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 가문의 천재 어쌔신-172화 (172/200)

172화. 아바돈(阿鼻沌) (2)

“누군가는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제국과 국경이 맞닿은 밤하늘 산맥의 꼭대기, 나이트워커 가문의 오랜 역사가 새겨져 있는 달의 사원─.

“아니, 확실하게 돌아오지 못할 겁니다.”

바로 그곳에서 시엔이 입을 열었다.

암살자들의 아버지, 나이트워커 가문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응, 알고 있어!”

시엔의 말에 그레텔이 천진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마치 소풍이라도 나가는 어린아이처럼 들뜬 목소리로.

“확실하게, 이 싸움에서 누군가는 죽을 거야.”

“─.”

“루치아노 할아범이 그랬고, 조니가 그런 것처럼.”

“그레텔 누님…….”

“그래도 우리는 싸울 거야.”

그레텔의 말을 받아 헨젤이 입을 열었다.

“우리가 걸어온 ‘밤의 끝’이 저기 있으니까.”

“밤의 끝…….”

그 말에 시엔이 나지막이 입술을 깨물었다.

헨젤의 말이 맞다. 나이트워커 가문은 밤을 걷는 자들이고, 그들이 평생에 걸쳐 저주처럼 걸어온 기약 없는 밤의 끝이 그곳에 있었다.

검고 어두운 새벽의 끝, 찬란히 빛나는 여명(黎明).

“참으로 신기한 일이구나.”

그 말에 라일라가 의외란 듯 쓴웃음을 짓는다.

“평생에 걸쳐 우리와는 인연이 없는 말이라 생각했는데.”

태양, 여명, 빛, 마치 의도적으로 그 말들을 거부하고 평생에 걸쳐 자신을 어둠 속에 가둬왔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서로를 전부라 믿으며 끝나지 않는 영원의 밤을 걸어왔다.

그리고 이제는 그들의 손으로 ‘영원한 밤’에 종지부를 찍을 때였다.

동시에 그들은 여전히 서로의 전부였다. 아울러 서로의 전부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게다가 이미 몇몇 가족들은 제국의 동부, 서부 국경에서 벌어지는 전투에 ‘나이트워커 가문의 방식’으로 합세해 암약하고 있다. 어쩌면 그들 중 이미 희생자가 나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각오는 진작 되어 있었다.

“그래도 저는…….”

남은 것은 그 각오를 실행에 옮기는 것뿐이다.

“누구도 죽지 않고, 무사히 살아남기를 바랍니다.”

그렇기에 시엔이 마지막으로 최후의 각오를 다진다.

여기 있는 가족들 전원이 무사히 돌아올 가능성은 한없이 낮다. 절망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엔은 그것을 바라고 있었다.

자신의 전부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자신’을 바칠 생각으로.

*  *  *

신성 로마누스 제국의 남단의 잘츠부르크 대주교령(Hochstift Salzburg).

공화국이 밤하늘 산맥이라 부르는 국경 산맥, 제국의 입장에서는 ‘하얀 죽음 산맥’이라 불리는 국경 지대의 주교좌 성당.

흩어진 나이트워커 가문의 이들이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는 사이, 마찬가지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라일라와 요한이 그곳에 발을 들였을 때.

“기다리고 있었어, 라일라 언니.”

어둠 속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빌헬미나.”

예배당 끝자락에 앉아, 칠흑의 베일을 쓴 채 기도를 올리는 여성이었다.

그리고 그 주위에서 기척을 숨기고 있는 적들의 존재를 모를 라일라가 아니었다.

서부 국경에서는 밤과 피의 왕국, 성배를 손에 넣은 흡혈귀의 군세가 침략을 시작하는 와중.

동부 연안에서 마린 제독이 이끄는 공화국 함대가 약탈을 거듭하는 와중.

여전히 그들 ‘제국’을 지탱하는 최강의 전력은 움직이지 않고, 이곳에서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적수이자 나이트워커 가문이 움직일 때를 기다리기 위해.

바로 지금을 기다리기 위해서.

어둠이 내려앉은 예배당 속에서 성스러운 휘광이 휘몰아쳤다.

그럼에도 ‘죽음의 숙녀’ 라일라와 ‘웃는 남자’ 요한은 당황하지 않았다.

이 순간, 가주 시엔을 제외하고 나이트워커 가문을 지탱하는 최강의 강자들.

