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화. 시엔 (1)
어린 소년의 손에 칼날이 들려 있었다.
칼날을 따라 뚝뚝 떨어지는 핏물 앞에서, 안색이 새하얗게 질린 남자가 벌벌 떨며 소리쳤다.
“이, 이 괴물 새끼……!”
소년의 칼날은 사람의 피와 기름으로 검붉게 칠갑이 된 채다. 그럼에도 칼날 끄트머리가 밤하늘의 별처럼 창백하고 시린 은빛 서슬을 흩뿌린다.
소년의 눈동자 역시 밤하늘만큼이나 검고 어둡다.
의심할 여지가 없는, 타고난 살인자의 눈이었다.
사람을 죽이는 데 망설이지 않고 아무런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괴물.
보고도 믿을 수 없었다.
저 어리고 앳된 일곱 살 아이가, 그런 끔찍한 괴물의 초상(肖像)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리고 그 괴물의 손에, 범죄 길드의 조직원 일곱 명이 살해당하고 자신의 차례가 되었다는 사실이.
“오, 오지 마……!”
남자가 겁에 떨며 뒷걸음질을 쳤다.
더 이상 싸울 전의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다.
“제, 제발 목숨만은 살려줘!”
“내가 왜?”
목숨을 애걸하는 남자 앞에서 소년이 차갑게 되물었다. 그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며.
날붙이가 휘둘러졌다. 마치 밤하늘에서 별똥별이 떨어지는 듯한 궤적을 그렸고, 피가 튀었다.
비명은 머지않아 바람이 빠져나가는 것 같은 공허한 소리가 되어 흩어졌다.
* * *
“잘해주었다, 시엔.”
“네, 아버지.”
시엔이 일을 끝마치고 돌아왔을 때, 아버지란 호칭으로 불린 남자가 흡족한 듯 웃었다.
물론 그는 진짜 시엔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그러나 어린 시엔을 비롯해 이곳 범죄 길드의 사냥개로 길러지는 아이들은 모두 그 남자를 ‘아버지’라고 불렀다.
남자는 조직의 대부(Godfather)였다.
“자, 일을 잘 끝마쳤으니 상으로 맛있는 음식을 주마.”
남자가 모처럼 자애로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시엔 역시 미소 지었다.
사람은 밥을 먹지 않으면 죽는다. 그리고 사람을 죽이면 밥을 준다.
살기 위해서는 누군가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게 시엔이 사람을 죽이는 유일한 이유였다.
아버지는 마치 커다란 선심을 쓰는 것처럼 시엔을 향해 무엇을 던져주었다.
돌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는 흑빵. 그리고 얼핏 보기에 토사물과 구별하기 힘든 식은 귀리죽이 제공되었다.
그럼에도 굶주린 시엔은 그것이 천상의 진미라도 되는 것처럼 게걸스럽게 먹었다.
두 손으로 흑빵을 찢어 욱여넣고, 손으로 귀리죽을 퍼서 먹었다. 그릇에 묻은 한 방울까지 아까워 빵에 묻히거나 싹싹 핥고, 그렇게 단숨에 식사를 비운 시엔이 고개를 들었다.
테이블 위에 앉은 아버지는, 마치 짐승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혐오스러운 시선을 짓다가 고개를 돌렸다.
탁상 위에는 핏빛의 포도주와 함께 먹음직스러운 고깃덩어리가 놓여 있었다.
남자가 나이프로 갈색으로 바싹 익은 겉면을 자르자, 그 속에 먹음직스러운 핏빛 속살이 붉은 육즙과 함께 흘러나왔다.
꿀꺽.
그 모습을 보며 시엔이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먹고 싶다.’
저 고깃덩어리 하나를 통째로 마음껏 먹을 수만 있다면.
저 두툼하게 씹히는 고기를 입속에 가득 넣고 우적우적 씹을 수만 있다면.
사람 따위는 몇 명이라도 죽일 텐데. 아니,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수 있을 텐데.
‘죽여서 뺏을까?’
순간 시엔의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손에 들린 나이프. 땅을 박차고 거리를 좁혀서 그걸 빼앗고, 아버지의 목을 내리긋는 거다.
아니, 아니다. 우선은 고기에 피가 튀지 않게 남자를 뒤로 내동댕이치고, 그다음 칼을 꽂자.
“먹고 싶으냐?”
