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 가문의 천재 어쌔신-114화 (114/200)

114화. 재회 (1)

신대 제국 황제(파라오)의 무덤, 피라미드.

수천 년 가까이 신화시대를 지배해온 황제의 무덤에는 얼마나 사치스러운 재보와 보물이 묻혀 있을까.

정작 시엔은 피라미드 따위에 관심이 없었다.

당장 시엔이 쓰러진 미래까지 마그레브 사막의 피라미드에는 온갖 보물들이 숨겨진 ‘마르지 않는 던전’으로 주목받았으나, 정작 그 누구도 황제의 방이 있는 곳을 찾아내지 못했으니까.

베네토 공화국의 옛 속담처럼, 금광보다 더 비싼 것은 금광으로 가는 길 그 자체다.

“베네토 항구에서 마그레브 사막을 왕복하는 ‘정기 수송단’이 첫 출항을 시작했습니다.”

걸어서 마그레브 사막으로 향하기 위해서는, 대륙 동쪽 끝의 아나톨리아 지방을 지나는 터무니없을 정도의 대장정이 된다.

“대양을 가르는 검, 노틸러스호가 직접 사라센 해적들의 위협에서 수송단을 지킬 겁니다.”

“의미 있는 첫 출항이 되겠구나.”

육로는 터무니없이 멀다. 그러나 배를 타고 지중해(Mediterranean Sea)를 거치는 루트는 그렇지 않다.

“지금 당장 정기 수송 선단을 운용하는 것은 본국의 베네토 항구와 샤를마뉴 왕국의 항구도시 마르세유이며, 추후 마그레브 사막을 오가는 승객들의 규모에 따라 미리 몇 곳의 항구도시를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대륙에서 바다를 이야기할 때는, 해양의 패자 베네토 공화국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마그레브 사막 일대의 도시화 계획은 어떻게 되고 있니?”

시엔의 사업 보고를 듣는 와중 라일라가 되물었다.

《미궁도시 오지만디아스》.

“사라센 제국의 입장에서 노골적으로 보이지 않도록, 성벽 등의 요새화는 자제하되 피라미드를 탐사하는 이들을 위해 여관이나 ‘도박장’ 등 숙박업 및 편의 시설들을 위주로 개장 준비를 끝마쳤습니다.”

여관과 주점, 도박장, 환전소와 은행 따위. 오직 별과 단검의 신뢰를 통해 성립할 수밖에 없는 것들.

“그래, 어려운 환경에서는 때로 숨을 돌릴 느긋함도 필요하니까 말이지.”

라일라가 차가운 목소리로 미소 짓는다.

설령 피라미드에 들어가 일확천금을 손에 넣어도, 그 일확천금을 하루아침에 날리고 그들 가문의 부로 돌아오는 풍경을 상상하며.

“하지만 사라센 제국 역시, 자기네 영토 바로 옆에서 돈 놀음을 하는 우리를 달갑게 보지는 않을 거란다.”

“돈 루치아노, 비고 형과 티아를 이미 공화국의 특사 자격으로 보냈습니다. 가족들이 가져오는 답에 따라 대응이 달라지겠지요.”

“참으로 신중하구나, 시엔.”

시엔의 대답에 라일라가 흡족한 듯이 미소 지었다.

“네가 생각하는 ‘미궁도시’의 사업이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니?”

“순조롭지는 않을 거예요.”

시엔이 대답했다.

“그래도 할 가치가 있는 일이죠.”

신대 제국 황제의 무덤이자, 헤아릴 수 없는 보물이 묻혀 절대로 마르지 않는 대미궁 피라미드. 탐욕에 눈이 멀어버린 인간들이 불나방처럼 그곳에 모여들 테고, 그 기회를 놓칠 공화국과 나이트워커 가문이 아니다.

일명 「남부 개척 시대(Wild South)」의 서막.

과거에는 오히려 지나칠 정도로 순조로웠다. 나이트워커 가문이 마그레브 사막 일대에 미궁도시를 쌓고 대륙의 부를 쓸어 모으는 와중, 쌍두까마귀의 가족들은 제국의 그늘 속에서 정체를 숨기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제는 아니었다.

“우리는 두 개의 제국을 나란히 상대하는 셈이지.”

게다가 신화시대의 유적에 흥미를 갖는 것은 인간뿐이 아니다.

