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화. 아버지들 (2)
태어날 때부터 그 아이가 부모에게 버려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이가 한 살이 조금 못 됐을 즈음, 아이의 부모는 마침 그곳을 지나며 탁발하던 중에게서 뜻밖의 말을 듣게 된다.
‘그 아이는 천살성(天殺星)이 끼었소.’
‘장차 이 땅에 불길한 운명을 가져올 흉상(凶相)이니, 하루빨리 버리시오.’
정말 그 아이에게 천살성이 끼었는지 아닌지, 그들로서는 알 도리가 없었다. 심지어 일면식조차 없이, 그저 마침 그곳을 지나고 있었을 뿐인 생판 타인의 말을 믿고서 소중한 아들을 버려야 할까?
아이의 부모는 그렇게 했다.
그렇게 어느 검고 어두운 밤, 아이의 아버지는 깊은 산속에 아들을 홀로 버려두고 돌아왔다.
그 후 아들이 어떻게 되었는지, 10년이 지나도록 그들 부모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은 젊은 부부였고, 머지않아 새로운 아들과 딸들이 생겨났던 까닭에.
그들 가족의 행복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그러나 영원히 이어지지는 않았다.
“당신들이 내 가족이군요.”
이윽고 11년이 되던 해, 낯선 그림자가 화목한 가정 앞에 나타났다.
“오랜만이에요. 엄마, 아빠.”
검은 장속(裝束)과 복면으로 전신을 꽁꽁 덧씌운 채, 너무나도 친근한 목소리로 웃는 소년이.
“아, 아─.”
낯선 목소리, 낯선 얼굴, 낯선 모습.
그럼에도 마치 죽은 아들이 살아 돌아온 것처럼 부모가 경악했다.
영문을 모르는 아들딸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게다가 그곳에 있는 소년은 혼자가 아니었다.
이제 겨우 11살 남짓의 소년이, 그의 등 뒤로 헤아릴 수 없는 숫자의 칼잡이들을 거느린 채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너희들이 내 동생들이구나.”
마찬가지로 영문을 알지 못하고 겁에 질린 동생들을 향해 소년이 빙긋 웃었다.
“제, 제발 용서해다오─!”
“어, 어쩔 수 없었단다! 스님께서 말씀하시길!”
어머니와 아버지가 소년의 앞에서 무릎 꿇고 애걸했다. 필사적으로. 그들을 내려다보며 소년이 담담하게 대답했다.
“맞아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죠.”
소년이 이해한다는 듯이 말했다. 그 말에 일말의 희망을 품었는지, 아버지가 뭐라 입을 열려는 찰나.
“그래서 저는 당신들의 ‘어쩔 수 없는 믿음’을 이뤄주려고 여기 왔어요.”
그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증명을 위해서.
촤악!
소년의 손에 들린 검이 휘둘러졌다.
피바람이 휘몰아쳤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절이 불타고 승려들의 피와 시체가 사찰을 뒤덮었다.
“여, 역시…….”
일찍이 소년의 부모 앞을 지나며 ‘천살성’의 운명을 예견했던 탁발승 역시 그곳에 있었다.
“내 예지는…….”
“역시 자기 눈은 틀리지 않았다고?”
죽어가는 그를 보며 소년이 즐거운 듯이 말했다.
“유감스럽지만 세상에 ‘별이 점지해준 운명’ 같은 건 없어.”
고대 동방 대륙의 민간 신앙에는, 천문학 또는 천체 현상 그 자체가 인간과 세상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강력한 믿음이 존재했다.
당장 눈앞의 중은 그 믿음을 믿었고, 소년의 아버지와 어머니 역시 그 믿음을 믿었다.
소년은 믿지 않았다.
“오직 별을 향해 나아갈 뿐이지.”
별이 소년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너희는 그저 내게 길을 가르쳐준 거야.”
소년이 별을 선택한 것이다.
그때부터 소년은 별의 주인이었다.
또한, 그 손에 들린 단검의 주인이기도 했다.
* * *
“가족이 전부다(La famiglia è tutto).”
최초의 밤을 걷는 자, 밤의 아버지 카산 나이트워커가 말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거짓말의 시작이었다.
