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 가문의 천재 어쌔신-122화 (122/200)

122화. 함정 (2)

비고와 티아, 라힘이 마주하고 있는 두 명의 최고위 이단심문관.

“상품의 1품, 치천사(熾天使) 우리엘 강림.”

“상품의 3품, 좌천사(座天使) 라파엘 강림.”

그들이 각각 자세의 이름을 입에 담으며 이 무덤에 ‘신의 사자’를 강림시켰고, 찬란한 성광이 휘몰아치며 모습을 드러냈다.

하나는 더없이 알기 쉬운 인간의 형상을 가진 천사였다.

상품의 1품, 우리엘.

《하느님의 불꽃》을 뜻하는 이름답게, 천사의 날개가 마치 타오르는 불꽃처럼 이글거리고 있다.

그의 손에 들린 검 역시, 의미를 해독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상형문자가 새겨진 불꽃의 검이다.

더없이 인간적인 형상을 가진 화염의 천사.

그러나 그에 비해─ 3품의 좌천사 ‘라파엘’은 그렇지 않았다.

거기에는 더 이상 사람의 형상 따위가 존재하지 않았다.

전차의 수레바퀴였다.

여러 개의 불타는 수레바퀴들이 ‘지혜의 고리’처럼 다중으로 얽혀 있는 구조로 되어─ 각각의 수레바퀴마다 달린 헤아릴 수 없는 눈동자들이 끔벅거리며 이쪽을 주시하고 있었다.

천사의 날개 역시, 마찬가지로 수레바퀴 위에 달려 있었다.

천사의 날개와 수십 개의 눈동자가 달린 전차의 수레바퀴들.

“저것이…… 정말로 천사인가요?”

그 그로테스크한 모습을 보며 티아가 믿기 어려운 목소리로 되물었다.

“두렵니, 티아?”

그런 티아를 보며 비고가 쓴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그럴 리가요.”

그 물음에 티아 역시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여느 때처럼 검고 어두운 눈동자를 하고서, 담담히 읊조릴 따름이다.

“설령 정말 천사나 악마가 존재한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어요.”

“이 졸자가 1품 우리엘을 맡겠소. 티아 동생과 비고 형님께서는 저 3품의 수레바퀴 괴물 놈을 맡아주시오.”

어느덧 이글거리는 두 주먹을 맞부딪치며 비고가 말했다.

“마침 이 졸자와 천사의 불꽃, 어느 쪽의 하트가 더 뜨거운지 시험할 절호의 기회로군!”

끓어오르는 호승심을 참지 못하고, 이전과 달리 불타는 자신의 마음을 ‘냉정하게 지켜볼 수 있는 명경지수의 시야’를 가진 광전사 라힘이 소리쳤다.

형님 시엔의 가르침을 통해, 새롭게 손에 넣은 경지를 시험하기 위해.

* * *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미스터 루치아노.”

단안경(모노클)을 쓰고 지팡이를 짚고 있는 초로의 노신사가 말했다.

손잡이 부분에는 까마귀 부리 모양의 금장이 조각되어 있고, 지팡이 끄트머리에는 날카로운 칼날이 뾰족하게 솟아 서슬을 흩뿌리며.

그리고 그 남자는 여느 쌍두까마귀의 가족과 달리, 문장(紋章)이 새겨진 새하얀 코트 차림이 아니었다.

실크 햇을 쓴, 말끔하고 기품 넘치는 흑색의 정장 차림이었다.

그 복식의 의미를 헤아리기는 어렵지 않았다.

‘《거미 허물》…….’

나이트워커 가문의 7식, 검은 과부거미의 자세를 구사하는 이들의 애장.

“그러고 보니 아직 당신의 이름을 듣지 못했군요.”

“아, 이것 참 실례했습니다.”

늙은 암살자 루치아노의 말에 초로의 노신사가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잭 더 리퍼(Jack the Reaper)─.”

루치아노 역시 들어본 적 있는 이름이었다.

칠왕국 군도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 유명한 살인귀(殺人鬼).

그를 잡기 위해 칠왕국에서 유례없는 대대적 규모의 합동 체포 작전을 벌이고, 심지어 원탁의 기사단마저 수사관으로 합류했음에도 끝끝내 잡히지 않은 악명 높은 쾌락 살인마.

“「젠틀맨」 잭이라고 불러 주시지요.”

그런 주제에 자신을 신사라고 자청하는 그 역겨운 모습을 보고, 루치아노가 나지막이 얼굴을 찌푸렸다.

“신사를 자청하는 살인귀라니, 실로 구역질이 나는군요.”

“오, 그럴 리가요.”

단안경의 노신사, 젠틀맨 잭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Manner, Maketh, Man─. 매너가 사람을 만드는 법이지요.”

얼핏 정중해 보이는 미소 뒤로, 숨길 수 없는 악귀의 초상을 드러내며.

“저는 살인자가 아닙니다.”

