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2화. 라일라 (1)
세상 사람들은 늘 거짓말을 하고 있다.
“라일라 아퀴나스.”
그것이 어린 소녀의 눈에 비친 세상의 진실이었다.
“너는 우리 아퀴나스 가문과 제국, 그리고 교회의 희망이란다.”
그 말은 거짓이었다.
소녀는 희망 따위가 아니라, 그들 가문의 추악하고 더러운 욕망을 이루는 도구에 불과했으니까.
아퀴나스 가문의 어른들, 탐식(貪食)하지 말라는 교회의 계율이 무색할 정도로 돼지처럼 살이 찐 그들의 말을 들으며 소녀는 비로소 ‘거짓’을 알게 되었다.
《이단을 가려내는 눈》.
무의식적 영역에서 일어나는 근육이나 동공의 움직임, 온갖 정보를 공감각(共感覺)의 형태로 가공하며 진실을 가려내는 능력.
그 능력을 통해 소녀는 사람들이 진실을 말할 때 검은색을, 거짓을 말할 때 흰색의 빛을 띤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소녀의 눈에 비친 세상은 눈처럼 새하얀 순백으로 가득했다.
굳이 입으로 거짓말을 담지 않아도, 그들의 삶과 행동 하나하나에는 거짓이 넘쳐나고 있었다.
자기 자신에게 애써 거짓말을 하고, 자신의 마음을 속이며, 자기 자신의 진실 앞에서 고개를 돌리며 살아가는 자들.
세상 사람들은 늘 거짓말을 하고 있다.
“나는 정말 괜찮아.”
소녀의 동생, 빌헬미나 아퀴나스 역시 세상의 수많은 거짓말쟁이 중 하나였다.
“계속해서 언니의 동생으로 살아갈 수 있으니까.”
그녀는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 앞에서, 애써 괜찮다며 미소 지었다. 미소 짓는 그녀의 주위에서 눈처럼 새하얀 빛이 춤을 추었다.
“나는, 지금도 행복해.”
거짓말이다.
라일라 자신을 향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을 향해 속삭이는 거짓말.
“내 앞에서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걸 너 역시 누구보다 잘 알잖니, 아퀴나스.”
“거짓말이 아니야!”
소녀의 말에 그보다 더 어린 소녀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나는 정말로 언니 곁에 있는 걸로 충분해!”
바로 그때, 소녀의 주위에서 춤추던 하얀빛이 사라졌다. 그리고 검고 어두운 그림자가 내려앉았다.
이것은 진실이다.
동전의 양면, 빛과 그림자처럼 얽혀 있는 무엇.
그리고 진실과 거짓이 섞여, 소녀의 주위에는 희지도 어둡지도 않은 잿빛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이단을 가려내는 눈》.
두 자매가 나란히 계승받은 아퀴나스 가문의 힘.
그러나 장녀 라일라가 이 능력을 통해 이단심문관장이 되고 가문의 명성을 널리 펼치는 사이, 아퀴나스는 ‘가문의 혈통적 순수성’을 지키고 널리 퍼뜨리기 위한 씨받이가 되어 어둠 속에서 삶을 마감할 것이다.
완전한 근친.
일정 촌수 이내의 아퀴나스 가문을 순혈로 규정하고, 순혈 사이의 ‘교배’를 통해 그녀들처럼 강력한 핏줄을 가진 아이를 낳는 방법.
괜찮을 리가 없었다.
사랑하는 동생 빌헬미나가 가문을 위해 희생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아니, 설령 빌헬미나가 진실로 그것을 괜찮다고 여겨도 라일라는 그렇지 않았다.
괜찮지 않다.
그것이 라일라 아퀴나스의 진실이었다.
* * *
“제발 용서해 주세요, 아버님!”
소녀, 빌헬미나가 애걸하고 있었다.
전신이 피투성이가 되어 의식을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상처 입은 라일라를 뒤로하고.
“부탁이에요, 아버님!”
“무엇을 용서하란 말이냐?”
빌헬미나의 말에 ‘아버지’라 불린 남자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너희에게 용서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맞아, 빌헬미나.”
그 말에 상처 입은 라일라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너는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단다.”
“아니야, 전부 나 때문에……!”
그 시절의 어리고 미숙했던 빌헬미나가 외쳤다.
모두 자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라일라는 기꺼이 그녀를 긍정해줄 것이다.
