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 가문의 천재 어쌔신-192화 (192/200)

외전 3화. 시엔 & 라일라 (2)

그날, 적대 길드에 산 채로 사로잡혀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시엔 앞에 그녀가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냈을 때.

시엔은 처음 라일라를 보았으나, 라일라는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어린 시엔을 본 적이 있었다.

시엔이 여덟 살이 되던 해, 사람을 죽이는 재능을 깨닫고 ‘대부’의 아들이자 범죄 길드의 사냥개로서 하루하루를 살아갈 무렵.

굶주림을 참다못해 뒷골목의 시궁쥐를 잡아 산 채로 뜯어먹고 있던 시엔의 등 뒤에, 그녀는 있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보는 차가운 눈동자를 하고서.

그 시각, 그녀가 어째서 거기에 있었는지 시엔은 알 도리가 없었다. 아마 라일라 자신조차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저 바로 그날, 그 시간, 그 순간에 그녀는 그곳에 있었다.

우적.

구정물과 토사물에 범벅이 된 시궁쥐의 살을 뜯으며, 시엔이 낯선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입에 피가 잔뜩 묻어 짐승 같은 모습으로.

그 아이의 눈동자는, 마치 문명을 이해하지 못하는 야생의 맹수 같았다.

그렇기에 라일라가 흥미로운 듯 미소 지었다.

“이름이 뭐니?”

“……없어요.”

시엔이, 아니, 이름 없는 소년이 대답했다.

“그러니.”

라일라는 놀랄 것도 없다는 듯 대답했다. 이 도시의 뒷골목에서 살아가는 삶이란 그런 것이다. 이름도 삶의 목적도 의미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것.

그저 죽기 위해 살아가는 삶.

아마 세상의 누군가는 그런 삶을 잘못됐다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 삶을 가엾게 여기며 의미 있게 바꾸도록 저마다의 말을 할 것이다.

그러나 라일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 이유도 없었다.

그녀에게는 가족이 전부였고, 눈앞의 소년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까닭에.

그 말을 끝으로 라일라는 무심히 등을 돌렸다.

“……저기요.”

바로 그때, 이름 없는 소년이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녀의 바로 등 뒤에서, 서슬 퍼런 날붙이를 겨누며.

“가진 거…… 다 놓고 가요.”

라일라가 헛웃음을 흘린다. 지금 자기가 감히 누구에게 칼을 겨누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일까. 그저 어린아이의 재롱을 보는 것 같은 표정으로 라일라가 웃었다.

“내가 왜 그래야 하니?”

“죽고 싶지 않을 테니까요.”

소년이 말했다.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은 없잖아요?”

라일라가 다시금 웃음을 터뜨렸다.

“살고 싶니?”

“저는 당신 이야기를 하는 거예요.”

“나는 네 이야기를 하고 있단다.”

라일라가 말했다. 소년은 잠시 침묵했다.

“살고 싶어요.”

“왜?”

“죽고 싶지 않으니까요.”

여덟 살 어린아이의 논리는, 하물며 제대로 된 교육조차 받지 못하고 자란 아이의 논리가 정교할 리 없다. 그저 자신이 느끼는 가장 순수한 진실을 말할 뿐이다.

“세상에 죽고 싶은 사람은 없는 법이지.”

그렇기에 라일라가 말했다.

“그러나 기억하렴, 죽음은 결코 누군가를 배려하는 법이 없단다.”

담담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자, 그럼 오늘 ‘죽음’이 배려하지 않는 것은 너와 나 둘 중에서 어느 쪽일까?”

그 말에 소년이 무심코 숨을 삼켰다.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하고 뒷골목에서 짐승 같은 삶을 살아왔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짐승의 감이 위험하다고 속삭이고 있었다.

눈앞에 있는 존재는 지금까지 자신의 손에 죽은 인간들과 다르다는 것을.

그렇기에 소년이 칼을 거두었다. 그 모습에 라일라가 다시 미소 짓는다.

“눈치가 빠른 아이구나.”

미소 짓고 나서는, 품에서 무엇을 꺼내 들었다.

공화국 은화 한 닢.

“!”

