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화. 벤데타 (1)
이 대륙에서는 매일같이, 늘 어디에선가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은 굳이 공화국과 제국, 나이트워커 가문과 쌍두까마귀의 가족이 아니더라도 마찬가지였다.
칠왕국 연방과 샤를마뉴 왕국, 원탁과 12기사의 이름이 걸린 「마지막 기사들의 전쟁」─.
아이러니하게도 나이트워커 가문이 제국과의 혈전을 통해 입은 손실은, 두 나라 사이의 싸움에 더더욱 커다란 불을 붙이는 꼴이 되었다.
지금의 나이트워커 가문은 막후에서 느긋이 그들 사이의 전쟁을 저울질하며 이득을 챙길 여유 따위 없다. 제국도 제국 국교회의 공안도 마찬가지다.
그렇기에 칠왕국 군도의 입장에서 진정으로 ‘숙원’을 이룰 때는, 오직 지금밖에 없다.
아울러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타인의 소중한 것을 빼앗을 수 있는 것은, 대륙에 결코 나이트워커 가문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 * *
원탁왕 아서.
그 남자는 태어날 때부터 왕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이 그의 손에 있었고, 바라는 것은 모두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일곱 개로 분열된 왕국을 하나로 모으겠다는 그의 바람은 ‘원탁’이라는 형태로 이루어졌고, 남자가 칠왕국 군도를 일곱 왕국으로 남겨둔 것은 어디까지나 그가 그것을 바라지 않았던 까닭이었다.
그러나 저 바다 너머, 해협(海峽) 너머에 광대하게 펼쳐진 대지는 그렇지 않았다.
손에 넣고 싶다. 갖고 싶다.
이 좁아터진 군도의 백성들을 저 드넓은 광야(廣野)로 이주시켜 봄날의 비옥하고 푸른 땅 위에서 밭을 갈게 하고 싶었다.
“때가 되었다.”
그렇기에 각오를 마친 원탁왕 아서가, 휘하의 기사들을 거느린 채 입을 열었다.
“나의 투구와 갑옷, 나의 검과 창, 나의 방패와 단검을 가져오라.”
“!”
아버지 ‘우서 펜드래곤’의 투구 구스화이트(Goosewhite), 물푸레나무 창 롱고미니아드, 요정왕 멀린이 직접 엮은 마법의 사슬갑옷 위가르(Wygar), 단검 카른웬하이, 방패 프리드웬, 전설 속의 명검 엑스칼리버는 물론, 그와 더불어 자웅을 겨루는 명검 클라렌트(Clarent)까지.
이 나라가 ‘칠왕국’이라 불리게 된 이유이자, 칠왕국의 각 나라에 전해져 내려오는 일곱 개의 신기들.
남자는 그 모두를 손에 넣고 왕으로 거듭났다.
“하, 하오나 폐하, 설마 그 신기 전부를…….”
하나의 신기를 손에 쥐는 것조차 어지간한 강자에게 부담이 따른다.
하물며 둘, 셋도 아니다. 무려 일곱.
그럼에도 그것은 마땅히 짊어져야 할 무게였다.
남자는 강했다. 충분히. 그러나 지금 정도의 강함으로는 결코 바라는 것을 손에 넣을 수 없다.
이 세계에 넘쳐나는 그의 적들에게서 바라는 전부를 빼앗을 정도로, 충분히 강하지 못하다.
“모두 가져와라.”
그러나 남자는 개의치 않았다.
“왕은 다시 말하지 않는다.”
“……알겠습니다, 폐하.”
남자는 왕이었다. 왕은 마땅히 바라는 전부를 손에 넣을 자격이 있다.
“이 싸움에서, 우리는 바라는 것을 손에 넣을 때까지 절대로 물러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전부를 바쳐서라도 손에 넣어야 할 것이, 저 땅에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비옥하고 풍요로운 대지를 가졌다 일컬어지는 봄의 나라, 샤를마뉴 왕국.
“그 전부를 빼앗고 이 손에 넣을 때까지, 나는 결코 고국의 땅을 밟지 않을 것이다.”
왕의 결의를 다진 최후의 원정이 시작되었다.
* * *
“티아.”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빼앗기 위해, 저마다의 방식을 통해 강해지고 힘을 얻는다.
“잘 보렴.”
그렇기에 시엔이 새로운 깨달음을 갈구하는 티아의 앞에서, 나직이 팔을 뻗고 속삭였다.
“《효월(曉月)》.”
그날의 약속대로, 시엔이 보여준 테레지아 경의 비기이자 오러와 마력을 융합하는 기술 ‘제비반전술’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제는 ‘새벽달’이란 새 기술명을 가진 오러와 마력의 조화가, 시엔의 칼끝에서 펼쳐졌다.
