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 가문의 천재 어쌔신-160화 (160/200)

160화. 악의 심연 (3)

이 지상에 내린 선(善)의 화신이자 정의의 집행자, 최강의 천사 미카엘이 칼자루를 고쳐 잡았다.

악의 군세에 맞서 하느님의 군대를 이끄는 지휘관이자 천국 군대를 통솔하는 자. 교회를 수호하며 악에 맞서 선의 승리를 상징하는 천사.

「오, 영광스러운 제후 성 미카엘이여!

천국 군대의 사령관이시며,

영혼들의 보호자, 반항하는 영들의 정복자이시며,

천상 왕가의 종이시여,

저희의 공경하올 안내자,

탁월한 덕행으로 빛나시는 분이시여,

비오니 인간을 모든 악에서 구하소서.」

마치 교회 성가대의 합창처럼, 일사불란하게 울려 퍼지는 천사의 아리아.

순간, 세상에서 색이 사라졌다.

보랏빛으로 빛나는 밤하늘의 빛 속에서 물고기 비늘처럼 시린 서슬을 흩뿌리는 별과 달, 서녘 하늘 너머로 저물어가는 진홍색 태양의 끝머리와 대지의 색깔, 땅과 나무와 숲의 색깔조차 모조리 사라졌다.

사라지고 나서는, 오직 흑백(黑白)으로 덧칠된 세상이 있었다.

시엔의 등 뒤로, 마치 악이 승리한 세상을 보는 것처럼 검고 어두운 칠흑의 지평이 펼쳐져 있다.

등 뒤? 아니다.

검고 어두운 것은 시엔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치 악의 심연을 보는 것처럼,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검고 어두운 칠흑으로 덧씌워진 그림자.

거꾸로 천사 미카엘과 그의 등 뒤로는, 이 세상의 악에 맞서 집어삼켜지는 것처럼 위태로운 백색과 선(善)의 군세가 있었다.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그리고 그곳에 있는 악에 맞서, 선의 승리를 상징하는 최강의 천사가 읊조렸다.

‘!’

그와 함께 휘몰아치는 백색의 파도를 등지고, 미카엘의 날갯짓과 검이 휘둘러졌다.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마치 이 세상을 화폭 삼아 물감을 덧씌우듯, 붓을 긋는 것처럼 순백의 파도가 덧씌워졌다.

어둠으로 가득 찬 방에 등불을 비추듯, 시엔 나이트워커의 존재를 제외하고 일대의 세상이 순백으로 물들었다.

순간, 어디선가 애걸하는 소리가 들렸다.

제발 아기는 살려달라고 애걸하는 어머니의 목소리였다.

설명하지 않아도, 말해주지 않아도, 보여주지 않아도, 그 소리를 듣자마자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어디에나 있는, 정말로 흔해 빠진 비극이었다.

바로 이 순간에도 대륙 어디에선가 벌어지는 전쟁의 비극.

누군가의 명령에 따라 병사들이 마을을 불태우고 짓밟고 약탈하고, 죽고 고문당하고 겁탈당하는 사람이 생기고, 누군가의 전부이자 소중하고 사랑하는 것들이 부서진다.

그런 것들이 힘 있고 가진 자들의 손에 의해, 오로지 그들의 이익이 되는 결정을 통해 파괴되고 무너지고 있었다.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병사가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아들이 끌려가고, 그렇게 사랑하는 어머니와 생이별하고, 그 아들의 손에 또 다른 누군가의 부모와 사랑하는 자식들이 비참하게 살해당해 죽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사람을 고통 주고, 죽이고, 빼앗는 세상.

「아아아……!」

분명 그 모든 악과 모순들이 결코 나이트워커 가문 하나의 전유물은 아닐 것이다.

그들 가문이 피워 올린 악의 꽃은 그 무엇보다 거대했지만, 동시에 자기들이 이 세상 모든 악이라 믿을 정도의 자의식 과잉이나 ‘위악자’는 아니다. 그들은 그저 세상의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그저 꽃 한 송이라고 치부하기에 너무나도 거대했다.

그저 한 송이 꽃이라고 흘려 넘기기에는, 너무나도 섬뜩하고 괴기스럽게 악의 꽃.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Kyrie eleison)……!」

그곳에 있는 악의 심연을 엿보던 천사들의 두 눈동자에서 눈물이 흘러내리다 못해, 비명을 내지르며 눈과 귀와 입에서 피가 홍수처럼 철철 쏟아져 내렸다.

모든 것이 흑백으로 덧칠된 세계 속에서, 우유처럼 새하얀 피가 ‘악의 심연’을 엿본 천사들의 눈동자에서 콸콸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콰직!

