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 가문의 천재 어쌔신-186화 (186/200)

186화. 가족이 전부다 (2)

직감할 수 있었다.

이것이 나이트워커 가문에 있어 최후의 싸움은 아닐지라도─.

지금까지 그들 가문이 겪어온 싸움, 그리고 이 앞으로도 겪게 될 그 어떤 싸움보다 힘들고 고통스러우며 승리를 장담할 수 없는 싸움이 될 것임을.

그리고 그 싸움은, 그들의 상상 이상으로 훨씬 더 힘겹고 고통스러운 싸움이었다.

끝없이 쇄도하는, 운명의 실에 매달린 꼭두각시.

아울러 그들을 거느린 운명의 여신.

그 앞에서, 십수 명 남짓에 지나지 않는 나이트워커 가문의 싸움은 명백하다 못해 압도적일 정도의 열세였다.

마치 ‘보통의 싸움’을 펼치는 보병들처럼, 밀집 형태의 방진(方陣)을 짜듯 서로가 서로에게 등을 맞대고, 일대를 포위하고 있는 운명 앞에서 흐트러진 호흡을 가다듬는다.

“힘드니, 티아?”

그리고 시엔이 자신의 곁을 지키는 그녀를 향해 말했다.

“비고 형은?”

아울러 또다시 티아의 곁을 지키는 자신의 형에게 물었다.

“저는 괜찮아요.”

“우린 모두 괜찮아.”

두 사람이 대답했다.

“괜찮지 않은 놈은 지금쯤 다 죽었거든.”

그리고 그 말에 미하일이 능청스럽게 끼어들었고, 시엔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응, 시엔.”

그 웃음을 보며 ‘대량학살장치’ 앨리스가 말했다.

“우리는 모두…… 괜찮아.”

그곳에 있는 가족들 모두의 말을 대신하는 것처럼.

“혼자서 입는 상처가…… 아니니까.”

“저도 괜찮아요.”

그 말에 시엔 역시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곳에 가족들이 있으니까.

*  *  *

운명이란 무엇일까?

내가 하고 싶은 것, 내가 바라는 것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데, 그것이 내 의지가 아닌 ‘누군가의 의지’에 의해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라면.

그것은 결국 운명의 뜻대로 놀아나는 아무 의미도 없는 행위일까?

카앙!

그 물음과 함께 시엔의 애검, 왕 시해자가 눈앞에 있는 창과 맞부딪쳤다.

운명의 여신, 그녀의 손에 들린 운명의 창이 뿜어내는 기류가 일대를 장악하고 있다.

온 세계가 나이트워커 가문의 죽음을 바라는 것처럼.

저항할 수 없는 운명의 기류가 시엔과 가족들의 숨통을 옥죄고 있었다.

「운명을 조작하는 힘」.

아니, 조작(造作)이 아니다.

이것은 처음부터 그녀가 바란 자연스러운 운명 그 자체였다.

오히려 정해진 운명을 뒤틀고 조작하고 있던 것은, 처음부터 나이트워커 가문의 인간들이었으니까.

카앙!

창과 검이 맞부딪칠 때마다, 눈앞의 상대를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절망감이 엄습했다.

운명이란 극복할 수 없기에 운명이니까.

온 세상이 시엔과 나이트워커 가문의 죽음을 바라고 손가락질하며, 온 세계를 적으로 돌리고 세상의 악의를 마주하는 것 같은 압박감이 엄습했다.

이 세상에 그들이 있을 장소 따위는 없다는 듯이.

그런 형용할 수 없는 불안과 공포 속에서 무심코 깨달았다.

처음부터 이 세상에, 그들을 위한 장소 따위는 없었다.

그렇기에 그들에게는 가족이 전부였다.

시엔이 입술을 악물었다.

그리고 시엔의 손에 들린 칼끝을 따라, 어느 때보다 찬란히 빛나는 인간찬가의 의지가 깃들었다.

후우웅!

인간의 의지에 선악 따위는 없다. 오직 의지의 강함과 나약함이 있을 따름이다.

때로는 고결한 성자(聖者)보다, 극악무도한 악인의 의지가 더 강렬한 것처럼.

그리고 그곳에 있는 악인들의 의지는, 그 무엇보다 강했다.

세상은 결코 의지 하나로 해결되지 않는다.

바라는 마음 하나로 해결될 정도로 이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으니까.

