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 가문의 천재 어쌔신-179화 (179/200)

179화. 아버지들 (3)

얼핏 보기에 두 아버지, 카산과 시엔이 취하는 방식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였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커다란 차이점을, 그 남자는 마지막 순간까지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것.

그리고 누군가가 사랑하는 자신을 사랑하는 것.

카앙!

두 자루의 단검이 맞부딪친다.

저마다의 별을 향해 나아가는 주인들의 검이.

누군가는 그 남자를 일컬어 ‘천살성의 운명’을 타고났다고 했다.

하지만 남자는 별이 점지해준 운명 따위를 믿지 않았다.

그저 별을 향해 나아갈 뿐이었다.

별이 자신을 선택한 것이 아니고, 자신이 별을 선택한 것이라고.

그때부터 소년은 별의 주인이었다.

또한, 그 손에 들린 단검의 주인이기도 했다.

시엔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날, 가시공 블라드는 시엔과 나이트워커 가문을 조롱하며 ‘운명의 꼭두각시’라고 말했다.

그들이 느끼는 감정, 각오, 결의, 삶, 그 모든 것들이 누군가의 손에 의해 조작된 거짓된 운명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시엔에게 있어 그 거짓은, 그 어떤 진실보다 붉은 피를 흘리는 거짓이었다.

그렇기에 모든 진실을 알았을 때도, 시엔은 여전히 자신의 의지로 운명을 받아들였다.

그때부터 시엔 역시, 별의 주인이었다.

겨울의 밤하늘, 창백하게 빛나는 쌍둥이자리 성좌 밑에서 서로를 쌍둥이처럼 닮은 검이 맞부딪쳤다.

닮았지만 닮았지 않았고, 닮지 않았지만 닮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두 사람은, 자신의 의지로 운명을 결정하는 자였다.

그렇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찬란하게 빛나는 인간찬가의 의지를 검에 실은 채, 별과 단검의 주인들이 격돌했다.

*  *  *

“웃기는 일이야.”

수도 레벤부르크 일대를 포위하고 있는 천사들의 군세.

심지어 그 군세를 거느린 것은 신의 이름으로 저주받은 ‘뱀파이어’다.

신성 제국의 입장에서 그것이 얼마나 우스꽝스럽게 들릴지는 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우스꽝스러운 농담이 현실이 되었을 때, 포위당한 제국 수도의 백성들은 그 어느 때보다 혼란의 도가니에 빠져 있었다.

믿었던 모든 것들이 발밑에서 와르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를 구원하소서!”

“우리의 죄를 회개하겠나이다!”

“나의 아버지,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다가오는 끝을 앞두고 사람들이 보이는 모습은 가지각색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신을 향한 믿음을 굽히지 않는 자들. 믿음을 저버린 신을 저주하는 자들. 신을 향해 애걸하는 자들.

그 군상을 내려다보며 제국 국교회의 추기경이자 죽음의 성녀, 빌헬미나가 조소했다.

“믿음이란 참 우스운 거지.”

한때 용서할 수 없는 적이었고, 그 한때 이외에는 언제나 그녀에게 있어 누구보다 소중한 사람이었던 그녀의 곁에서.

“기뻐, 언니.”

“나는 네 언니가 아니란다, 빌헬미나.”

“글쎄.”

짐짓 차갑게 거리를 두는 라일라 앞에서 빌헬미나가 순순히 어깨를 으쓱였다.

“그럴지도 모르겠지. 그게 당신의 진실이니까.”

부정하지 않고 담담하게.

“하지만 이게 나의 진실이야.”

빌헬미나가 말했다.

“당신이 아무리 나의 소중한 가족을 빼앗아도, 아무리 나를 상처 입혀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을 담담히 입에 담으며.

“당신은 하나밖에 없는 내 언니야.”

“…….”

“설령 언니에게 있어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라 할지라도.”

라일라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가족이 전부였다. 그리고 가족 이외의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다.

동시에 이 모든 운명의 시작은, 라일라 아퀴나스가 빌헬미나의 저주받은 운명을 구원하기 위해 시작된 일이었다.

‘진실의 눈’을 가진 아이는 아퀴나스 가문의 후계자가 된다.

만약 한 대에 ‘진실의 눈’을 가진 아이가 두 명 이상 태어난다면, 한쪽의 아이는 그 혈통의 순수성을 보존하기 위해 가문의 씨받이가 된다.

