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 가문의 천재 어쌔신-108화 (108/200)

108화. 왕의 자세 (2)

공식적으로 대륙의 저울을 지탱하고 있는 네 명의 강자.

원탁왕 아서, 검마 오스왈드, 검성 롤랑, 암살자들의 어머니 라일라.

이 하나의 전투에서, 대륙의 최강자라 일컬어지는 네 명 전원이 집결해 있다.

네 명.

그 전장에 있는 것은 《암살자들의 어머니》 라일라 역시 예외가 아니었으니까.

* * *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뒤늦게 칠왕국 측에서 퇴각을 알리는 뿔피리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곳에 있는 일개 병사들이, 아무리 강력한 의지로 무장하고 있어도 ‘밤을 걷는 자들’의 손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이 바로 공화국의 사신이자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들이니까.

“히, 히이익……!”

사람의 형상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전신에 칼날이 돋아나 있는 괴물 앞에서 칠왕국의 병사 하나가 겁에 질려 눈을 질끈 감는 사이.

쿠웅!

딛고 있는 지축이 요동치며, 곰처럼 커다란 그림자가 병사의 앞을 가로막았다.

“도망쳐라.”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커다란 등. 그 등이 자신을 지켜주며 말했다.

죽음을 앞둔 병사가 벅차는 감동을 주체하지 못하고 소리쳤다.

“폐, 폐, 폐하……!”

남자는 왕이었다.

때로는 무자비하고 때로는 광폭하며 때로는 타협을 알고 때로는 지혜를 알았으나, 그렇다고 그 남자는 폭군도 암군도, 하물며 명군이나 지혜롭고 도덕을 지키는 군주와는 더더욱 거리가 멀었다.

그저 왕이었다.

자신의 앞에 서는 자와 왕의 길(王道)을 가로막는 자를 용서하지 않고, 백성들을 거느리며, 오로지 왕으로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지를 스스로 결정 짓는 남자.

원탁왕 아서 펜드래곤.

“왕의 앞에 서지 마라, 계집.”

나이트워커 가문의 하이마스터, 대량학살장치 앨리스를 향해 아서왕이 말했다.

“아, 으, 으아…….”

왕의 말에 앨리스가 어쩔 줄 몰라 당황하며 말을 흐렸다. 단지 그녀는 낯가림이 심하고, 사람과의 대화가 익숙하지 않은 까닭에.

“조심하십시오, 돈나 앨리스.”

어느새 기척조차 없이 그녀의 곁에 노신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저 남자는 강합니다.”

“루, 루치아노 할아범…….”

“조심해, 앨리스 언니.”

“아, 알겠어, 나…… 조심할게…….”

어느덧 칠흑의 붕대로 두 눈동자를 가린 검사까지.

하나, 둘, 셋. 어느덧 나이트워커 가문의 괴물들이 패퇴하는 칠왕국 병사들의 도륙을 멈추고 그곳을 향해 집결하고 있었다.

그것이 남자, 원탁왕 아서의 무게였다.

그곳에 모여 있는 ‘세 명의 하이마스터’조차 결코 방심할 수 없는 상태.

“「왕의 자세(King Stance)」.”

그 남자가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일말의 방심도 무엇도 없이, 심지어 알기 쉬운 탐색전도 무엇도 없이.

그가 꺼낼 수 있는 최강의 전력을 일말의 가감도 없이 드러내며.

“「올 포 원(All for One)」─.”

하나를 위한 모두이자, 왕을 위한 모두.

* * *

그 시각, 대륙의 두 최강자가 격돌하고 있었다.

카앙!

검의 성자라 불리는 검성 롤랑, 끝으로 검의 악마라 일컬어지는 제국의 검마 오스왈드 그란델.

“검이 무뎌졌군, 오스왈드.”

상대의 일검을 마주하며 롤랑이 말했다. 마치 옛 친우를 향해 말을 하는 것처럼 스스럼없는 목소리로.

“자네도 느껴지나.”

검마 오스왈드 역시 부정하지 않고 쓴웃음을 지었다.

검마 오스왈드가 신성 제국의 명령을 받아 철십자 기사단을 이끌고, 칠왕국과 맺은 동맹을 이행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와중.

공교롭게도 그 경로에 있는 유일의 도하(渡河) 지점.

