아시나요?”
“…….”
시엔은 대답하지 않았다.
“저는 아주 잘 알고 있답니다.”
빌헬미나가 아랑곳하지 않고 입을 열었다.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말이죠.”
그 와중에도 여전히 재판의 시곗바늘이 움직이고 있었다.
“저 역시, 나이트워커 가문에 저의 가장 사랑하는 가족을 빼앗겼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빌헬미나가 고개를 돌린다. 그들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는 암살자들의 어머니를 향해서.
“그렇지 않나요? 라일라 자매님─.”
“…….”
“아니, 친애하는 나의 라일라 아퀴나스 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