바로 그때,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시엔은 동요나 당황하는 기색도 내보이지 않고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먹고 싶어요.”
“이건 아주 값비싼 송아지 스테이크란다. 그것도 동방의 귀한 향신료를 잔뜩 뿌린 특등품이지.”
꿀꺽.
그 말에 시엔의 입속에 다시금 군침이 돌았다.
그럼에도 남자는 보란 듯 나이프로 스테이크를 썰어서, 그 붉은 속살과 육즙이 가득 묻은 고기 한 점을 아주 천천히 자신의 입에 옮겼다.
우적, 우적.
천천히, 보란 듯이 시엔 앞에서 소리를 내며 고기를 씹고 음미하며 눈을 감는다.
그 모습에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퉷.
그 순간, 남자가 잘근잘근 씹고 있던 고깃덩어리를 뱉었다. 시엔이 앉아 있는 땅바닥을 향해서.
“손을 쓰지 말고, 짐승답게 먹어라.”
씹다가 입에서 뱉은 고깃덩어리였지만, 시엔은 그걸 보자마자 개처럼 몸을 숙여 그것을 입에 넣었다.
‘맛있다.’
천국이 있다면, 그리고 천국에서 음식이란 게 있다면 분명 이런 맛이 날 것이다.
시엔의 짐승 같은 모습을 보고 아버지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 모습이 웃겨서 참을 수 없다는 듯이.
“더 먹고 싶으냐.”
“네, 네! 더 먹고 싶어요!”
시엔이 애걸하듯 대답했다. 그러자 남자는 고기를 썰어 입에 넣고 씹더니, 다시 땅바닥에 뱉었다. 시엔은 다시금 개처럼 짐승처럼 네발로 기어서 그것을 입에 넣었다. 남자가 더 커다란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마치 진기한 동물 구경거리를 보는 것처럼.
이내 남자는 들고 있던 접시를 들고 바닥에 던졌다.
“네발로 기어서, 남기지 말고 싹싹 핥아먹어서 깨끗하게 해라.”
땅에 떨어진 고기와 흘러내린 육즙이 바닥을 적셨고, 시엔은 개의치 않았다. 눈앞에 떨어진 천상의 음식에 정신을 잃고, 마치 짐승처럼 추하게 달라붙어 고기를 씹고 바닥에 떨어진 핏물을 핥는다.
어린 시엔의 인생에서 가장 즐겁고 행복했던 추억이었다.
* * *
“…….”
오랜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고 나서, 시엔이 눈을 떴다.
그 상태로 천천히 고개를 내린다.
마침 테이블 위에는 고급스러운 송아지 스테이크와 포도주가 놓여 있었다.
시엔이 천천히 은제 나이프로 고기를 썰자, 잘린 단면에서 탐스럽고 붉은 속살과 육즙이 터지듯 흘러나온다.
시엔은 포크로 고기 한 점을 입에 넣고 나서, 아주 천천히 음미했다. 씹을 때마다 과실처럼 터져 나오는 육즙과 고기의 풍미, 너무 질기지도 지나치게 연하지도 않은 적당히 부드러운 씹는 맛, 값비싼 향신료가 자아내는 감칠맛 하나하나를 음미하며.
그렇게 고기 한 점을 삼킨 시엔이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
“꼭 그날의 일이 떠오르네요.”
“시, 시, 시엔…….”
집무실의 바닥에는 네 발로 개처럼 엎드린 채 고개를 조아리는 남자가 있었다.
“오랜만입니다, 대부님.”
마치 그 시절의 시엔처럼.
“아니, 아버지라고 불러야 할까요?”
시엔이 즐거운 듯이 입을 열었다.
“여기까지 어려운 걸음을 해주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아, 아아…….”
등 뒤에서 스며드는 창백한 달빛이 검고 어두운 역광을 드리운 까닭에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마치 밤하늘처럼 검고 어두운 실루엣이 테이블 위에 앉아 있을 따름이다.
“급히 오시느라 제대로 식사도 챙기지 못하셨을 텐데, 필시 많이 시장하시겠지요.”
시엔이 말했다. 말하고 나서는, 그대로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나이트워커 가문의 집사가 은쟁반에 담긴 요리를 가져온다.
시엔이 먹고 있는 것과 똑같은, 척 보기에도 군침이 도는 탐스러운 스테이크였다.
“자, 그러지 말고 일어나서 함께 드시죠.”
