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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 가문의 천재 어쌔신-131화 (131/200)

131화. 구역질 나는 악 (2)

이튿날 새벽.

그곳에 펼쳐진 풍경을 보고, 수도 베네토의 인간들은 자신의 두 눈동자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별과 단검의 문장(紋章)을 새겨넣은 시체가 리알토 다리 위에 보란 듯 매달려 있었다.

이 나라를 지탱하는 기둥이자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절대적 신뢰의 상징, 공화국의 인간에게 있어 신앙과도 같은 ‘밤을 걷는 자’의 죽음.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들 나이트워커 가문의 손에 제국에 새롭게 즉위한 젊은 황제 막시밀리안 2세가 살해당했다.

요동치는 정세 속에서, 무엇 하나 되돌릴 수 없는 일들이 각자를 벼랑 끝으로 몰아넣기 시작했다.

* * *

밤하늘 산맥의 정상, 달의 사원.

나이트워커 가문의 역사가 새겨진 성소이자, 제국과 공화국의 국경 산맥에서 대대로 이 나라를 지켜온 최후의 요새.

리알토 다리에 매달린 루치아노의 시신을 수습해 염(殮)을 치른 뒤, 사원 앞에 끝없이 펼쳐진 순백의 설산 아래에 매장했다.

사원의 천장에 새겨져 있던 별 하나를 화산재와 석고로 메우고─ 밑바닥에 새로운 별의 형태를 새겨넣는다.

가문의 역사 속에서 스러지고 추락한 별들의 유해이자 죽음의 조각.

엄숙하게 내려앉은 정적 속에서, 참지 못하고 울음소리가 들린다.

눈물을 글썽이며 그레텔이 흐느꼈고, 헨젤이 말없이 그녀의 손을 잡아주었다.

“이 자리에서, 별과 단검의 이름 아래 엄숙히 맹세하나니─.”

흐느낌이 섞여 있는 침묵 속에서 ‘암살자들의 어머니’ 라일라가 엄숙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가족을 앗아간 자들에게 피의 복수를.”

루치아노 나이트워커를 위한 벤데타(Vendetta).

그저 원한에서 비롯된 복수가 아니다. 설령 목숨을 바치는 한이 있더라도 숙명처럼 수행해야 할, 가문 전체의 명예와 신뢰가 걸린 피의 복수.

그곳에 입회해 있는 나이트워커 가문의 가족 모두가, 심지어 그 자리에 참여할 수 없는 이들조차도 같은 감정을 느낄 것이다.

이 자리에 있는 「복수자(Avenger)」 조니 나이트워커 역시 마찬가지였다.

“부디 제가 가진 ‘복수의 권리’를 행사할 기회를 주십시오, 가주님.”

“물론 허락해줄 거란다, 조니.”

라일라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루치아노를 살해한 쌍두독수리의 가족들, 그중에서도 가장 직접적으로 칼을 꽂은 당사자 「젠틀맨」 잭 더 리퍼.

바로 그 남자에게 누구보다 먼저 복수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가족이자 하이마스터의 일원이 각오를 다졌다.

* * *

나이트워커 가문은 악(惡)이다.

그들이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괴물이라서가 아니다. 피와 살육에 광희하는 괴물이라서가 아니다.

타인의 감정을 이해할 수 없어서도 아니고, 공감할 수 없어서도 아니고, 몰라서도 아니다.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타인의 가장 소중한 것을 아무 망설임 없이 희생시키는 까닭이다.

“프란츠 카프카.”

“레나, 레너드.”

그 외에도 몇 명인가의 이름이 잇달아 흘러나온다.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겨 피의 복수를 꿈꾸는 것은 그들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심지어 그들이 빼앗긴 소중한 것은 ‘한 사람’조차 아니다.

쌍두까마귀의 가족.

물론 그들 역시 선(善)과는 거리가 멀다. 엄밀하게 말해, 그들 역시 나이트워커 가문과 다를 바 없는 악이었다.

그러나 어떤 잔학무도한 악인조차 제 가족은 사랑하는 법이다. 돈 루치아노를 살해하여 나이트워커 가문의 ‘척살령’이 내려진 살인귀, 젠틀맨 잭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노신사는 모노클 너머로 흐르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조용히 고개 숙여 가족들의 죽음을 애도했다.

“저에게 주어진 ‘복수의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 아버님.”

“허락할 것이다.”

