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 가문의 천재 어쌔신-193화 (193/200)

외전 4화. 시엔 (3)

가족이 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세례를 마치고 살아남았을 때, 시엔이 그곳에 있는 ‘가족들’의 존재를 처음으로 느꼈을 때.

“잘 버텨주었구나, 시엔.”

새롭게 태어난 자신을 부축하고 다정하게 포옹해 주는 라일라의 포옹을 받았을 때, 어린 시엔은 그 감각을 본능적으로 이해했다.

이 따스함이야말로 자신보다 소중한 무엇이고,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야 할 무엇이라고.

이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일이라도 기꺼이 감내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곳에 있는 이들 모두가 같았다.

그들이 느끼는 그 감정이 진실된 것인지 거짓된 것인지, 모종의 세뇌인지 아닌지 따위는 누구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이 순간 그들이 느끼고 있는 감정, 그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충만해진 삶의 의미, 그저 그것을 긍정하고 받아들일 따름이다.

설령 이것이 거짓된 감정이라 쳐도, 그들의 거짓은 진실보다 훨씬 더 붉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렇게 그들에게는 가족이 전부가 되었다.

*  *  *

세상에서 가장 고결한 기사가 그곳에 있었다.

“「미카엘의 자세」.”

검성(Sword Saint) 오스카 그란델.

아버지 검마 오스왈드 그란델의 뒤를 이어 그란델 대공 가문의 가주이자 샤를마뉴 왕국 최강의 기사였던 ‘검성’ 롤랑의 이명을 이어받은 검사.

불패의 신화를 쌓아 올린 대륙 최강의 기사.

찬란한 금빛으로 빛나는 인간찬가의 의지, 오러를 날개의 형태로 펼치며 휘감은 모습은 의심할 여지가 없는 치천사 미카엘의 화신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에 맞서 암살자들의 아버지 역시 단검을 고쳐 잡았다.

그 시절의 시엔이 쓰러뜨린 그 어떤 적보다 강했던 남자.

그란델 대공의 금빛 날개가 오러로 된 날카로운 깃털을 사출하고, 휘몰아치는 깃털의 세례 속에서 날갯짓하듯 땅을 박찬다.

타앗!

쇄도하는 깃털이 시엔에게 채 절반의 거리를 좁히기도 전에, 오스카는 이미 시엔의 눈앞까지 쇄도해 거리를 좁히고 일검(一劍)을 휘두르고 있었다.

“!”

시엔이 단검을 역수로 고쳐 잡고 그 검격을 맞받아치자, 엇박자로 오스카의 등 뒤에서 헤아릴 수 없는 깃털의 세례가 내리꽂혔다.

푸욱!

오스카의 일격에 움직임이 봉쇄되어 있는 상황에서, 앞서 사출된 몇몇 깃털을 피하지 못하고 직격으로 맞는다.

촤악!

살을 찢고 내리꽂히며 혈화(血華)가 꽃을 피운다.

빠르다. 그리고 강했다.

적어도 그 시절의 시엔에게 있어 ‘오스카 그란델’이란 이름의 남자는 결코 우습게 볼 상대가 아니었다.

대륙 제일의 기사 가문에서 태어나 감히 그 누구도 범접하지 못할 재능, 자기에 대한 확신, 모든 것이 완벽하게 맞물려 꽃을 피운 오스카 그란델은 강했다. 아니, 강하다는 말조차 부족했다.

그가 펼치는 인간찬가의 의지는, 말 그대로 인간이 검을 쥐고 보여줄 수 있는 도(道)의 끝이었다.

일찍이 샤를마뉴 왕국 최고의 기사, 기사도의 모범이라 일컬어진 검성 롤랑 경조차 능가하는 고결함.

가장 완벽한 온실에서 배양되었기에, 그는 그 어떤 세상의 풍파를 맞고 자라난 꽃보다 아름다웠다.

무심코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다.

아름다움이나 고결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삶.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려지고 뒷골목의 사냥개로 자라났다.

나이트워커 공작 가문이라고 하지만, 그들의 역할은 결국 사람의 목숨을 가지고 노는 장사꾼이다.

가문의 흑색 임무라는 미명 하에, 암살자로서 온갖 더럽고 추한 살육을 저지른 시엔이다.

