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5화. 달빛과 보름달 (1)
나이트워커 가문에 전해지는 두 개의 신기.
월광검, 그리고 빙륜검 · 루나 피에나(滿月).
당초 그 두 개의 신기는 모두 가주의 것이었다.
공식적으로 나이트워커 가문의 수장을 상징하는 무기 ‘월광검’과, 가주로서 정체를 가리고 수행하는 흑색 임무 오메르타를 위해 존재하는 또 하나의 무기 루나 피에나.
그러나 라일라의 대에 이르러서는 그녀의 오라버니이자 웃는 남자라 불리는 요한의 손에 들린 그들 가문의 상징이, 돌고 돌아 새로운 가문의 후계자…… 시엔의 손에 들려 있다.
“가져가라, 시엔.”
“요한 형님─.”
“이제부터 그 검은 네 것이다.”
그곳에 있는 가족 누구도 시엔을 막지 않는다. 그저 시엔이 나아갈 길을 믿고 지켜봐 줄 뿐이다.
“그리고 함께 살아 돌아와라.”
월광검의 칼자루를 쥐자마자, 신기에 깃든 힘이 재차 시엔의 내부에서 꿈틀거린다.
“알겠습니다.”
시엔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믿어주세요.”
더 이상 시엔 나이트워커는 미래가 기대되는 재능 넘치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그곳에 있는 이들 모두의 미래를 짊어진 가족의 희망 그 자체였다.
“우리에게는 가족이 전부니까요.”
동시에 가족의 앞을 가로막는 이들에게는, 무엇과도 비할 수 없는 절망이 될 것이다.
그게 그들 가문의 방식이니까.
월광검을 받아들고 시엔이 등을 돌린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는 일 없이, 미리 준비해둔 말을 타고 박차를 가했다.
앞서 어머니가 나아갔을 길을 뒤따르며.
* * *
라일라는 아마도 밤하늘 산맥을 넘어 제국의 영토를 지나, 육로로 랭스가 있는 곳까지 향할 것이다.
그녀 정도 되는 강자가 홀로 정체를 감추고 움직일 경우, 설령 어떤 나라의 국경과 경비조차 그녀 앞을 가로막을 수 없을 테니까.
시엔 역시 마찬가지였다.
밤하늘 산맥을 넘고 제국의 땅을 지나, 일찍이 그녀의 어머니가 향했을 길을 더듬는다.
끝이 보이지 않는 검고 어두운 길이었다.
의지할 등불도 빛도 없이, 아무도 밝혀줄 수 없는 길을 그녀는 홀로 나아갔을 것이다.
그리고 ‘암살자들의 어머니’가 홀로 외롭게 나아갔을 길을, 그녀의 아들이 뒤따른다.
훗날 암살자들의 아버지라 불리며 그녀의 뒤를 잇고, 동시에 가문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그들 가문이 끝없이 이어놓은 ‘길의 끝’이 될 남자가.
눈앞에서 자신의 전부를 지키지 못하고 빼앗겨 쓰러질 운명을 가진 암살자.
그럼에도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달빛이, 시엔의 앞에 사금처럼 쏟아져 내렸다.
위태롭고 가느다라며 당장이라도 스러질 것처럼 덧없는 빛의 줄기.
이 빛을 잃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지금은 나아가야 할 때다.
설령 이 길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든지─.
* * *
“…….”
보름달이 떠 있었다.
쏟아지는 보름달 아래, 검고 어두운 길을 홀로 나아가고 있던 라일라가 걸음을 멈춘다.
멈추고 나서 고개를 돌리자, 등 뒤에 낯익은 그림자가 있었다.
그녀가 걸어온 길을 더듬으며 뒤따라온 그녀의 전부가.
“어째서 따라온 거니?”
“제가 그러길 바라니까요.”
“가주의 명령을 거역할 셈이니?”
“아니요.”
시엔이 담담히 고개를 저었다.
“어머니께서 그러셨죠.”
젓고 나서 말했다.
“설령 어머니께서 살아 돌아오든 돌아오지 못하든, 그와 관계없이 저에게 ‘나이트워커 공작’의 자리를 넘길 거라고.”
“─.”
그 말에 라일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것은 나이트워커 공작으로서 내리는 명령입니다.”
동시에 나이트워커 공작이 말했다.
암살자들의 어머니에 이어, 암살자들의 아버지라 불리게 될 새로운 가주.
그것은 더 이상 훗날의 이야기조차 아니었다.
