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8화. 그럴싸한 계획 (2)
“암살자들의 어머니, 라일라 나이트워커.”
나란히 다이닝 테이블에 앉아 포도주를 홀짝이는 두 사람을 향해, 기척을 감출 생각조차 없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장 지혜로운 자(콘실리에리), 루나 나이트워커.”
머리가 두 개 달린 칠흑의 큰까마귀 위에, 태양을 상징하는 금빛 가시 바퀴를 문장(紋章)으로 새겨넣은 일곱 명의 남녀들.
“설마 두 사람밖에 없는 겁니까?”
쌍두까마귀의 가족들이 그곳에 있었다.
상품 천사를 완전체로 강림시킬 수 있는 제국 국교회의 최고 전력, 12명의 최고위 이단심문관들과 함께.
도합 19명의 강자.
“설마 남아 있는 ‘제국의 전부’가 올 줄이야.”
“당신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는, 이조차도 충분하다고 말할 수 없겠지요.”
“그것참 영광스러운 말씀이네요.”
라일라가 놀랄 것도 없다는 듯 대답했다.
“그럼 결코 충분하다 말할 수 없는 전력으로─ 굳이 제가 있는 저택까지 방문한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얼어붙을 듯 시린 냉기가 일대를 휘감는다.
그곳에 있는 제국 제일의 강자들조차 숨을 삼킬 정도의 압박감.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부족하지도 않거든요.”
쌍두까마귀의 가족 중 하나가 대답했다.
“우리는 당신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답니다, 밤의 아버지를 계승하는 딸이여─.”
밀랍으로 만든 얼굴처럼 생기와 감정 없는 표정을 하고서, 섬뜩할 정도로 작위적이고 어색한 미소를 짓는 올백 머리의 남자가.
“동시에 사랑하는 누님의 자매이신 당신을.”
“유감스럽지만, 당신들과 그녀는 제게 있어 아무것도 아닌 것이랍니다.”
“아, 그거야 확실히 그렇지요.”
라일라의 말에 올백 머리의 남자가 대답했다.
“우리 역시 그렇거든요.”
그녀의 말을 달리 부정하지 않고, 담담하게 긍정하며.
“당신은 아무것도 아니야, 라일라 나이트워커.”
일말의 면식도 없는 타인(他人)을 대하는 듯한 차가운 눈빛.
“그런 아무것도 아니어야 할 당신이, 사랑하는 우리의 빌헬미나 누님에게 주는 고통을…….”
“우리 역시, 가족으로서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으니까.”
밀랍처럼 감정 없는 하얀 올백 머리 남자의 곁에서, 핏빛 머리카락의 소녀가 대답했다.
“언니를 마음 아프게 하는 놈, 괴롭히는 놈은 내가 용서하지 않을 거야.”
“게다가 레나와 레너드를 빼앗은 너희들을, 우리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어.”
“아, 그것참.”
소녀의 말에 라일라가 차가운 실소를 흘린다.
별과 단검, 태양과 쌍두까마귀.
서로 대비되는 상징을 가진 두 개의 가족들.
결코 융화될 수 없는 두 가족 사이에 존재하는 유일한 고리이자, 그들 쌍두까마귀의 가족을 지탱해야 할 가장 믿음직스러운 장녀(長女)─ 빌헬미나 아퀴나스의 마음에 남아 있는 가장 커다란 미혹의 뿌리.
누구보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당사자로서, 라일라가 미소 짓는다.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참으로 기특하네요.”
마치 그들 가족의 계획과 속셈을 처음부터 꿰뚫어 보는 듯한 눈을 하고.
* * *
그 시각, 잘츠부르크 대주교령.
천사와 죽은 자들이 격돌하고 있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마치 묵시록에서 말하는 세상의 종말이 찾아온 듯한 착각.
하지만 그곳에 있는 천사는 결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싸우지도 않았고, 심지어 인간들을 사랑하는 것조차 아니었다.
이곳 영지 일대를 봉쇄하고 그곳에 쥐새끼처럼 숨어든 ‘밤을 걷는 자’를 찾아내 제거하기 위함이다.
사방에 불사의 역병이 퍼져 감염자들이 넘쳐 나는 상황에서는, 제아무리 나이트워커 가문의 하이마스터라 해도 조용히 정체를 숨기고 있을 수 없다.
모습을 드러내고 싸워야 했다.