그것이 빌헬미나의 운명이었고, 언니 라일라는 그것을 가만히 지켜볼 수가 없었다.

“당신이 선택한 운명이지만, 이제는 알 수 있어.”

“뭐가 말이니?”

“언니가 어째서 그 운명을 선택했는지.”

모든 것의 처음.

너무나도 많은 시간이 흘러 어느덧 그 시절의 과거마저 잊게 된 지금에야 깨달았다.

라일라 아퀴나스는 사랑하는 동생 빌헬미나를 위해 자신의 운명을 선택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과 운명을 모두 거부하고, 자신의 의지로 나아가길 바랐다.

누구도 아닌 그녀를 위해서.

“……지금의 당신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진실을 가졌는지는 아무래도 좋아.”

그렇기에 빌헬미나가 말했다.

“내가 사랑하는 것,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 그건 바로 그 시절의 당신이니까.”

“…….”

라일라는 침묵했다.

“그래, 네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

짧은 침묵 끝에, 그녀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에게는, 훨씬 더 많은 소중한 것들이 있단다.”

“알고 있어.”

빌헬미나가 말했다.

“언니는 더 이상 나를 위해 희생을 택하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고 있다니 다행이구나.”

“그래도 괜찮아.”

빌헬미나가 고개를 끄덕이며 미소 지었다.

“이렇게 당신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걸로도, 나는 충분히 기쁘니까.”

“그렇구나.”

그 말에 라일라가 쓴웃음을 짓는다. 그저 쓴웃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들에게는 가족이 전부였다.

라일라 나이트워커에게 있어 ‘빌헬미나 아퀴나스’는 더 이상 그녀의 가족이 아니다.

하지만 애써 눈을 돌리고 모른 척을 해왔던 진실을, 이제는 알 수밖에 없었다.

가족이 전부라고 해서.

결코 그 이외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을.

*  *  *

오리온자리 북서쪽의 별자리이자, 황도 12궁의 3궁.

바로 그 쌍둥이자리의 별빛이 비추는 밤하늘 아래에, 두 명의 소년이 격돌하고 있었다.

‘그 아이는 천살성이 끼었소.’

‘당신들은…… 운명의 가축입니다.’

자신이 바라지 않는 운명.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삶의 향방이 정해지고 인생의 모든 것이 결정되는 저주.

그들은 그 운명을 거부하며 맞서는 자들이었다.

동시에 자신의 의지로 그 운명을 택한 자들이기도 했다.

남자는 자신의 손으로 아버지와 어머니를 베었다. 동생들을 베었다. 그들을 미워해서가 아니다. 자신이 정한 삶의 길, 별을 향해 나아가는 길을 그들이 막고 있던 까닭이다.

시엔은 자신의 의지로 가족을 지키기로 결심했다.

설령 이 모든 감정이 누군가의 뜻에 의해 조작된 거짓이라 할지라도, 본래 누려야 할 삶과 운명과 모든 것을 박탈당한 채 춤추는 꼭두각시라 할지라도.

이 모든 것이 거짓임을 알고 나서도, 그것을 진실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게 시엔이 나아가는 별의 길이었다.

저마다의 별을 향해 나아가는 주인들의 단검이 부딪쳤다.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별의 궤적을 그리기 위해서.

그리고 그들이 나아가는 별의 길을 가로막는 천체(天體)의 운행에 저항하기 위해서.

남자에게 있어 시엔 나이트워커는 운명의 방해자였다.

시엔에게 있어 그 남자의 존재가, 시엔의 운명을 방해하는 존재이듯이.

운명이란 저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는 어떤 초월적인 존재 따위가 아니다.

그저 더없이 인간다운 이유로, 자신의 전부를 손에 넣기 위해 타인의 전부를 빼앗아야 하는 누군가를 지칭하는 이명일 뿐이다.

눈앞에 있는 남자는 시엔의 운명이었다.

눈앞에 있는 시엔은 남자의 운명이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어느 때보다도 서로를 이해하고 있었다.

동시에 어느 때보다도 서로를 용서할 수 없었다.

서로가 서로의 별을 가로막고 충돌하는 이상, 그것을 뚫고 나아갈 수 있는 것은 자신뿐이니까.

이해하지 못하고, 알지 못해서가 아니다.

이해하는 까닭에 용서할 수 없는 것이다.