그 좁은 여울목을 홀로 막고 있는 검의 성자, 롤랑에 맞서 검마 오스왈드가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존재 그 자체로 대륙의 저울추를 유지하는 강자의 싸움, 심지어 비좁은 여울목. 여기서는 제아무리 제국이 자랑하는 철십자 기사단이라 해도, 똑같은 입장에서 샤를마뉴 왕국의 12기사라 해도 의미가 없다.

그저 방해다.

카앙!

성자와 악마의 검이 격돌했다. 누구도 구태여 자세의 이름을 입에 담지 않았으나, 달라질 것은 없었다.

“아들을 잃었다네.”

“……유감을 표하지.”

오스왈드의 말에 검성 롤랑이 진심으로 그의 슬픔을 존중하며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내 아들을 빼앗은 게 자네들 왕국이나 칠왕국, 심지어 공화국조차 아니란 것이네.”

“그럼 누구지?”

“신성 로마누스 제국, 나의 조국이지.”

“…….”

“우습지 않나.”

“뭐가 말이지?”

신성 제국의 칼날을 자청하는 그란델 대공 가문의 수장, 오스왈드가 말했다.

“제국과 교회의 영광을 위해 내 평생을 바쳤는데, 내 평생을 바친 자들의 손에 의해 정작 내 전부를 빼앗기다니.”

“우습지 않네.”

“자네는 그렇게 말하겠지.”

검마가 조소하며 대답했다.

“그런데 나는 내 처지가 너무나도 우습다네. 무엇보다 용서할 수가 없지.”

“누구를 말이지?”

오스왈드 그란델이 감정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 여자, 빌헬미나 아퀴나스를.”

* * *

나이트워커 가문의 인간에게는 가족이 전부다.

그리고 그 외의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빌헬미나 아퀴나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에게는 가족이 전부다. 동시에 그 외의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그녀의 실패작, 오스카는 그녀에게 있어 아무것도 아니었다.

문제는, 빌헬미나에게 있어서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이 누군가에게는 ‘전부’였다는 사실이다.

* * *

왕의 자세, 올 포 원.

그 이름처럼 일대에서 퇴각하고 있는 ‘칠왕국 백성들의 의지 전체’를 홀로 짊어진 남자가 있었다.

그곳에 있던 칠왕국의 군대 사이에서 울려 퍼졌던 오러의 공명과 결속, 원 포 올(모두를 위하는 하나).

그 의지의 전부를 ‘왕’으로서 홀로 짊어지고 돌려받을 수 있는 아서왕의 오의.

《올 포 원(왕을 위한 모두)》.

이 능력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철저하게 왕에게 충성을 바치는 백성이 필요하고, 그들 전부가 왕의 의지에 이끌려 오러의 공명을 일으킬 정도의 결의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원탁왕 아서가 ‘올 포 원’을 쓸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지금 같은 전장.

이론상 지금 같은 상황이 갖춰진 시점에서는, 대륙의 그 누구도 감히 원탁왕을 이길 수 없다.

그것이 설령 대륙 전체에 악명을 떨치는 나이트워커 가문의 최고 전력이라 하더라도.

“돈 시엔의 지시대로, 우리의 역할은 끝났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역할은 여기까지였다.

“물러납시다.”

“으, 으응…….”

루치아노의 말에 앨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렸고, 밴시 린이 경계를 늦추지 않고 눈앞의 남자를 응시했다.

“도망치게 놔둘 것 같으냐.”

왕의 자세와 함께 올 포 원을 펼치는 아서왕이 담담히 말했다.

“감히 왕의 앞에 서 있는 네놈들을.”

쿠웅!

“─!”

마치 지진이 일어나는 것처럼 지면이 요동치더니, 진창이 되어버린 일대의 대지가 그들 주위에서 솟아올랐다.

갑작스럽게 대지가 융기(隆起)하여 우뚝 솟아오른 그것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봐도 감히 그 끄트머리를 넘볼 수 없을 만큼 터무니없는 높이를 자랑하는 콜로세움이었다.

이로써 아무도 도망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아무리 나이트워커 가문의 하이마스터라 하더라도, 지금처럼 최적의 상황과 환경이 갖춰진 절호조의 최강자를 상대로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랬어야 했다.