그럼에도 그런 시엔을 향해 오스카는 결코 경멸하지도 조소하지도 않고, 오직 기사의 예를 표하며 존중을 표할 따름이었다.

그날, 시엔은 진정한 고결함을 이해했다.

그럼에도 질 수 없었다.

시엔 자신의 존재에 묻은 추함이나 얼룩 따위는 처음부터 그리 대수로운 문제가 아니었던 까닭에.

그 얼룩지고 추한 자신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가족이 희생하며 스러졌는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는 까닭에.

시엔은 단 한순간도 진심으로 자신을 사랑한 적이 없었다.

단지 자신보다 더 소중한 가족들이 사랑했던 자신을 사랑할 뿐이었다.

그 앞에서 추함이니 고결함이니, 아무짝에도 의미가 없는 것들이다.

시엔이 죽지 않고 살아가는 이유는 오직 하나, 자기보다 더 자신을 사랑했던 가족의 유지에 보답하기 위함이다.

그렇기에 쓰러질 수 없었다.

저주처럼 자신을 옥죄고 있는 가족들의 유지,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살아남아야 했다.

칼날이 맞부딪친다.

어떤 선(善) 앞에서도 절대 패배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아서.

시엔의 단검이 사방에서 뱀처럼 미끄러졌고, 그에 맞서 오스카의 너무나도 올곧고 흔들림 없는 천검(天劍)이 춤을 춘다.

드넓은 하늘, 암살자들의 아버지로 거듭난 지금의 시엔조차 무심코 벽을 느낄 정도의 상대.

하지만 무너질 수 없었다.

더 이상 이 세상에 자신을 사랑하는 가족 따위는 남아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시엔만은, 그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홀로 남겨져 저주처럼 그들의 유지를 이어받는 삶.

하지만 그런 끔찍한 저주라 할지라도 기꺼이 긍정했다.

그렇기에 절대 쓰러질 수 없었다.

설령 그 상대가 삶에서 단 한 번도 잘못된 길을 걸어본 적 없는, 대륙 최강의 기사라 할지라도.

“강하구려.”

여기서 죽을 수 없었다.

살아야 했다.

살아남으렴, 시엔.

살아, 시엔.

시엔에게는 죽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다.

시엔이 그 누구보다 사랑하던 이들이, 자신의 죽음을 바라지 않은 까닭에.

왜 자신에게 이런 고통을 주었을까.

처음으로, 시엔은 가족들을 원망했다.

눈앞의 강자와 검을 맞대며 사선(死線)을 넘나드는 와중에도 오직 가족의 생각만이 머릿속에 남았다.

이대로 편해지고 싶었다.

그러나 편해질 수 없다.

자신을 위해 희생된 가족들의 유지, 그 저주와도 같은 유지가 시엔을 사슬처럼 묶고 채찍질을 했다.

세상에서 가장 고결하고 긍지 높은 기사 앞에서, 시엔 역시 검을 휘둘렀다.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추하기 짝이 없는 모습으로.

오직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머리 위에서 검성의 검이 세로로 검이 휘둘러진다.

동시에 그의 등 뒤에 솟은 열두 장의 날개, 그 날개에서 휘몰아치는 오러의 깃털이 화살 세례처럼 내리꽂혔다.

“그대는 지금 내가 싸운 그 어떤 이들보다도, 진정으로 강함을 아는 검사(劍士)요.”

“나는 검사가 아니다.”

그 말에 시엔이 대답했다.

“암살자지.”

살이 찢기고 피가 흐르는 아픔 따위는 시시하다.

자신의 아픔 따위,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깨달았다.

더 이상 자신의 아픔에 슬퍼하고 고통받을 가족은, 이미 이 세계에 없다는 것을.

─시엔이 입은 상처 앞에서 슬퍼해 줄 가족은, 더 이상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

생각하고 나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이깟 아픔 따위, 아무래도 좋다.

이깟 상처 따위, 아무래도 좋다.

시엔에게 있어 이런 상처나 아픔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시엔이 진정으로 두려워했던 것은, 그저 이런 상처와 아픔을 보고 마음 아파할 가족의 고통이었다.

그러나 더 이상 아파할 가족은 없다.

시엔이 입는 상처, 시엔이 입는 고통, 시엔이 흘리는 피를 보고 괴로워하고 슬퍼할 가족은 없다.

모두 죽었으니까.