뒤틀린 논리의 귀결 속에서 잭 더 리퍼가 말했다.

“거리의 부랑자, 창부, 주정뱅이…… 제가 죽여온 것은 오로지 인간의 자격조차 없는 쓰레기일 뿐이니까요. 그런 점에서, 오히려 저는 ‘거리의 청소부’에 가깝지요.”

촤아악!

“그렇기에 돈 루치아노 같은 멋쟁이 신사를 죽여야 한다니, 참으로 가슴이 아픕니다.”

어느덧 그의 전신을 휘감고 있는 정장 겸 거미 허물의 실오라기가 쇄도했다.

“이것이, 저에게 있어서는 진정한 ‘첫 살인’이 될 테니까요.”

살인귀가 펼치는 가문의 7식, 죽음의 거미줄에 맞서 루치아노 역시 그의 단검을 움직였다.

젊었을 적 하이마스터 서품을 받을 당시 「침묵의 그림자(Silent Shadow)」라 불렸으며, 이제는 「늙은 암살자」란 이름을 가진 하이마스터.

가문의 6식 「나락의 자세」와 8식 「달그림자의 자세」를 마스터한 강자.

촤악!

잭 더 리퍼가 흩뿌린 죽음의 거미줄이 닿기도 전에, 그보다 한 발자국 앞서 루치아노의 몸이 쇄도했다.

달그림자의 자세 ─ 《섬월(纖月)》.

그리고 8식 달그림자의 자세는, 그저 거리를 좁히는 데서 그치는 게 아니다.

오히려 붙고 나서가 진짜 시작이었다.

“《월식(月蝕)》.”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져 「달을 좀먹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어느새 달의 그림자가 된 루치아노가 그의 단검을 휘둘렀다.

침묵(사일런스)의 이름을 가진 그의 애검.

“!”

가문 제일의 신속을 자랑하는 그의 일검에, 제대로 거미줄을 퍼뜨릴 틈도 없이 잭이 황급히 지팡이를 휘둘렀다.

카앙!

지팡이 끄트머리의 칼날이 루치아노의 단검 ‘침묵’과 격돌했고, 어느새 지팡이를 따라 휘감겨 있는 무수한 죽음의 실들이 코앞에서 흩뿌려졌다.

“흠, 그러고 보니 정정할 것이 하나 있네요.”

일격 끝에 거리를 벌린 잭이 말했다.

“생각해 보니, 돈 루치아노 말고도 이전에 ‘인간’을 죽였던 적이 있었거든요.”

슬쩍 루치아노의 목에 걸린 펜던트를 흘끗 바라보며.

“그녀는 매너를 알았고, 또 무척이나 아름다운 숙녀였죠. 그러고 보니 이름이 분명─.”

“……”

“미세스 소피아, 였던가요?”

그 이름에 평정을 지키고 있던 루치아노의 얼굴에 가벼운 동요가 어린다.

“왜 그러시죠? 표정이 좋지 않군요.”

노신사, 잭 더 리퍼가 시치미를 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제가 알기로, 그녀는 분명 돈 루치아노에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일 텐데요.”

* * *

각자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와중.

쌍둥이처럼 얼굴이 똑같은 금발의 소년과 소녀가 있었다.

훗날, 헨젤과 그레텔을 사로잡고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고통을 안겨줄 괴물 남매.

‘절대로 살려둘 수 없다.’

살려둘 수 없다. 용서할 수 없다. 무슨 일이 있어도 죽여야 했다.

이곳에 있는 ‘쌍두까마귀의 가족’들은 모두가 최소 하이마스터 이상.

그런 두 명의 하이마스터를 상대로 시엔 나이트워커는 홀로 그의 칼자루를 고쳐 잡았다.

가문의 1식과 3식, 6식을 통달한 그랜드마스터로서.

훗날 「암살자들의 아버지」라 불리게 될 경지를 지금의 그릇에 덧씌운 채, 여전히 완성되지 않고 더욱 완전해질 수 있는 ‘불완전함의 가능성’을 머금고서.

시엔의 초점을 잃은 청백색 눈동자가 그들 남매를 응시했다.

타앗!

응시했다고 생각하기 무섭게, 어느덧 거리가 좁혀졌다.

시엔의 ‘왕 시해자’에 덧씌워진 4식의 극의, 죽음에 이르는 검 「네버모어」가 죽음의 서슬을 흩뿌린다.

“꺄아아악, 엄마야!”

쇄도하는 칼끝에 금발의 소녀가 호들갑을 떨며 몸을 피했다. 빠르다.

어느새 그녀의 주위에서 마력이 일렁이며, 어느덧 날카로운 칠흑의 칼날이 벼려진다.

염동력이 아니다. 저주다.

‘가문의 4식, 갈까마귀의 자세.’

고통의 칼날들이 일제히 쇄도했다. 시엔을 향해서가 아니었다.

