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화. 암살자의 전쟁 (1)
“쌍두까마귀의 가족 두 명을 죽였습니다.”
미궁도시에서의 결전으로부터 얼마 후.
공식적으로 ‘신성 제국의 유적 조사대’는 조사를 마치고 그들의 고국으로 귀국했다. 시엔 일행 역시 미궁도시 오지만디아스에서 몇 가지 볼일과 더불어 사라센 제국과 물밑의 외교적 협상을 마친 뒤, 그들의 영지로 돌아갔다.
“쌍둥이처럼 닮은 금발의 소년과 소녀였죠.”
나이트워커 공작 가문의 저택.
달빛을 역광으로 등진 라일라가 시린 미소를 지으며 웃었다.
“아주 잘해주었구나, 시엔.”
그들 가족의 전부를 위협하는 ‘악’을 쓰러뜨린 시엔의 활약을 흡족하게 치하하며.
핏빛의 포도주를 홀짝이며 라일라가 말했다.
“네가 미궁도시에 체류하고 있는 사이, 공작 저택에서 적잖은 소란이 벌어졌단다.”
“……하이드 경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죽음의 성모 빌헬미나가, 직접 제국과 교회 군대를 이끌고 와서 그들 가문과 공화국에 이단 혐의를 씌워서 선전포고를 알린 사태.
“그런 와중 미궁도시에서 ‘쌍두까마귀의 가족’을 둘이나 죽였으니, 사태는 걷잡을 수 없는 지경이 되겠지.”
쌍두까마귀의 가족, 공식적으로 신성 로마누스 제국 황실 직속 최고 친위대라 불리는 황금여명회.
나이트워커 공작령에서 ‘이단 혐의’를 명분 삼아 신성 제국의 선전포고가 이루어진 직후, 미궁도시 오지만디아스에서 쌍두까마귀의 가족 둘이 살해당했다.
그야말로 너무나도 공교로운 타이밍에.
무심코,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그곳에서 시엔의 손에 쓰러진 그들 남매의 ‘가족애’는 거짓이 아니었다. 심지어 그곳에 있던 살인귀 잭 더 리퍼조차 마찬가지다.
그의 눈물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짜였다.
하지만 쌍두까마귀의 가족 모두가 그럴 거란 보장이 있을까?
어쩌면 그들 중 누군가가,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 누군가가, 일부러 그들 두 남매를 희생양이자 산 제물 삼아 전쟁의 불씨를 댕기려 한 게 아닐까.
이제 전쟁의 불씨는 그 누구도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퍼져나갈 것이다.
그것도 강 건너에서 불구경할 수 있는 생판 남의 일조차 아니라, 그들 가문과 공화국이 직접 당사자가 되어 치르는 전쟁이 되어서.
이 세상에서 그들 가문이 가장 바라지 않는 형태의 전쟁.
동시에 깨달았다.
이 세상의 그 누구도, 결코 좋아서 전쟁의 당사자가 되기를 바라는 게 아니란 사실을.
“가문의 눈과 귀가 속삭이길, 벌써 교회군이 직접 밤하늘 산맥을 횡단할 채비를 갖춘 듯하더구나.”
나이트워커 공작령 북부 일대, 더 나아가 공화국과 신성 제국 사이를 가로막는 국경 지대─ 밤하늘 산맥.
공화국과 제국을 이어주는 유일의 육로(陸路)이자, 대대로 제국의 침략을 저지해온 천혜의 장벽이자 요새.
“아무리 많은 신성군단의 천사병 대군을 이끌어도, 밤하늘 산맥에서 ‘우리 가족’을 상대로 넘어 진격하는 것은 불가능해요.”
무엇보다 그 산맥에 깃든 강력한 저주는, 그저 그들이 죽는 걸로 그치지 않는다. 죽은 뒤에는 피아(彼我)조차 구별하지 못하고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을 없애려는 망자로 되살아날 테니까.
일찍이 스카디 제도의 오크들이 두려워했던, 발할라에 들어가지 못한 채 세상의 종말을 기다리는 언데드로서.
“오히려 병력 숫자가 많을수록 보급 문제에 차질이 생길 테고, 가문의 형제자매는 말할 것도 없고 그림자 기사들의 게릴라에도 속수무책으로 취약해질 테죠.”
“그래, 확실히 그렇겠지.”
라일라는 딱히 부정하지 않고 어깨를 으쓱였다.
그들 나이트워커 공작 가문의 영지가, 하필 신성 제국과 맞닿은 국경 지대이자 밤하늘 산맥을 끼고 존재하는 이유.
“하지만 그게 바로 제국의 힘이란다.”
목적을 이루기 위해 기꺼이 그들이 가진 장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버릴 수 있는 여유.
