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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 가문의 천재 어쌔신-152화 (152/200)

152화. 가시 왕관 (1)

“너는 절대 운명을 극복할 수 없다, 시엔 나이트워커.”

체사레가 말했다.

그리고 저주와도 같은 그 말과 함께, 시엔의 피부를 찢고 헤아릴 수 없는 가시나무 줄기들이 솟아 시엔의 육체를 휘감았다.

“상처투성이의 네 몰골을 봐라, 시엔 나이트워커.”

그 모습을 보며 체사레가 차갑게 조롱했다.

살갗을 찢고 피를 흩뿌리며 튀어나온 가시나무 줄기가 다시금 시엔의 사지를 포박하듯 휘감고 가시를 찔러넣는다. 발끝부터 시작해 팔과 다리, 전신을 휘감고 급기야 시엔의 머리 위에 관처럼 씌워진다.

가시나무로 된 왕관이었다.

“허억……!”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공작 저택의 침실이었다. 흐트러진 호흡 속에서 시엔이 말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또 그 악몽이다.

체사레 보르자는 죽었다.

그러나 잠이 들 때마다, 잠에서 깨어날 때마다, 체사레의 모습이 악몽 속에서 나타나며 저주처럼 끝없이 시엔을 옥죄고 괴롭혔다.

마치 절대로 거부할 수 없는 전능함을 갖고 시엔을 조롱하는 신처럼.

깨닫고 보니 전신이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흐트러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조용히 팔을 뻗고, 주먹을 쥐었다.

*  *  *

나이트워커 공작 저택의 연무장(演武場).

칠흑의 붕대로 두 눈을 가린 밴시 린이 땅을 박차고 쇄도했다. 보지 않아도 보이는 것처럼, 일말의 망설임도 주저도 없는 일격이었다.

달그림자의 자세, 섬월.

카앙!

린의 일격 앞에서 시엔이 손에 쥐고 있는 왕 시해자를 휘둘러 맞받아친다. 그러나 맞받아쳤다고 생각하기 무섭게, 린의 태도가 살아 있는 뱀처럼 미끄러지듯 시엔의 품속을 향해 파고들었다.

촤악!

칼끝이 시퍼런 서슬을 빛냈고, 시엔의 움직임이 그대로 멈춘다.

시엔의 눈동자 끝에 린의 칼끝이 스치듯 닿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행동하는구나, 시엔.”

“…….”

시엔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말이 맞았다.

지금의 자신은 눈뜬장님이나 다름없다는 것을.

“무엇이 네 눈앞을 흐리고 있니?”

린이 물었다. 질책의 어조가 아니라, 시엔을 걱정하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잘, 모르겠어요.”

시엔이 머뭇거리며 말을 흐렸다.

부상에서 깨어나고 몇 주 가까이, 이 상태다.

무엇인가 이상했다.

결코 가문의 5식, 가시나무의 자세를 쓸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 하나에서 비롯된 게 아니었다.

지금까지 시엔은 5식 없이 헤아릴 수 없는 강자들을 쓰러뜨렸고 그랜드마스터의 경지에 이르렀다. 새삼스럽게 가시나무의 자세를 쓰지 않는다고 해서 지금껏 쌓아 올린 경지가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더 깊은 영역에서,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 게 틀림없다.

그런데 정작 그 ‘무엇’을 알 수가 없었다.

움직임이 느려진 것도 아니고 동작이 흐트러진 것도 아니다. 속도가 느려진 것도 아니고 분별력이 떨어진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린의 말마따나 시엔의 눈동자는 마치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처럼 기이할 정도로 흐려져 있었다.

대체 어째서?

“다시 싸워주실 수 있을까요?”

“이 이상 해도 의미가 없어.”

시엔의 요청에 린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마지막으로요.”

그럼에도 시엔 역시 응석을 부리는 아이처럼 고집을 부린다. 그 고집에 린이 쓴웃음을 지으며 재차 태도의 칼자루를 고쳐 잡았다.

거리를 벌린다.

파지직!

직후, 시엔의 두 눈동자가 초점을 잃고 청백색의 뇌전(雷電)을 머금는다.

시엔의 몸에 깃든 신기이자 뇌전의 정수, 묠니르의 힘을 통해 펼친 뇌신의 눈동자.

