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암살 가문의 천재 어쌔신-198화 (198/200)

외전 9화. 세상의 악 (4)

1954년, 빌데르베르흐 호텔.

구대륙과 신대륙, 그 외에도 세계 각지의 정, 재계 및 왕실 최고위 관계자들이 하나의 방에 모여 있었다.

그러나 그곳에는 그 어떤 화려한 장식이나 호화로운 무엇도 없었고, 식전주는커녕 그들 정도의 고위층을 위해 마땅히 대접해야 할 일말의 서비스조차 없었다.

아무 장식도 없는 살풍경하고 어두운 방에, 남자가 앉아 있었다.

무릎 위에 얌전하게 앉아 고로롱거리는 검정색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경애하는 우리의 ‘아버지’를 뵙습니다.”

이윽고 그곳에 있는 이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표하고, 차례대로 남자를 향해 다가가 무릎을 꿇고 손등에 입맞춤했다.

아버지. 그것이 남자의 이름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아버지에게 충성하는 맹세하는 이들은, 자신들을 일컬어 「패밀리(Family)」라고 불렀다.

왕족, 대통령, 총리, 거대 정당의 대표, 다국적 기업의 총수…….

그들은 이 세계의 지배자들이었다.

“바쁘신 와중, 모두 어려운 걸음을 해주셨습니다.”

동시에 그들이 충성을 표하는 그 남자, 지배자 위의 지배자가 입을 열었다.

“그럼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아버지라 불리는 그 남자의 진명(眞名)은, 그들 패밀리 내에서도 다섯 손가락으로 꼽을 극소수의 이들밖에 알지 못한다.

과거 패밀리 내의 몇몇 이들 중에는 ‘아버지’가 금주법 당시 부를 끌어모은 이민자 출신의 졸부(猝富)라 비웃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진짜 정체는, 아울러 그가 소속되어 있는 「진정한 가족」은, 감히 그들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물론 거기까지 알지 못하는 이들이라 해도, 이제는 더 이상 누구도 감히 아버지를 비웃지 않는다.

적어도 살아 있는 사람 중에서는.

*  *  *

“시엔 나이트워커.”

강단 앞에서 루나가 입을 열었다.

“또는 ‘암살자들의 아버지’란 이름으로도 유명하지.”

침묵하며 경청하는 학생들을 앞에 두고, 루나의 말이 이어진다.

“알다시피 그는 나이트워커 가문의 마지막 가주(家主)이자, 대륙 전쟁에서 베네토 공화국의 승리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 시대에 더 이상 고귀한 베네토 공화국 같은 것은 없다.

그 어떤 제국도 나라도 영원할 수는 없는 까닭에.

나이트워커 가문이 사라지고 나서도 베네토 공화국은 오랫동안 대륙의 패자로 군림했으나, 시간의 세례 속에서 그들이 자랑했던 모든 것들이 녹슬고 빛이 바래며 새로운 시대의 강자에게 그 자리를 넘겨야 했다.

“그러나 전쟁에서 승리하고 베네토 공화국을 대륙의 패자로 올려놓은 그 시점에서, 시엔 나이트워커를 비롯해 나이트워커 가문의 인간들은 모두 모습을 감추었지.”

루나가 말했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그들을 두고, 여전히 학계에서는 온갖 의견들이 난무하고 있는 실정이다.”

학생들의 침묵 속에서, 루나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너희들의 생각은 어떻느냐?”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학설은, 전쟁을 승리하고 나서 베네토 공화국이 나이트워커 가문의 권력이 비대화되는 것을 경계해 암살했다는 내용이죠.”

학생 하나가 대답했다. 학계에서 가장 정론에 가깝다고 불리는 학설이었다.

그렇기에 그 내용을 듣고 루나는 무심코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 가문은 이미 전쟁이 벌어지기 전부터 공화국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전후(戰後)에 이르러 나이트워커 가문을 축출했다는 것이냐?”

“이미 시엔 나이트워커가 가주였을 당시, 대륙 전쟁과 더불어 마지막 기사들을 통해 흑색 화약과 머스킷, 대포 등이 보급되며 마법과 오러가 설 자리를 잃기 시작했고…….”

루나의 물음에 학생이 재차 여러 가지 대답을 내놓았다.

