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 가문의 천재 어쌔신-111화 (111/200)

111화. 세계의 적 (3)

쌍두까마귀의 가족들이 그곳에 있었다.

머리가 두 개 달린 칠흑의 큰까마귀 위에, 태양을 상징하는 금빛의 가시 바퀴가 황금 바탕으로 새겨진 문장(紋章)─.

태양과 쌍두까마귀.

나이트워커 가문을 상징하는 별과 단검의 대칭에 있는 듯 눈부신 황금빛 자수가 새겨진 순백의 코트 차림을 하고 있는 남녀.

《패밀리》.

그들 앞에서 시엔의 칼끝에 시린 증오의 검, 네버모어의 그림자를 뒤로하고 미소 지었다.

‘계획대로다.’

제국 내에서도 극비리에 정체를 숨기고 있는 그들이, 과거에 모습을 드러냈던 것은 훨씬 뒤의 일이었다.

드러낼 필요가 없었으니까.

나이트워커 가문이 실체조차 모호한 세계의 눈치를 보며 저울추가 기울어질까 전전긍긍하는 사이, 거짓된 평화 속에서 때를 기다리는 것으로 족했으니까.

이제는 아니었다.

나이트워커 가문이 더 이상 세계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들의 힘을 숨기지 않는 시점에서, 별과 단검의 이름 아래 자행되는 그들 가문의 횡포를 막기 위해 패밀리 역시 존재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들은 ‘나이트워커 가문의 손에’ 이 대륙의 질서가 무너지길 바라지 않으니까.

그렇기에 자신들의 정체와 전력을 드러내는 리스크를 감수하더라도 나타날 수밖에 없다.

별과 단검의 횡포를 막는 대가로 그들 역시 대가를 치렀다.

동시에─ 그들이 시엔의 계획대로 움직여준 것과 ‘증오스러운 것’은 전혀 별개의 이야기였다.

“네놈들이 누구든 뭘 하는 놈들이든, 뭘 원하는지도 모른다. 관심도 없고 알 바도 아니니까.”

호수의 암살자, 시엔 나이트워커가 차가운 목소리로 내뱉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을 모욕하는 자는 누구도 용서하지 않는다.”

“아, 그것참.”

시엔의 말에 빌헬미나가 차가운 목소리로 웃었다.

“그 말, 그대로 돌려드리죠.”

눈앞의 상대가 ‘증오스러운 것’은 그들 역시 마찬가지란 듯이.

서로의 대화는 거기까지였다.

별과 단검, 태양과 쌍두까마귀, 두 개의 가족이 땅을 박찼다.

그리고 그들의 싸움 앞에서, 호사가들이 떠들었던 대륙 제일의 기사 조직이니, 심지어 검성과 원탁왕조차 나지막이 숨을 삼키며 압도될 수밖에 없었다.

카앙!

라일라의 단검과 빌헬미나의 낫이 격돌했다.

웃는 남자, 요한의 월광검이 올백 머리 남자의 단검과 격돌했다.

“아이고, 이놈의 가족이란 게 뭔지.”

“그러게나 말입니다, 미스터 요한.”

“그러는 댁은 뭐라고 불러야 할까?”

올백 머리의 남자가 대답했다.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이야, 아무래도 ‘진짜 가족’을 지칭하는 것치고는 이름들이 다들 제각각이네.”

그 말에 요한이 남의 일처럼 쓴웃음을 지었다.

“피차 콩가루네 뭐네 놀릴 처지는 아니었던 모양이지?”

“진짜 가족은 이름이나 가문명 따위로 규정 짓는 게 아니라서 말이지요.”

마찬가지로 헨젤과 그레텔이 금발의 소년 소녀와 격돌했다.

늙은 암살자 루치아노 역시 단안경(모노클)을 걸친 초로의 노신사와 맞부딪쳤다.

밴시 린도, 앨리스도, 나머지 하이마스터들 전원이 저마다의 적과 무기를 맞대고 있었다.

《호수의 암살자》 시엔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 어느 때보다도 이글거리는 업화와 뇌전의 불꽃을 덧씌운 채, 감출 수 없는 증오가 깃든 4식의 오의, 네버모어를 펼치며.

“그럼 뭐가 ‘진짜 가족’을 규정 짓지?”

시엔 역시 눈앞의 상대를 향해 되물었다.

망령을 상징하는, 칠흑의 라르바 가면을 쓴 남자를 향해서.

“─진실이지.”

칠흑의 라르바 가면을 쓴 쌍두까마귀의 가족이 대답했다.

그의 얼굴에 덧씌워진 가면을 벗으며.

“…….”

“하지만 우리는 진실을 부르짖지 않아.”

“─.”

“이미 차고 넘치는 걸 굳이 부르짖을 이유가 없거든. 그렇지 않아?”

칠흑의 라르바 가면 뒤로 얼굴을 드러내며 남자가 대답했다.

오늘, 시엔이 이 남자를 보는 것은 처음이다. 그러나 시엔은 누구보다 남자를 잘 알고 있었다.

