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화. 최고 회의 (2)
나이트워커 가문의 최고 회의.
단지 하이마스터급 이상의 수뇌부들만이 모이는 자리가 아니다.
그들 가문의 가족 전체가 모여, 설령 입을 열지 않더라도 그곳에서 벌어지는 대화를 모두 들을 의무가 있는 자리.
시엔이 태어나고 지금까지 이런 가문 회의가 치러진 적은 없다.
그러나 쌍두까마귀의 가족이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내고, 가주 라일라가 그들의 손에 쓰러졌을 때.
새로운 가주가 된 시엔에 의해, 처음으로 이런 형태의 회의가 열렸을 뿐.
‘이제는 다르다.’
가문 전원이 집결해 있고, 가문의 그 누구도 희생당하지 않았다.
적어도 아직까지는.
“게다가 말했다시피, 황금여명회의 인간들은 우리 가문과 같은 ‘아홉 가지의 검식’을 쓰고 있지.”
“가문 내에 배신자가 있는 걸까?”
“이 바보야! 검결(劍訣) 좀 읊는다고 해서, 우리 가문의 검식을 그렇게 흉내 낼 수 있을 것 같아?”
그레텔의 말에 헨젤이 대답했다.
“돈 헨젤의 말이 맞습니다.”
그의 말을 받아 《늙은 암살자》 루치아노가 대답했다.
“그곳에 있던 그들 ‘쌍두독수리의 가족’은, 적어도 우리 가문의 하이마스터와 엇비슷한 수준의 경지를 구사하고 있었지요.”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어. 그래도─.”
“확실히 ‘우리의 검’이었지.”
밴시 린이 대답했다.
“그들은 거꾸로 그 검을 ‘우리의 검’이라고 말했고.”
“린! 그런 바보 멍청이들의 헛소리를 믿는 거야?!”
그레텔의 말에 침묵하고 있던 요한이 입을 열었다.
“꼭 아니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
“뭐?! 요한 오빠까지……!”
“그들은 자기들을 ‘진짜 가족’이라고 했어. 무엇보다 우리를 가짜라고 불렀지.”
일말의 감정조차 없이 담담하게.
“적어도 그들이 보기에는, 그렇게 주장할 수 있을 정도의 ‘확실한 정통성’이 있다는 뜻이겠지.”
그렇게 말하며 요한이 고개를 돌렸다.
“지혜로운 자, 가문의 콘실리에리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첫 밤의 아들」이자 가문의 2대 가주 비토 나이트워커의 때부터, 나이트워커 가문의 콘실리에리로 그 전부를 기록해온 자.
“별과 단검의 이름을 걸고, 내 눈으로 보아온 모든 가족은 결백하다.”
그녀가 ‘눈으로 보지 못한 가족’은 오직 하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가족이야말로, 지금의 나이트워커 가문을 있게 했고 지금의 이 나라를 있게 한 자였다.
“밤의 아버지…….”
최초의 밤을 걷는 자, 시조 카산 나이트워커.
“하지만 직접 거느린 암살자 교단과 함께 공화국에 고용되어 활약한 그가, 어째서 제국에…….”
“말 그대로 고용되었을 뿐이니까요.”
카산 나이트워커가 공화국에 고용되기 전부터, 그 남자는 이미 동방 대륙에서 ‘하산 사바흐’라 불리며 고대 암살자 가문을 이끌었던 수장이었다.
그 남자는 나이트워커 가문의 시조이나, 동방 대륙 시절부터 존재했던 암살자 교단 자체의 시조는 아니다.
그것은 훨씬 더 오래되고 비밀스러운 역사 속에 감추어져 있으니까.
“그럼 제국이, 동방 대륙에 남아 있는 그들 암살자 교단을 고용했다는 뜻입니까?”
그 말에 루나가 고개를 젓는다.
“아니, 그들 교단(Order)의 존재 자체는 오래전에 사라졌다.”
천 년 전부터 대륙의 역사를 지켜본 고대의 괴물에 비할 바는 아니나, 결코 그들에 뒤지지 않는 지혜로운 자가 말했다.
“동방 대륙과의 교류가 「장벽」으로 완전히 닫히기 전부터, 그들 암살자 교단은 이미 완벽한 대륙의 공적(公敵)이 되어 있었지.”
말 그대로 세계의 적.
“그곳 대륙에서는, 아마도 자신들을 《마교(魔敎)》라 자청했을 것이다.”
“마교……?”
“마신(魔神)을 숭배하는 교회란 뜻이지.”
루나가 말했다. 그 말을 듣고 미하일이 어깨를 으쓱였다.
“이야, 제국 귀에 들어갔다가는 우리 가문도 싹 다 십자가에 매달리겠네.”
“이제는 제국도 마찬가지겠지.”