그리고 이런 생지옥 속에서도 죽지 않고 살아남아 감염자들과 싸우는 ‘강자들’의 존재를 찾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시엔, 미하일과 비고, 요한과 린, 각자의 인연으로 묶여 있는 가족들이 그곳에 있었다.
천사와 죽은 자밖에 없는 그곳에서, 유일하게 살아 있는 인간으로서.
“흠, 이걸 어쩐담.”
월광검의 시린 서슬을 휘두르며 요한이 어깨를 으쓱였다.
촤악!
비고와 함께 죽음의 거미줄을 펼치며 일대를 지키고 있는 미하일이 대답했다.
“뭐, 이렇게 된 이상 튀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런 지옥도 속에서 제대로 된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 리 없다.
“아뇨,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럼에도 담담히 고개를 저으며 시엔이 대답했다.
“설령 우리가 여기서 물러나도, 이곳에서 벌어진 참사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후폭풍을 불러일으킬 겁니다.”
볼 것도 없이 이곳에서 벌어진 참사는 진실과 관계없이 공화국의 악행으로 기록될 것이고, 신성 제국 전역의 인간들에게 증오의 불씨를 지필 것이다.
“그래, 이미 벌어진 일이야. 이제 와서 우리가 수습할 수 있는 게 아니지.”
비고의 말에 시엔이 대답했다.
“그리고 우리가 하지도 않은 이 일로 인해, 제국의 모든 인간이 우리를 증오하게 될 테고.”
그렇게 퍼진 증오의 불씨는 제국령 내에 거주하고 있는 공화국의 인간들, 상인과 상회(商會)를 향할 테고, 두 나라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겠지.
시엔이 담담하게 말을 잇는다.
“그러니 누군가 제대로 된 이유 없이 우리를 증오한다면─.”
그 말을 받아 요한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진짜로 증오할 이유를 하나 만들어줘야지.”
어느덧 밤의 가족들이 있는 시가지 일대를 포위한 천사들의 군세, 제국 국교회가 자랑하는 제1신성군단, 군단명 「데우스 불트(DEUS VULT)」를 마주하며.
* * *
그 시각.
모든 것이 계획대로 돌아가고 있던 와중, 첫 이변을 깨달은 것은 쌍두까마귀의 가족이자 장녀 빌헬미나의 몫이었다.
“……프란츠는 어디 있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빌헬미나 누님.”
그녀의 물음에 제4마탑의 수장이자 ‘장송공’의 이름을 가진 쌍두까마귀의 가족이 대답했다.
“프란츠 카프카 형님께서는 가족들과 함께 아버지의 명령을 수행 중이라고.”
“아버지는 무슨 명령을 내리셨지?”
“…….”
장송공의 이명을 가진 소년이 말을 흐렸다. 그녀가 가진 눈동자, 진실의 눈 앞에서는 결코 거짓을 말할 수 없을 테니까.
그렇기에 침묵했다.
침묵은 결코 거짓이 될 수 없으므로.
그 침묵의 의미를 헤아린 빌헬미나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라일라 언니에게 손대지 않겠다는 약속을 깨트렸구나.”
그것은 빌헬미나가 세운 계획이 아니었다. 그녀는 결코 라일라가 상처 입는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
“……누님을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무엇이 나를 위한 결정이 될지는, 너희가 아니라 내가 내린단다.”
머뭇거리는 장송공의 말에 빌헬미나가 대답했다.
“프란츠와 나머지 가족들은 지금 어디에 있니?”
그 어느 때보다도 감정 없고 차가운 목소리로.
“마지막 물음이란다. 부디 이 이상 내 참을성을 시험하지 마렴.”
“빌헬미나 누님…….”
설령 그 물음의 앞에서 거짓이나 침묵을 택했다가는, 제아무리 사랑하는 가족이라도 절대 용서하지 않겠다는 감정을 담고.
“─.”
저마다 서로를 위해 세운 엇갈린 계획이 부딪치며, 처음으로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다.
* * *
다섯 명의 밤을 걷는 자, 마스터 비고를 제외하고도 최소 하이마스터 이상의 강자로 이루어진 그들 앞에─ 천사들의 군세가 쇄도하고 있었다.
‘신께서 바라는 전쟁’이란 이름의 부대명을 가진 제국 제1신성군단, 천사병 중에서도 독보적일 정도로 끔찍하고 그로테스크할 정도의 형상을 가진 부대가.
