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5화. 벤데타 (2)
세례를 마친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는 기본적으로 가문의 아홉 가지 검식 모두에 어느 정도 통달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가문의 5식, 가시나무의 자세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밤을 걷는 자들의 육체를 넣은 후에, 5식의 기초를 구사하기 위한 개조 수술을 한 차례 받게 된다.
일명 ‘어린나무’라 불리며, 전신의 200개 남짓한 뼈 전체를 칼날의 뼈로 교체하는 작업.
그럼 전신의 뼈를 모조리 교체하고 나서, 그 뒤에 이어질 ‘성목’과 ‘노목’에는 무엇이 더해진다는 걸까.
성목은 기본적으로 교체한 칼날의 뼈를 좀 더 정교하게 다듬고 뼈마디를 분절(分節)하는 강화 작업이다. 사출할 수 있는 개수와 방향 및 범위, 위력을 높이기 위해서.
하지만 노목(老木)이라 불리는 개조 작업은 아예 그런 궤에서 벗어난다.
그렇기에 시엔과 티아가 ‘벤데타’를 수행하기 위해 공작령을 떠났을 무렵, 저택에 돌아온 앨리스가 걱정스러운 듯 되물었다.
“티, 티아는 괜찮을까……?”
“그 아이는 각오가 되어 있었단다, 앨리스.”
여느 때처럼 고뇌하고 방황하는 가족들을 향해, 가문의 가장 지혜로운 자가 미소 지으며 속삭였다.
“미하일도, 이자벨도 마찬가지지.”
“그, 그치만…….”
그녀, 앨리스는 언제나 그런 아이였다. 아무리 가문의 존경받는 하이마스터가 되고 강자가 되어도, 적지 않은 대자와 대녀들을 거두고 어엿한 강자로 성장시켰음에도, 그녀는 여전히 어린아이였다.
“내, 내가 너무 약해서─.”
“네가 약하기 때문이 아니란다.”
침울해진 앨리스를 향해 루나가 쓴웃음을 짓는다.
“네가 너무 강한 까닭이지.”
그렇게 말하며 루나가 말없이 앨리스가 걸친 옷을 벗겨준다.
별과 단검의 문장이 새겨진 코트 아래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그녀의 나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아름답고 새하얀 피부 같은 것은 없었다.
백옥처럼 희고 아름다운 피부를 갈기갈기 난도질하듯, 흉터와 상흔이 빼곡하게 뒤덮여 있는 상처투성이의 육체.
“내, 내가……?”
당치도 않다는 듯 얼굴을 붉히는 앨리스를 뒤로하고, 루나가 무릎을 굽혔다.
“흉곽 내부에 몇 개의 가지가 엉켜 있구나.”
어느덧 루나의 손에 들린 칼날이 조심스럽게 그녀의 상처투성이 육체를 절개하고, 그 속에서 뒤엉켜 있는 ‘칼날의 나뭇가지’를 섬세하게 해체했다.
“골검(骨劍) 세포의 성장 속도가 요즘 들어 지나치게 과대해졌어. 당장은 주의할 필요가 있겠구나.”
“너, 너무 능력을 많이 썼으니까…….”
“그래.”
콰직!
“읏.”
어느덧 루나는 앨리스의 흉곽 속에서 멋대로 자라난 가지를 절단하고 골격의 위치를 재조정한다.
이것이 바로 노목의 가시나무다.
전신의 뼈를 칼날의 뼈로 교체한 뒤, 자기 몸에 뿌리내린 ‘가시나무’를 자라게 하는 공생의 육체.
가시나무의 자세에서 오의라 불리는 기술은 상대에게 펼치는 어떤 거창한 기술이 아니라, 육체가 새로운 뼈를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하는 작업 그 자체다.
일멸 《골검(骨劍) 세포 이식》.
통상 뼈를 구성하는 기본 세포를 대체하며, 자기 의지로 조작할 수 있는 ‘합금 칼날’로 뼈대를 구성하는 것.
성공할 경우에는, 이 세포를 마음대로 조작해 강철의 날개를 생성하거나 여러 발의 지탄을 사출하는 등, 뼈의 개수나 골격 따위에 제약을 받지 않고 능력을 쓸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그 대가였다.