어느새 금발 소녀의 손에 들려 있는, 밀짚 인형을 향해서였다.

고위계 저주 ─ 살 날리기.

헤아릴 수 없는 칼날들이, 밀짚 인형을 향해 끝없이 내리꽂혔다. 그때마다 시엔의 몸에 진짜 칼날이 꽂히는 것 같은 고통이 엄습했다.

“어때, 아프지?! 아플 거야!”

금발 소녀가 키득거리며 웃었고, 그 곁에서 금발의 소년이 단검을 고쳐 잡는다.

“더 아프게 해주자.”

“물론이지!”

어느덧 그녀의 손에 들린 밀짚 인형은 하나가 아니었다.

수십 개의 밀짚 인형들이 소녀의 주위를 빙글빙글 공전하고 있고, 각각의 인형 위로 수십, 수백 개의 대못과 바늘, 칼날들이 내리꽂히기 시작했다.

상대와 직접 접촉하지 않아도, 아무리 거리가 떨어져 있어도, 그저 증오하는 마음…… 원념(怨念) 하나로 상대방의 정신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공격계 저주 마법.

살(煞).

그것도 인형 하나가 아니라, 수십 개에 온갖 고문 도구들이 내리꽂히며 날리는 고통.

그렇기에 시엔이 그녀의 저주를 막기 위해 땅을 박차고 거리를 좁히려는 찰나.

카앙!

어느덧 금발의 소년이 좁혀지는 거리를 가로막고, 소녀에게 다가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형 진짜 바보구나.”

칼날을 맞부딪치며 소년이 조소했다.

“하필 우리를 상대로 혼자서 싸우려고 들다니 말이야.”

“맞아, 완전 바보 오빠야!”

“…….”

소녀가 원거리에서 저주를 통해 상대를 무력화하는 동시에, 소년이 그녀를 지켜준다. 그 와중에도 저주 인형에는 끝없이 바늘과 대못, 망치가 내리꽂히며 직격으로 그 원념과 고통이 전해진다.

하물며 저주 인형의 숫자는 수십 개.

각각의 인형 하나하나가 주는 고통조차 보통 사람은 즉시 절명(絶命)해도 이상하지 않을 고통이다.

그 인형을 수십 개로 증폭시켜, 인형 하나당 수백 개의 바늘과 망치질, 수백 개의 칼날이 모두 합쳐져 끝없이 시엔을 괴롭히고 있다.

그렇기에 소녀를 지키는 금발의 소년가 칼을 맞부딪친 다음, 시엔이 거리를 벌렸다.

콰앙!

다시금 짚신 인형 위로 대못이 박히고 망치질이 내리꽂혔다.

콰직!

칼날이 꽂히고 바늘이 꽂히고, 심지어 밀짚 사이로 벌레들이 꿈틀거리며 짚을 갉아먹고 있다.

그러자 시엔의 몸 속에 수십, 수백 마리의 벌레가 꿈틀거리며 육체를 갉아 먹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끝없이 이어지는 고통 속에서 시엔이 침묵했다. 미동조차 없이. 여전히 고문은 끝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침묵 끝에, 시엔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

“아프네.”

“…….”

시엔이 내뱉은 첫마디에, 끝없이 살을 날리고 있던 소녀의 표정이 굳었다.

보통 사람, 아니, 이 정도의 고통은 어지간한 강자나 설령 ‘나이트워커 가문의 인간’이라 해도 버텨낼 수 없는 고문이다.

그런데 방금 시엔의 입에서 흘러나온 목소리는, 결코 고통받는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아프긴 한데…….”

쾅! 콰직, 콰직! 쾅!

끝없이 저주 인형을 난도질하는 소녀를 보며, 시엔이 담담히 말을 잇는다.

아무리 난도질을 하고 대못을 박고 칼날을 꽂아도, 인형이 찢어질 정도로 갈가리 난도질을 해도 시엔의 표정은 흔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난 이거보다 훨씬 더 고통스러운 걸 알고 있거든.”

일말의 감정조차 없는 차가운 목소리.

금발 소년과 소녀의 표정에 지금까지와 비할 바 없는 경계의 빛이 어린다.

“정상이 아니야…….”

금발의 소녀가 비로소 위화감을 깨닫고 중얼거렸다. 그 말대로다. 이 정도의 고통을 겪고도 태평히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할 리 없다.

그런데 눈앞에 있었다.

물론 시엔 역시 고통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시엔의 말처럼, 그가 겪은 진짜 고통 앞에서 이깟 통증 따위는 애들 장난에 불과했다.

청백색의 눈동자와 함께, 전신에 묠니르의 뇌전과 명경지수의 업화를 덧씌운 시엔이 말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검고 어둡게 빛나는 칠흑의 칼날, 네버모어를 쥐고서.

“아무래도 내가 ‘진짜 고통’이 뭔지 알려줘야겠네.”

이제는 그들 역시 알게 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끔직한 고통이 무엇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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