남동생의 누님이자 그들 가족의 장녀, 빌헬미나 아퀴나스의 말에 ‘밤의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너에게는 마땅히 그럴 자격이 있다.”

하지만, 단 한 명.

그들의 아버지는 가족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남자는 가족을 사랑하지 않았고, 자식을 사랑하지 않았다. 설령 피가 이어져 있어도, 이어져 있지 않아도 마찬가지였다.

그럼에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녀 빌헬미나에게 주어진 복수의 권리.

프란츠 카프카를 살해한 그녀의 언니이자 ‘암살자들의 어머니’ 라일라 나이트워커를 향해 응당 행사할 수 있는 자격.

그리고 그곳에 있는 아버지는 더 이상 젊은 황제 막시밀리안 2세의 ‘형상’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던 것처럼, 형성되고 부서지기를 거듭해온 새로운 그릇이 그 권리를 인정해주었다.

* * *

그로부터 얼마 후, 수도 베네토.

“나이트워커 공작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데.”

총독궁 내의 어느 비밀스러운 일실.

삭막하고 살풍경하기 이를 데 없는 잿빛 풍경에, 대리석 테이블 홀로 덩그러니 놓여 있는 비밀스러운 회의실.

그늘 속에서 이 나라의 외교 및 첩보 활동, 전쟁을 비롯해 국가의 명운이 달린 정책이나 중대사 따위를 결정하는 조직이 회의하는 장소, 일명 「10인 위원회의 방」.

“말씀드렸다시피, 공작 각하께서는 일전의 전투로 커다란 부상을 입고 요양 중이십니다.”

이 나라의 진짜 지배자들, 그리고 그 지배자 위의 지배자로 있어야 할 라일라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녀의 공석에 앉아 ‘공작 대리’를 자청하는 시엔 나이트워커가 말했다.

“……더 이상 10인 위원회라 부를 수도 없겠군.”

침묵 속에서 가벼운 자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 말처럼 10인 위원회의 일각을 구성하는 샤일록 디 메디치는 더 이상 이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날, 돈 루치아노와 함께 젠틀맨 잭의 손에 살해당했으니까.

“알다시피, 요 근래에 정말 많은 일들이 벌어졌지요.”

“따지고 보면…….”

시엔의 말을 받아 위원 하나가 입을 열었다.

“이 모든 것이, 필요 이상으로 쓸데없이 제국을 자극한 그대들 가문의 횡포에서 비롯된 일 아니오?”

“…….”

“우리는 군국(軍國)이 아니오. 정복국도 아니지.”

공화국은 본질적으로 상인의 나라다.

“이번 일로 인해 제국과의 관계는 완전히 단절되었고, 제국 내에 거류하고 있던 우리 상인의 피해는 물론 무역 관계의 단절에서 오는 피해 역시 말할 것도 없소. 장기적으로 이 사태가 가져올 손실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지.”

“벌써 우리나라의 3대 상회 중 둘, 바르디와 페루치 상회가 파산 위기 직전에 몰려 있소.”

앞다투어 이뤄지는 위원회의 성토(聲討)에 시엔은 대답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 나라의 심장에서 10인 위원회의 일원이 살해당했는데, 나이트워커 가문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이오!”

“그대들 가문이 누리는 권세와 영광은 어디까지나 이 나라를 위해─.”

바로 그때였다.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 어떤 비판이나 비난에도 침묵하고 있던 시엔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마치 그곳에 원래 있어야 할 ‘위원장’ 라일라 나이트워커를 떠올리게 하는 섬뜩한 목소리로.

그 말에, 직전까지 시엔을 향해 소리치고 있던 위원들의 아우성이 거짓말처럼 멎는다.

“돈 샤일록이 살해당할 당시, 우리 가문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냐고 물었습니까?”

시엔이 되물었다. 그제야 비로소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말을 했는지 깨달은 위원이, 비로소 숨을 삼키며 황급히 말을 수습했다.

그러나 시엔 역시 그 이상 그를 추궁하지 않았다. 그를 향해 필요 이상의 공포나 위협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위원님들의 말이 맞습니다.”

그저 담담하게 대답할 뿐이다.

“그날, 수도 베네토에서 벌어진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이 ‘별과 단검의 신뢰’를 떨어뜨린 일이었습니다.”