가령 골검 세포를 과다하게 쓰는 경우, 세포가 육체의 통제를 벗어나 멋대로 내부를 찔러 내출혈을 일으키고─ 주요 장기를 상처 입힐 수도 있다.
따라서 5식의 마스터는 주기적으로 ‘가지치기’를 통해 체내에 자라는 골격의 성장을 억제하기 위해 절단할 필요가 있다.
그나마 가문에 있는 경우에는 루나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나…… 아무도 도와줄 곳이 없는 전장에서는, 홀로 자기 몸을 가르고 가지를 쳐낼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렇게 멋대로 자라나는 육체 덕에, 밤마다 제대로 된 잠자리에 드는 날은 손에 꼽을 정도다. 심지어 평소에도 몸의 내부에서 수많은 칼날에 찔리는 지옥 같은 고통을 ‘일상처럼’ 감내할 수밖에 없다.
앨리스는 누구보다도 가문의 5식, 가시나무의 자세가 갖는 고통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앨리스가 눈물을 흘린다.
“이런, 아팠느냐.”
그녀의 눈물을 아픔의 뜻이라고 이해했는지, 당혹 속에서 루나의 손이 멈춘다.
“으응, 나는 괜찮아…….”
앨리스는 고개를 젓는다.
“아, 아파서 그러는 게 아니니까…….”
그녀가 우는 것은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 고통을, 미하일과 이자벨, 그리고 티아가 평생 짊어질 거라고 생각하니─.”
누군가를 위해 상처를 대속하는 가시나무.
“내, 내가 너무 부족하니까…….”
“네 잘못이 아니란다, 앨리스.”
그로테스크할 정도의 상처투성이 육체, 심지어 복부를 절개하고 피투성이가 된 육체를 포옹하며 루나가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그녀는 이미 지나칠 정도로 많은 상처를, 그녀가 지켜야 할 가족들 대신 짊어졌다.
“네가 우리의 상처를 대속해주었듯, 그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니까.”
여느 때처럼 가문의 콘실리에리에 걸맞은 지혜를 갖고서.
“우리는 가족이잖니.”
* * *
시엔과 티아 나이트워커, 그 외에도 몇 명의 하이마스터가 은밀히 ‘벤데타’를 수행하기 위해 제국의 땅으로 움직였다.
함께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가령 젠틀맨 잭을 노리는 것은 마땅히 루치아노의 대자로서 ‘복수의 권리’가 주어진 가족 조니의 몫이다. 헨젤과 그레텔은 물론, 미하일과 이자벨 역시 각자의 역할을 위해서 흩어져 임무를 수행 중이다.
그것은 시엔과 티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제국령 내의 어느 가도(街道) 위에서 조금 떨어진 수풀.
그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나이트워커 가문의 ‘살생부’에 기록된 자가 기다리고 있는 보르자 공작령이 있었다.
시엔의 오랜 숙원(宿怨)이자 벤데타를 수행하기 위해 가장 앞서 쓰러뜨려야 할 숙적, 천년공 체사레 보르자의 대지.
교회군 총사령관이자 피의 추기경, 성직자의 작위를 가진 동시에 ‘추기경 공작’이란 세속의 대귀족 작위마저 겸하고 있는 제국의 괴물.
그 수풀 속에서 밤하늘의 별을 보며 잠들어 있던 시엔이, 가벼운 기척에 본능적으로 눈을 떴다. 처음에는 야생동물의 기척이나, 그럴 리는 없겠지만 제국의 ‘눈’이 자신을 본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티아.”
“오라버니…….”
시엔의 여동생이자 대녀 티아가 잠들지 못한 채, 애써 담담하게 평정을 가정하고 있다.
“그냥, 잠이 오질 않아서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그 의미를 모를 시엔이 아니었다.
“아직 후유증이 낫지 않았구나.”
“……저는 괜찮아요.”
“괜찮지 않으면 안 되는 거니?”
시엔이 되물었다. 의외의 말에 티아가 눈동자를 끔벅거린다.
“나에게는 네가 전부란다, 티아.”
“…….”
그들에게는 가족이 전부니까.
“내 앞에서 아픈데 아프지 않은 척을 해봐야, 정말로 내가 마음 놓고 안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
“…….”
“내 앞에서는 약한 모습을 보여줘도 돼.”
시엔의 말에 티아는 대답하지 않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정적 속에서, 수풀 속에 숨은 벌레들이 우는 소리가 아스라하게 울려 퍼졌다.