동시에 의지 없이는 그 어떤 것도 해결되지 않는다.

바라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기에.

필사의 각오와 함께 의지가 결속되며 벌어지는 의지의 공명이자 진짜 인간의 찬가.

「원 포 올」.

“하나는 전부를 위해(One for All).”

나이트워커 가문의 가족들이 읊조린다.

“전부는 하나를 위해(All for One).”

그 말에 화답하듯, 시엔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가족 전체의 의지를 등에 짊어진 채.

그 어느 때보다 찬란하게 빛나는 오러로 전신을 휘감고, 시엔 나이트워커가 칼자루를 고쳐 잡았다.

바로 그곳에 있는 운명의 여신을 향해서.

“…….”

시엔이 땅을 박차고 일검을 휘둘렀고, 그 검이 운명의 창에 맞부딪쳤다.

그리고 마땅히 이치와 섭리를 초월해 펼치는 창의 힘이, 펼쳐지지 않는다.

“!”

시엔의 공격을 ‘운명처럼’ 튕겨내고 ‘운명처럼’ 최악의 궤적을 그리며 무위로 돌리게 해야 할 창이, 아무 힘도 쓰지 못하고 격돌했다.

그곳에 있는 나이트워커 가문의 가족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밴시 린의 손에 들린 태도가, 어느 때보다 찬란한 빛을 뿜으며 꼭두각시에 매달린 ‘운명의 실’을 끊어냈다.

그곳에서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공명하는 나이트워커 가문의 의지, 인간의 의지가 불타며 춤을 춘다.

그들은 인간이었다.

오직 자신들밖에 모르는, 그럼에도 ‘자신의 전부’를 위해서 그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이기적이기 짝이 없는 생물.

바로 그 이기(利己)의 의지가, 그들 가족을 지탱하고 있었다.

그곳에 있는 유일의 외부자, 죽음의 성모 빌헬미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그녀 역시 누구보다 사랑하는 자신의 언니, 라일라를 위해 싸우고 있던 까닭에.

쇄도하는 운명의 기류에 맞서, 마지막까지 무너지지 않는 의지의 등불.

그리고 바로 그 등불의 의지 전체를 짊어진 시엔이 그곳에 있었다.

그들 앞을 가로막는 운명 그 자체, 신(神)의 앞에서 검을 휘두르며.

‘무엇이 인간을 정의하지?’

그와의 싸움 속에서, 무심코 그 남자의 말이 떠올랐다.

‘네놈은 다리 하나 없이 태어난 결손자를 괴물이라고 생각하나? 혹은 손가락을 하나 더 가지고 태어난 이를 괴물이라 생각하나?’

‘아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부조리와 운명 속에서 굴하지 않고 싸우며 인간다운 삶을 손에 넣는다.’

이제 와서 그 남자를 동정하거나 그를 옹호할 마음 따위는 없었다.

그 남자가 가족들의 운명을 빼앗은 것 역시, 결국에는 가족이 아니라 철저하게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결정에 불과했으니까.

그는 나이트워커 가문의 앞을 가로막는 적이었고, 그것으로도 그가 죽을 이유는 충분했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그 남자의 말이 이상할 정도로 생생하게 시엔의 뇌리에서 재생되었다.

‘오히려 두 팔과 두 다리가 멀쩡히 달린 인간 대다수는, 정작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돼지처럼 꿀꿀거리며 짐승과 같은 삶을 영위하지. 그것을 정녕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가?’

‘못 부를 이유라도 있나?’

‘인간이란 운명의 정복자다.’

주어진 운명 앞에서 순응하기를 거부하고, 굴복하기를 거부하고, 운명 앞에서 저항하며 기어코 그것을 넘어 나아가는 자.

그 말을 되새기며 시엔의 전신을 휘감고 있는 칠흑의 오러에 의식을 집중했다.

어떤 고통과 시련 속에서도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고 넘어서려는 인간의 의지.

오직 인간밖에 쓸 수 없는, 자신의 살과 피와 뼈를 초월하고 극복하려는 의지.

바로 그 힘이, 극복할 수 없는 섭리와 이치를 거부하고 부정하며 나아가게 해주고 있었다.

시엔과 시엔의 가족들을.

마치 피는 속일 수 없다고 말하듯이.

시엔 나이트워커 역시, 아버지의 아들이었다.