신성 제국의 교회와 쌍두까마귀의 가족들을 상대하는 동시에, 사막 엘프들로 이루어진 ‘대륙 최강대국’ 사라센 제국과의 충돌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늘 그래왔듯, 그들 베네토 공화국은 힘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다.

대륙 역사상 가장 치열한 외교전(外交戰)의 시작이었다.

* * *

정체를 드러낸 이상 쌍두까마귀의 가족─ 공식적으로 자기들을 황실 직속 고위 친위대라 일컫는 《황금여명회》 역시 움직일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그들 ‘가족’과의 충돌 역시 피할 수 없을 테지.

그 점에서는 시엔이 기억하는 훗날과 확실히 다를 것이다.

그렇기에 시엔이 직접 요동치는 태풍의 눈으로 향하기 직전.

“왔느냐, 시엔.”

공작 저택의 지하 서고.

여느 때처럼 시엔을 맞아주는 그녀를 향해, 시엔이 고개를 숙이며 예를 표했다.

“어려운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해요, 루나 님.”

“신경 쓸 것 없다.”

시엔의 말에 루나가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오히려 가문의 콘실리에리로서, 지금 같은 상황을 예상하지 못한 나의 실책이지.”

시체처럼 창백한 잿빛 피부와 뾰족한 귀를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준비는 이미 되었단다.”

딱히 준비라고 할 것도 없었다. 여차할 때 루나를 지탱하기 위한 회복의 비약 정도.

그 외에는 그저 정신력의 소모를 감당하는 것, 그것도 보통 사람은 진즉에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후폭풍을 참는 것뿐이니까.

가문 최고 원로이자 콘실리에리─ 루나 나이트워커가 입을 열었다.

“《지혜의 고리》.”

중얼거림과 동시에 딛고 있는 세계의 풍경이 뒤틀렸다.

“제2의 고리, 【재회】.”

시엔 역시 각오를 다지고 눈을 감았다. 어느덧 두 사람을 휘감고 구속하는 사슬의 절렁거림 소리를 뒤로하고.

일전하는 세계 속에서, 그 남자가 있었다.

“다시 뵙습니다, 경애하는 돈 비토.”

나이트워커 가문의 2대 가주이자, 카산이 내밀어준 손에 최초로 화답하고 가족이 된 첫 밤의 아들.

가장 지혜로운 자가 기억하고 있는 완전한 남자의 형태.

“《호수의 암살자》 시엔 나이트워커.”

루나의 기억 속에 새겨진 ‘시엔의 존재’를 되새기며 비토가 말했다.

물론 눈앞의 남자는 진짜 비토 나이트워커가 아니다. 그렇기에 그밖에 알지 못하는 진실이나 비밀을 말해줄 수도 없다. 그럼에도 그의 곁을 지켜봤던 가장 지혜로운 자, 콘실리에리의 무의식 속 깊숙이 새겨진 그 남자는 더없이 진짜에 가까운 존재였다.

“약속대로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가문의 1식과 3식, 끝으로 8식 달그림자의 자세에 통달해 있는 가문의 조상.

“당신의 지혜를 구하기 위해서.”

여기 있는 비토 나이트워커는 루나조차 의식적으로 기억해낼 수 없는, 무의식의 깊숙한 곳에 쌓여 축적된 정보를 토대로 재조립된 ‘진짜 같은 허상’이다.

루나조차 정작 자신이 펼친 지혜의 고리 속에 있는 그 남자가, 정확히 어떤 모습을 취하고 무슨 말을 하는지 기억할 수 없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루나조차 쉽게 밝히고 싶지 않은 비밀스러운 대화나 이야기를 ‘이 남자’는 알고 있다.

그게 바로 지혜의 고리라 불리는 그녀의 능력이니까.

“말해보아라.”

“밤의 아버지는 당신을 사랑하지 않았습니까?”

“…….”

시엔이 물었다. 일순 비토의 표정이 차가워진다.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었다.

“지금, 그 남자는 죽지 않고 살아 있습니다.”

그리고 시엔이 담담히 말을 이었다.

“이제는 공화국이 아니라 제국을 지탱하는 그림자가 되어서 ‘새로운 가족’들을 이끌고 있죠. 별이 아니라, 빛나는 태양 속에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고요.”

이것은 어디까지나 루나의 무의식에 새겨진 비토를 향해 말을 거는 것에 불과하다.

“우리 가문과 가족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렇게 됐나.”

그 말에 비토는 놀라지 않고 담담히 쓴웃음 지었다.

