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 가문의 천재 어쌔신-121화 (121/200)

121화. 함정 (1)

저것은 결코 피라미드에 묻혀 있는 고대의 함정이나 괴물 따위가 아니다.

인간의 가죽을 덧씌운 감정 없는 인형.

“오토마타…….”

에인션트 리그 내에서도 최고 명문으로 손꼽히는 세 개의 마탑 중 하나, 골렘 학파라 불리는 제국 제3마탑.

심지어 저것은 과거의 구시대적인 방법으로 움직이는 조악한 골렘 따위가 아니다. 그보다 훨씬 더 세련되고 진일보한 기술의 결정체, 시엔조차 오롯이 이해할 수 없는 기교(機巧)의 산물이니까.

하물며 놈들이 어떻게 그들 가문의 가장 비밀스러운 아홉 가지 검식을 모방하는지, 이제는 더 이상 의문조차 아니었다.

‘숫자는 열셋, 열넷, 열다섯…….’

적지 않은 숫자의 인형들이, 시엔 일행이 발을 들이기를 기다렸다는 듯 단검을 고쳐 잡았다. 살기를 뿜어내지는 않는다. 오히려 망령처럼 조용했다.

애초에 저들에게 인간의 감정 따위는 존재하지도 않았으니까.

더없이 무기질적이고 소름 끼치는 정적 속에서, 자동인형들이 쇄도했다.

촤아악!

인형 하나가 전신에서 칼날의 뼈를 사출하며 쇄도했다.

그저 체내의 골격을 사출하는 게 아니다.

마치 전신을 총구 삼아서 흑색 화약의 탄환(彈丸)을 흩뿌리듯, 금속으로 된 수백 개의 뼛조각이 칼날 비가 되어 쇄도했다.

아무리 가시나무의 자세를 마스터한 가문의 인간이라도, 저 정도 되는 규모의 칼날 뼈를 흩뿌리는 것은 위험하다.

그런데 눈앞의 존재는 개의치 않았다. 애초에 저것은 인간이 아니니까.

그런 점에 있어 밤의 인형은 가문의 그 누구보다 가시나무의 자세를 펼치기 적합한 존재였다.

다칠 일도, 상처받을 일도 없다. 부서지거나 손상될 뿐.

제국 공안의 말마따나, 도구는 자기 몸을 돌보지 않고 망가지거나 부서지는 것을 겁내지 않는다.

인형 하나의 육체가, 그 자리에서 자폭하며 전신에 꽁꽁 채워둔 칼날의 뼈를 마지막 한 조각까지 흩뿌린다.

그저 칼날을 흩뿌리는 게 아니라, 마치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 듯한 흑연(黑煙)을 일대에 드리우며.

“……참으로 조악하군요.”

하지만 연기가 걷혔을 때. 그곳에 있는 가족 중 상처 입은 자는 아무도 없었다.

이런 시시한 자폭 따위에 어떻게 될 정도로 나이트워커 가문의 가족은 약하지 않다.

“괜찮아, 티아?”

“……이런 것까지 일일이 걱정해주실 필요 없어요, 시엔 대부님.”

시엔의 말에 티아가 싸늘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런 시시한 모조품 따위에게 어떻게 될 정도로, 저와 우리 가문은 허술하지 않으니까요.”

그 말과 함께 티아가 땅을 박찼다.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는 밤의 인형들을 향해서.

칼끝이 맑고 청아한 울림을 내며 휘둘러진다. 일섬(一閃) 끝에, 티아와 칼날을 맞부딪치며 거리를 좁힌 밤의 인형이 또다시 체내의 칼날 뼈를 사출했다.

“티아!”

“……의외로 과보호가 심한걸, 시엔.”

“비고 형.”

그 모습을 보며 곁에 있던 비고가 쓴웃음을 지었다.

“걱정 마, 시엔. 그렇게 걱정하지 않아도 티아는 어엿한 우리 가문의 암살자니까.”

비고의 말에 시엔 역시 멋쩍은 듯 말을 흐렸다.

“확실히, 내 걱정이 조금 지나치기는 했네.”

그리고 그곳에서 가문의 모조품을 도륙하는 티아를 보고 나서야, 시엔 역시 자신이 얼마나 쓸데없는 근심을 품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 * *

그 시각, 나이트워커 공작 가문의 저택.

“제, 제국이랑, 전쟁이…… 시작됐어…….”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앨리스 대모(代母)님.”

불안에 떨며 어쩔 줄 몰라 하는 목소리에, 침묵하고 있던 미하일이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답지 않게 일말의 능청스러움이나 뻔뻔함도 없는 정중한 목소리로.

“싸, 싸움은…… 좋지 않은데…….”