“대규모의 교회군을 밤하늘 산맥에서 순교시키고, 그걸 명분 삼아 대규모 확전을 노릴 셈이군요.”
전쟁의 명분에서 그치지 않고, 기꺼이 그 너머 총력전(總力戰)마저 불사할 명분을 손에 넣기 위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의 희생은 기꺼이 감내할 수 있다. 순교의 형태로 존재하는 이상, 죽음조차 웃으며 받아들일 수 있다. 그게 바로 제국이란 이름의 나라였고, 교회란 이름의 광신자들이다.
“……자기 발로 죽음을 재촉하겠다는데, 말릴 이유는 없죠.”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 * *
그로부터 얼마 전, 옥좌의 방.
“……레나와 레너드가 밤을 걷는 자의 손에 살해당했습니다.”
단안경을 쓴 노신사 잭 더 리퍼의 말에, 옥좌 위에 앉은 남자가 나지막이 신음을 내뱉었다.
여전히 그 남자는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랑하든 사랑하지 않든, 그들 남매는 남자에게 있어 무엇보다 귀중한 전력이자 장기 말이었다.
“누구의 손에 당했지?”
“《호수의 암살자》 시엔 나이트워커입니다.”
젠틀맨 잭이 대답했다.
“시엔…….”
또 그 이름인가.
시엔, 시엔, 시엔, 또다시 그 지긋지긋한 이름이다.
옥좌에 앉은 남자, 막시밀리안 1세가 표정을 찌푸렸다.
일찍이 ‘밤의 아버지’ 카산 나이트워커, 하산 사바흐. 동방 대륙에 있던 시절에는 천마(天魔)란 이름으로 불리고 존재했으며 부서지기를 거듭한 남자가.
남자는 아직 ‘시엔’이란 애송이를 직접 본 적이 없었다. 그가 들은 것은 그저 시엔이란 암살자의 이름과 활약상, 그게 다였다.
그런데 그 이름을 들을 때마다, 그 애송이가 보여주는 규격 외의 활약을 들을 때마다, 기이할 정도로 뺨의 상처가 욱신거리며 이해할 수 없는 환영(幻影)이 그의 눈에서 아른거렸다.
심지어 그 아이는 더 이상 애송이조차 아니었다.
“레나와 레너드를 압도하는 그 모습은, 절대로 하이마스터 수준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제아무리 신기 묠니르와 운명의 창이 가진 힘을 빌렸다고 해도─.”
그 이상 말을 잇지 않고 젠틀맨 잭이 침묵했다. 그리고 그 말의 의미를 모를 남자가 아니었다.
“……벌써 그랜드마스터의 경지에 이르렀단 말인가.”
벌써 그 나이에, 그렇지 않아도 눈엣가시 같은 암살자들의 어머니─ 라일라와 동격의 경지를 손에 넣었다니.
극비리에 숨겨온 쌍두까마귀의 존재를 세상에 드러내게 하고, 그것도 모자라 벌써 두 명이나 되는 가족을 그 손으로 죽였다.
깨닫고 보니 바둑판 위의 판세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쌍두까마귀의 가족이 침묵을 깨트리고 그 존재를 드러냈듯, 이제는 남자 역시 더 이상 침묵하고 있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적어도 그의 두 눈으로 똑똑히 봐둘 필요가 있었다.
암살자들의 어머니, 라일라의 뒤를 이어 그들 저주받은 가문을 지탱할 새로운 ‘아버지’를.
남자가 저지른 씻을 수 없는 원죄(原罪)의 결과물이자 저주의 산물…… 나이트워커 가문을 이 땅에서 없애기 위해.
남자가 말없이 팔을 뻗어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봤다.
이제 겨우 오십밖에 되지 않은 초로의 육체가, 손바닥이, 마치 가뭄이 계속되어 말라붙은 대지처럼 쩍쩍 갈라져 있다.
“새로운 그릇을 준비하라.”
태어나고 존재하고 형성된 것은 모두 부서지기 마련이다.
그러나 수백 년의 세월이 지나도 여전히, 남자는 그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영겁의 세월에 걸친 남자의 ‘속죄’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 속죄를 마칠 때까지, 결코 남자의 밤은 끝나지 않는다. 아무리 부서지고 또 부서져도 구원받을 수 없다.
──그렇기에 남자는 영원한 밤의 망령이었다.
그리고 이 저주받은 영원의 밤을 끝내기 위해, 자신의 죄를 씻기 위해 그 남자는 무슨 짓이라도 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몽환포영로전(夢幻泡影露電)》.
이 세상을 이루는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벼락으로 되돌아가기 위해서.
* * *
그로부터 얼마 후, 신성 로마누스 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합스부르크가 서거했다는 소식이 대륙 전역에 울려 퍼졌다.