“짐작 가는 게 있습니까?”

“유감스럽게도 이곳에 있는 ‘망령된 나’는, 그날의 진실을 알지 못한다.”

비토가 대답했다. 시엔이 다시 물었다.

“어째서 우리 가문을 지금의 형태로 있게 했습니까?”

가족이 전부이며 가족 이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자들. 그럼에도 결코 핏방울 하나 이어지지 않은, 이어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모순된 가족.

“……말하지 않았느냐. 나는 망령에 불과하다.”

“망령이라고 해서 답이 없는 것은 아니지요.”

망령된 답이라 해도, 루나의 의식에 새겨진 비토는 나름의 대답이 있을 것이다.

“평생에 걸쳐 혼자였다.”

남자가 대답했다.

“뒷골목의 범죄 조직에 사냥개로 거두어졌고, 평생을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고, 오직 살기 위해 누군가를 죽이는 나날이었지.”

마치 그 앞에 있는 시엔처럼─.

“그래서 그 남자가 내게 손을 내밀어줬을 때, 무척이나 기뻤다.”

설령 세례에 실패했을 때는 가차 없이 버려질 장기 말이라 하더라도.

아니, 심지어 밤의 아버지는 비토가 ‘첫 밤의 아들’이 된 뒤에도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나는…… 가족을 갖고 싶었다.”

남자가 대답했다.

“대가 없이 서로를 사랑하고 서로에게 사랑받는 ‘진짜 가족’을.”

“그럼 사랑하는 아내와 결혼을 하셨어야죠.”

“알지 않느냐. 우리는 이 세상 누구에게도 ‘진심으로’ 사랑받을 수 없다는 것을.”

그게 바로 나이트워커 가문의 인간, 밤을 걷는 자들의 숙명이니까.

“가족이란 무엇인가?”

비토가 말을 잇는다.

“이 대륙에는 헤아릴 수 없는 가문이 있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가족’이 아니다.”

사랑하지 않아도, 좋아하지 않아도, 그저 가문의 이익을 위해 정략결혼을 맺고 핏줄을 퍼뜨린다. 그렇게 낳은 아이 역시, 마찬가지로 가문의 영향력을 넓히는 도구에 불과하다.

그것이 이 세계의 방식이니까.

Familie ist alles(가문이 전부다).

무심코 검마 오스왈드가 했던 말을 떠올린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남자는, 결국 자신의 가족이자 아들을 위해 충성하는 제국에 검을 돌렸다.

“나에게는 진정한 가족이 필요했다.”

“그럼 지금의 우리가, 당신이 바란 ‘이상적인 가족’입니까?”

누구도 감히 의심할 생각조차 하지 못한, 그들 가문의 가장 오래되고 금기시되는 모순.

“지금 우리 가문의 모습이, 당신이 바란 ‘행복하고 이상적인 가족’의 형태입니까?”

“그렇다.”

“저 역시 가족이 전부입니다.”

시엔이 대답했다.

“그리고 가족을 위해, 저는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죠.”

“그럼 어째서 나에게 의문을 품는 거지?”

“가족이 우리의 전부라고 해서─.”

시엔이 대답했다.

“그 외의 것들이 절대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 가문을 부정하려는 것이냐.”

“가문의 존속을 부정하는 가족은 살려둘 수 없다는 겁니까?”

그 말에 시엔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그야말로 돈 비토께서 말하는, 대륙의 헤아릴 수 없는 가문들과 같네요.”

가문을 위해 아무렇지도 않게 가족을 희생시키는.

그 말에 일대의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그 정도의 재능을 갖고 이곳까지 와서 죽음을 자초하는구나.”

─그들 가문을 부정하고 의문을 품는 가족은, 절대로 살려둘 수 없다는 듯이.

“저는 여기서 죽을 생각이 없습니다.”

“그것은 네가 결정할 일이 아니다.”

“아뇨, 결정하는 것은 저입니다.”

시엔이 대답했다.

“저는 이곳에서 당신을 쓰러뜨릴 겁니다.”

밤의 아버지, 카산을 제외하고 가장 가문의 원류(原流)의 검에 가까운 남자.

“그리고 밤의 아버지와 그의 거짓된 가족들에 맞서, 저의 진짜 가족을 지킬 힘을 손에 넣을 겁니다.”

일찍이 사랑하고 사랑받는 가족을 갈구해온 남자이자, 가문이 전부가 되어버린 망령을 향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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