날개뼈를 찢고 튀어나온, 피투성이가 된 순백의 날개.
전신을 휘감고 있는 가죽과 사슬 따위의 구속구와 폭발할 것처럼 부풀어 올라 있는 핏빛 근육.
심지어 눈도 코도 입도 없이 환형동물의 대가리처럼 튀어나온 아가리 속에는, 수천 개의 이빨이 줄지어 겹겹이 달려 있다.
그럼에도 ‘천사’란 이름으로 불리며 제국 국교회의 더없는 신성(神聖)을 상징하는 그들 앞에서, 밴시 린이 손에 들린 검을 휘둘렀다.
눈동자를 가린 흑색의 붕대 밑으로 핏빛의 눈물을 흘리며.
그곳에 있는 천사들에 결코 뒤지지 않는 기이한 뼈와 강철의 날개를 펼친 《가시 인형》 미하일 역시 마찬가지였다.
설령 그들이 교회군이 자랑하는 최강의 정예 병력이라 할지라도, 그곳에 있는 강자들 앞에서는 그저 일방적으로 도륙당하는 희생양에 불과하다.
“흠, 이럴 줄 알았다니까.”
어지간한 일이 없는 이상에야 그 자체로 전장의 향방을 결정 짓는 무적의 군대, 제1신성군단의 전열(戰列)을 무너뜨리는 그들 앞에서 흑발의 귀공자가 어깨를 으쓱였다.
교회군 총사령관이자 《피의 추기경》 체사레 보르자.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친애하는 황제 폐하.”
그가 곁에 있는 남자를 향해 정중하게 물었고, 남자가 침묵 끝에 대답했다.
“……빌헬미나, 그 아이는 어디에 있느냐.”
“글쎄요. 얼마 전부터 일방적으로 연락이 통하지 않고 있던 참이라.”
그녀와 장송공 이외에 나머지 쌍두까마귀의 가족들과 최고위 이단심문관 수준의 최고위 전력은 이 지역에 없다.
지금쯤 눈앞에 있는 젊은 황제이자 아버지, 막시밀리안 2세의 명령을 받고 나이트워커 공작 가문에 있는 ‘암살자들의 어머니’를 향했을 테니까.
“내가 직접 움직일 것이다.”
그렇기에 그곳에 있는 황제, 막시밀리안 2세가 기꺼이 몸을 일으켰다.
바로 직전에는 막시밀리안 1세라 불렸으며, 그전에는 또 다른 황제의 이름, 그보다 훨씬 전에는 ‘카산 나이트워커’란 이름으로 불려왔던 존재.
끝없이 부서지고 태어나기를 거듭하며 살아온 진정한 밤의 망령.
“흠, 우리 둘이서 되겠습니까?”
그런 존재 앞에서도 결코 주눅 들지 않고, 체사레가 어깨를 으쓱이며 물었다.
우리 둘. 그리고 상대는 나이트워커 가문의 가족이 다섯 명.
“군단장들이 함께할 것이다.”
“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네요.”
마스터 수준의 비고야 그렇다 쳐도, 시엔이나 요한 같은 이들이 ‘보통의 하이마스터’가 아니란 사실을 모를 그들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곳에 있는 두 괴물 역시, 결코 보통의 강자들이 아니었으므로.
어느덧 피의 추기경, 체사레 보르자의 품속에 있는 운명의 창이 기이할 정도로 떨리며 공명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저놈은 대체 뭐지?’
그곳에 있는 나이트워커 가문의 적들을 향해서가 아니었다.
바로 눈앞에 있는 남자, 제국의 황제이자 쌍두까마귀의 ‘아버지’를 자청하는 이를 향해서였다.
그저 눈앞에 마주하고 있는 것만으로, 운명의 창이 산산조각 날 것처럼 비명을 내지르는 이형의 존재.
존재하고 있는 그 자체로 운명(運命)을 뒤트는 듯한 이형의 기운 앞에서, 천년의 삶을 살아온 그조차 이해할 수 없는 공포에 압도되었다.
“시엔 나이트워커는 오늘, 내 손에 죽을 것이다.”
운명을 부정하는 괴물이 말했다.
존재 자체로 운명을 뒤트는 동시에, 역설적으로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죽음의 운명을 속삭이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