「대량학살장치」 앨리스 나이트워커.

어머니로서 미하일을 이끌고 지도해줘야 할 앨리스는, 대모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말을 더듬거리며 당황하고 겁에 질린 모습이다. 아니, 후견인이나 보호자는커녕 정말 나이트워커 가문의 인간이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유약한 모습이었다.

오히려 어른처럼 그런 앨리스를 달래며 진정시키는 것은 대자 미하일 쪽이었다.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습니다, 대모님.”

“으, 으응. 그렇지만…….”

미하일의 말에 앨리스가 머뭇머뭇 말을 흐린다.

“걱정 마, 앨리스 언니.”

그리고 말을 흐리는 그녀를 향해, 또 하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이쿠, 누님이 이곳에는 어쩐 일이신지.”

“내가 우리 앨리스 언니를 보러 온다는데, 뭐 이상할 게 있니?”

“아니 뭐, 이상할 거야 없죠.”

이자벨 나이트워커.

“어서 와, 이자벨!”

핏빛 자수를 수놓은 드레스 차림의 그녀가 모습을 드러내자 앨리스가 활짝 웃으며 미소 지었다.

“친애하는 나의 대모님, 앨리스 나이트워커.”

그곳에 있는 어린 두 남매의 대모.

하지만 이미 성숙할 대로 성숙한 미하일이나 이자벨에 비해, 그곳에 있는 앨리스의 모습은 너무나도 미숙하고 유약하다.

“그, 그래서…… 두, 두 명 모두, 내게 무슨 용무야?”

겁에 질린 생쥐처럼 앨리스가 물었다. 그 말에 앨리스의 두 아들딸, 미하일과 이자벨이 흘끗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았다.

“우리랑 약속했잖아, 언니.”

“으, 으응, 그렇지만…….”

“별과 단검의 이름을 걸고 한 약속이었지. 이제 와서 딴소리하지는 않겠지?”

“약속은 약속이니까요, 앨리스 대모님.”

미하일이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우리는 대모님과 같은 「노목(老木)의 가시나무」를 이식받을 준비가 됐습니다.”

가문의 5식, 가시나무의 자세.

자세라고 하지만, 기본적으로 이 자세를 구사하기 위해서는 체내의 뼈를 ‘칼날의 뼈’로 교체하고 이식하는 고도의 수술이 필요하다.

하물며 대량학살장치 앨리스 같은 수준으로 5식을 구사하기 위해서는, 그들 가문의 일원조차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위험천만한 이식 수술을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이 바로, 가족을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 목숨을 걸어야 할 때였다.

* * *

가시나무의 자세는, 어떤 의미에서 망령의 자세에 버금갈 정도로 마스터하기 어려운 자세라 일컬어진다. 이유는 단순하다.

이 자세는 그저 수련한다고 해서 통달할 수 있는 자세가 아니기에.

가문의 이들이 받는 가장 기본적인 수준의 개조, 전신에 있는 206개의 뼈를 ‘칼날의 뼈’로 교체하는 개조 수술은 어디까지나 가장 기초적인 작업에 불과하다.

일명 「어린 나무」.

하지만 그 후로도 보다 5식에 특화하기 위해 전신의 뼈를 교체하고 개조하는 과정에서, 각각 성목(成木)과 노목(老木)의 두 단계가 남아 있다.

하지만 수술 대상이 생명의 안위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인형이라면, 설령 가장 늙고 오래된 나무를 심는다 해도 아무 문제 없을 것이다.

바로 그곳에 있는 밤의 인형들처럼.

‘전원이 노목(老木)급 이식을 마쳤나.’

전투는 끝났다. 하지만 시엔 일행의 승리를 증명해줄 인형들의 유해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그들 모두가, 최후의 뼛조각 하나까지 동귀어진을 위해 산산이 부서지고 흩뿌려졌으니까.

“……이것참 실망스럽네요.”

바로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설마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가, 이런 시시한 함정에 걸려 올 줄이라고는.”

단안경(모노클)을 걸친 초로의 노신사가, 신사의 지팡이를 짚은 채 그곳에 있었다.

지팡이 손잡이에는 마치 까마귀 부리를 연상케 하는 정교한 금장(金裝) 디자인이 번쩍거리고 있다.

지팡이 끄트머리에 칼날처럼 뾰족하게 솟은 은빛의 서슬과 함께.

“실로 유감스럽습니다.”

복장으로 미루어 그 역시 ‘쌍두까마귀의 가족’임을 헤아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혼자야?”

노신사를 향해 시엔이 차가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바보!”

동시에 어린 소년, 소녀의 천진한 조소가 들려왔다. 함정에 빠진 먹잇감을 조롱하는 것 같은 목소리로.