그 말에 침묵하고 있던 이자벨이 어깨를 으쓱였다.
“어쨌든 멸망을 피해 그들 가문의 교주, 시조 카산은 동방 대륙을 넘어 서방으로 왔다.”
그러나 처음 그들이 정착한 곳은 베네토 공화국이 아니었다.
“사라센 제국이 동방에서 온 그를 고용하고, 그에게 ‘하산 이븐 알 사바흐(Hasan ibn al Sabbah)’란 이름을 내려주었지. 실제로 그가 동방 대륙에서 무슨 이름을 썼는지는, 나 역시 알 수조차 없다.”
“하지만 기록상에는 분명 동방에서…….”
“이곳 인간의 입장에서는, 동쪽의 사라센 제국도 충분히 동방(Middle East)이 아니더냐.”
이 대륙의 동방이라 불리는 일대를 지배하고 있는 사막 엘프들의 제국, 사라센.
그리고 그보다 훨씬 더 멀리 떨어진, 이제는 장벽에 의해 닫혀 교류가 단절된 미지의 동방 대륙.
“이국에서 온 하산 사바흐는 동방의 ‘사라센 제국’이 아직 살라딘에 의해 통일되기 전, 난무하던 여러 토호 세력 중 하나에 고용되었다. 그 시절에는 그가 거느린 암살자 교단 역시 하사신(Hassassin)이라 불렸었지.”
마찬가지로 그곳에서도 하산 사바흐와 그가 거느린 고대 암살자 교단은 같은 악행을 저지르며 엘프들의 증오를 샀고, 살라딘에 의해 사라센 제국이 통일된 뒤에는 있을 곳이 없어져 인간의 땅까지 도망쳤다.
“그렇게 카산과 그가 거느린 고대 암살자 교단이, 지금의 나이트워커 가문이 되었다.”
“이야, 이 나이 먹고 역사 수업이나 듣게 될 줄은 몰랐는데.”
미하일의 말에 루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이 오래된 역사의 가장 중요한 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지?”
짧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 남자는 우리가 생각하는 ‘좋은 아버지’와 거리가 멀었다는 점이지요.”
침묵 끝에 시엔이 입을 열었다.
“그가 공화국에 고용된 것은 지켜야 할 가족을 위해서도 아니고, 이 나라를 위해서도 아니고, 오직 ‘자기 자신’을 위해서였으니까요.”
용병, 고용된 자는 얼마든지 이익을 위해 등을 돌릴 수 있다.
“그 남자에게는 ‘가족’이 전부가 아니었던 겁니다.”
“하, 하지만 그런 자가 왜 우리 가문을…….”
이 세상의 무엇보다 가족을 사랑하고, 신뢰를 지키는 자로 있게 했나.
이해할 수 없는 물음 속에서 루나가 입을 열었다.
“그것이 왜 시조 카산의 뜻이라 생각하느냐?”
그 말에 얼어붙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동족에게 버림받고, 갈 곳 없는 나를 거둬준 것은 그 남자가 아니었다.”
“첫 밤의 아들…….”
2대 가주 비토 나이트워커.
“돈 비토께서도 나와 같았다.”
루나가 말했다.
“그리고 우리 모두와 같았지.”
가족이 되고 싶니?
가족을 갈구하는, 갈 곳 없고 버려진 아이.
“동시에 비토에게는 ‘암살자의 재능’이 있었지.”
그렇기에 사실상 세력이 절멸하고 혼자서 남겨진 카산은, 자기 세력을 늘리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가족이란 이름의 거짓된 결속으로.
“우리가 ‘세례성사’라 부르는 외단(外丹)은, 일찍이 그가 동방 대륙에서 마교의 교주로 있던 시절에 개발된 비약이었다.”
목숨을 담보할 수 없는 위험과 함께, 인간을 초월하는 터무니없는 힘을 제공하는 비약.
“비토께서는 최초로 외단을 복용하고 ‘첫 밤의 아들’로서 그의 아들이 되었으며─.”
아버지에게 사랑받지 못했다.
도가 없는 자가 도를 부르짖듯이.
기사도가 없는 샤를마뉴 왕국이 기사도를 부르짖고, 신사도가 없는 칠왕국이, 신앙이 없는 신성 제국이 그렇듯이─.
정작 최초의 나이트워커 가문은 그 무엇보다 ‘가족’과 거리가 멀었다.
“그 이후로는 기록된 대로, 시조 카산께서는 아들이 보는 앞에서 숨을 거두며 죽음을 맞이했고─.”
“누구도 그 시체를 찾지 못했다.”
수백 년 전의 허무맹랑한 신화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천 년도 전에 태어나서 멀쩡히 돌아다니는 괴물이 있는 마당에, 고작 수백 년밖에 되지 않은 존재가 ‘사라졌다’고 해서 그게 정말 죽음을 뜻하는 것일까?