“너희는 그 무엇도 용서받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녀들의 아버지는 달랐다.
“너희는 검의 날이 부러졌다고 해서, 검을 용서할 것이냐?”
그가 되물었다.
“책상의 다리가 부러졌다고 해서, 회화(繪畫)의 도화지가 찢어졌다고 해서, 그것을 ‘용서’할 것이냐?”
“…….”
아니다.
“쓸모를 잃고 용도를 잃은 사물을 ‘용서’하는 자는 없다.”
아버지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게 말할 때, 그의 색은 어느 때보다도 검고 어두운 빛을 띠고 있었다.
진실을 말하는 색이었다.
“너희가 수행해야 할 기능과 목적을 잃어버릴 때, 존재의 이유를 상실할 때, 너희는 그 무엇도 용서받을 필요가 없다.”
단지 폐기되고 버려질 뿐.
“……그럼 죽이세요.”
바로 그때, 라일라가 말했다.
“도구로 존재해야 할 이유와 기능을 상실한 저를 버리고, 이 아이─ 빌헬미나에게 제가 수행했어야 할 역할을 부여해주세요.”
아버지는 말없이 라일라를 바라보았다.
그 역시, 아퀴나스 가문의 가주이자 핏줄을 타고난 자다.
그리고 그가 보기에 라일라의 눈빛은 일말의 거짓도 없는 진실의 빛을 띠고 있었다.
“우리의 눈이 가진 힘을 아느냐?”
그럼에도 남자가 되물었다. 어느 때보다 섬뜩하고 기이하게 빛나는 이채를 머금고.
“세상 사람들은 우리 가문의 이 눈동자를 일컬어 《이단을 가려내는 눈》이라 부르지.”
그곳에 있는 이들 모두가 알고 있는 새삼스러운 사실.
“그러나 이단(異端)은 가려내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남자는 그 눈동자에 깃든 이름을 부정하며 말을 잇는다.
“이단은 규정하는 것이다.”
“…….”
“이단의 낙인이 씌워지고 싶으냐, 라일라?”
아버지가 물었다.
“교회의 이단이 되어 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고통을 오롯이 겪을 수 있겠느냐?”
짧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게 빌헬미나를 위한 길이라면, 기꺼이.”
침묵 끝에 라일라가 대답했다. 일말의 동요도 흔들림도, 망설임도 없는 담담한 목소리로.
“언니!”
빌헬미나가 소리친다.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짧은 침묵 끝에, 그가 입을 열었다.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무엇인지 아느냐, 라일라?”
“뭐죠?”
“순교(殉敎)는 고통이 아니다.”
아버지가 말했다.
“자신의 죽음이 의미가 있고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인간은 그 어떤 고통 속에서도 기꺼이 행복하고 만족할 수 있는 법이지.”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을 위해 죽는 것, 그것은 결코 고통이 될 수 없다.
“일류 고문가와 그렇지 않은 자의 차이는, 고통과 ‘괴로움’을 구별하는 것에 있다.”
고통과 괴로움.
“물론 대다수의 범인이라면, 그들의 고통이 곧 괴로움이 되겠지. 그렇기에 육신을 상처 입히는 것으로 고통을 주고, 육신의 아픔을 곧 ‘괴로움’이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이다.”
라일라는 침묵했다.
“하지만 진정으로 고통과 괴로움의 차이를 이해하고 있다면, 지금 네가 입은 상처 따위는 아무 괴로움도 되지 못한다는 걸 알겠지.”
이어지는 말에 침묵하던 라일라의 표정에, 비로소 동요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훗날 ‘암살자들의 어머니’라 불리며 대륙의 모든 이들을 경외에 떨게 할 운명을 가진 소녀.
하지만 적어도 이 순간의 그녀는, 그저 세상의 풍파 앞에서 저항할 수 없는 힘없고 나약한 소녀에 불과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신(神) 앞에서 순교자다.”
아버지가 말했다.
“순교자의 가장 커다란 고통은 결코 자신의 희생이 아닐지니, 그들의 신을 파괴하는 것이다.”
그렇게 말하며 아버지가 팔을 뻗는다.
라일라가 아니라, 그곳에 있는 빌헬미나를 향해서.
“너의 신은 무엇이더냐, 라일라?”
“……!”
그곳에 그녀의 신이 있었다.