“……세 명인가.”

물론 시엔이 말하는 세 명은, 어디까지나 쌍두독수리의 가족을 말하는 것이다. 그들이 결코 이곳에 모여 있는 제국의 완벽한 전력(全力)을 뜻하지는 않는다.

뒤이어 두 명의 실루엣이 모습을 드러냈다.

쌍두독수리와 태양의 문장이 아닌, 순백의 제복에 갈고리 십자가가 새겨진 핏빛 완장을 차고서.

그들은 가족이 아니었다.

“최고위 이단심문관…….”

이단심문관장 빌헬미나를 제외하고, 제국 국교회의 최고 전력으로 꼽히는 12인의 최고위 이단심문관.

사도 중에서도 ‘가장 완전한 형태’로 상품의 최고위 천사를 강림시킬 수 있는 신벌의 집행자.

바로 그 집행자가 두 명.

그리고 그들을 지키고 있는 어중이떠중이 공안이나 기사들은 굳이 셀 것조차 없다.

‘이 정도인가.’

그곳에 있는 이들의 전력을 헤아리며, 시엔이 쓴웃음을 지었다.

“애초에 미궁을 조사할 생각 따위는 없었겠지.”

조사대라고 거창하게 꾸린 그들은 그저 연막에 불과했다. 시엔 역시 알고 있었다. 이것은 처음부터 자신들을 꾀어내기 위한 함정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고도 여기까지 죽음을 자초하러 발을 들인 거야?”

그 말에 쌍두까마귀의 문장을 가진 금발의 소년이 조소했다.

“그걸 정하는 건 당신들의 몫이 아닙니다.”

전까지 티아의 활약을 뒤에서 지켜보며 감탄하고, 전전긍긍하고 있던 시엔이 비로소 그들을 향해 성큼 발을 내디뎠다.

또 하나의 하이마스터, 루치아노와 함께.

그렇다고 그들 뒤에 있는 티아와 비고, 라힘 역시 결코 일방적으로 지켜져야 할 약자와는 거리가 멀다.

“이 자리가 당신들의 함정이 될지, 우리 가문의 ‘함정’이 될지는, 지금 우리 가문의 의지로 정해질 테니까.”

처음 4계층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이미 묠니르의 힘을 통해 시엔은 일대의 전기적 작용을 샅샅이 꿰뚫고 있었다. 누가 숨어 있고 누가 숨을 죽이며, 누가 함정을 파고 때를 기다리는지.

시엔의 눈에는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훤히 보였다.

그리고 시엔이 보기에, 이 정도 규모로는 결코 자신들을 막을 수 없다.

오히려 이것은 더할 나위 없는 기회였다.

파직, 파지직!

자신이 함정을 파고 있다고 생각하는 쪽처럼, 사냥하기 손쉬운 먹잇감도 없을 테니까.

“너희는 오늘, 여기서 죽는다.”

시엔이 말했다. 어느새 초점 없는 청백색의 눈동자를 갖고.

“그 말, 똑같이 돌려주고 싶네.”

마찬가지로 시엔 일행과 마주하고 있는 제국 조사대, 세 명의 쌍두까마귀 가족과 두 명의 최고위 이단심문관이 조소했다.

저마다 함정을 파고 내려다보는 쪽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상황.

최후의 최후에 이르러 어느 쪽이 ‘함정을 파는 쪽’이 될지는, 바로 이 순간부터 정해질 것이다.

그들 앞에 있는 금발의 소년 소녀를 바라보며 시엔이 읊조렸다.

“돈 루치아노, 단안경을 쓴 노신사를 맡아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라힘 삼촌, 티아와 비고와 함께 최고위 이단심문관 두 명을 상대하세요.”

“세, 셋이서 둘을?!”

“방심하지 마. 쉽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 말하고 나서 시엔이 고개를 들었다. 그곳에 있는, 쌍둥이처럼 똑같은 얼굴을 가진 금발의 소년과 소녀를 향해.

“그리고 너희가 내 상대다.”

훗날 헨젤과 그레텔을 사로잡고,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고통을 안겨줄 괴물 남매.

그들을 보는 순간, 그들에게 사로잡힌 헨젤과 그레텔이 겪게 될 미래를 헤아리는 순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이 싸움에는 그 누구도 개입하지 않기를 바랐다.

스릉.

어느덧 시엔의 손에 들린 왕 시해자가, 그 어느 때보다도 검고 어두운 칠흑의 마력에 휘감겨 있었다.

죽음에 이르는 검─ 네버모어.

이 세상에서 가장 증오스러운 원수 중 하나가, 바로 지금 시엔의 눈앞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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