그렇게 말하며 시엔이 손을 뻗었다. 자신의 앞에 함께 앉아 음식을 들란 것처럼.
“저, 저따위가 어찌 감히─!”
“먹기 싫으신가요?”
시엔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창백한 역광에 가려진 탓에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검고 어두운 실루엣이 불길하게 고개를 갸웃거렸고, 남자는 화들짝 놀라 급히 시엔의 맞은편에 착석했다.
“이렇게 나란히 식사를 하니, 옛날 추억이 떠오르네요.”
다시금 나이프로 고기를 썰며 시엔이 웃었다. 마치 부자(父子)의 그리운 추억을 되새기듯이.
“그때는 참 행복했었죠. 아직도 그때 먹었던 고기의 맛이 생각나요.”
남자, 시엔의 ‘아버지’는 대답할 수 없었다. 그저 공포 속에서 당장이라도 실금할 것 같은 충동을 억누르는 게 고작이었다.
“이곳에 와서 온갖 부족함 없는 음식을 맛봤다고 생각하지만, 그 어떤 것도 그 시절 먹었던 고기에 비할 것은 아니었죠.”
시엔이 말했다.
“돌이켜 보면 그다지 질도 좋지 않은 고기에, 싸구려 향신료를 범벅으로 부은 요리였을 텐데 말입니다.”
“저, 저, 저는…….”
시엔의 말에 남자가 떨리는 목소리로 되물었다.
“사, 살 수 없는 거겠죠……?”
“살고 싶습니까?”
그 말에 시엔이 쓴웃음을 지으며 되물었다. 남자가 필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죽을 짓을 하지 말았어야지.”
접시 위의 스테이크를 썰며 시엔이 남의 일처럼 대답했다. 남자를 향해 일말의 시선조차 주지 않고.
* * *
“복수치고는 너무 늦은 복수구나.”
그날 밤, 역광을 드리운 시엔을 향해 라일라가 말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남자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좀 더 일찍 가족들에게 말했어도 해결될 문제였는데 말이야.”
그 말에 시엔이 조용히 고개를 젓는다.
“복수가 아니에요.”
“그럼 뭐지?”
“딱히 ‘복수’를 입에 담을 정도로, 그 남자는 가치 있는 존재가 아니거든요.”
“그럼 어째서 그를 죽인 거니?”
“우리의 정원을 흙이 묻은 발로 어지럽힌 까닭에.”
시엔이 말했다. 그리고 그 말과 함께 테이블 위의 블랙리스트에 적혀 있는 이름 하나가, 피처럼 붉은 잉크로 그어졌다.
그것이 그가 죽어야 할 이유였다.
거기에는 어떤 개인적인 감정이나 사적인 원한 따위는 없다.
“텃밭의 잡초를 뽑고 해충을 제거하는 이유는, 잡초나 해충을 증오하거나 미워해서가 아니니까요.”
그저 그들의 아름다운 정경(情景)을 해치는 까닭에.
“그렇지.”
라일라가 조용히 미소 짓는다.
“그리고 우리가 관리해야 할 정원은, 더 이상 좁쌀처럼 비좁은 공화국이 다가 아니고요.”
전쟁은 끝났다. 대륙 전체에 지워지지 않을 상흔을 남기고 피와 함께 그어진 손톱자국, 그 속에 무엇을 뿌리 내리고 무엇을 심을지 결정하는 것은 그들 ‘정원사’의 몫이다.
그들은 새로운 세계의 정원사였고, 또한 운명의 재단사였다.
“무척이나 기대되는구나.”
그렇기에 라일라가 즐거운 듯 미소 지었다.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남자의 시체에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네가 가꾸어갈 정원의 모습이.”
“우리 가족이 함께 가꾸는 거예요.”
시엔이 말했다.
“이 세상은 오직, 우리 가족만을 위해 존재하고 있는 정원이니까요.”
그들에게는 가족이 전부였다.
그리고 가족 이외의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곳, 발밑에 널브러져 있는 남자의 시체처럼.
그 남자는 한순간도 시엔의 아버지였던 적이 없다.
그저 그들 가족이 가꾸는 정원의 토양 속에 파묻혀, 훗날 사람의 살과 피와 뼈를 먹고 자라며 꽃피우게 될 것들의 양분(養分)이자 비료에 불과했으니까.
전쟁이 끝나고 나서, 바로 이 순간에도 땅에 묻혀 있는 헤아릴 수 없는 희생자들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