《불사자(임모탈)》 디트리히 합스부르크.

공식적으로 이 나라, 제국을 다스리는 합스부르크 황실 가문의 2황자.

그의 두 눈동자가, 마치 파충류 동물처럼 쭉 찢어진 세로 동공을 하고 있었다.

‘사안(蛇眼).’

뱀의 눈동자.

예로부터 불사와 재생, 지혜와 악, 때로는 풍요와 다산을 일컫는 헤아릴 수 없는 상징의 동물.

카앙!

피할 수 없는 죽음이 깃든 시엔의 왕 시해자, 네버모어가 휘둘러졌다. 디트리히 역시, 제국의 황자라고 상상할 수 없는 움직임으로 소맷자락 밑에서 단검을 꺼내 맞받아쳤다.

한 차례의 격돌 끝에, 그곳에 있는 나이트워커 가문의 인간 모두가 깨닫는다.

“아, 으아, 으, 어떻, 게──.”

앨리스가 더듬거리며 당황했고, 좀처럼 평정을 잃는 일 없는 가문의 이들 사이에서도 희미한 동요가 깃들었다.

쌍두까마귀의 가족들이 구사하는 것은, 나이트워커 가문의 9검식 그 자체였으니까.

아니, 완전히 똑같지는 않다. 미묘하게 다르다.

마치 같은 뿌리에서 시작해, 다른 환경과 역사 속에서 살아남고 적응하며 거듭하며 조금씩 달라진 아종(亞種)처럼.

“어떻게 우리의 검을 쓰고 있지?”

“우리의 검이라고?”

요한의 질문에 올백 머리의 남자가 차갑게 조롱했다. 밀랍으로 된 얼굴처럼 일말의 생기도 감정도 없는 표정을 하고서.

“─이것은 처음부터 ‘우리의 검’이었습니다. 당신들의 검이 아니라.”

검을 나눈 끝에, 각자의 가족들이 거리를 벌린다.

이윽고 그들을 지켜보며 침묵하고 있던 남자, 원탁왕 아서가 나지막이 등을 돌렸다.

왕의 등.

“……”

곰처럼 커다란 왕의 등이, 묵직하고 낮은 중저음의 목소리로 말했다.

“퇴각할 준비를 하라.”

“폐하……!”

그 말에, 두 가문의 싸움에 가세할 태세를 갖춘 원탁의 기사단이 당황했다. 그러나 누구도 그 이상 말을 잇지 않는다.

그게 왕의 명령이니까.

검성 롤랑과 샤를마뉴의 기사들 역시 차갑게 얼어붙은 표정으로 그들의 대치를 지켜보았다.

철십자 기사단, 샤를마뉴의 12기사, 원탁의 기사단, 대륙 제일의 기사 조직이니 뭐니 떠들던 그 이야기 전부가 애들 장난처럼 느껴질 정도의 싸움.

저것이 바로 나이트워커 가문의 진짜 힘이었고, 아울러 제국에게는 그들과 맞설 힘이 존재했다.

“또 보게 될 거랍니다, 거짓으로 점철된 ‘가짜 가족들’이여.”

바로 오늘, 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별과 단검의 횡포 아래 이 세계가 순순히 고개를 조아리지 않을 거라고 경고하기 위해.

* * *

‘예정보다 빨라졌나…….’

옥좌의 방, 어둠 속에 홀로 남겨진 제국의 황제가 가족의 공백을 뒤로하고 혀를 찼다.

고개를 내린다.

황제의 앞에 여덟 명의 마법사들이 있었다.

제국 제일의 명문 마탑, 《에인션트 리그》를 대표하는 여덟 마탑주들이.

“마도왕 바르무어 후작.”

“부르셨습니까, 폐하.”

황제의 말에 대륙 제일의 인간 마법사가 대답했다.

“그대는 어째서 왕(王)을 자청하나?”

“……!”

황제가 되물었다.

“짐의 나라, 짐의 제국에서, 짐의 영토를 빌린 일개 후작 따위가, 왜 왕이라도 된 것처럼 행세하지?”

“무, 무슨 말씀을 하는지…….”

“아닌가?”

옥좌에 앉은 황제가 되물었다.

“그렇담 오늘부터 이 제국의 마법사 모두는, 오로지 짐이 명령한 ‘성과’를 내기 위해 학파의 경계를 허물고 협력하며 충성을 바칠지어다.”

일방적이기 그지없는 억지. 아무리 제국의 황제라 해도 도대체 무슨 수로 이런 행패를 부리는 것일까. 그럼에도 직감할 수 있었다.

과거 바르무어가 기억하는 합스부르크 가문의 1황자는, 저런 괴물 같은 남자가 아니었다.

그럼 지금 저 옥좌에 앉아 있는 남자는…… 도대체 누구지?

“무슨 성과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정체를 알 수 없는 냉기에 몸을 떨며 마도왕 바르무어 후작이 되물었다.

남자가 대답했다.

