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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 가문의 천재 어쌔신-112화 (112/200)

112화. 최고 회의 (1)

라일라는 자기 의지로 아퀴나스의 이름을 버리고 ‘나이트워커 가문의 인간’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렇게 아퀴나스 가문의 미래를 책임져야 할 후계 중 하나가 사라졌다.

이단심문관장이 되기 위해서는 《진실의 눈》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들 가문의 후계 중 당장 그 눈동자를 가진 것은 빌헬미나밖에 남지 않았다.

혈통의 순수성을 지키기 위해 산 제물이 되어야 했던 빌헬미나의 운명 역시 바뀌었다.

* * *

두 자매가 엇갈린 길을 걷고 나서 얼마 뒤.

라일라가 공식적으로 나이트워커 가문의 가주로 등극하고, 빌헬미나는 아직 《이단심문관장》이 되지 못했던 어느 날.

아퀴나스 대주교령.

세속의 작위는 없으나, 최고위 성직자로서 어지간한 세속 공작 이상의 힘을 가진 교회의 영지.

그곳에서 천벌의 집행자를 자처하는 와중 세상에서 가장 타락한 죄악으로 얼룩진 가문의 장로들이 모여 있었다.

식탐(食貪)하지 말라. 그 말이 무색하게 살이 뒤룩뒤룩 쪄서 거동조차 힘들 정도의 거구를 가진 남자들. 그 외에도 일곱 대죄 이상으로 신에게 용서받을 수 없는 금기를 범하는 자들이었다.

“아무리 차기 이단심문관장이 될 아이라 하여도, 그녀는 여자의 몸이다.”

“무엇보다 신을 섬기는 자로서, 여자의 몸을 갖고도 아이를 낳은 것은 추기경 놈들에게 명분의 꼬투리를 잡힐 여지가 있지.”

“아직 가주님께서 물러날 때까지는 시일이 있습니다.”

“아이를 배고 임신하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넉넉할 테지요.”

그 말에 당대 아퀴나스 가문의 가주, 아울러 당대의 이단심문관장을 맡고 있는 장년의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그 아이를 품을 것이다.”

“필시 진실의 눈을 가진 가주님과 차녀(次女) 사이의 아이니, 아이 역시 강력한 혈통을 가지겠지요.”

근친 중에서도 가장 커다란 죄악이라 일컬어지는 부녀(父女)의 근친. 아무리 제국의 상식이라 해도 경악할 수밖에 없는 그 죄악을, 아퀴나스 가문은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담았다.

“아, 다들 이곳에 있었네요.”

그때 그녀가 그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제국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가진 성직 제후의 땅에.

“공화국의 괴물 놈들……!”

배불뚝이 장로 하나가 겁에 질린 채 당황하며 소리를 높였다.

공식적으로 ‘그들’이 움직인 이유는 장차 가문과 공화국의 적이 될 ‘아퀴나스 가문’의 씨앗을 앞서 뿌리뽑기 위함이었다.

장년의 이단심문관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중에서 유일하게 ‘달라진 그녀의 얼굴’을 알아보고.

“네년…… 설마 살아 있었나.”

누구도 실종된 그녀가 살아 있을 줄 몰랐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그녀는, 꼼짝없이 적대 세력의 손에 죽어 실종으로 위장된 줄 알았으니까.

굳이 공화국이 아니더라도, 아퀴나스 가문의 적들은 지나치게 많았기에.

“그럼 설마 나이트워커 가문의 괴물이란 게…….”

“오랜만이네요, 아버님.”

라일라 아퀴나스, 이제는 라일라 나이트워커의 이름을 가진 암살자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

그녀의 곁을 지키는 ‘새로운 가족’들과 함께.

《웃는 남자》 요한이 월광검의 시린 서슬을 고쳐 잡았다. 마찬가지로 《늙은 암살자》의 이름을 가진 루치아노 역시 그의 단검 ‘침묵(사일런스)’을 고쳐 잡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어린 소년 소녀의 모습을 하고 있는 두 남매, 헨젤과 그레텔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들이 도대체 무슨 수로 여기까지 들어왔는지, 무슨 수로 그게 가능했는지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게 그들의 방식이다.

“아무리 공화국의 사신이라 해도, 신성 제국의 아퀴나스 가문을 상처 입히고 살아남을 수 있을 것 같나.”

당대 아퀴나스 가문의 수장, 일찍이 라일라의 생물학적 아버지가 말했다.

“그야 대대로 이단심문관장을 배출해온 명예롭고 자랑스러운 아퀴나스 가문일 때의 이야기죠.”