육체가 그 자리에서 폭발하듯, 천사들의 몸이 터져나갔다. 두 눈동자가 포도알처럼 터지는 것을 시작으로 우윳빛의 새하얀 피와 육골을 사방천지에 흩뿌리며.

여전히 미카엘은 그곳에 남겨져 있었다.

시엔 역시 그곳에 남겨져 있었다.

“악수(惡手)를 뒀구나, 미카엘.”

남겨진 시엔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결정을 보란 듯이 조롱하며.

이 세상의 그 어느 때보다 흘러넘치는 악(惡)을 거느린 채.

이 세상을 오직 선과 악, 흑백으로밖에 보지 못할 때 세상이 어떻게 될지는 너무나도 뻔한 것이었다.

시엔은 이미 미카엘이 보여줄 풍경을 똑똑히 알고 있었다.

그래서 다행이었다.

자신의 소중한 어머니, 라일라가 이 끔찍한 풍경을 보지 않아도 된 까닭에.

그것은 그녀가 각오가 되지 않은 까닭도, 자신들의 죄를 모르는 까닭도 아니었다. 그저 그녀가 짊어질 고통스러운 상처를 조금이라도 더 자신이 짊어지길 바란 시엔의 다정함이었다.

“이 세상은 단 한 번도 선이 승리한 적이 없었거든.”

「…….」

미카엘이 침묵했다.

“……네놈이 구원받을 가치가 없다고 해도, 그것이 선한 이들이 구원받지 못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

침묵 끝에 미카엘의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천사의 아리아가 아니라, 마치 인간과 대화하는 것 같은 ‘더없이 인간적인’ 목소리로.

그러나 시엔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답할 이유도 없었다.

타앗!

그저 이 순간, 세상에 흘러넘치는 모든 악을 자신의 힘으로 삼아 쇄도할 따름이다.

그 어떤 존재도 이 세상을 악에서 구할 수 없다고 말하듯이.

그 어떤 존재도 이 세상을 구제할 수 없다고 말하듯이.

이 세상에 정말로 교회에서 말하는 형태 그대로의 천사나 악마가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적어도 이 순간, 눈앞에 있는 존재가 진심으로 인간을 동정하는 초월적인 존재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었다.

동시에 그들 같은 초월적 존재마저 거스를 수 없는 절대적인 규칙이 이 세상에는 존재했다.

인간들의 세상에서 ‘악’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시엔 나이트워커는 악인(惡人)이란 것.

미카엘과 시엔의 검이 맞부딪쳤다. 쇳소리는 울리지 않았다. 그저 서로의 존재와 검에 깃든 흑과 백, 악과 선이 비명을 내지를 따름이다.

“!”

시엔 역시 비명을 내지르고 있었다.

높아지는 공기나 물의 압력 속에서 육체가 찌부러지듯, 시엔 역시 눈과 코와 귀에서 검고 어두운 피를 철철 흘리며 ‘천사들’과 마찬가지로 괴로워했다.

그들이 악의 심연을 보고 괴로워하듯, 시엔 역시 선의 천상(天上)을 보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참으로 역설적이게도─ 괴로워하는 이유 역시 천사들과 똑같았다.

그 모든 아름다운 것들이 돌이킬 수 없는 어둠으로 끔찍하게 덧칠되었다는 것을 알았기에.

“우리에게는…….”

동시에 그들처럼 완벽히 파멸하지 않는 이유는, 여전히 시엔에게 있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선의 천상’이 남아 있는 까닭이었다.

“가족이 전부다.”

그리고 그 이외의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그것이 시엔을 지탱하는 전부이자 하나의 ‘옳음’이었다.

그 옳음은, 그 무엇으로도 부정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콰직!

그렇기에 미카엘의 검이 부러졌다. 시엔의 검은 부러지지 않고, 여전히 고통스러운 비명을 내지르며 미카엘의 육신을 향해 휘감겼다.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잘리고, 갑주가 부서지고, 날개가 갈가리 찢기며 전신에서 우윳빛의 피가 뿜어졌다.

그 무엇도 시엔의 선을 부정할 수 없는 까닭에.

설령 그 선이 이 세상에 악(惡)의 씨와 뿌리를 내리는 원흉이 될지라 하더라도.

“이 세상의 그 무엇도 우리 가족을 부정할 수 없다.”

시엔이 말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육체가 스러지는 와중에도 미카엘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인간을…… 사랑하고 있다.”

“그럼 계속 사랑해라.”

시엔이 남의 일처럼 말했다.

“나는 내 가족들을 사랑할 테니.”

“그래, 그렇다면 너 역시 계속 가족을 사랑하거라.”

