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화. 가시 왕관 (2)
조니의 일로부터 얼마 후, 나이트워커 가문의 최고 회의(High Table)가 소집되었다.
두 눈동자에 이어, 잘린 손가락이 도착한 것은 그즈음의 일이었다.
손가락과 함께 동봉된 서신에는 이전과 똑같은 성경의 구절이 피로 적혀 있었다.
비판과 헤아림.
“그 녀석이…….”
소식을 듣자마자 웃는 남자, 요한이 나지막이 입술을 깨물었다.
흐느끼는 앨리스는 말할 것도 없고, 헨젤과 그레텔, 그 외에도 그곳에 입회해 있는 가문의 하이마스터들 전원이 무거운 침묵을 지켰다.
나이트워커 가문은 더 이상 과거의 평화에 취한 가문이 아니다.
그곳에 있는 가문의 최고 전력, 하이마스터는 더 이상 13계단이라 불리는 숫자조차 아니다. 당장 미하일과 이자벨, 티아를 비롯해 헤아릴 수 없는 새로운 전력(戰力)이 속속들이 보강되며 그들 가문의 힘이 되어주고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그들이 하이마스터든 아니든, 그곳에 있는 이들은 모두가 가족이다.
그리고 지금, 그 가족이 위험에 처해 있다.
그저 위험에 처한 수준조차 아니다.
아마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유린당하며 그들의 놀잇감이 될 테고, 누구보다 나이트워커 가문을 이해하는 그들은 보란 듯 조니를 이용해 가족들 전체에 고통을 주려 하겠지.
“가, 가주님…….”
어색하게 내려앉은 침묵 속에서 앨리스가 입을 열었다.
“나, 나 혼자라도 괜찮으니까…….”
“그럴 수 없다는 걸 알지 않니, 앨리스.”
머뭇거리는 그녀의 말에 라일라가 차가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가족을 사랑하는 가족이 아니라, 나이트워커 가문 전체를 짊어지는 가주이자 공작, 냉혹한 암살자들의 어머니로서.
“놈들도 바보가 아니야. 어설픈 시도로 그를 구하려 들었다가 당하는 것은 우리 쪽이겠지.”
“그럼 ‘어설프지 않은 시도’는 어때요?”
그 말에 침묵하고 있던 티아가 입을 열었다. 시엔의 대녀이자 이제는 어엿한 가문의 최고 전력, 하이마스터의 일원으로서.
“여기서 랭스는 멀어. 적지 않은 전력이 조니를 구하기 위해 움직이는 시점에서, 제국 측이 움직일 거란다.”
제국과 공화국 사이에는 밤하늘 산맥이라 일컬어지는 천혜의 요새가 가로막고 있다.
다시 말해, 두 나라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고작 산맥 하나가 다란 소리다.
당장 나이트워커 가문의 시험이 밤하늘 산맥을 오르는 것이듯, 쌍두까마귀의 가족이나 그 이상의 강자들이 고작 그깟 산맥에 가로막혀 기동(機動)하지 못할 리 없다.
“적지 않은 하이마스터가 랭스에서 움직인다는 것이 놈들 귀에 들어간 순간, 이쪽의 공백을 노리고 역으로 파고들겠지.”
함부로 대규모 전력을 샤를마뉴 왕국까지 이동시켰다가는 ‘비어버린 집’이 털릴 것이다.
“그럼 조니 오빠가 놈들 손에 유린당하고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만 보고 있으란 거야?!”
적막하게 내려앉은 침묵 속에서, 처음으로 소리를 올린 것은 그레텔이었다.
“우리에게는 가족이 전부잖아…….”
“그레텔.”
눈물을 글썽거리는 그레텔을 포옹하며 오빠 헨젤이 나직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 말이 옳다. 그들에게는 가족이 전부다. 동시에 그들의 전부를 구하기 위해, 또다시 그들의 전부를 사지(死地)에 몰아넣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전부를 구하기 위해 다시 전부를 잃게 된다. 그것처럼 우스꽝스러운 아이러니가 또 있을까.