그 말에 최초의 밤의 아들 ‘비토 나이트워커’는 무릎 꿇고 손등에 입맞춤하며, 그의 아버지를 포옹했다.
하지만 남자에게 있어, 가족은 한순간도 그의 일부였던 적이 없었다.
어느 때나 그는 혼자였다. 너무나도 오랜 시간을 혼자로 살아온 나머지, 이제는 자신 이외의 존재를 이해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뒤틀리고 고독해진 까닭에.
그 끝없는 고독 속에서 느낄 수 있던 것은 오직 자신의 존재 하나였던 까닭에.
* * *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남자가 말했다.
“서로 사귄 사람에게는 사랑과 그리움이 생기고, 사랑과 그리움으로 인하여 괴로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서 우환이 생기는 것을 알아라.”
시엔은 대답하지 않았다.
“두 사람이 서로 가까이 있으면 말썽과 갈등이 일어날 것이다. 앞으로 이런 우려가 있음을 알고, 무소의 뿔처럼 오직 혼자서 걸어가라.”
남자가 다시 말했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그 말에 이르러, 비로소 시엔이 입을 열었다.
“하고 싶은 말은 그게 다인가?”
“이것은 말이 아니다.”
남자가 대답했다.
“진리다.”
그것은 곧 남자가 홀로 걸어온 길 그 자체였다.
그 끝없는 여로를 등진 채, 밤의 아버지가 서 있었다.
시엔 역시 그곳에 있었다.
밤이 아닌 암살자들의 아버지로서.
나이트워커 가문은 암살자들의 가문이다. 시엔의 가족들은 암살자들이다. 라일라도, 티아도, 비고도, 미하일도, 이자벨도, 헨젤과 그레텔도, 모두가 암살자다.
그리고 지금의 시엔은 바로 그들의 아버지였다.
오직 자기 자신만을 짊어진 아버지가 아니라.
* * *
고슴도치처럼, 혹은 가시나무처럼 전신에 수백 자루의 장검을 세워 올린 남자가 있었다.
전신을 덧씌운 수백 자루의 칼날 위로 인간찬가의 의지, 오러를 펼치며 ‘칼날의 육체’가 춤을 춘다.
그에 맞서 시엔의 손에 들린 것은, 달랑 한 자루의 단검이었다.
왕 시해자.
시엔의 전부이자 사랑하는 가족, 헨젤과 그레텔이 준 어린 시절의 생일 선물.
가족이 넘겨준 그 선물을 손에 쥐고 시엔은 싸우고 있었다.
물질 조작 학파의 정수를 통해 감히 자신을 ‘영원생물’이라 자처하는 존재에 맞서, 자기 스스로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싸움의 방식을 취하며.
빙륜검 루나 피에나, 신기 묠니르, 혹은 그 어떤 가문의 검식(劍式)이나 배움도 쓰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마법을 쓰는 것도 아니다.
그저 어릴 적 부모 손에 버려지고, 범죄 조직의 손에 거두어져 사냥개로 자랐을 그 무렵.
일곱 살 때, 처음 사람을 죽였던 그 시절의 검(劍)이 시엔의 전부였다.
정교한 식도, 자세도, 기교도 없다.
그저 누군가를 죽이겠다는 살의 하나가 깃든 투박한 검.
그 시절의 시엔에게 가족 따위는 없었다. 지켜야 할 것도 사랑하는 것도 짊어져야 할 것도 무엇 하나 없었다.
‘가족이 되고 싶니?’
그녀가 손을 내밀어주기 전까지, 그 시절의 시엔은 그저 혼자였다.
그 혼자가 시엔의 전부였다.
그리고 일곱 살의 시엔은 오직 자신을 위해,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사람을 죽였다.
“…….”
칼날의 육체로 전신을 덧씌운 밤의 아버지가 일순 움직임을 멈춘다.
눈앞에 있는 암살자들의 아버지가, 너무나도 낯익은 검을 펼치고 있는 까닭에.
그것은 자신밖에 알지 못하는 고독한 자의 검이었다.
타인이 아니라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해 휘두르는 검.
“비로소 나의 검을 흉내 내고 있구나.”