바로 그 시엔이 살아남기를 바라며.

무심코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자신보다 더 소중한 가족들이 사랑했던 자신을 사랑했던 그들은 이제 없다.

걱정할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시엔이 검을 고쳐 잡았다.

“─!”

이어지는 그 움직임에, 검성 오스카가 일순 당혹스러운 눈빛을 머금었다.

그 움직임이 너무나도 무모하고 어리석어 보였던 까닭에.

자신을 돌보지 않고 동귀어진(同歸於盡)을 각오하고 있는 일격.

아무것도 막지 않고, 오직 상대에게 상처 입힐 생각밖에 하지 않는 광격.

마치 자신을 죽여주길 바라는 것 같은 그 광기 어린 공격성 앞에서, 처음으로 오스카의 검이 굳었다.

굳고 나서 그 이유를 떠올리고는 이내 어처구니가 없어 조소했다.

죽는 것이 두려웠던 까닭에.

그 무엇보다 기사의 도를 추구하며 고결하기를 바란 자신이, 처음으로 암살자의 검 앞에서 ‘죽음의 공포’를 느끼며 물러선 까닭에.

웃기는 이야기다.

“……불패의 기사, 검성 오스카 그란델.”

바로 그때, 일검을 휘두르며 시엔이 담담히 입을 열었다.

“죽음이 두렵나?”

“나는 죽음 따위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렇겠지.”

그 말에 시엔이 웃었다.

“그러나 너의 죽음이 가져올 치욕(恥辱)은 두렵겠지.”

검성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시엔은 알 수 있었다.

방금, 자신을 돌보지 않고 날린 일격 앞에서 오스카가 취했던 자세를 보고 깨달았기에.

순교(殉敎)를 두려워하는 자는 없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오직 신의 죽음뿐이다.

시엔은 살았다. 그러나 헤아릴 수 없는 가족을 잃으며 시엔이 느껴온 그 고통은, 자신이 느끼는 고통이나 아픔 따위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차라리 죽는 게 나았다.

순교자가 되는 게 나았다.

자신이 사랑했고 전부였던 가족, 시엔의 모든 신들이 자신을 위해 희생되고 눈앞에서 살해당하는 것보다는.

그런데 그럴 수가 없었다.

“고결함이 더럽혀지는 게 두렵나?”

시엔이 되물었다.

“나와 함께 진흙탕 위를 구르며 암살자의 검에 더럽혀지고 모욕받는 게 두렵나?”

비로소 하늘 위에 뚫린 구멍을 이해했다는 듯이.

“설령 네가 나를 긍정해도, 세상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

시엔이 말했다.

“너는 그저 비열하고 추한 삶을 살아온 암살자의 손에 목숨을 잃는 거다.”

“…….”

“세상의 눈, 그게 바로 너의 신(神)이겠지.”

고결함, 명성, 명예, 기사의 모든 것은 비로소 누군가의 눈을 통해 성립하는 것이다.

세상의 눈.

그것이 바로 오스카란 이름을 가진 순교자의 신이었다.

“…….”

오스카는 대답하지 않았다.

“오스카 그란델.”

시엔은 개의치 않고 말을 이었다.

“너는 오늘, 이 자리에서 죽는다.”

*  *  *

시엔에게는 재능이 있었다.

그렇기에 나이트워커 가문의 가족이 되어 사랑하는 이들을 지키기 위해 싸우고, 자신의 전부를 바쳤다.

그 행동 자체는 결코 후회하지 않았다.

설령 그 끝에 모든 것을 패배하고 잃고 쓰러져, 사랑하는 전부를 잃었다고 할지라도.

설령 제국의 황성에 사로잡혀, 전신의 가죽이 벗겨지고 두 눈이 적출당해도 개의치 않았다.

자신의 아픔 따위는 사소한 것이니까.

그럼에도 고통스러운 것은, 마지막까지 시엔이 가족의 바람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시엔 나이트워커는 자신의 가족을 상처 입히고 말았다.

그들이 시엔을 향해 상처를 입혔듯이.

그렇기에 후회할 것은 오직 하나, 자신의 무력함이었다.

사랑하는 가족이 눈앞에서 상처 입고 희생하며 죽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나약함.

죽기 전에 죽이지 못한 나약함.

약함.

처음부터 시엔의 죄는 오직 하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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