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 가문의 천재 어쌔신-141화 (141/200)

141화. 군세의 악마 (2)

「나는 전쟁과 요새의 악마이며, 그 어떤 전쟁에서도 패하지 않는다.」

군세의 악마, 사브나크의 말과 함께 그가 거느리고 있던 ‘악마의 군단’이 움직였다.

교회군이 이끄는 신성 군단의 천사병처럼 척 보기에 끔찍하거나 그로테스크한 괴물의 형상이 아니었다.

외려 그들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형상을 하고 있었다.

보다 인간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일까, 인간에게 호감을 사려는 악의에서 비롯된 까닭일까.

마치 그림으로 그린 듯한 신사풍의 미남자들로 이뤄진 군대였다. 하나같이 금색 장식이 주렁주렁 달린 핏빛의 신사모와 붉은 코트를 제복으로 삼은.

하지만 그들의 손에 들린 것은 검이나 창 같은 냉병기가 아니었다.

‘머스킷…….’

아직 본격적으로 도입되지 않은 미래의 기술, 흑색 화약을 이용하는 전장식 총기─ 머스킷을 다루는 전열보병(Line infantry).

“티아. 흑색 화약이야.”

“화약……?”

“저들의 무기 하나하나가, 3위계 원소 마법사에 필적하는 ‘볼트 마법’을 사출할 수 있어. 1분에 3발의 속도에, 최대 유효 거리는 80미터 정도.”

“알겠어요.”

설명을 듣고도 티아는 당황하지 않았다. 그녀 역시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고, 이 세상의 이치와 섭리를 벗어나 있는 존재와 싸우는 게 처음이 아니니까.

전열을 갖추고 전진하는 레드 코트 차림의 악마들.

그들 부대를 상대로 거리가 좁혀지고, 빗발치는 탄환 세례 사이로 시엔과 티아가 움직였다.

촤아악!

거리가 좁혀지자 악마들은 머스킷 총신에 부착된 총검(銃劍)을 휘둘렀고, 칼날이 맞부딪쳤다. 그리고 맞부딪쳤다고 생각하기 무섭게 시엔의 전신을 찢고 튀어나온 ‘칼날의 뼈’가 악마의 무리를 갈가리 찢어발겼다.

티아 역시 마찬가지였다.

악마의 군세에 맞서는 두 명의 암살자.

그리고 그들 사이에서 이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핏빛 코트를 걸친 악마들 속에서 전황을 지켜보고 있는 사자머리의 악마, 사브나크를 향해 시엔과 티아가 움직였다.

그들 사이를 가로막는 머스킷 전열보병의 방진을 돌파하며.

사방에서 자욱하게 휘몰아치는 흑색 화약과 죽음의 냄새.

그 사이를 뚫고 도달한 그곳에, 이 군세를 거느린 지휘관이 있었다.

“이 군세를 너에게 주마.”

바로 그 군세의 악마가 말했다.

“어떤 전투에서도 패하지 않고, 어떤 전투에서도 승리를 가져올 군세를 전부 너에게 주마.”

그 존재는 여전히 시엔을 향해 속삭이고 있었다.

그곳에 펼쳐진 악마의 군세.

그러나 그들의 군세는 결코 교회에서 말하는 이글거리는 유황불이나 어둠의 힘 따위가 아니었다.

당장 시엔이 기억하는 수십 년 후의 미래에 확실하게 펼쳐질 미래이자 ‘인간들의 전쟁 방식’이다.

수십 년 후에는, 더 이상 누구도 창과 칼과 화살로 싸우지 않는다. 오러는 있어도 기사는 없다. 오직 화약과 전술이 존재할 뿐이다.

“가족을 사랑하지 않느냐?”

사브나크가 되물었다.

“그럼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네 영혼 하나를 희생하는 게 그렇게 대수로운 일이더냐?”

시엔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이유도 없었다.

“그것을 일컬어 누가 감히 ‘그릇된 일’이라 말할 수 있겠더냐?”“

그저, 가슴속에서 이상할 정도의 충동이 들끓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제 몸 하나의 보신을 위해 이 강대한 힘과 군세를 거절하는 것이, 정녕 옳은 일이라 생각하더냐?”