바로 지금, 이 순간의 이야기다.
“저와 함께 조니 삼촌을 구하고, 함께 살아서 돌아와 주세요.”
암살자들의 아버지가 말했다.
일찍이 ‘암살자들의 어머니’라 불렸으며, 나이트워커 가문을 이끌었던 전대(前代)의 가주이자 공작을 향해서.
깨닫고 보니 시엔의 손에 칼자루가 들려 있다.
검신(劍身)이 없이, 그저 칼자루밖에 없다.
그리고 칼자루 위에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따라, 창백하고 시린 달빛이 내려앉는다.
쏟아지는 달빛 그 자체가 칼날이란 듯이.
“월광검(月光劍)…….”
공식적으로 나이트워커 공작이자 가문의 수장을 상징하는 신기.
“오라버니가 네게 그 검을…….”
“가족 모두의 바람이에요.”
시엔이 대답했다.
“우리는 당신 홀로 이 짐을 짊어지길 바라지 않아요. 저 역시 그렇고요.”
시엔이 말했다.
“당신의 짐을, 저에게 나누어 주세요.”
월광검의 시린 서슬을 흩뿌리며.
“저를 의지해 주세요.”
어머니를 사랑하는 아들로서, 지금까지 그녀가 자신을 위해 보여준 헌신과 희생의 부채(負債)를 갚으려는 듯이.
“이 검고 어두운 길을, 홀로 나아가지 말아 주세요.”
라일라의 길을 비추는 달빛이 되어서, 시엔이 말했다.
“함께 상처 입고, 함께 고통을 나누고, 함께 싸워요.”
“…….”
그 말에 라일라 역시 팔을 뻗는다.
“그럼 증명해 보렴.”
뻗고 나서 라일라가 말했다.
“네가 진정으로 나의 ‘무게’를 짊어질 각오가 되어 있는지.”
쩌적, 쩍.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서, 그들의 머리 위에 드리워진 보름달을 따라 빛의 기둥이 내려앉았다.
빙륜검 루나 피에나(Luna Piena).
공화국 말로 ‘보름달’을 의미하는 그 이름답게, 소름 끼칠 것처럼 차갑고 시린 서슬이 일대에 내려앉았다.
그것은 흔히 상상할 수 있는 검조차 아니었다.
라일라 나이트워커 자신이, 보름달처럼 그곳에 존재하며 달빛을 흩뿌리고 있었다.
그리고 흩뿌려진 달빛 하나하나가 월광검의 검신처럼, 칼날이 되어 빗발처럼 세계를 집어삼켰다.
마치 시엔의 손에 들려 있는 월광검 따위는, 그저 루나 피에나가 뿜어내는 헤아릴 수 없는 달빛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는 듯이.
직감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것이 바로 암살자들의 어머니, 라일라가 펼치는 전력임을.
두 사람이 딛고 있는 세계는 그 누구도 발을 들일 수 없는 결계 속에 삼켜져 있다.
눈부실 정도로 서슬 퍼렇고 찬란한 달빛이 쏟아지는 세계였다.
수백, 수천 자루의 암기를 흩뿌리듯 루나 피에나의 달빛이 송곳처럼 시엔을 향해 쇄도했다.
머리 위의 보름달에서, 라일라의 주위에서, 아무것도 없는 사각에서, 그 무엇보다 시린 냉기를 흩뿌리며 그녀가 그곳에 있었다.
그렇기에 시엔이 각오를 다졌다.
“이 자리는, 별들의 주인을 위해 존재하는 자리란다.”
바로 그 순간, 라일라가 입을 열었다.
별과 단검의 일족을 거느린 가문의 수장.
“나이트워커 가문을 이끄는 자는, 밤하늘 위의 헤아릴 수 없는 별들을 이끌고 짊어질 의무가 있지.”
라일라가 말을 잇는다.
일대에 흩뿌려진 루나 피에나의 ‘달빛’에서 살기(殺氣)가 사라진 것은 동시의 일이었다.
“이제 네가 새로운 달이란다.”
그와 함께 라일라가 시엔을 향해 미소 짓는다.
“그리고 부디 내가 너의 빛이 되게 해주렴.”
“알겠어요, 어머니.”
그렇기에 시엔 역시 월광검의 서슬을 거둔다. 그리고 달빛의 검을 그녀에게 넘겨준다.
마찬가지로 라일라 역시,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빙륜검 루나 피에나(보름달)를 시엔에게 넘겨준다.
라일라는 더 이상 달이 아니었다.