그들의 경지는 두 개의 검식에 통달해 있는 하이마스터조차 아니다. 각각 공식적으로, 그리고 비공식적으로 3개의 검식을 마스터한 ‘그랜드마스터’니까.

그렇기에 나이트워커 가문이 자랑하는 최강의 암살자들이 각오를 다진 순간.

촤악!

“─.”

무엇을 베는 소리가 났다.

그들을 향해서가 아니라, 천사를 강림시키고 있는 제국의 이단심문관을 향해 배후(背後)를 치는 소리였다.

“무슨 짓이지?”

죽음의 성모, 빌헬미나 아퀴나스의 손에 들린 사신의 낫.

바로 그 낫이 천사들의 등 뒤에서 날갯죽지를 찢고 등을 베고 형상을 무너뜨린다.

촤아악!

우유처럼 하얀 피가 예배당을 집어삼키고, 천사를 도륙하고 살해한 ‘죽음의 성모’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나이트워커 가문과 거래를 하고 싶어.”

“─.”

마치 처음부터 이것을 위해 왔다고 말하려는 것처럼.

“무슨 거래를?”

“우리는, 제국을 향한 충성을 거두고 나이트워커 가문에게 항복할 거야.”

“내가 그 말을 믿어줘야 할 이유가 있니, 빌헬미나?”

“언니라면 내 눈을 보고 알 수 있겠지.”

빌헬미나가 말했다.

“그 남자,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

라일라가 눈을 가늘게 떴다.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거니?”

“어떤 젊은 사제가 나에게 그러더라.”

되묻는 라일라의 말에 빌헬미나가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진실과 믿음 중에 무엇이 더 가치 있냐고 물었더니, 그는 일말의 주저도 없이 믿음이라고 말했어.”

믿음.

“끝없이 의심하고 불안해하고 시련에 들면서 흔들리지 않고 얻은 답이야말로, 진실 따위보다 훨씬 더 값지고 가치 있는 답이라고.”

“…….”

“그런데 나는, 한 순간도 뭘 믿어본 적이 없거든.”

빌헬미나가 말했다.

제국 국교회의 추기경이자 아퀴나스 가문을 잇는 가주의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그 말을.

“세상에 교회에서 말하는 알기 쉬운 신 따위는 없어. 나는 그런 존재를 믿고 싶지도 않고.”

“말이 장황해지는구나, 빌헬미나.”

라일라가 말했다. 빌헬미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이게 언니가 나를 믿어줘야 할 이유야.”

“설령 그 말이 진실이라 쳐도.”

라일라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 쌍두까마귀의 가족은 이미 우리의 전부를 앗아갔단다.”

그리고 가문의 전부를 앗아간 그 증오스러운 적들을, 용서해줄 리가 없다.

“우리는 더 이상 ‘쌍두까마귀의 가족’이 아니야.”

그럼에도 빌헬미나가 흔들림 없는 대답했다.

“오직 나와 나의 아들뿐이지.”

“…….”

“나를 용서해줄 필요는 없어.”

빌헬미나가 말했다.

“정 믿지 못하겠다면 이 자리에서, 언니의 손으로 나를 죽여도 좋아.”

그들 자매의 앞에서는 결코 거짓이 용납되지 않는다. 그리고 라일라는 알 수 있었다. 지금의 그녀는 결코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을.

“그 대신, 내 아들 루카를 살려줘.”

“그 아이가 그렇게 소중하니?”

“그 아이는 나의 전부야.”

빌헬미나가 말했다.

“언니에게 있어 시엔이 그렇듯이.”

“…….”

“그리고 그 아이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어.”

처음으로 희고 가느다란 어깨를 파르르 떨며 빌헬미나가 말했다.

“다른 모두를 용서하지 않아도, 그 아이만은 용서해줘.”

라일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마치 우리가 승리할 것처럼 말하는구나.”

침묵 끝에 라일라가 입을 열었다.

“글쎄.”

그 말에 빌헬미나가 의미심장하게 웃는다.

“어쩌면 패배할 수도 있지.”

“그럼 어째서 자신의 전부를 버리고 우리에게 배팅을 하는 거니?”

“적어도 아버지가 승리하는 세계에서, 우리가 존재할 자리는 확실하게 없을 테니까.”

빌헬미나가 말했다.

“헤아릴 수 없는 가족들이 희생당하고 죽는 와중에도, 그는 한순간도 슬퍼하지 않았지.”

“깨닫는 게 너무 늦었구나.”