“나이트워커 가문에 전해졌던 암살자의 검술 역시, 전과 같은 위력과 명성을 얻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따라서 시대의 발전과 함께 그들의 역할 역시 쇠퇴했고 축출되었으며, 그럼에도 나이트워커 가문의 입지와 지위를 고려해 공화국 정부에서 그 사실을 은폐했을 가능성이 높죠.”

모두 일리가 있는 대답이었다.

적어도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학자들이 낼 수 있는 가장 합리에 가까운 대답이었으니까.

바뀌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나이트워커 가문도 이전과 같은 입지를 가질 수는 없었다.

그들은 모를 것이다.

그 시대를 살아갔던 이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신의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인간의 찬가, 그 고결했던 의지의 아름다움을.

그렇기에 루나는 씁쓸하게 미소 지었다.

*  *  *

일찍이 기사도의 나라라 불렸던 샤를마뉴 왕국, 바로 그곳에도 새로운 나라가 세워지고 스러지기를 거듭했다.

그리고 그 나라의 사람들은 일찍이 칠왕국의 마수에서 조국을 구해냈던 로젤리아 샤를을 성녀라 추앙했고, 수도에는 그녀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마찬가지로 과거 칠왕국이 있었던 나라에는, 일찍이 그 시절의 역사적 영웅이자 패왕(霸王) 아서의 동상이 세워졌고 추앙받았다.

그렇게 두 나라는 해묵은 역사의 앙금을 가지고도 어느 순간부터 손을 합쳤고, 두 나라 사이의 원한을 다투는 싸움은 오직 축구 같은 스포츠에서나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  *  *

이 시대까지 마법은 과학적으로 검증되고 그 존재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대기 중에 존재하는 ‘마력’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희미해지며 농도가 옅어졌고, 이 마력이 충만했을 당시에는 이것을 통해 훨씬 더 강력하고 위력 있는 마법을 펼칠 거란 사실만을 추측할 따름이었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아무도 ‘오러’의 존재를 알지 못했다.

학자들은 당대 기사들이 보여준 일기당천(一騎當千)의 무용이 어디까지나 철저하게 교육받은 기사 계급이 판금 갑옷으로 무장하고, 절대적 장비의 우위 속에서 펼쳐진 싸움의 결과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기사들은 마법 역시 능통했으며, 기사들이 보여준 터무니없는 일화는 기사가 곧 ‘마법’을 펼친 결과라 주장했다.

신과 천사, 악마 앞에서조차 굴하지 않고, 강철 갑옷을 종잇장처럼 베어 넘기는 오러 블레이드는 그 시절 으레 있는 과장과 허풍 정도로 치부되었다.

신성 제국의 이단심문관이라 불린 이들이 ‘천사’를 강림시켰다는 일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신도 악마도, 뱀파이어도, 엘프도 마찬가지다.

그 모든 신화가 이제는 그저 미개하고 무지했던 암흑시대, 그 시절 계몽되지 못한 옛사람들의 착각으로 치부되었다.

*  *  *

그것은 이 시대의 인간 중 누구도 기억하지 못하는 싸움이었고 전설이었으며, 신화(神話)였다.

“의지로 운명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그날, 신(神)이 물었다.

“다 함께, 우리의 운명에 맞서요.”

그리고 신에 맞서는 인간이 대답했다.

그 무엇보다 올곧고 꺾이지 않는 의지를 담아서.

의지에는 선악(善惡)이 없다.

의지를 규정짓는 것은 오로지 강함과 나약함이다.

그렇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끝없는 인간의 찬가가 울려 퍼졌다.

운명에 맞서─ 밤을 걷는 자들은 검을 고쳐 잡았다.

서로에게 공명하는 인간찬가의 의지, 오러를 덧씌운 채 서로의 상처를 나누고, 서로의 아픔을 나누며, 사랑하는 누군가를 위해 대신 상처를 짊어지기를 조금도 주저하지 않으며.

그것이 바로 운명 앞에서 저항하는 인간의 모습이었다.

도무지 이길 수 없을 것 같은 싸움, 무모하고 일말의 승산도 보이지 않는 불가능의 싸움.