우주 물질의 약 85%를 이룬다고 일컬어지는 암흑물질, 눈으로 볼 수 없는 그 물질이 시엔의 칼끝에서 조작되며─ 그 무엇보다 검고 어두운 흑검(黑劍)을 머금었다.
엄밀히 말해 암흑물질 자체에는 어떤 파괴적 힘도 무엇도 없다. 그저 이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물질 그 자체일 뿐이다.
그러나 마력의 힘을 통해 그 물질을 조작해 움직일 때, 그것이 가져올 파괴력은 말 그대로 세상의 파괴자란 이름에 부족하지 않다.
‘아바돈을 이루는 탐식과 죽음의 별, 일명 블랙홀의 질량 대다수는 암흑물질로 구성되어 있다네.’
암흑물질을 통해 생성할 수 있는 죽음의 별.
검은 달의 베르나르트가 ‘블랙홀(Blackhole)’이라 부르는 별의 시체이자 죽음과 탐식의 별이, 지금 시엔의 칼끝에 덧씌워져 있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마력이었다.
동시에 그 마력이, 왕 시해자 위에 덧씌워진 칼날과 시엔의 육체에 공존하고 있다.
“초위계 마법 · 아바돈(阿鼻沌).”
“……!”
그냥 마법을 펼친 수준이 아니다.
시엔이 펼친 마법, 심지어 그것을 오러와 융합하며 구사하고 있는 모습에 티아가 경악하며 숨을 삼켰다.
그날, 섬광처럼 머릿속을 스친 깨달음을 붙잡고 비로소 ‘자신의 것’으로 융화를 끝마친 형태.
그것은 더 이상 베르나르트의 고유 마법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시엔이 펼치는 악인의 자세였다.
“물러서, 티아.”
직후, 시엔의 칼끝이 앞을 겨누었다. 마찬가지로 칼끝에 깃든 칠흑의 별 역시, 그 끝없는 탐식을 채우기 위해 시엔이 겨눈 일대의 영역을 향해 폭발하듯 팽창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별의 시체라네.’
‘주위의 질량을 흡수하며 계속해서 성장하지. 설령 그것이 살아 있는 별이라도 개의치 않고 잡아먹지.’
머릿속으로 그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시엔이 휘몰아친 ‘죽음의 별’을 거둔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베르나르트의 그것처럼 도시 하나를 통째로 집어삼킬 정도의 규모는 아니다. 그러나 사람 하나를 죽이기에는, 아니, 눈앞의 군대 하나를 쓰러뜨리기에는 이것조차 지나치게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걸로 놈에게 닿을 수 있을까.’
그 남자, 밤의 아버지에게 닿을 수 있을지는 여전히 알 수 없었다.
형상을 부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밤의 아버지, 카산 나이트워커는 ‘형상’을 부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악인의 자세를 통해 시엔이 손에 넣은 깨달음처럼, 어쩌면 그 방식 자체가 마신의 자세에 깃든 그의 오의(奧義)일 수도 있다.
그 오의를 깨트리고 직접 놈의 존재에 닿아야 했다.
지난 과거, 시엔이 남자의 뺨에 새겨넣은 상처.
밤의 아버지는 알고 있었다. 누가 그 상처를 새겨넣었는지. 시엔 역시 마찬가지였다.
시엔은 이미 한 차례, 그의 존재에 영원히 지워질 수 없는 상처를 새겨넣었다.
그리고 다음에는, 그저 알기 쉬운 상처 따위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쓸데없는 생각에 잠겨 있는 것은 거기까지였다.
지금 당장 시엔이 하려는 것은 자신의 수행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그의 곁에 있는 여동생이자 대녀, 티아 나이트워커를 가르치기 위함이었으니까.
“우리는 인간이 아니란다, 티아.”
시엔이 말했다. 그 말에 티아가 딱히 대수로울 것도 없다는 듯 침묵했다. 마치 그 말이 맞다는 듯이.
“그렇다고 괴물도 아니지.”
“─.”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는 티아 역시 의외란 듯 눈동자를 끔벅거렸다. 자신들이 괴물이 아니라니.
“어째서요?”
“우리에게는 여전히 인간의 편린(片鱗)이 남아 있으니까.”
시엔이 담담히 말했다.
“우리는 인간이 아니야. 동시에 우리는 여전히 인간의 굴레에 묶여 있단다.”
인간이자 괴물이며, 인간도 아니고 그렇다고 괴물도 아니다.
그날, 테레지아 경이 가르쳐준 것과 같은 깨달음.