동시에 합스부르크 가문의 제1왕자, 아버지와 똑같은 이름을 가진 ‘막시밀리안 2세’가 새로운 황제로 추대되었다.
그리고 새롭게 제위(帝位)에 앉은 새 황제는, 기꺼이 밤하늘 산맥을 넘어 행군하는 제국과 교회군의 기수에 서기를 자처했다.
신성 제국 역사상 그 누구도 등반에 성공하지 못한 험지, 망자의 유해로 쌓아 올린 바로 그 죽음의 골짜기를 향해서.
* * *
전쟁은 하루아침에 일어나지 않는다. 동시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결국 어느 날의 하루아침이다.
따라서 그날의 아침 해가 밝았을 때, 비로소 전쟁을 수행하고자 신성 제국의 대병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제4, 제5, 제8신성군단 예하 7개의 천사병 사단, 제국 제4, 제5기사단, 끝으로 1만 8천 명의 제국군 보병이 제국 남부 국경 지대의 밤하늘 산맥을 넘을 채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제1, 제2신성군단과 철십자 기사단은 참여하지 않은 겁니까?”
“확인된 정보로는 그렇습니다.”
“딱 적당하게 구색을 갖춘 산 제물이네.”
“인신 공양이라도 하는 줄 알겠어.”
가문의 ‘눈과 귀’를 자처하는 염탐꾼 그림자 기사의 보고를 듣고, 그 자리에 있는 가문의 형제자매들이 맞장구를 친다.
하이마스터, 마스터, 메이드맨, 어엿한 가문의 암살자를 자청할 수 있는 이들 대다수가 모여 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정도의 규모.
“그 외에 달리 주목할 강자들은?”
“황제를 필두로 하는 황금여명회, 이단심문관장 빌헬미나와 휘하 최고위 이단심문관 다수, 교회군 총사령관이자 《피의 추기경》 체사레 보르자가 확인되었습니다.”
설령 제국군 부대가 유례없는 대패를 겪어도, 그들과 별개로 자기들 목숨 하나는 확실하게 챙겨서 돌아갈 수 있는 수준의 강자들.
의도는 명확했다.
‘소수의 강자들은 죽지 않고 살아 돌아갈 것이다.’
거기서 애꿎은 산 제물이 되는 것은 일개 병사들의 몫일 테니까.
병사 중에서도 제국군의 핵심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주요 부대는 포함하지 않은 채 비교적 수준이 낮고 빠르게 보충할 수 있는 어중이떠중이 부대로 머릿수를 채운 게 그 증거다.
그리고 그들의 순교를 통해 선전과 선동을 펼치고, 신성 제국과 교회의 총의(總意)를 결집해 베네토 공화국과 나이트워커 가문을 ‘악의 축’으로 규정할 셈이겠지.
“속이 보여도 너무 뻔하게 보이는걸.”
침묵하고 있던 요한이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방심은 금물이랍니다, 오라버니.”
그 말에 라일라는 여느 때처럼 신중하기 이를 데 없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혹시라도 그들이 ‘산 제물’이 아니라, 정말로 커다란 희생을 감수하고서라도 밤하늘 산맥을 넘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지요.”
“제1, 제2신성군단, 철십자 기사단이 움직였다는 보고는 없어, 라일라. 설령 운 좋게 산맥을 넘었다 쳐도, 여전히 밤하늘 산맥을 두고 공화국 영토 내에 고립된 그들이 뭘 할 수 있겠어?”
요한이 대답했다.
“놈들은 그저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는 소모품을 쏟아붓고, 우리에게 ‘제국의 아들들’이 희생된 죄를 덮어씌울 속셈이야.”
정론이다.
라일라와 요한, 가문 내에서 콘실리에리 루나와 더불어 가장 강력한 입지를 가진 최고 지도부 삼인방.
그들의 이야기에 입회해 있는 이들 중 누구도 감히 입을 열 수 없었다.
아무리 그들이 가족으로 묶여 있는 사이라 해도, 위계(位階)가 없는 게 아니니까.
이제는 그들 3인방과 비교해도 결코 입지가 떨어지지 않는 또 하나의 가족, 시엔이 입을 열었다.
“그럼 우리가 할 일은 정해져 있네요.”
그리고 그곳에 있는 누구도 그 말의 의미를 되묻지 않았다.
대륙 제일의 암살자 가문, 그리고 그들 가문의 ‘홈그라운드’라고 할 수 있는 밤하늘 산맥.
그곳에서 그들의 적에게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우리는 ‘소모품이 아닌 자들’을 죽일 겁니다.”
암살(暗殺).
그들 가문이 이 세상에서 가장 잘하는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