말 그대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꿰뚫어 볼 수 있는 두 눈동자가, 눈앞에 있는 밴시 린의 존재를 꿰뚫는다.

그녀의 신경(神經)을 통해 일렁이는 전기 작용 하나하나, 생각하기도 전에 뇌에서 보내는 전기적 신호를 놓치지 않고 꿰뚫으며, 시엔이 움직였다.

그곳에 있는 가문 제일의 검사를 향해서.

손에 들린 왕 시해자를 따라 검고 어두운 오러가 덧씌워지며 거리가 좁혀졌다. 칼날이 맞부딪친다. 맞부딪치고 교차하며 몇 차례 엇갈리고 나서, 린이 나지막이 읊조린다.

“《월식(月蝕)》.”

달이 지구의 그림자에 가려져 「달을 좀먹는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

깨닫고 보니, 린의 태도가 시엔의 왕 시해자를 집어삼키듯 압도하고 있었다.

스릉.

깨닫고 보니 린의 검이 다시금 시엔의 이마를 향해 겨누어져 있다.

‘……또다.’

알고 보고 이해하고 있는데, 올바른 답을 내놓았는데, 절대 틀리지 않았는데도 결국에는 틀리게 된다.

1 더하기 1이 몇이냐고 물었을 때, 답은 2다. 그것은 절대로 틀릴 리가 없는 정답이자 이치다.

그래서 시엔이 2라고 대답하는 순간, 답은 3이 되어버린다.

─응당 그래야 할 결과가 ‘그렇지 않게’ 된다.

마치 ‘운명의 창’에 의해 억지로 비틀린 인과(因果)처럼.

그러나 운명의 창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완전해진 운명의 창을 갖고 힘을 행사했던 체사레는, 시엔의 손에 쓰러져 죽었다. 운명의 창은 소멸했다.

그날, 시엔은 자신의 힘으로 운명을 극복했다.

그랬을 터였다.

그럼 어째서 그 창에 깃든 전능하고 저주스러운 힘이, 아직도 시엔을 옥죄고 있는 것일까.

“조금 쉬렴, 시엔.”

“……충분히 쉬었어요.”

린의 말에 시엔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 고집스러운 모습에 린이 씁쓸하게 웃었다.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은걸.”

“과거의 누님을……?”

“그래.”

뜻밖의 말에 시엔이 눈동자를 끔벅거린다.

“대부님이 내게 ‘아직 때가 이르다’고 했을 때, 나는 그 말을 받아들이는 게 세상에서 가장 싫었거든.”

웃는 남자, 요한 나이트워커.

“그때마다 억지를 부리는 내게 대부님이 말했지.”

“뭐라고요?”

“진실은 네가 받아들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고.”

“…….”

그 말의 무게를 모를 시엔이 아니었고, 나이트워커 가문의 인간이 아니었다.

“린 누님께서는 그 말에 납득하셨나요?”

“말했듯이, 진실은 우리가 납득하고 아니고의 문제가 아니란다.”

린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시엔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하나의 의문을 속으로 삼킬 따름이었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진실 앞에서 순응하는 것은, 저항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 체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 걸까 하고.

*  *  *

그들 가문 앞에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진실’이 찾아온 것은 바로 직후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입버릇처럼, 진실은 받아들이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  *  *

나이트워커 가문의 인간들에게는 가족이 전부다.

그리고 그들은 가족을 위해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존재들이었다.

‘이야, 네가 시엔이구나.’

처음 조니 나이트워커를 봤을 때, 그 남자는 시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었다.

‘나 같은 놈 하나쯤 없어져도, 우리 가문은 아무 문제가 없겠는걸.’

그는 늘 유쾌하게 웃을 줄 아는 쾌남이었다.

─그리고 조니의 두 눈동자가 그곳에 있었다.

각막 위에 마력이 깃든 문장을 새겨넣은, 그의 상징과도 같은 마안(魔眼)이었다.

눈동자와 함께 보내진 서신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누군가의 피로 쓰여 있었다.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  *  *

앨리스 나이트워커는 조니와 함께 ‘밤의 아이’로 들어온 가족이었다.

늘 소심하고 겁 많은 앨리스가 기꺼이 살아서 가문의 인간이 되고, 더 나아가 ‘가족의 상처를 짊어지는 누군가’가 되기로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도, 모두가 조니의 덕이었다.