“실패의 리스크를 생각하고, 결과를 걱정하고, 그렇게 타산(打算)을 헤아리며 사랑하는 가족이 고통받는 것을 지켜보는 어디가…… 가족이란 거야…….”
그레텔이 흐느끼는 것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모두가 가족이니까.”
흐느끼는 그레텔을 향해 라일라가 대답했다. 평소의 그녀와 달리 일말의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가주의 위엄이 서린 차가운 목소리로.
“조니 오빠는 아니란 거야?!”
그레텔이 다시금 소리를 높였다.
“라일라 언니, 아니, 가주님은 지금 조니 오빠나 가족을 생각하는 게 아니야!”
“그럼 뭘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니?”
“가문이지!”
나이트워커 가문.
“……말을 조심하렴, 그레텔.”
“내가 틀린 말을 했어?!”
“싸, 싸우지 마…….”
높아지는 언성 속에서 초췌해진 앨리스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가, 가족끼리 싸움은 조, 좋지 않으니까…….”
“…….”
“게, 게다가 라일라 언니…… 아니, 가주님은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그레텔.”
조니와 함께 밤의 아이로 자라 누구보다 고통스러워야 할 앨리스가, 역설적으로 누구보다 냉정해 보이는 라일라를 옹호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렇기에 그레텔 역시 뭐라 말을 잇지 못했다.
그들의 전부를 지키기 위해 그들의 전부를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사지로 몰아넣는다.
지금 같은 상황 속에서, 그 어떤 정치적 암투(暗鬪)와 계획이 기다리고 있을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합리를 배제하고 생각하는 것은 옳지 않다.
그저 가족이 위험에 처해 있을 뿐이라면 구하는 것이 옳다.
문제는 그 가족의 위험을 담보로 적들 역시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밤과 피의 왕국으로 거듭나 있는 로젤리아 샤를과 뱀파이어 클랜, 아울러 그들과 손을 잡은 신성 제국과 쌍두까마귀의 가족들까지.
그들 역시 이 순간, 나이트워커 가문의 결정 하나하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것이다.
헤아릴 수 없는 덫과 함정을 가득 설치하고.
잘못된 결정 하나가 그들 가문을 파멸로 몰아넣을 수 있다.
그렇기에 적어도 나이트워커 가문을 이끄는 수장은, 가족이 아니라 ‘가문’을 생각할 필요가 있었다.
그들에게는 가족이 전부다.
그리고 전부의 전부, 그것이 가문(House)이다.
가문 역시, 본질적으로는 그들의 전부이자 가족 하나하나의 집합이다.
“그럼 너의 생각은 어떠니, 라일라.”
침묵하고 있던 요한이 되물었다.
그들 가문 전체를 짊어진 수장이자 암살자들의 어머니로서, 최후의 결정을 내리는 것은 그녀의 몫이었기에.
“조니를 포기할 생각이니?”
“…….”
라일라가 침묵했다. 냉정하게 가문에 득과 실을 따지고 헤아릴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결정을 내린다.
“우리는 조니를 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할 겁니다.”
암살자들의 어머니가 말했다.
“그 어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것이 그들 가문이 세상과 문제를 헤아리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그 어떤 수단과 방법으로도 조니를 구할 수 없을 경우, 그 이상의 희생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것이 너의 뜻이더냐, 라일라.”
침묵하고 있던 가문의 가장 지혜로운 자가 말했다.
“루나 님께서는 달리 지혜가 있으신지요?”
라일라가 말했다.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그 목소리에는 루나를 향하는 가벼운 질책의 어조가 깃들어 있었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이 영지 밖에서 벌어지는 세상의 일을 알지 못하니까 말이지.”
그녀는 가장 지혜로운 자다. 동시에 그녀의 지혜는 어디까지나 나이트워커 공작령을 벗어나지 못하는 우물 안의 개구리다. 그 사실은 루나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무례를 용서해 주세요, 루나 님.”
라일라 역시 자신의 실언을 깨닫고 고개를 숙였다. 루나는 개의치 않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나야말로 도움이 되지 못해 송구하구나.”
다시금 정적이 내려앉았다.
정적 속에서, 라일라가 입을 열었다.