검이 맞부딪친다.

때로 그것은 망령이 되기도 했고, 명경지수가 되었으며, 나락이 되었고 달의 그림자가 되었다.

이윽고 악인이 되었고 살인자로 거듭나며, 마신이 되거나 살성(殺星)이 되기도 했다.

태어났고 존재했고 형성된 모든 것이 부서지고 다시 태어나듯이.

하나의 자세가 끝없이 죽고 스러지고 태어나며 윤회를 거듭하며, 윤회의 끝자락에서 서로의 칼날이 비로소 엇갈렸다.

칼끝이 피부를 찢고 근육을 파고들며 뼈를 깎는다.

사람이 사람을 상처 입히기 위해서.

촤아악!

아팠다. 남자의 칼이 시엔의 피부를 찢고 몸속으로 파고들 때마다, 몸을 따라 휘감기는 핏빛의 줄이 육신을 휘감고 도륙 낼 때마다, 고통 속에서 의식이 멀어졌다.

동시에 시엔의 칼이 남자의 몸을 향해 찔러넣을 때마다, 남자 역시 고통에 몸부림쳤다.

손에 들린 칼로 서로를 찌르고, 베고, 또 찌른다.

거기에 더 이상 정교한 자세 따위는 없었다.

어떤 거창하고 화려한 신기도 능력도 마법도 없었다.

그저 눈앞의 인간을 죽이겠다는 집념, 살인자의 악(惡)이 넘쳐흐를 뿐이었다.

아무리 아프고 고통스러워도 멈추지 않는다. 이 손으로 상대에게 그보다 더 커다란 고통을 주기 위해서.

낡은 수레가 가죽끈에 묶여 겨우 움직이듯이.

낡아 해지고 스러져가는 서로의 육체가, 의지의 가죽끈에 묶여 겨우 움직이는 수레처럼 힘겹게 움직이고 있었다.

촤악!

검이 뱀처럼 춤추며 맞부딪치고, 떨어졌다가 다시 거리를 좁히며 미끄러진다.

깨닫고 보니, 남자의 검이 시엔의 가슴을 꿰뚫고 있었다.

동시에 시엔의 검이 남자의 목젖을 따라 내리긋는다.

그 동작을 끝으로 서로의 움직임이 멈춘다.

멈추고 나서는, 함께 무너져 내렸다.

“아아…….”

무너져 내린 발밑, 땅바닥에서 끝없이 차오르는 혈해(血海) 위로 남자가 입을 뻐끔거린다.

“형성된 모든 것은 부서지는 법이거늘.”

참으로 덧없다는 듯이.

“그것을 두고서 ‘절대로 부서지지 마라’고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시엔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할 수 없었다.

“나는 이렇게 부서지는구나.”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잇는다.

“네가 이렇게 부서지듯이.”

“─.”

“홀로 외롭게 이 세상에 태어나, 외롭지 않게 죽는구나.”

흐르는 피와 상처 속에서 남자가 즐거운 듯이 말했다.

죽어가는 자신의 육체, 존재의 끝에 더 이상 아무런 망집도 갖지 않고.

그저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자신을 이해해준 누군가의 존재에 기뻐하며.

여전히, 시엔 나이트워커는 대답하지 않았다.

얼어붙을 것 같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외롭지 않게…….”

바로 그때, 정적 속에서 남자가 중얼거린다.

“아니, 당신은 외롭게 죽을 거야.”

바로 그때, 목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죽어버린 남자가 그 목소리를 들을 일 따위는 영영 없었다.

이 순간, 남자는 그토록 바란 영원을 손에 넣은 까닭에.

“─.”

남자에게는 자신이 전부였다.

시엔에게도 자신이 전부였다.

그러나 시엔이 사랑하는 자신은, 누군가가 사랑하는 자신이기도 했다.

바로 그곳에 있는 그녀처럼.

“대부님─.”

티아 나이트워커가 무릎 꿇고, 그곳에 있는 시엔에게 팔을 뻗는다.

“티아…….”

그 말에 비로소, 침묵하고 있던 시엔이 입을 열었다.

영원하지도 않고, 피를 흘리고, 언젠가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발버둥 치는 인간으로서.

동시에 삶을 포기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미련으로 가득 찬, 절대로 죽고 싶지 않다는 의지 하나로 삶의 끈을 부여잡고 있는 인간으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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