그 말에 라일라가 싸늘하게 조소했다.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시린 서슬과 증오를 담아서.

“그러나 세상 사람이 그 뒤에 얼룩진 이 끝없는 죄악의 태산을 보고도 그럴 것 같나요?”

아퀴나스 가문의 ‘비밀’을 아는 인간은 그렇게 많지 않다.

“어리석구나, 딸아.”

가주가 조소했다.

“그럼 신성 제국과 교회의 입장에서는 더더욱 우리의 치부(恥部)를 숨기고, 네놈들 공화국의 사신에게 그 죄를 덮어씌우겠지.”

“너무 염려하지 마세요, 아버님.”

라일라가 쓴웃음을 지으며 말을 잇는다.

“그것은 당신이 신경 쓸 문제가 아니랍니다.”

어차피 여기서 모두 죽게 될 테니까.

깨달을 틈조차 없이 그들이 움직였다.

그곳에 있는 이들 중 교회의 전력이 없지는 않았으나, 대다수는 그저 가문의 대소사를 지키는 살찐 수퇘지에 불과하다.

오직 하나, 그 남자를 제외하고서.

당대의 최강자 중 하나이자 이제는 어느덧 저무는 태양이 되어버린 그 남자 앞에서, 새로운 강자의 이름을 손에 넣은 《암살자들의 어머니》가 말했다.

“옛정을 갖고 당신에게 하나의 진실을 말씀드리죠.”

인간의 진실과 거짓을 밝혀낼 수 있는 눈, 신앙의 무고함과 유죄 여부를 알 수 있는 《이단을 가려내는 눈》을 가진 당대의 최강자를 향해.

“당신들은 모두, 이 자리에서 죽습니다.”

“……!”

남자의 눈에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실’이 새겨졌다.

* * *

“수고했단다, 빌헬미나.”

“……라일라 언니.”

그 시절의 빌헬미나는 비록 무력하지는 않았으나, 아직 라일라처럼 강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문 원로회의 의지에 맞서 자기 의지로 무엇 하나 결정할 수 없는 처지였다.

훗날 시엔을 향해 도움의 손길을 요청했던 ‘서펀트 가문의 어린 영애’처럼─.

뒤룩뒤룩 살이 찐 가문의 돼지들과 증오스러운 아버지의 시체를 뒤로한 채, 살점과 창자가 흩뿌려진 피바다 위에서 라일라가 미소 지었다.

“너는 이제 완전한 자유란다, 빌헬미나.”

그녀에게 있어 빌헬미나는 여전히 사랑하는 가족이었다.

그러나 그곳에서 그녀를 사랑하는 ‘가족’은 오직 라일라뿐이었다.

“이 아이는 위험해, 라일라.”

월광검의 서슬을 고쳐 잡고 요한이 말했다. 훗날의 씨를 미리 없애기 위해.

“멈추세요, 오라버니.”

그 순간, 그보다 차갑고 시린 ‘죽음의 실’이 요한의 앞을 가로막았다.

“이미 우리 가문의 횡포는 제국 입장에서도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랍니다.”

“그럼 뭘 망설이는 거지?”

“그러나 그녀가 살아 있는 이상은 아니랍니다.”

그녀는 이미 ‘차기 이단심문관장’으로 얼굴이 알려져 있을뿐더러, 제국의 입장에서는 사실상 퇴물이 된 지금의 가주에 이어 새로운 핵심 전력이 될 존재였다.

“우리는 이대로 물러날 겁니다.”

─아무리 나이트워커 가문의 인간이라 해도 그녀에게 손을 댈 수는 없었고, 그래서 손을 대지 않았다.

“나는 더 이상 너의 언니가 아니란다.”

동시에 라일라가 지켜야 할 가족은, 더 이상 빌헬미나 하나가 아니었다. 그곳에 있는 그들 역시, 라일라에게는 누구와도 비할 바 없이 소중한 가족이었다.

“거짓말.”

동시에 빌헬미나 아퀴나스가 차가운 눈동자로 대답했다.

“언니는 거짓말을 하고 있어.”

“기억하렴, 빌헬미나.”

라일라가 말했다.

“밝혀낼 수 없는 거짓은, 진실과 구별될 수 없다는 사실을.”

사랑하는 동생을 향해 언니가 던지는 처음이자 마지막 충고였다.

* * *

“……어머니?”

소년의 부름에 어머니가 눈을 떴다.

“표정이 좋지 않아 보여요.”

그녀의 아들,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어야 할 ‘새로운 아퀴나스’의 이름을 가진 아이가 말했다.