“말했듯이, 우리는 가족을 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겁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그게 그들의 방식이었으니까.
“나이트워커 가문의 공작으로서, 내가 내리는 결정은 다음과 같단다.”
암살자들의 어머니가 말했다.
“─나는 우리의 전부를 지키기 위해, 또다시 ‘우리의 전부’를 사지로 몰아넣는 일에 동의할 수 없단다.”
그렇기에.
“《루나 피에나(Luna piena)》를 준비해 주세요.”
이어지는 말에 루나가 나지막이 숨을 삼켰다.
빙륜검(氷輪劍) · 루나 피에나.
나이트워커 가문이 가졌다 일컬어진 유일의 신기급 무기, 월광검과 더불어─ 이 세상의 누구도 ‘그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하는 또 하나의 신기급 무기.
나이트워커 가문의 가장 비밀스러운 흑색 임무, 그것도 오직 ‘가주가 직접 수행하는 오메르타(침묵의 계율)’ 속에서밖에 가져갈 수 없는 신기.
“라, 라일라 언니?!”
그 의미를 헤아린 그레텔 역시 당황해서 소리를 높였다. 나머지 하이마스터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 언니가 갈 거라면 하다못해 나도 함께!”
“아니, 나 혼자란다.”
그럼에도 라일라가 담담히 고개를 젓는다.
“나 이외의 누구도 함께할 수 없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는 듯이.
“어머니……!”
침묵하고 있던 시엔조차 벌떡 일어나 소리를 높였다.
마찬가지로, 절대로 그녀의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듯이.
“앉으렴, 시엔.”
그럼에도 라일라가 말했다. 어머니가 아니라, 그들 가문 전체를 이끄는 수장의 위엄이 깃든 목소리로.
“내가 움직였다는 사실을 감추고, 그 이상의 전력을 움직이는 일도 없이, 내가 조니를 데려올 거란다.”
나이트워커 가문 제일의 신기라 일컬어지는 ‘빙륜검’ 루나 피에나와 함께.
“그리고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혹은 영영 돌아오지 못하게 되었을 때─.”
라일라가 말했다. 그곳에 있는 그녀의 대자, 그 어느 때보다도 미혹과 망설임에 사로잡혀 있는 아들을 향해.
“시엔, 이제부터 네가 나이트워커 가문을 이끌어갈 새로운 공작이란다.”
“…….”
마치 죽음을 앞둔 사람의 유언처럼 들리는 그 말에, 시엔이 나직이 입술을 깨물었다.
“어머니, 당신이…….”
깨물고 나서 시엔이 말했다.
“누군가의 ‘전부’일 거란 생각은 하지 못하셨나요.”
“많은 가족들의 전부겠지.”
라일라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동시에 나는 ‘일부’이기도 하단다.”
전부를 위해 일부를 희생하는 것, 대를 위해 소(小)를 희생하는 것은 결코 비합리적이지 않다.
“……당신은 저의 전부예요.”
“나 역시 그렇단다.”
라일라의 말에 시엔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리고 말했듯이, 나는 죽으러 가는 게 아니란다. 그럴 생각도 없지.”
그녀는 가족을 구하기 위해 가는 것이다.
“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니?”
“……경애하는 우리 암살자들의 어머니.”
대륙 최강의 암살자, 라일라 나이트워커.
“내가 가는 것이 가장 확실하게 우리의 전부, 조니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이란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역설적으로 그것은 그들 가문이 내릴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결정이기도 했다.
이 순간, 나이트워커 가문에서 그녀보다 더 확실하게 누군가를 구할 수 있는 자는 존재하지 않으니까.
“혹시라도 이 중에 나보다 더 확실하게 조니를 구할 수 있는 가족이 있거든, 손을 들어보렴.”
들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설령 시엔조차도.
그날 이후 정체를 알 수 없는 미혹에 사로잡혀 있는 지금의 시엔으로서는 더더욱 그럴 것이다.
“그게 너의 결정이구나, 라일라.”
“그렇답니다, 오라버니.”
요한의 말에 라일라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우리에게는 가족이 전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