운명에 맞서는 것, 신에게 맞선다는 것은 결국 그런 의미다.

그럼에도 그들은 누구도 포기하지 않았다.

아무리 이길 수 없어 보여도, 아무리 불가능하고 절망적으로 느껴지는 싸움이라 할지라도, 포기하지 않고 싸웠다.

모두가 함께 서로의 상처를 나누고, 서로의 상처를 짊어지며.

가족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는 미래를 위해서.

그것은 그들 가문이 지금까지 살아온 궤적(軌跡) 그 자체였다.

가족이 오래오래 행복해지기 위해 사람을 죽였다.

가족이 오래오래 행복해지기 위해 전쟁을 조장하고, 양측에 무기를 팔고, 공포와 경외로 군림했다.

“의지로 운명을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운명의 여신이 조롱했다.

“의지로 운명을 이길 수 있냐고 물었지?”

“시엔 혼자의 의지가 아니야.”

“우리 가족 모두의 의지지.”

그 조롱 앞에서 밤을 걷는 자들이 대답했다.

함께 기뻐하고, 함께 울고, 함께 상처받기를 주저하지 않는 가족들이 그곳에 있었다.

*  *  *

“신으로서…….”

피와 상처로 범벅이 되어 힘없이 무릎 꿇은 채, 운명의 여신이 나지막이 속삭였다.

“너희 악인(惡人)들에게…… 최후의 벌을 내리겠노라.”

*  *  *

자유.

그것이 운명에 맞서 굴복하지 않는 의지를 가졌던 나이트워커 가문의 말로이자, 그들에게 주어진 영겁의 저주였다.

*  *  *

1960년 당시 복싱 헤비급의 프로로 데뷔했던 라힘은 일약 세계 챔피언이 되었고, 전설 같은 역사를 써내려갔다.

그리고 모든 것들이 그렇듯 세월과 시간의 세례 속에서 그 명성은 점차 노쇠해지고 빛이 바랬다.

그로부터 1974년, 24세의 젊고 새로운 챔피언이 라힘을 향해 도전장을 내밀었다.

당시 라힘은 이미 4년 가까이 선수 생활을 하지 않았고, 복싱 선수로서도 노쇠했으며, 사람들은 모두 그가 늙고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 시대에, 라힘의 주먹에는 더 이상 강철을 찢어발기고 사람의 육골을 터뜨릴 수 있는 힘 같은 것은 없었다.

쉬운 싸움은 아니었다.

오러를 이용해 육체의 힘을 비약적으로 끌어올릴 수도 없었고, 라힘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 이상으로, 아니,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늙고 노쇠해진 존재였다.

그럼에도 라힘은 굴하지 않았다.

눈앞에서, 새로운 시대의 태양처럼 떠오르는 강자가 휘두르는 주먹 앞에서 맞고 또 맞으며, 그래도 무릎 꿇지 않았다.

경기를 지켜보는 이들 모두가, 그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라힘, 지지 마!”

그 시각, 라힘과 젊은 챔피언의 경기를 가장 앞에서 지켜보는 ‘나이트워커 가문의 가족들’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도 손에 땀을 쥐고 필사적으로 응원하며 가족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그 시절, 신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찬란하게 빛났던 의지 같은 것은 없다.

그렇기에 이걸로 충분하다.

8라운드 내내 일방적으로 밀리는 와중에도 굴하지 않고 무릎 꿇지 않은 것, 그것으로도 충분히 의미 있고 값진 싸움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기적은 마지막 순간에 일어났다.

8라운드 마지막, 경기의 종료를 앞두고 13초가 남았을 때.

최후의 최후에 이르러, 라힘의 주먹이 휘둘러졌다.

오러도 무엇도 없이, 그저 평범하게 휘둘러지는 범인(凡人)의 주먹이었다.

바로 그 일격 끝에, 라힘은 KO 펀치로 상대를 쓰러뜨렸다.

“……세상은 의지 하나로 헤쳐 나갈 정도로 호락호락하지 않소.”

복싱 역사에 길이 남을 승리를 손에 넣고, 벌떼처럼 몰려드는 취재진과 플래시 세례 앞에서 라힘이 말을 이었다.

“그러나 의지 없이는, 그 어떤 일도 이룰 수 없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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