《암굴(暗窟)의 성자》 루카 아퀴나스.

“행복한 꿈을 꾸었거든.”

“악몽이 아니라요?”

“그래, 아주 행복했던 시절의 꿈이란다.”

“그런데 왜 울고 계세요?”

“글쎄.”

소년의 천진한 물음에 빌헬미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녀 자신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빌헬미나에게 있어 그 아이, 루카는 지금껏 그녀가 손에 넣은 어느 ‘꼭두각시’와도 달랐다.

물론 그 아이는 정말로 피가 이어진 아퀴나스 가문의 인간이 아니다.

그날, 아퀴나스 가문의 수뇌부는 라일라의 손에 모조리 절멸당했으니까.

그날로 차기 이단심문관장이 된 빌헬미나는, 거기에 더해 남아 있는 아퀴나스 가문의 인간 전원에게 《특급 이단》의 죄목을 씌워 일족을 모두 숙청했다.

그것도 모자라 라일라와 나이트워커 가문의 손에 살해된 수뇌부의 죽음마저, 모두 자신의 행위라고 자백하며.

사랑하는 언니를 향해 동생이 주는 처음이자 마지막 도움이었다.

그 이후, 그녀 빌헬미나 아퀴나스는 《죽음의 성모》란 이름을 받게 되었다.

‘가족이 되고 싶으냐.’

그리고 그 남자가 그녀에게 손길을 내밀어준 것도 그즈음의 일이었다.

‘우리와 함께 진짜 가족이 되어, 거짓으로 점철된 그들에게서 그녀를 되찾아 오자꾸나.’

태양과 쌍두까마귀의 문장을 새겨넣은 남자였다.

* * *

“어머니.”

아들의 부름에 어머니가 지그시 눈을 떴다.

“표정이 좋지 않아 보이세요.”

“슬픈 꿈을 꾸었거든.”

라일라가 말했다. 그녀답지 않게 숨길 수 없는 감정과 동요가 깃든 목소리로.

시엔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가족들이 모두 모여 있어요.”

“그래, 아무래도 선잠을 자버린 듯하구나.”

그렇게 말하며 라일라가 집무실에서 몸을 일으켰다. 시엔 역시 말없이 등을 돌렸다.

그녀의 뺨 위로 말라붙은 눈물 자국을, 애써 못 본 체하며.

그들에게는 가족이 전부였다. 동시에 알고 있었다.

가족이 전부라고 해서, 결코 그 외의 것들이 절대 아무것도 아닐 리 없다는 것을.

* * *

나이트워커 가문의 인간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일은 드물다.

하물며 누구 하나의 예외조차 없이, 이제 막 세례를 마친 아이부터 하이마스터에 이르기까지 가문 전원이 예외 없이 집결하는 일은 더더욱.

나이트워커 공작 가문의 회당.

전부 모였어도 그리 많지는 않다.

메이드맨부터 하이마스터에 이르기까지 그 숫자는 수십 명 남짓.

일백(一百)조차 되지 못하는 그들의 존재가, 이 척박한 땅과 나라를 지금의 위치에 이르게 했다.

“친애하는 나의 형제자매들이여.”

묵묵히 예를 차리는 그들 앞에서, 라일라가 나직이 입을 열었다.

“우리 가족의 존재를 모욕하고 위협하는 ‘거짓된 가족’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들었겠지요.”

회당 전체를 아우르는 커다란 원탁에 앉아, 라일라가 입을 열었다.

“그 후로도 그들, 쌍두까마귀의 가족에 대해 숨겨온 정보가 들려왔답니다.”

그들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 극비리에 감추고 있던 제국 최강의 전력이 모습을 드러내고, 그들 존재를 감추기 위해 숨어 있던 그림자와 어둠 전부가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부르는지 역시도 말이지요.”

게다가 그들이 정체를 드러냈을 때, 그들의 존재는 결코 밤과 어둠의 세계에 속해 있지 않았다.

오히려 나이트워커 가문과 마찬가지로, 숨기지 않고 대륙과 세계에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냈으니까.

신성 로마누스 제국 황실 직속 최고 친위대─.

통칭 《황금여명회(Hermetic Order of the Golden Dawn)》.

일찍이 그들 가문의 역사상 가장 강대한 적을 앞에 두고, 라일라가 말했다.

“전쟁의 때가 다가왔답니다.”

그 전쟁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라일라와 나이트워커 가문이 가장 싫어하는, 그럼에도 피할 수 없는 전쟁.

그들이 당사자가 되어 직접 치르는 전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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