시엔 역시 더 이상 달빛이 아니었다.
가문의 예를 표하며 라일라가 시엔 앞에서 무릎을 꿇는다.
“경애하는 우리 나이트워커 공작, 암살자들의 아버지를 뵙습니다.”
시엔 나이트워커는 새로운 달이다.
“고개를 드세요, 어머니.”
라일라 나이트워커는 달의 빛이다.
달은 빛이 돌아가야 할 곳이었고, 빛은 달의 앞에서 길을 이끌어주는 존재다.
“함께 조니 삼촌을 구하러 가요.”
시엔이 내미는 손을 라일라가 마주 잡는다.
달에게는 어떤 별도 더 소중하거나 덜 소중하지 않다.
“설령 이 세상의 모든 것이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벼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할지라도.”
결의를 다지는 라일라의 말에 시엔이 대답했다.
“우리의 밤은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겁니다.”
* * *
“…….”
끝없는 어둠 속에서 남자가 고개를 들었다.
남자는 더 이상 황제가 아니었다.
일찍이 옥좌에 앉아 있던 황제였던 시절의 남자는 죽었다.
과거, 나이트워커 가문의 초대 가주이자 그들 가문의 지평을 열었던 남자 역시 죽었다.
형성된 모든 것은 부서지는 법이니까.
이 세상은 꿈, 환상, 물거품, 그림자, 이슬, 벼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를 일컬어 몽환포영로전(夢幻泡影露電).
그것을 두고서 ‘절대로 부서지지 마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기에 남자는 또다시 부서졌고, 지금 새롭게 태어났다.
새로운 그 육체는 어떤 작위도 무엇도 없는 보통의 육체였다.
그럼에도 그 남자를 향해, 신성 제국에서 가장 강대하다 일컬어지는 자들이 예를 표하고 있다.
“일어나셨습니까, 아버님.”
그리고 눈을 뜬 그를 향해 쌍두까마귀의 가족, 불멸자 디트리히가 예를 표했다.
“새로운 그릇은 마음에 드십니까?”
“나쁘지 않구나.”
남자가 대답했다.
“그러나 오래가지는 못할 것이다.”
쩌적.
대답하는 순간, 정체를 알 수 없는 균열이 그의 존재 위를 내달린다.
뺨 위에 새겨진 생채기.
아무리 육체를 갈아타도 저주처럼 그를 따라다니는 생채기 하나.
아니, 그때마다 아주 가느다란 실금은 점점 더 크게 벌어지며 자신의 존재를 집어삼키고 있다.
“조속히 다음 그릇을 알아보겠습니다, 아버지.”
그렇기에 남자는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저주를 바로잡고 모든 것을 되돌리기 위해, 남자가 손에 넣어야 할 ‘가장 완전한 최후의 그릇’을.
“시엔 나이트워커─.”
* * *
그 시각, 구 샤를마뉴 왕국의 수도이자 이제는 새로운 ‘칠왕국의 거점’으로 거듭나 있는 왕도 루테시아.
“…….”
왕은 자신의 전부를 바쳐서 새로운 땅을 손에 넣고 칠왕국 군도의 백성을 그곳에 데려다주었다.
또한 새로운 영토에 각각 일곱 왕국의 왕과 영주를 앉히게 하고 이끌게 했다.
그리고 얼마 전, 칠왕국 중 두 왕국 사이에서 ‘왕’이 하사해준 땅의 금광을 놓고 내전이 벌어졌다.
“요, 요, 용서해 주십시오!”
내전의 당사자가 되는 두 명의 왕이, 왕도에 있는 왕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곳에 있는 왕이 내려준 땅의 경계, 그곳에 있는 금광을 어째서 자신이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귀가 닳을 정도로 부르짖으며.
“웃기지 마라! 그 봉역(封域)의 규범령은……!”
“……일곱 왕국이라.”
그렇기에 왕들의 다툼을 듣다 말고, 아서왕이 차가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덧없다.”
콰직!
아서왕의 말과 함께 그곳에 있는 두 왕의 목이 잘려 바닥을 나뒹굴었다.
“나머지 네 명의 왕들 모두에게 전하라. 칠왕국 군도, 그리고 우리가 손에 넣은 이 땅, 모두가 짐의 왕국이라고.”
“알겠습니다, 폐하.”
그 말에 원탁의 기사가 예를 표하며 대답했다. 물러나는 그를 뒤로하고 왕이 유리창 밖을 바라보았다.
보름달이 떠 있는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