평소라면 콧방귀조차 끼지 않고 거절해야 할 제안이, 이 세상의 무엇보다 달콤하고 감미로운 속삭임처럼 들려왔다.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그리고 이어지는 사브나크의 말이, 시엔의 가슴에 비수를 찌른다.

“너는 홀로 ‘이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이 전쟁.

그것은 눈앞에 있는 악마와의 전쟁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공화국과 제국, 쌍두까마귀의 가족과 나이트워커 가문,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 말대로예요.”

하지만 바로 그때, 미혹에 사로잡혀 있던 시엔에게 투명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부님 혼자서는 결코 이길 수 없는 전쟁이죠.”

동시에 그들은 결코 혼자가 아니었다.

타앗!

어느새 시엔을 앞지르듯 땅을 박찬 티아가, 눈앞에 있는 사브나크를 향해 전신의 칼날을 휘둘렀다.

그러나 휘둘러진 티아의 칼끝이 놈을 향해 닿는 일은 없었다.

마치 신기루를 가르듯, 덧없는 환영을 향해 허공을 가를 따름이다.

물론 티아 역시 당황하지 않았다.

“나는 전쟁과 요새의 악마이며, 그 어떤 전쟁에서도 패하지 않는다.”

전쟁과 요새의 악마. 군세(軍勢)의 악마.

그의 말대로였다.

“나는 전쟁 그 자체다.”

누구도 이 세상에서 전쟁을 없앨 수 없다.

이곳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사브나크는 패배하지 않는다.

“그래. 누구도 널 쓰러뜨릴 수 없겠지.”

그렇기에 시엔이 대답했다. 방금 티아가 보여준 일격에, 잠시나마 미혹에 빠져 있던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하며.

“그나저나, 패배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게 꼭 네 승리를 뜻하지는 않거든.”

천사와 악마, 그들 초월자는 이 세상의 섭리와 법칙을 멋대로 뒤틀며 조작할 수 있다. 그러나 시엔과 티아는 알고 있었다.

그런 그들조차 벗어날 수 없는 어떤 절대적 규칙이 있다는 것을.

초월자를 쓰러뜨리기 위해 요구되는 것은 강력한 무력도 무엇도 아니다.

지혜였다.

이 세상의 섭리를 뒤트는 그들의 언령(言靈)에 깃든 허점을 찾아내어 찌르는 해석의 칼날.

전쟁과 요새의 악마, 사브나크는 그 어떤 전쟁에서도 패배하지 않는다.

“하지만 너는 이 전쟁에서 결코 승리할 수 없다.”

동시에 패배하지 않는 게 곧 승리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말하며 시엔과 티아가 등을 맞댔다.

딱히 전장의 어떤 전황을 바꾸기 위해서도 무엇도 아니었다.

끝없는 유예(猶豫)였다.

눈앞의 존재를 쓰러뜨리거나 패배시킬 필요는 없다. 그럴 수도 없으니까.

그저 승리를 양보하지 않는 걸로 족하다.

아울러 사브나크의 군세 역시 결코 시엔과 티아를 쓰러뜨릴 수 없었다.

쩌적, 쩍.

게다가 이곳은 결코 그의 진짜 왕국이 아니다. 끝없이 펼쳐진 모래밭과 눈앞에 강림해 있는 이 존재는, 이 순간에도 실제 세계에서 누군가의 희생을 대가로 유지되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깨닫고 보니 유리창이 깨지듯 세계의 풍경이 무너져 내렸다.

고위급 악마를 강림시키기 위해서는 대가가 필요하다. 심지어 그 강림을 지속하는 것은 더더욱 커다란 대가가 필요하다.

그곳에는 더 이상 ‘이단자의 자세’를 유지하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 피의 십자군만이 남아 있었다.

몇몇 뱀파이어들이 눈과 귀, 코와 입에서 피를 뿜으며 쓰러졌고, 등을 맞대고 있던 시엔과 티아가 다시금 칼자루를 고쳐 잡았다.

칠흑의 미스릴과 뼈로 이루어진 칼날이었다.

* * *

그로부터 얼마 후, 나이트워커 공작령.

“……임무를 실패했습니다.”

“그래도 무사히 살아 돌아왔구나.”

시엔과 티아를 향해, 달빛을 역광으로 등진 라일라의 실루엣이 부드럽게 미소 짓는다.

“이야기는 들었단다.”