사랑하는 여동생, 소중한 가족.
“순교자는 결코 자신의 고통은 돌아보지 않으매, 그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은 오직 그들의 신을 상처 입히는 것이니.”
어리고 미숙했던 라일라의 머리 위에서, 아버지가 차갑게 조소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손끝에 깃든 살의를 보자마자 이해할 수 있었다.
저것이 자신을 향해 깃든 것이 아님을.
자신이 아니라, 자신의 신을 향해.
자신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는 가족을 향해.
“아…….”
그렇기에 비로소 라일라는 무릎을 꿇었다.
“잘못…… 했어요…….”
무릎 꿇고, 아버지의 앞에서 고개를 조아리며 처음으로 애걸했다.
그녀의 어리석은 지혜가 가져온 결과.
그럼에도 아버지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빌헬미나가 비명을 내질렀다. 고통 속에서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어리고 미숙한 그녀가 살이 찢어지고 뼈가 드러나는 고통을 참을 수 있을 리 없던 까닭에.
라일라는 다시금 소리를 높였다.
그녀에게는 가족이 전부였고, 하나밖에 없는 가족이 상처 입고 고통받는 것
“무엇을 잘못했지?”
“어리석음…….”
아버지의 질문 속에서 라일라가 대답했다.
“어리석음이 저의 죄예요.”
알량하기 짝이 없는 결의 하나로 운명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던 어리석음.
“그래, 라일라. 너는 늘 지혜로운 아이였지.”
그 대답에 처음으로 아버지의 표정에 흡족함이 감돌았다.
“두 번 다시 같은 어리석음을 반복하지 말거라.”
* * *
“가족이 되고 싶으냐.”
“저에게는 이미 가족이 있어요.”
일찍이 라일라의 대부이자 당대 가주였던 빌 나이트워커.
그 남자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라일라는 절대 당황하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어리석은 아이가 아니었으므로.
“그 아이, 빌헬미나는 저의 전부예요.”
남자의 말에 라일라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제가 사랑하는 전부를 위해, 저는 무슨 짓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어요.”
“어떤 각오를 말이냐?”
“저를 당신들의 ‘가족’이 되게 해주세요.”
훗날 《암살자들의 어머니》라 불리며 경외받게 될 어린 소녀가 말했다.
“저는 나이트워커 가문이 인간이 돼서, 해야 할 일이 있거든요.”
그녀에게는 가족이 전부였고, 그 외의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 * *
“네년…… 설마 살아 있었나.”
“누구에게나 신이 있는 법이지요.”
남자의 말에 라일라가 말했다.
일찍이 그녀의 ‘아버지’였고 아퀴나스 가문의 가주였던 남자를 향해서.
그 시절 어린 소녀의 미숙함 따위는 조금도 찾아보 수 없는, 더없이 차갑고 냉혹하기 그지없는 눈빛의 여성이.
일찍이 그녀의 앞에서 공포로 군림했던 남자를 무릎 꿇리고, 그의 목숨을 손바닥 위에 놓고 즐거운 듯이 조소하고 있는 그녀가.
암살자들의 어머니, 라일라 나이트워커.
“당신의 고통 따위는 필시 사소하기 짝이 없는 것이겠지요.”
그녀가 말했다. 눈앞에서 상처 입고 헐떡이는 남자를 내려다보며.
“그렇기에 오늘, 저는 당신의 신(神)을 죽일 겁니다.”
그 남자, 아버지에게는 마찬가지로 아퀴나스 가문의 눈이 있었다.
이단을 가려내는 눈.
동시에 그는 알고 있었다. 이단이란 가려내는 것이 아니라, 규정 짓는 것임을.
“대를 거듭해온 아퀴나스 가문의 역사는 오늘로 종지부를 찍을 것이고, 당신과 당신의 가문이 지켜온 거짓된 우상은 역사의 무덤 속으로 사라질 테지요.”
라일라가 말했다.
아울러 그녀의 눈동자에 깃든 의심할 여지가 없는 진실을, 알아보지 못할 아버지가 아니었다.
“아, 아아……!”
아버지가 소리쳤다.
“제, 제발! 부탁이다, 라일라! 나의 딸아!”
그 시절의 라일라처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 속에서 애걸하듯이.
“La famiglia è tutto(가족이 전부다).”
그렇기에 라일라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녀의 아무것도 아닌 것을 향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