일대를 가로막고 있는 장벽이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너무나도 담담하게 왕의 콜로세움을 뚫고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물질 조작 학파의 6위계 마법, 투과(透過).

암월의 베르나르트와 함께 그가 펼친 투과 마법을 통해 콜로세움에 ‘난입’을 마친 두 명의 그림자가 있었다.

“잘 버텨주었구나.”

암살자들의 어머니, 라일라 나이트워커.

“가주님, 시엔……!”

“─여기는 우리에게 맡겨주세요.”

콜로세움 속에 있는 아서왕을 뒤로하고, 두 모자가 말했다.

나이트워커 가문의 최고 전력, 세 명의 하이마스터조차 승산을 장담할 수 없는 눈앞의 괴물.

그러나 그 괴물을 눈앞에 두고, 암살자들의 어머니 라일라는 ‘아들 시엔’과 함께 싸울 태세를 갖춘다.

“시엔, 절대로 나의 발목을 잡지 말렴.”

시엔의 역할은 함께 싸우는 것조차 아니었다. 그저 발목을 잡지 않는 것, 그게 지금의 시엔이 할 수 있는 전력이다.

“알겠어요, 어머니.”

각오를 다진 시엔이 고개를 들었다.

라일라와 아서, 그들 같은 최강자들의 싸움에서 발목을 잡지 않고, 거꾸로 상대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것의 의미를 모를 시엔이 아니었기에.

* * *

얼마 전, 나이트워커 공작 가문의 집무실.

일련의 ‘계획’을 시엔이 말했을 때는, 아무리 시엔을 신뢰하는 라일라조차 자기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샤를마뉴 왕국과의 동맹 조약을 비롯해, 그들 가문이 더 이상 그림자 속에 숨지 않고 양지에 모습을 드러내며 활약하겠다는 작전.

“……무모하다고 생각하지 않니?”

“무모할지도 모르죠. 아니, 확실히 무모해요.”

시엔이 대답했다.

“그러니 의미가 있는 거예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지?”

“이 세계의 최강자들은 이미 타성에 젖어 있어요.”

시엔이 말했다.

“설령 어머니조차 예외가 아니죠.”

“확실히 그렇겠지.”

얼핏 무례할 정도의 말에 라일라가 미소 짓는다.

“그리고 지금 당장 이 시대의 ‘최강자’가, 미래의 훗날까지 최강자로 남을 거란 보장은 없지요.”

인간은 늙는다.

불사의 역설에 가로막혀 정체되는 괴물과 다르게, 그것이 바로 인간이 가진 진짜 힘이니까.

“그래서 우리 가문의 손으로 직접 저울의 천칭을 무너뜨리자는 거니?”

바로 그때, 시엔이 되물었다.

“어머니, 약속을 하나 해주실 수 있겠어요?”

“무슨 약속?”

어머니와 아들 사이의 별것 없는 약속이라 믿어 의심치 않고, 라일라가 되물었다.

“말해보렴.”

“별과 단검의 이름을 걸고, 저와 약속해 주세요.”

“─.”

그러나 시엔은 그렇지 않았다.

“저는 별과 단검의 이름 아래 하나의 진실을 말할 거예요. 그리고 어머니가 추궁하더라도, 저는 절대로 ‘어떻게 이 진실을 알았는지’ 대답할 수 없어요.”

“알겠단다.”

라일라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신성 로마누스 제국에는, 이미 우리 나이트워커 가문의 전력에 필적하는 비밀 조직이 존재해요.”

그녀의 즉답에 시엔 역시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존재를 숨기고 있죠.”

나이트워커 가문의 전력에 필적하는 동시에, 아직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비밀 조직.

그 말에 라일라의 표정이 차갑게 얼어붙는다.

“검마 오스왈드 휘하의 철십자 기사단도 아니고, 교회 국교회의 12사도도, 에인션트 리그의 마법사들조차 아니죠.”

“그럼 도대체 누구지?”

라일라가 물었다. 시엔이 대답했다.

“이제부터 알게 될 거예요.”

바로 그곳, 대륙의 최강자라 일컬어지는 네 강자가 격돌하는 그 전장에서.

이 대륙의 힘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아무리 제국이라 해도 좋든 싫든 그들의 존재를 드러낼 수밖에 없을 테니까.

그것이 시엔의 노림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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