그녀가 던져준 은화를 받자마자 소년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고, 고마워요─.”

그러나 말하고 나서 고개를 들었을 때, 그곳에는 누구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마치 모든 게 처음부터 신기루였던 것처럼.

그럼에도 시엔의 손에 쥐어져 창백한 은빛을 빛내는 동전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  *  *

“여기 있었구나.”

그녀는 그곳에 나타났다.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고 지옥 같은 고문으로 너덜너덜해진 소년의 앞에.

그 시절의 소년에게는 이름이 있었다.

정확히는 남색을 밝히는 적대 길드의 간부를 암살하기 위해 위장한 ‘상품’의 이름이었지만.

그리고 시엔의 앞에 그녀는 나타났다.

“가족이 되고 싶니?”

“가족……?”

피투성이가 되어 의식마저 흐릿해진 시엔이, 힘겹게 되물었다.

“가족이…… 뭐예요?”

“우리의 전부.”

라일라가 말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

“소중한 것……?”

“그렇단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내 삶 전부를 바쳐서 희생할 수 있을 정도로 소중한 것이지.”

담담하게, 그러나 그 누구보다 자애로운 어머니의 목소리로.

“저도 가질 수 있는 거예요?”

“네가 하기 나름의 일이란다.”

라일라가 말했다. 짧은 정적 끝에, 시엔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름이 뭐니?”

“시엔이요.”

“예쁜 이름이구나, 시엔.”

이름 없던 소년은 그렇게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라일라가 처음 시엔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소년은 비로소 시엔이 되었다.

*  *  *

“어머니……!”

시엔이 실패했던 그날, 공화국과 나이트워커 가문이 멸망하는 미래를 막지 못하고 모든 게 부서졌을 때.

시체로 쌓아 올린 산 위에 그녀, 암살자들의 어머니가 있었다.

“네가 내 아들이라서 무척이나 행복했단다.”

그녀의 동생이자 《죽음의 성모》 빌헬미나 아퀴나스를 필두로 하는 ‘제국의 가족들’ 앞에서.

“살아남으렴, 시엔.”

시엔을 향해 등을 보이고 있는 라일라가 말했다.

“너는 나의 전부란다.”

그게 가족이었던 까닭에.

가족이란 그들의 전부이고, 그것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자신의 삶 전부를 바쳐 희생할 정도로 소중한 것이니까.

그러나 한 명의 가족이 다른 가족을 위해 희생할 때, 희생을 자처한 가족은 웃으며 순교자(殉敎者)가 될 수 있을지언정 살아남은 쪽은 그렇지 못하다.

그것은 산 채로 자신의 신이 살해당하는 순간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죽음보다 더한 고문이자 괴로움이다.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고통.

참으로 우스운 일이었다.

라일라가 사랑하는 가족, 시엔을 위해 배려한 희생이─ 역설적으로 이 세상에서 시엔에게 줄 수 있는 가장 끔찍한 고통이 된다니.

“이제부터는 네가 우리 가문을 이끌어갈 가주란다.”

“어머니……!”

“부디 살아남아 목숨을 보전하세요, 가주님.”

그럼에도 라일라는 기꺼이 자신이 희생하기를 택했다.

“경애하는 나이트워커 공작 각하, 우리 암살자들의 아버지시여─.”

자기 손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장 끔찍한 고통과 괴로움을 남기는 결정을.

*  *  *

“…….”

잠에서 깨어난 라일라가 눈을 떴다. 유리창 밖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고, 해는 중천에 떠 있었다. 멀리서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났다.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평화로운 하루였다.

그렇기에 라일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집사가 가져다준 커피를 홀짝이며 미소 지었다.

시엔은 없다.

암살자들의 아버지로서, 새로운 정원을 꾸리기 위해 그녀의 아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으니까.

그리고 많은 짐을 내려놓은 라일라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를 홀짝이며 미소 지었다.

행복했다.

그리고 그 행복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눈앞에서 그들의 신(神)을 잃고 고통을 겪으며 피를 흘렸든, 그것은 그녀가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그녀에게는 가족이 전부였고, 그 이외의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으므로.