그렇기에 가문에 보내진 그의 눈동자를 봤을 때,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도 소리 높여 절규했다.

“대모님─.”

늘 목소리가 작고 우물쭈물 말을 더듬으며 눈치를 보는, 소심하기 짝이 없는 그녀가 소리 높여 울음을 터뜨린 순간, 그녀의 대자(代子) 미하일은 말없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들 가문의 인간들은, 모두가 거미줄처럼 서로 연결되어 있다.

앨리스의 슬픔은 미하일의 슬픔이었고, 미하일의 슬픔은 곧 비고의 슬픔이기도 했다.

그리고 비고의 슬픔은 시엔의 슬픔이며, 시엔의 슬픔은 라일라와 티아의 슬픔이었다.

“…….”

얼마 후, 공작 저택의 집무실.

며칠 밤낮을 흐느끼며 시체처럼 초췌해진 앨리스를 뒤로하고, 라일라가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여느 때와 달리 등 뒤에서 쏟아지는 달빛을 똑바로 마주하며, 유리창 너머로 초점 없는 눈동자가 흔들린다.

“아직 살아 있겠지.”

라일라가 말했다. 그 말이 앨리스에게 있어 얼마나 잔혹하게 들릴지 모를 그녀가 아니다. 그러나 앨리스 역시 그 사실을 모를 정도로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그게 진실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말을 들었을 때, 마치 가시나무 줄기가 그녀의 심장을 옥죄는 것 같은 고통이 새겨졌다.

“가족이 전부다(La famiglia è tutto)…….”

그들 가문의 가언을 읊조리며, 암살자들의 어머니가 나직이 말을 흐렸다.

그들에게는 가족이 전부였다.

그리고 그들의 전부, 조니 나이트워커는 아직도 살아 있다.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에게 있어 곱게 죽는 것은 감히 용납될 수 없는 사치였으니까.

당장 보내진 눈동자로 미루어 봐도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게 ‘살아 있는 인간’에게서 뽑은 눈동자란 사실을.

*  *  *

그 시각, 샤를마뉴 왕국의 새로운 수도 랭스.

“아프신가요?”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그곳에서, 로젤리아 샤를이 즐거운 듯이 물었다.

“응? 아니, 별로.”

그리고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구속구와 사슬에 묶여 있는 남자가 태평하게 대답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레이디가 걱정해 주는데, 아플 리가 있나.”

“어머나, 그것참.”

산 채로 두 눈동자가 뽑혀 앞을 볼 수 없는 남자였다.

남자의 말에 로젤리아가 즐거운 듯 미소를 흘렸다.

“저는 아프답니다.”

미소 지으며 로젤리아가 말했다.

“산 채로 두 눈동자를 뽑고, 손톱과 발톱과 이빨을 뽑고, 손가락과 발가락을 자르고, 피부를 가죽째 벗기고 소금을 뿌리는 것처럼 말이죠.”

“와, 듣기만 해도 내가 다 아파지네.”

조니 나이트워커가 남의 일처럼 어깨를 으쓱였다.

“그게 당신들이 우리에게 준 고통이랍니다.”

“흠, 내가 눈이 없어서 그런데, 혹시 눈앞의 레이디는 눈동자가 뽑히고 손가락 발가락 피부가 다 벗겨져 계시나?”

능청스러운 물음에 로젤리아가 다시금 웃음을 터뜨렸다.

“그보다 훨씬 더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상처를 입고 있죠.”

“그게 뭐지?”

웃고 나서 로젤리아가 대답했다.

“자신의 전부를 빼앗기는 고통이랍니다.”

동시에 그들의 전부는, 결코 그들 자신이 아니다.

“아마 어떤 고통을 줘도 당신은 고통스럽지 않겠죠. 아니, 당신들 모두가 그렇겠죠.”

그렇기에 로젤리아가 여유롭게 말을 잇는다.

“당신이 아프라고 눈동자를 뽑는 게 아니고, 당신이 아프라고 손가락과 발가락을 자르는 게 아니랍니다.”

“…….”

“애초에 제가 고통을 주고 싶은 상대는 당신이 아니거든요.”

로젤리아가 말했다.

“아마 지금쯤 아주 괴로워하고 있을 거랍니다.”

자신의 전부를 잃는 고통에.

그리고 그 의미를 헤아린 조니의 입가에, 비로소 미소가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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