“……돈 비토께서는 그 남자와 달랐다.”
역설적으로 누구보다 가족을 갈구했음에도, 정작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진심으로 가족을 사랑하셨다.”
시조 카산에게 있어 그는 그저 아들이란 이름의 장기 말에 불과했다.
일찍이 빌헬미나 아퀴나스에게 있어 그의 아들 ‘오스카’가 그러했듯이.
비토는 아니었다. 아버지에게 받지 못한 것, 자신이 바랐던 것을 그의 ‘가족들’을 위해 헌신하겠다고 맹세했다.
La famiglia è tutto(가족이 전부다).
동시에 비토 나이트워커조차, 가족 이외의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렇게 나이트워커 가문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마찬가지로 그들 가문 역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한 남자 역시, 아직 무대 너머로 사라지지 않았다.
“밤의 아버지는 살아 있고, 이제는 제국에서 그의 새로운 가족을 키우고 있는 거겠지.”
그 말을 듣자마자, 그곳에 있는 이들 모두가 깨달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알기 쉬운 절망의 분위기는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침묵하고 있던 그레텔 나이트워커가, 커다란 미소를 지으며 활짝 웃었다.
“역시, 우리가 진짜였네!”
* * *
그날 밤.
“굳이 가족 전부를 모여두고 할 정도의 이야기였니?”
낮에 열린 회의와 별개로, 오직 가문의 최고 지도부로 이루어진 또 하나의 비밀스러운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가주 라일라와 최강의 하이마스터 요한, 지혜로운 자 콘실리에리, 끝으로 차기 가주 시엔까지.
“가족 모두는 진실을 알 필요가 있어요.”
시엔이 대답했다.
“카산이 살아 있고, 우리 가문 모두가 그의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다는 진실을?”
“꼭두각시의 실 따위는 진즉에 끊어졌다.”
비아냥거리는 요한의 말에 루나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첫 밤의 아들, 돈 비토의 손에 의해서 말이지.”
“그럼 실이 끊어진 우리는 뭐가 될까.”
《웃는 남자》 요한이 되물었다. 그 말에 침묵하고 있던 라일라가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죠.”
아무것도 아니다.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기에, 우리는 무엇이라도 될 수 있답니다.”
“그럼 너는 뭐가 되기를 바라니, 라일라?”
“우리가 바라는 것은 모두 똑같답니다.”
요한의 물음에 라일라가 대답했다.
“진정한 가족이죠.”
진실도 사실도 아니다.
“진정(眞情)한 가족이라.”
그 말에 요한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는 그다지 나이트워커 가문의 가족 따위, 되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야.”
“말을 조심하세요, 오라버니.”
“왜, 여기 내 처지를 모를 정도로 어리석은 ‘가족’이 있나?”
그렇게 말하며 요한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라일라와 루나, 시엔의 앞에서 어깨를 으쓱이며.
“요한 형님께서 자기를 어떻게 생각하든 저는 개의치 않습니다.”
시엔 역시 새삼스러울 것 없다며 대답했다.
“하지만 당신 역시, 우리의 가족이죠.”
문득 그레텔의 말이 떠올랐다.
언젠가는 너도 이해하게 될 거야.
저래 보여도 요한 오빠는 사실 불쌍한 사람이거든.
시엔 역시 그 의미를 모를 리가 없었다.
“…….”
“저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무슨 짓이라도 할 겁니다.”
시엔이 말했다. 가족을 위협하는 것은 그 무엇이라 해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이.
“설령 우리 가족의 앞을 가로막는 게, 밤의 아버지이자 최초의 밤을 걷는 자라 할지라도.”
요한의 입가에 걸려 있던 부드러운 미소가 사라진다.
* * *
제국의 황실 직속 최고 친위대, 황금여명회는 그들의 정체를 드러내는 시점에서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오히려 그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힘과 실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으니까.
아슬아슬하게 평형을 유지하고 있던 대륙의 저울추는 무너져 내렸고, 칠왕국과 샤를마뉴 왕국 역시 생각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와 함께 베네토 공화국이 샤를마뉴 왕국과 동맹을 내걸며 맺은 하나의 ‘사업’이 순조롭게 궤도에 올랐다.
신대(神代)라 불린 시절을 지배했던 애굽 제국에서, 그들 제국의 지배자 파라오를 위해 쌓아 올린 황제의 무덤…… 피라미드가 발굴된 사막.
어느 국가의 영토에도 속하지 않은 바로 황금과 기회의 땅.
바로 그 황량한 사막 위에 쌓아 올린 《미궁도시》…… 일명 ‘오지만디아스’가 모습을 드러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