그 검을 보자마자 밤의 아버지가 조소했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이 순간, 암살자들의 아버지 시엔 나이트워커는 그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오직 자신만을 생각할 뿐이었다.
그때처럼 자신이 살아남는 것, 자신이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것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의 검이라고?”
시엔이 차가운 목소리로 조소했다.
“아니, 이건 나의 검이다.”
조소하며 대답했다.
그 말마따나 그것은 시엔을 위한 검이었다.
딱히 시엔 자신이 소중한 까닭이 아니다.
그저 이 순간에도 시엔을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가, 시엔을 시엔 자신보다 더 소중히 여기고 있는 까닭이다.
그들의 ‘소중한 것’을 빼앗기게 놔두고 싶지 않았다.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그들이 사랑하는 전부를 지키는 것.
이 싸움에서 죽지 않고 살아 돌아가는 것.
그게 바로 시엔 나이트워커가 가족이자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이었다.
“가족이 전부다(La famiglia è tutto).”
그렇기에 암살자들의 아버지가 말했다.
죽음 따위는 겁나지 않는다. 대수롭지도 않다. 하지만 이제는 알 수 있었다.
그들에게는 가족이 전부이고, 시엔 역시 바로 그 전부의 일원임을.
여기서 자신이 죽는 것은 곧 가족의 전부를 앗아가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모두가 행복해지는 결말이 아니면, 가족을 위한 일이 아니지.”
그날, 마지막까지 비참하게 홀로 살아남았던 미래를 떠올렸다.
사랑하는 어머니 라일라가 자신을 위해 희생했다. 자신의 전부를 지키기 위해.
헨젤과 그레텔, 루나, 밉상스러운 미하일과 이자벨 남매 모두가 그렇게 자신을 희생했다.
그들 모두가 ‘자신의 전부’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고, 그렇게 살아남은 시엔은 말 그대로 전부를 잃어버렸다.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게 아니다.
시엔이 가족을 사랑하듯, 가족 역시 시엔을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되새길 뿐이다.
가족에게 사랑하는 전부를 잃는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
누구보다 그 고통을 잘 알고 있는 시엔이기에.
그게 얼마나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저주인지 뼈저릴 정도로 느꼈던 시엔이기에.
다시는 그 같은 비극의 역설을 반복하고 싶지 않았다.
동시에 그것이 바로 시엔의 이기(利己)였다.
“나는…… 죽지 않는다.”
그렇기에 각오를 다진 시엔이 말했다.
살아야 했다.
범죄 조직의 일회용 사냥개로 길러졌던 일곱 살의 그 시절처럼.
한 번이라도 실패할 때는 홀로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희생될 장기말이었지만, 그럼에도 절대로 실패하지 않았던 그때처럼.
살고 싶었다.
그리고 살기 위해서는, 죽여야 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네가 죽어 마땅하기 때문에 죽는 게 아니다.”
시엔이 말했다.
“단지 내가 살기 위해 너를 죽여야 할 뿐.”
거기에는 어떤 고결한 이유도 이상도 없다. 무엇으로도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변명할 수 없고 용납될 수 없는 죄악이다.
“아, 이런.”
그 말에 밤의 아버지가 웃는다.
눈앞에 있는 시엔이 흡족해서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비로소 진정한 별의 주인이 되었구나, 나의 아들아.”
별이 점지해준 운명에 따라 춤추는 꼭두각시가 아니라, 스스로 별을 향해 나아가는 것.
그럼에도 여전히 달라질 것은 없다.
이곳에 있는 두 사람은 여전히 자신밖에 모르는 괴물이었다.
동시에 가장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던 그들이, 이제는 진심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비로소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그들이 절대 서로의 존재를 용납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 * *
성혈(聖血)의 뱀파이어, 그리고 붉은 백합의 성녀.
로젤리아 샤를이 그곳에 있었다.
일찍이 제국이 거느렸어야 할 헤아릴 수 없는 천사들의 군세를 거느린 채, 동시에 그녀가 밤과 피의 여왕으로 거느린 귀족들과 함께.
그리고 그들에 맞서 제국 최후의 보루이자, 이제는 인류 최후의 보루가 된 ‘가족들’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