지켜야 할 요인이 살해당한 것은 물론 나이트워커 가문의 하이마스터 역시 살해당하고, 그것도 모자라 모두가 보란 듯이 도시의 거리 위에 매달렸다. 그들 나이트워커 가문의 방식 그대로.

“그리고 돈 루치아노가 홀로 이 나라의 심장에서 쓰러지는 와중, 우리 가문 역시 각자의 전장에서 싸우고 있었습니다.”

시엔이 말했다.

“노골적으로 우리나라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밤하늘 산맥을 넘어 이 나라를 침략한 신성 제국의 행위가, 정말 우리 가문이 ‘그들의 심기를 건드려서’ 그런 것 같습니까?”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소?”

“만약 우리가 제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고 평화 속에서 타협한다면, 아마도 그들 ‘황금여명회’가 모습을 드러낼 일도 없었겠지요.”

“…….”

“일대일로 우리 가문의 ‘하이마스터’를 능히 쓰러뜨릴 힘을 가진 전력, 심지어 그 규모조차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전력을 제국은 처음부터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공식적으로 제국이 이 대륙의 강자를 자청하는 전력과 별개로 말이죠.”

여기 있는 이들은 바보가 아니다.

시엔이 말하는 내용을 이해하기 싫어도 이해할 수밖에 없는 이들이었다.

“오히려 그들의 존재를 물 위로 끌어내고, 그들 중 세 명을 쓰러뜨린 것은 모두 우리 가문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짧은 침묵이 이어졌다. 재차 침묵을 깨트린 것은 시엔의 몫이었다.

“우리 가문은, 공식적으로 제국을 향해 「벤데타」를 포고할 겁니다.”

“……!”

“어이쿠야, 세상에.”

그 말에 시종 평정을 지키며 남의 일처럼 침묵하고 있던 ‘라파엘로 서펀트 제독’이 처음으로 눈을 찌푸렸다.

“제가 잘못 들은 겁니까?”

“제대로 들었습니다.”

시엔이 대답했다.

“그리고 이것은 저 혼자만의 의지가 아니라, 이 자리에 오지 못하신 ‘나이트워커 공작 각하의 의지’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저는 제 손으로, 제국의 황제를 죽였습니다.”

세상의 그 누구보다 담담하기 이를 데 없는 목소리로.

“그들이 공화국의 땅을 침략했고, 그대들의 말마따나 우리는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맞서 싸웠지요. 이것이 그 결과입니다.”

“…….”

“이제 와서 다시 제국과의 관계를 이전처럼 되돌리고 그들과 거래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까?”

가능할 리가 없다는 것을 그들 모두 잘 알았다.

“우리 10인 위원회가 취할 수 있는 ‘정책적 결정’은 오직 하나입니다.”

“그게 뭐지?”

“제국의 전부를 빼앗는 것.”

시엔이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제국이 앞서 우리의 전부를 빼앗으려 할 테니까요.”

“……!”

그 말의 의미를 헤아린 위원들의 표정이 사색이 되어 얼어붙는다.

“이 척박하고 비좁기 이를 데 없는 석호 위에 갇혀 있는 대신, 우리는 나아가야 합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리고 누구도 이 흐름에 거스를 수는 없었다.

제국의 황제가 시엔의 손에 죽었고, 돈 루치아노가 잭 더 리퍼의 손에 죽었다. 프란츠 카프카가 라일라의 손에 죽었으며, 빌헬미나 아퀴나스는 자매의 연(緣)을 끊고 복수를 맹세할 것이다.

피할 수 없는 전쟁, 서로의 명운이 걸린 가장 완전한 총력전이 다가오고 있었다.

* * *

“어머니.”

늦은 밤, 홀로 흐느끼는 빌헬미나를 보며 그녀의 아들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암굴의 성자, 루카 아퀴나스.

빌헬미나가 ‘오스카’의 쓸모가 사라져 버린 직후, 체사레가 가진 ‘운명의 창’이 이끄는 대로, 어디까지나 새로운 필요에 의해 거둔 그녀의 대자.

“울지 마세요.”

“루카.”

아들의 목소리에 숨죽여 흐느끼고 있던 빌헬미나가 애써 미소 지었다. 눈이 빨갛게 부어 있는 와중에도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어머니가 말없이 손을 뻗어 아들의 뺨을 쓰다듬었다.

시엔이 기억하는 이전의 미래 속에서는, 밤을 걷는 자들의 손에 거둬져 ‘루카 나이트워커’라는 이름을 받았던 암살자의 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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