밤의 아버지, 최초의 밤을 걷는 자.

그의 방식에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그를 용서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진실은 좋고 싫고의 문제 따위로 성립되지 않는다.

그것은 그 자체로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그렇기에 그 남자, 밤의 아버지가 800년 가까이 집착하며 버텨온 망집(妄執)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의지는 여전히 남아 시엔에게 계승되고 있었다.

시엔이나 그 남자나, 결국 ‘자신밖에 모르는 괴물’이란 사실은 바뀌지 않으니까.

시엔에게 있어 가족은 자신의 일부이자 그 자체였다. 그렇기에 자신을 지키기 위해, 일신의 영달(榮達)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것이다.

카앙!

검고 어두운 인간찬가의 의지, 오러가 깃든 흑검이 휘둘러진다.

그때마다 점점 더 격렬하게 휘몰아치는 의지의 공명과 파동이, 운명의 창이 내뿜는 기류와 상쇄되며 비명을 내지르고 있다.

의지와 운명.

그것은 처음부터 절대 양립할 수 없는 상극의 개념이었다.

“「악인(惡人)의 자세」.”

그렇기에 각오를 다잡고 시엔이 읊조렸다.

이 순간, 자신의 등 뒤에 짊어지고 있는 의지의 무게를 떠올리며.

암살자들의 아버지가 해야 할 일을 하기 위해.

“─.”

일방적 유린이라고 믿었던 싸움은, 어느새 역전되어 있었다.

시엔과 나이트워커 가문의 가족들이, 그 어느 때보다 검고 어두우며 동시에 찬란하게 빛나는 오러를 휘감고 운명의 군세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신조차 그들을 가로막을 수 없다는 듯이.

그들은 늘 이 세상의 가해자였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촤아악!

로젤리아 샤를의 형상을 취하고 있는 운명의 여신이, 비로소 시엔의 일격에 상처를 허락했다.

“─.”

휘감기는 혈선 속에서 살갗이 찢어지고, 여신의 피가 흘러나왔다.

인간의 피였다.

“신도 피를 흘리는 모양이지?”

일격을 먹이고 나서 시엔이 조소했다.

그리고 흐르는 상처의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고, 운명의 여신이 조용히 침묵을 지켰다.

그 어느 때와도 비할 수 없는 섬뜩하고 차가운 침묵.

“너희 인간들은…….”

침묵 끝에 신이 입을 열었다.

“늘 ‘의지’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지.”

마치 그곳에 있는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조롱하듯이.

“신의 몸에 생채기 하나를 냈다고 해서, 마치 승리를 손에 넣은 것처럼 기뻐하고 좋아하는, 헤아릴 수 없는 패배자들을 보아왔다.”

여신이 말했다.

“신의 몸에 상처를 냈다는 것 자체가 위대하신 인간의 승리라고, 인간의 의지가 이룬 업적이라고 칭송하며─ 자신의 패배와 죽음을 합리화하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아왔다.”

“…….”

그 말에 시엔은 대답하지 않았다.

짧은 침묵과 정적이 내려앉았다.

시엔도, 운명의 여신도, 여신이 조종하는 운명의 꼭두각시도, 나이트워커 가문의 가족 모두가.

“생채기 따위로 끝날 거라고 생각하나?”

침묵 끝에 시엔이 입을 열었다.

“나는 신에게 생채기 하나를 그었다고 해서 웃으며 죽을 정도로 그릇이 작지 않거든.”

여느 때와 다를 바 없이 자신의 결의를 관철하며.

“나는 오늘, 이 자리에서 너를 죽일 것이다.”

그곳에 있는 운명의 여신을 향해 ‘암살자들의 아버지’가 말했다.

“아, 정말이지.”

그 말에 운명의 여신이 조소하며 어깨를 으쓱였다.

“납득할 수밖에 없구나.”

으쓱이고 나서 여신이 말했다.

“너는 내가 지금껏 보아온 그 어떤 인간, 그 어떤 영웅과도 다르다는 것을.”

“나는 영웅이 아니거든.”

“경의의 의미에서, 너에게 특별히 나의 이름을 알려주마.”

어깨를 으쓱이는 시엔을 향해 여신이 입을 열었다.

“나의 이름은 아트로포스(Atropos).”

너무나도 담담하게.

“「거역할 수 없는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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