그리고 그 말에 미카엘이 차갑게 조소하며 대답했다.

육체를 이루는 빛의 입자들이 소멸하고, 최후의 성광 하나가 힘없는 빛을 발하며 소멸하는 바로 그때.

「인간이라 부를 수조차 없는 너희 괴물 놈들을.」

*  *  *

웃는 남자가 웃고 있었다.

입가 위로 초승달처럼 섬뜩하게 찢어진 그 웃음 앞에서, 일찍이 대륙 제일의 살인귀로 악명을 떨친 노신사 ‘잭 더 리퍼’가 소름에 몸을 떨었다.

촤아악!

전신을 따라 휘감겨진 칼날이 노신사의 몸을 찢는다.

“이야, 많이 아프신가?”

칼끝에 걸린 촉감을 뒤로하고 ‘웃는 남자’가 말했다.

“뭐, 아플 리가 없겠지.”

쏟아지는 달빛을 등진 채, 그 누구보다 섬뜩하게 빛나는 서슬을 남자의 몸에 찔러넣으며.

“우리 모두 잘 알듯이, 자신의 아픔 따위는 아주 사소하기 이를 데 없는 거니까.”

젠틀맨 잭 더 리퍼는 웃지 않았다. 아파서가 아니다. 그의 몸을 찢고 살갗을 찢는 고통 따위, 아픔이라고 부를 수조차 없는 것이니까.

“너는 오늘, 여기서 죽지 않는다. 정확히는, 죽고 싶어도 못 죽지.”

웃는 남자, 요한 나이트워커가 말했다.

“아직 우리에게는 끝마치지 못한 ‘피의 복수(벤데타)’가 남아 있으니까 말이지.”

일말의 감정조차 느껴지지 않는 차가운 목소리로.

이제는 그들 모두 기억조차 나지 않으리라.

제국과 공화국, 나이트워커 가문과 그들의 적들, 그들 중 누가 먼저 서로의 소중한 것을 뺏었고 상처를 입혔는지.

‘처음’은 중요하지 않다.

이제 와서는 그저 서로가 서로의 너무나도 많은 것들을 빼앗았고, 그렇기에 사랑하는 것들을 향해 고통을 줄 차례였다.

“차라리 자신이 괴물이기를 기대해야 할 거다.”

웃는 남자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처음으로 겁에 질린 채 노구(老軀)를 벌벌 떨고 있는 노신사를 향해서.

“그래야 널 소중히 여기는 누군가의 고통이, 아주 조금이라도 줄어들 테니까.”

누군가의 사랑하는 전부를 잃는 고통.

그리고 이 순간, 이전까지 적들의 손에 놓여 있었던 ‘고통의 칼날’은 다시 그들 나이트워커 가문의 손에 돌아왔다.

*  *  *

“엣헴, 우리가 왔다구!”

마녀와 사냥꾼이 나타났다. 일찍이 그들의 적을 향해 칼날을 벼린 오크들의 군세를 이끌고.

그들 나이트워커 가문의 영지에 발을 들여놓은 침략자들의 시체와 피로 산과 바다를 쌓아 올린다.

늘 그래왔듯이, 그게 그들의 방식이었다.

“모두 죽여버려!”

“살려두지 마라!”

“제국의 괴물 놈들을 모조리 도륙해라!”

동시에 그들의 적들이 취하는 방식이기도 했다.

이 세상 모든 인간의 방식은 같다.

그저 그 똑같은 방식의 희생양이 되는 것은, 늘 힘이 없고 약하고 당하는 쪽일 따름이다.

그렇기에 강해져야 했다.

서로가 소중히 여기는 것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남의 전부를 짓밟고 희생시키는 이 세계에서, 자신들이 사랑하는 것을 지킬 수 있는 유일의 수단.

그게 바로 나이트워커 가문의 방식이었다.

아울러 그것은 제국의 방식이자 쌍두까마귀 가족의 방식이었고, 로젤리아 샤를의 방식이었으며, 아서왕의 방식이자 이 세상 모든 왕국과 인간의 방식이기도 했다.

“……지금으로서는 물러나지요.”

물러나는 전황 속에서 칠흑의 낫을 고쳐 잡고 빌헬미나가 말했다.

당장이라도 눈동자가 터질 것처럼 쏟아내는 피눈물을 수습하며, 그제서야 ‘밴시’ 린이 눈을 감았다.

전투는 끝이 났다.

그리고 이 대륙에서는, 여전히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전쟁과 전투와 전장이 벌어지고 있었다.

마치 이 세상 모든 죄악을, 인간의 세상이란 이름의 그릇 위에 쏟아부으려는 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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