그저 살아서 돌아온 것으로 충분하다는 듯이.

“설마 미망공과 뱀파이어 클랜이, 처음부터 ‘규칙’을 깨트렸을 줄은.”

“그들이 종족의 규칙을 깨고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곧이겠죠.”

“전적으로 나의 실책이란다.”

라일라가 말했다.

“적어도 ‘내 눈’이 기억하고 있는 로드 스칼렛의 진실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지.”

“어머니의 눈을 피할 수 있는 형태로 교묘하게 진실을 왜곡했겠죠.”

시엔의 말에 라일라가 대답했다.

“……그래도 손에 넣은 ‘성과’가 아예 없지는 않은 모양이더구나.”

아니, 없지 않은 수준이 아니다. 어느 의미로 시엔이 손에 넣은 성과 앞에서는, 임무의 실패조차 그다지 대수롭지 않은 대가였다.

가문의 역사상 유례가 없는 네 가지 검식의 마스터.

“제 잘못이에요, 가주님.”

라일라의 말에 침묵하고 있던 티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대부님께서는 저를 지키기 위해…….”

“기억하렴, 티아.”

티아가 말끝을 흐렸고, 라일라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잇는다.

“그게 우리 가족의 강함이란다.”

“…….”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해 그들은 무엇이라도 할 수 있다.

티아가 그러했고 시엔이 그러했듯, 그들 모두가 마찬가지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지금 이 상태로는, 결코 그들의 적에 맞서 가족들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들 가족은 어느 때보다도 빠르게 강해지고 있었다.

미하일과 이자벨이 그렇고 티아가 그러했듯, 시엔도 마찬가지였다.

“가문의 역사를 통틀어 그 누구도 그랜드마스터 이상의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지.”

라일라가 말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경지를 시험하거나 검증할 방법도 없고, 어떤 성사(聖事)를 붙여야 할지조차 알 수 없구나.”

하물며 지금의 루나에게 다시 ‘지혜의 고리’를 꺼내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

그렇기에 짧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침묵 끝에, 시엔이 입을 열었다.

“고해성사(Confessio).”

자신의 죄를 고백하는 성사.

─처음부터 시엔의 죄는 오직 하나였다.

그 말에 라일라가 흡족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다들 열심히 싸우고 있구나.”

저마다 사랑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그 와중에 나 홀로 느긋이 차나 홀짝일 수는 없는 노릇이지.”

더 이상 성장할 여지 따위는 없다고 생각했다. 자기는 이미 완성된 존재라고.

그게 얼마나 오만한 착각이었는지, 라일라는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참으로 부끄러운걸.”

하루가 멀게 성장하는 아들, 그랜드마스터의 경지를 손에 넣고도 기어코 다음 경지를 열어젖히는 아들의 모습을 보며, 라일라는 비로소 정체(停滯)된 자기 자신을 돌아보았다.

“시엔.”

“예, 어머니.”

“부디 나의 고해를 들어줄 수 있겠니?”

그렇기에 암살자들의 어머니─ 나이트워커 공작이 입을 열었다.

더 이상 그녀에게서 시엔을 내려다보는 강자의 눈빛이나 여유는 찾아볼 수 없다.

그저 너무나도 겸허하게, 사제 앞에서 자신의 약함과 죄를 고백하는 ‘인간’이 있을 뿐이었다.

* * *

“이 군세를 너에게 주마.”

악마 사브나크가 속삭였다. 일찍이 시엔에게 그랬던 것과 같은 목소리로.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입맞춤하는 ‘인간’을 향해.

“이 지상에서 네가 치르는 모든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줄 군세를.”

레드 코트(Red Coat)라 불리는 붉은 코트 차림의 제복과 머스킷 라이플로 무장하고 있는 전열보병의 군세.

“어떤 전투에서도 패하지 않고, 어떤 전투에서도 승리를 가져올 무적의 군세를.”

바로 그 군세를 손에 넣기 위해, 기꺼이 악마 앞에서 무릎 꿇은 남자가 대답했다.

“계약을 받아들이겠다.”

남자는 왕이었다.

일곱 개의 국가로 이루어진 섬나라를 지배하는 맹주이자, 일곱 개의 신기로 무장하고 있는 철인(鐵人).

원탁왕 아서.

그리고 왕에게는 백성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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