“이게 바로 우리 같은 ‘불완전한 존재’의 방식이란다.”
“새벽달이군요.”
티아는 똑똑했다. 아니, 똑똑하다는 말조차 부족할 정도로 총명하기 그지없는 아이였다.
“어둑새벽의 어스름과 함께, 여전히 밤하늘에는 이지러진 달과 별들이 걸려 있는 거네요.”
그렇기에 효월(曉月).
“맞아.”
10점짜리 정답이란 말조차 부족할 정도의 대답에 시엔이 흐뭇함을 숨기지 않고 웃었다.
“새벽 아침의 여명과 어스름이 떠오르는 와중, 너는 밤하늘의 별과 달을 잊지 않을 수 있겠니?”
“물론이에요.”
시엔의 말에 티아가 칼자루를 고쳐 잡는다.
묘리(妙理)를 이해하자마자, 티아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저 능숙하게 칼자루를 고쳐 잡고 기술 이름을 입에 담을 따름이다.
“효월.”
그녀의 몸에 깃든 오러 위로 마력이 덧씌워진다.
그리고 그 마력을 통해 티아가 딛고 있는 일대가 쩌적 소리를 내며 얼어붙고, 시엔조차 무심코 등줄기가 시릴 정도의 냉기가 내려앉는다.
명경지수와 냉기 속성의 마법 두 가지를 함께 구사하며, 그 끝에서 티아가 새롭게 손에 넣은 자세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대부의 자세(Godfather Stnace)》.”
“!”
이어지는 그 자세에, 시엔조차 일순 당황해서 숨을 삼켰다. 아니, 당황 정도가 아니었다.
그 어느 때보다 검고 어두운 눈동자를 하고 있는 티아가, 시엔을 향해 칼끝을 들이밀고 있었다.
그리고 시엔에게 있어 그 자세는 무척이나 익숙했다. 아니, 익숙한 정도가 아니었다.
‘악인의 자세─.’
마치 동경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따라하듯, 일찍이 시엔이 펼친 자세를 흉내 내고 있다.
“저는 오라버니를 사랑해요.”
티아가 말했다. 그들에게는 그저 가족이 전부였던 까닭에.
“그리고 제가 사랑하는 당신이, 이 모든 짐을 홀로 짊어지길 바라지 않아요.”
마치 시엔의 속마음을 꿰뚫어보고 있는 것처럼.
“미하일 오라버니나 이자벨 누님이 그런 것처럼, 우리 가족은 모두 서로의 고통을 짊어질 각오가 되어 있어요.”
“티아…….”
시엔이 조용히 말을 삼켰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당연한 말이다. 너무 당연해서 굳이 말로 담을 필요조차 없었다.
그들 나이트워커 가문에게는 가족이 전부니까.
그런데 그 당연한 말을 티아의 목소리로 들었을 때, 시엔은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이 느껴졌다.
“당신이 우리 ‘암살자들의 어머니’ 나이트워커 공작 각하를 생각하는 것처럼, 저 역시 당신을 생각하고 있어요.”
그 어느 때보다도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동시에 이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검고 어두운 눈동자를 하고서.
훗날 《흑조》의 이명으로 불리게 될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가 말했다.
“대부님과 함께, 제가 당신의 악을 대속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
“……각오 정도로는 끝나지 않을 거야.”
시엔이 말했다. 여느 때와 비교할 바 없는 차가운 목소리로.
“알고 있어요.”
티아는 부정하지 않고 담담히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각오’ 따위로 오라버니의 짐을 짊어질 생각 따위 없는걸요.”
그렇게 말하며 티아가 팔을 뻗었다.
스릉.
그녀의 손끝에서 시퍼런 서슬을 휘감고 뼈의 검이 솟아났다.
가문의 5식, 가시나무의 자세.
그것을 보고 나서는, 시엔조차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너, 대체 어느 틈에─.”
“오라버니가 알지 않기를 바랐으니까요.”
티아가 태평하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사랑하는 딸이, 그 무엇보다 고통스러운 ‘노목급의 가시나무’를 이식받길 바라지는 않을 테니까요.”
그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맞는 말이었다.
어느덧 몸속에 덧씌운 가시나무를 뒤로하고 티아가 말했다.
“오라버니께서 수행하실 새로운 임무에, 저를 데려가 주세요.”
시엔이 이제부터 수행하게 될 임무.
그 무게를 모를 티아가 아니었다.
그날, 늙은 암살자 루치아노가 ‘잭 더 리퍼’의 손에 살해당하고 나서 그들 가문이 맹세했던 결의.
제국의 심장에서, 벤데타(피의 복수)를 이루는 임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