“싫어요.”
침묵 끝에 티아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오라버니야말로, 제 앞에서는 절대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잖아요.”
티아가 짐짓 뾰로통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너의 대부(代父)니까.”
시엔이 말했다.
아버지는 절대로 딸의 앞에서 나약한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
“……역시.”
“그래도 말이야.”
그럴 줄 알았다는 티아의 말에 시엔이 대답했다.
“그런 나도 우리 가문의 ‘어른’들 앞에서는, 이따금 약한 모습을 보일 때가 있거든.”
“정말이에요?”
믿을 수 없다는 눈동자를 하고 티아가 되물었다.
“응.”
시엔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별과 단검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게.”
실제로도 거짓이 아니었다. 그것은 진실이었다.
당장, 지혜로운 자 루나의 품에 파묻혀 흐느꼈던 얼마 전의 일을 떠올린다. 미래에 대한 형용할 수 없는 불안과 공포에 떨었던 그날의 일. 떠올리고 나자 시엔의 귀가 붉어졌다.
“얼굴이 빨개지셨네요.”
“…….”
즐거운 듯 웃는 티아의 모습에 시엔이 말을 흐렸다.
“가문의 어른에게 보여준 약한 모습이 뭐예요?”
티아가 짓궂은 듯이 되물었다.
“말해주면, 저도 제 약한 모습을 보여드릴게요.”
“……수지맞는 거래는 아닌 것 같네.”
시엔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짧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침묵 속에서 밤바람이 불어왔다. 어둠이 내려앉은 수풀이 사르륵 소리를 내며 나부낀다. 벌레가 우는 소리와 밤새가 지저귀는 소리.
침묵과 정적이 무음(無音)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이 밤의 숲은, 침묵하는 두 사람에게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속삭이고 있었다.
“……가족을 지키지 못할까 봐 겁이 났어.”
침묵 속에서 시엔이 입을 열었다.
그답지 않게 머뭇거리는 목소리로, 빨개진 귀를 어둠 속에 숨긴 채 담담하게.
“사랑하는 가족 모두를 지킬 정도로, 내가 충분히 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
티아 역시 그 의미를 모를 리 없다.
아니, 그것은 나이트워커 가문의 가족 모두가 느끼고 공유하는 공포 그 자체였다.
“노목의 가시나무는…… 많이 아팠어요.”
그렇기에 티아 역시 숨기지 않고 입을 열었다.
“잠을 잘 때는 늘 살갗 밑을 찌르는 칼날의 고통에 잠을 깨고, 능력을 쓰고 나서는 폭주하는 골검 세포에 내출혈을 일으키고, 아무리 가지를 쳐도 고속으로 생육(生育)하는 칼날의 뼈가 상처 입히고─.”
티아가 말했다.
“지금도 아파서 잠에 들지 못했어요.”
처음으로 그녀가 느끼는 진심과 나약함을 숨기지 않고.
“앞으로도 이 고통을 평생에 걸쳐 짊어져야 할 거라 생각하니…… 겁나고 무서워졌어요.”
“티아.”
시엔으로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래도 이제는 알 수 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티아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제가 느끼는 이 고통이, 사랑하는 가족 중의 누군가 느껴야 할 고통을 대신해서 짊어졌다는 증거란 사실을.”
고통 속에서 티아가 조용히 미소 짓는다.
“제가 상처 입고 고통받을 때마다, 사랑하는 가족이 덜 고통받고 덜 아파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말하는 티아의 눈동자는 그 어느 때보다 검고 어두웠다.
훗날의 그녀가 얻게 될 이명─ 《흑조(Black Swan)》의 이명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어둠을 품고.
“저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에요, 대부님.”
일찍이 미하일이 앨리스를 향해 말했듯이.
티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신의 상처를 제게 나누어 주세요.”
마찬가지로 가족을 위해 기꺼이 상처 입을 각오를 다진 채.
살갗을 찢고 칼날로 된 뼈가 끝없이 튀어나오며, 티아의 몸에 새로운 상처를 새겨넣는다.
“…….”
그 의미를 헤아린 시엔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소맷자락 속에 숨겨진 왕 시해자를 고쳐 잡고, 아무것도 없는 주위를 향해 입을 열었다.
“모습을 드러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