*  *  *

암살자들의 아버지, 시엔 나이트워커.

이 세상의 모든 이들이 두려워하는 존재가 그곳에 있었다.

공화국 수도, 베네토 총독궁의 일실.

이 나라의 지배자를 자청하는 10인 위원회, 그들조차 감히 경외하며 벌벌 떨고 두려워하는 지배자들 위의 지배자가.

시엔은 그곳에 있는 위원들의 보고를 받으며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그들의 입을 통해 흘러들어오는 이야기는 어디에나 있는 비극적인 이야기였다.

어디서 전쟁이 일어나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며 대륙 위에 흘러넘치는 피의 이야기.

그러나 누군가의 비극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하나의 비즈니스에 불과하다.

장의사는 사람이 많이 죽기를 바란다. 그래야 장사가 잘될 테니까. 대장장이는 전쟁이 많이 벌어지길 바란다. 그래야 자신의 무기를 팔 테니까.

그렇기에 시엔은 문득 생각했다.

이 세상을 좀 더 좋게 바꿀 수는 없을까?

의도적으로 전쟁의 불씨를 부풀리고, 가문과 가문 사이의 불화를 부추기고, 달콤한 말로 꼬드기며 눈을 멀게 하고 어리석은 결정을 내리게 하는 일을 그만둬서, 세상을 좀 더 평화롭게 바꿀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의 비극이 줄어들고 슬픔이 줄어들 수 있도록 노력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나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할 수 있냐, 없냐의 문제조차 아니다.

해야 할 이유조차 없었다.

그것은 결코 만한 그럴 가치가 없는 일이었던 까닭에.

세상은 단 한 순간도 평화로웠던 적이 없다. 심지어 그들이 태어나기 전부터, 애초에 나이트워커 가문의 역사가 시작되기 전부터 그랬다.

지금까지 늘 그래왔듯 지옥 같을 것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일찍이 밤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암살자들의 아버지는 그들을 운명의 가축으로 삼아 자신들의 행복을 쟁취할 것이다.

누군가의 운명을 빼앗는데, 운명의 창 같은 거창한 신기의 힘을 빌릴 필요조차 없다.

그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같은 일을 수행할 뿐이다.

시엔에게는 가족이 전부였고, 그 외의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던 까닭에.

*  *  *

“돌아왔어요, 어머니.”

“어서 오렴.”

시엔이 저택에 돌아오자, 라일라는 미소 지으며 시엔을 맞아주었다.

이 세상 어디에나 있을 것 같은 사이좋은 아들과 어머니의 풍경.

“오랜 여정에 고생이 많았겠구나.”

라일라는 다정하게 시엔을 포옹하고 뺨에 입을 맞춘다.

“배가 고프지? 곧 저녁 식사가 준비될 거란다.”

“네, 어머니.”

그 말에 시엔이 미소 짓는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어머니와 아들의 대화, 방식.

그리고 그 ‘당연함’을 손에 넣기 위해 시엔과 라일라는 평생을 싸워왔다.

심지어 지금 이 순간이 평화롭다고 해서, 그게 영원히 이어지지 않을 거란 사실을 알고 있다.

언젠가 이 모든 것은 끝이 날 것이다.

그 시절의 시엔이 기적적으로 바꾸었던 미래와 달리, 그 무슨 수를 써도 절대로 바꾸지 못할 끝이 다가올 것이다.

그럼에도 시엔은 개의치 않았다.

그저 이 순간, 지금의 행복을 손에 넣기 위해 그들의 손을 피로 더럽히고, 시체의 산을 쌓아 올리며, 그렇게 쌓은 유해(遺骸)의 비탈을 올라 저 밤하늘 위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별을 손에 넣을 것이다.

그들은 그 어떤 죄책감도 고민도 하지 않았다.

오직 그들의 발밑에 쌓아 올린 유해의 비탈길이, 별에 닿기 충분할지를 걱정할 따름이다.

그리고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그들이 쌓아 올린 시체의 산은 지나칠 정도로 충분히 높았다.

그들이 평생을 꿈꾸어 온, 저 밤하늘 위에 매달린 별에 손이 닿을 정도로.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