“아니, 아직 늦지 않았어.”

죽음의 성모(聖母), 그런 이명으로 불리는 제국 국교회의 추기경이 입을 열었다.

“날 용서하거나 살려달라는 게 아니야. 그저 나의 아들을 살려주길 바랄 뿐이지.”

“그 대가는?”

바로 그때, 요한이 감정 없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거래는 모름지기 오고 가는 게 있어야 하는 법이지.”

감정 없는 미소를 가면처럼 얼굴에 덧씌운 채.

“우리가 그 제안을 받는 대가로, 그쪽은 뭘 줄 수 있지?”

“죽음의 성모, 빌헬미나 아퀴나스.”

그녀가 대답했다. 바로 자신의 존재를 지칭하며.

“내가 곧 당신들의 전리품이야.”

“─.”

“당신들의 싸움에서, 나는 내 전부를 걸고 당신들을 위해 싸울 거야.”

“설령 같은 쌍두독수리의 가족을 향해 칼을 겨누는 일이라고 해도?”

“그래.”

“한 번 배신한 것처럼, 또다시 우리를 배신하지 않을 거란 보장은?”

“내 죽음이 증명해주겠지.”

빌헬미나가 각오를 다진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당신들의 적과 싸우고 최대한 나이트워커 가문의 ‘이득’이 되는 형태로 죽음을 맞이하면, 그때는 좋든 싫든 믿어줄 수밖에 없을 테니까.”

마치 자신을 꼭두각시처럼 쓰고 버려달라는 말투.

그녀는 처음부터 자신이 살아남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지 않다.

“그럼 거꾸로, 우리가 그 약속을 지킬 거란 보장은?”

침묵 속에서 라일라가 되물었다. 그 말을 듣고 빌헬미나가 쓴웃음을 짓는다.

“별과 단검의 주인, 당신들의 존재가 곧 그 보장이지.”

*  *  *

마녀 사냥꾼, 헨젤과 그레텔이 그곳에 있었다.

“뭐야, 이것들?”

마땅히 있어야 할, 알기 쉬운 형태의 적은 없었다. 심지어 그것들은 교회의 이단심문관조차 아니었다.

“자동인형(오토마타).”

그레텔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그 말처럼, 영혼 없는 무기질적인 표정을 가진 인형들이 그곳에 있었다.

전신에 칼날의 뼈를 사출하고 망령처럼 행동하며, 나이트워커 가문의 아홉 가지 검식을 모방하며.

“불쾌하네.”

그 모습을 보고 그레텔이 조소했다.

*  *  *

“어이쿠야, 이것 참.”

대자(代子) 비고와 함께 죽음의 거미줄을 결계처럼 펼치며, 아버지 미하일이 어깨를 으쓱였다.

“설마 이렇게까지 우리를 환대해줄 줄이야.”

“조, 조, 조심해…… 미하일.”

그리고 그녀를 걱정하는 ‘대모’ 앨리스의 말에 미하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는 늘 조심하고 있습니다, 대모님.”

그는 누군가의 아버지이며, 동시에 누군가의 아들이다.

“말은 잘해요.”

“이자벨 누님은 말이라도 좀 잘해보시죠.”

동시에 누군가의 형제자매이듯이.

그렇기에 마치 거미줄처럼 촘촘히 엮여 있는 그들에게는, 서로가 서로의 전부였다.

*  *  *

그 시각, 신성 로마누스 제국의 서부 국경.

인간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전쟁’이 펼쳐지고 있었다.

밤과 피의 여왕, 이제는 ‘가장공(로드 마스커레이드)’의 이명을 가진 뱀파이어가 거느린 피의 군세.

그리고 그 군세에 맞서 신성 군단이 제국을 상징하는 ‘천사’들을 강림시켰을 때.

흡혈귀와 천사의 격돌 따위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 대신, 순백의 날개로 치천사(熾天使)처럼 새하얀 나신을 휘감고 있는 로젤리아 앞에서…….

천사들이, 무릎을 꿇었다.

마땅히 그들이 섬기고 숭배해야 할 ‘진짜 주인’을 마주하듯이.

“그대들이 해야 할 일을 하세요.”

천사가 섬기는 것은 인간이 아니다. 교회에서 말하는 대로, 그들이 섬기는 것은 오직 그들의 하느님이다.

그리고 바로 그 하느님의 피, 성혈(聖血)을 손에 넣은 뱀파이어가 그곳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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