“《한여름 밤의 인형(Night Doll)》.”

* * *

하나의 시대와 시대를 풍미했던 강자들이 서녘 하늘 너머로 저물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스러지는 그들의 어스름은, 그 어느 때보다도 붉게 타오르는 핏빛을 흩뿌리고 있었으니까.

* * *

크레시 전투에서 대패하고 북부 전역이 쑥대밭이 되어 약탈당했던 샤를마뉴 왕국은, 가까스로 칠왕국 연방과 휴전(休戰) 협정을 체결했다.

몇 년 가까이 그래왔던 것처럼, 지지부진하고 무엇 하나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소식이었다.

그러나 그 전장에서 정체를 드러내고 과시했던 이들의 존재는 그렇지 않았다.

나이트워커 가문의 최고 전력이자 《13계단》이라 불리는 하이마스터.

그들에 맞서 결코 뒤지지 않고 ‘똑같은 검’을 써서 맞섰던 쌍두까마귀의 가족들.

패밀리.

“어떻게 그들의 존재를 알고 있었니, 시엔?”

그날 밤, 나이트워커 가문의 공작 저택.

시엔과 라일라, 오직 두 모자가 그곳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이전에 제국 국교회의 사도를 쓰러뜨리는 과정에서, 놈에게 정보를 얻어냈어요.”

“거짓말을 하고 있구나.”

라일라가 대답했다. 그녀는 인간의 감정을 읽는 데 능숙하다. 아무리 시엔이라 해도 그녀의 앞에서는 쉽게 거짓을 말할 수 없다.

엄밀히 말해─ 그것은 라일라 나이트워커의 능력이 아니었다.

“나의 눈을 속일 수 없다는 걸 알지 않니.”

“…….”

그것은 어디까지나 ‘라일라 아퀴나스’로 태어날 때부터 가졌던 능력이었으니까.

오로지 아퀴나스 가문의 인간에게 계승되는 고유의 능력.

《이단을 가려내는 눈(The Eye of Truth)》.

─그들 아퀴나스 가문이 대대로 제국 국교회의 이단심문관장을 배출할 수 있었던 가장 커다란 이유.

동시에 그 저주받은 눈 때문에, 그 눈을 향한 아퀴나스 가문의 집착과 광신 덕분에 라일라는 자신의 의지로 기꺼이 ‘아퀴나스의 이름’을 버렸다.

그리고 새로운 가족의 손을 잡았다.

우습게도, 그녀의 사랑하는 동생 빌헬미나를 위해서.

* * *

어떤 특별한 핏줄에는 특별한 힘이 계승된다. 아퀴나스 가문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단을 가려내는 눈》 또는 《진실의 눈》이라고 불리는 능력.

문제는, 피는 대를 거듭할수록 희석된다는 점이다. 그들의 핏줄에 깃든 특별한 능력 역시 외부 가문의 피가 섞이며 점점 희석될 테고, 또는 그들 가문의 전유물이어야 할 능력이 방계 가문으로 세상에 퍼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래서 그들 가문의 결정은 다음과 같았다.

완전한 근친(近親).

그냥 사돈이나 팔촌의 수준조차 아니었다. 일정 촌수 이내의 아퀴나스 가문을 순혈로 규정하고, 그들 가문은 오로지 순혈 사이에서 ‘교배’를 거듭하며 강한 핏줄을 가진 아이를 낳았다.

그리고 폐쇄된 그들 가문의 어둠 속에서, 두 자매가 태어났다.

라일라와 빌헬미나.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모두 진실의 눈을 가지고 있었고, 이럴 경우 가문의 규칙은 하나였다.

하나는 그 눈을 이용해 이단심문관장이 되고 가문의 명성을 널리 떨친다.

나머지 하나는, 진실의 눈이 발화할 정도로 짙은 핏줄을 이용해 그들 가문의 ‘혈통적 순수성’을 지키고 강화하고 퍼뜨리는 씨받이가 되어 어둠 속에서 삶을 마감한다.

라일라 아퀴나스는 어린 시절부터 그 눈동자로 모든 것을 보아왔다.

그들 가문과 이 세상, 인간의 추악함을.

사랑하는 동생 빌헬미나가 가문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 남자가 라일라의 앞에 나타난 것도 그즈음의 일이었다.

“가족이 되고 싶으냐.”

“저에게는 이미 가족이 있어요.”

일찍이 라일라의 대부이자 당대 가주였던 빌 나이트워커.

“그 아이, 빌헬미나는 저의 전부예요.”

남자의 말에 라일라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제가 사랑하는 전부를 위해, 저는 무슨 짓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어요.”

“어떤 각오를 말이냐?”

“저를 당신들의 ‘가족’이 되게 해주세요.”

훗날 《암살자들의 어머니》라 불리며 경외받게 될 어린 소녀가 말했다.

“저는 나이트워커 가문이 인간이 돼서, 해야 할 일이 있거든요.”

그녀에게는 가족이 전부였고, 그 외의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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