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11화. 하우스 파티 (完)
어두운 실내에 촛불이 켜진다.
촛불이 놓여 있는 커다란 케이크와 함께 가족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디에나 있는 담소, 덕담, 우스꽝스러운 농담, 온갖 목소리들이 재잘거리며 울려 퍼졌다.
“헤헤, 이렇게 다시 모이니 그 시절이 생각나네!”
아이처럼 천진하게 미소 지으며 그레텔이 소리를 높였다.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여기 있는 그녀가 과거 ‘마녀’라 불리며 경외의 대상이 되었던 나이트워커 가문의 암살자임을 모를 것이다.
“세상 끝날 때까지 네 얼굴을 볼 생각을 하니 내가 다 지긋지긋하네.”
사냥꾼 헨젤 역시 그렇게 말하며 즐거운 듯 웃었다.
“아, 그래도 미하일이랑 이자벨은 다시 봐서 기뻐!”
“가족끼리 얼굴을 보는 것처럼 즐거운 일도 없지.”
“우우, 아무리 그래도 요즘 두 사람은 너무 보기 힘들어!”
“그게 헐리우드 스타란 거지.”
“흠, 도무지 이놈의 인기는 세기를 지나도 식을 줄 몰라서.”
그렇게 말하며 미하일이 능청스럽게 웃었고, 이자벨이 황당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
“그렇게 아득바득 몇 세기나 대스타 노릇 하는 게 질리지도 않니?”
“어이쿠, 누님에게 들을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다들 즐거운 모양이구나.”
바로 그때, 그들 사이에서 가장 지혜로운 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 지혜로운 우리 교수님 아니신지.”
그 목소리에 미하일이 미소 지었고, 루나 역시 늘 그렇듯 차분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그러는 일개 교수가, 세기의 대배우님을 뵙습니다.”
평소의 루나답지 않은 짓궂은 목소리. 그 농담에 미하일이 놀란 듯 눈동자를 끔벅거렸다.
“……왜 그러느냐?”
“아니, 뭐.”
미하일이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구나 싶어서요.”
“…….”
그 말에 루나 역시 그녀답지 않게 얼굴을 붉히며 침묵했다.
“뭐, 그게 살아가는 묘미 아니겠어!”
그레텔이 미소 지으며 소리를 높였다.
“그래, 여러모로 오래 살고 볼 일이지.”
라일라가 대답했다.
“응, 살아서 다행이지.”
헨젤 역시 어깨를 으쓱이며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그 말을 끝으로, 짧은 침묵이 내려앉았다.
“뭐야, 모처럼 가족끼리 다 모였는데 어색하게!”
침묵 속에서 그레텔이 뾰로통하게 소리를 높였고, 침묵하고 있던 린 역시 입을 열었다.
“글쎄.”
정적 속에서 린이 말을 잇는다.
“적어도 우리가 살았던 시절에는, 이렇게 케이크 위에 촛불을 피우는 일은 상상도 못 했겠지.”
여전히 칠흑의 붕대로 눈을 가린 그녀는 앞을 볼 수 없다.
그리고 설령 붕대로 눈을 가린들 이전과 같은 통찰은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물론, 이 시대에 눈앞을 볼 수 없는 그녀의 문제는 더 이상 ‘고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다.
그럼에도 그녀는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어째서일까. 알 수 없었다.
저마다의 헤아릴 수 없는 삶을 살아온 이 가족들은 저마다의 답을 내렸고, 그 답은 더 이상 누군가가 어쩔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던 까닭에.
“꼭 뱀파이어 같네.”
바로 그때, 또 하나의 가족이자 라일라의 오빠, 요한이 웃으며 말했다.
“그들도 영겁의 세월 속에서, 이런 삶을 살아온 걸까?”
“우리가 알 수는 없는 일이죠.”
시엔이 대답했다.
일찍이 천년공(千年公)이라 불리던 그 남자, 체사레 보르자의 존재를 떠올렸다.
그리고 깨달았다. 그날 이후, 운명의 여신에게 모종의 ‘형벌’을 받고 나서, 나이트워커 가문의 인간들이 살아온 삶은 아직도 천년이 채 되지 않았음을.
그 길었던 천년의 삶 속에서, 체사레 보르자가 걸었던 행적을 떠올린다.
그 시점으로부터 800년 전, 나이트워커 가문의 시조(始祖)라 일컬어진 카산 나이트워커의 삶을 떠올린다.
그 시절에는, 그들 나이트워커 가문의 인간들조차 이해할 수 없었던 괴물의 삶.
이제는 비로소 그 괴물 같은 삶을 이해할 수 있는, 혹은 이해할 수밖에 없게 된 존재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들은 인간이었다.
“그래도 다행이야.”
“뭐가?”
“이렇게 다 같이 모여서 웃을 수 있으니까.”
가족 하나가 말했고, 또 하나의 가족이 대답했다.
* * *
“이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시엔의 여동생, 티아 나이트워커가 되물었다. 시엔은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짧은 정적이 내려앉았다.
검고 어두운 밤하늘, 밤하늘을 따라 빛나는 시린 별들이 차가운 서슬을 흩뿌리고 있었다.
“뭐가 기다리고 있기를 바라니?”
침묵 끝에 시엔이 되물었다.
“지금 이 순간이요.”
티아가 대답했다.
“그저 지금 같은 순간이, 세상의 끝이 올 때까지 영원히 이어지길 바라요.”
“그렇게 될 거야.”
그 말에 시엔이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하나밖에 없는 가족, 그녀가 바라는 전부를 이뤄주는 것이 바로 시엔의 역할이었던 까닭에.
* * *
“상처투성이의 네 몰골을 봐라, 시엔 나이트워커.”
그 시절, 시엔을 조롱하며 천년의 뱀파이어는 그렇게 말했다.
“저항할 수 없는 운명 앞에서 덧없이 발버둥 치는 네 존재의 무력함을.”
저항할 수 없는 운명, 인간이 거스를 수 없는 힘, 그리고 그 힘을 손에 쥐고 있는 천년의 뱀파이어와 맞설 당시의 일을.
* * *
꿈을 꾸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다시 뵙게 되어 기쁩니다, 시엔 나이트워커.”
한 남자가 그곳에 있었다.
“체사레…….”
“아, 여전히 제 이름을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순백의 모피 코트를 걸친 흑발의 귀공자였다.
“이야, 실로 몸 둘 바를 모르겠군요.”
“어떻게 네놈을 잊을 수 있겠냐.”
시엔이 조소하며 말했고, 남자 역시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까지 절 기억해 주시다니, 참으로 영광이네요.”
순백의 모피 코트를 걸친 흑발의 귀공자, 체사레 보르자 역시 웃었다.
그 시절, 그토록 증오스러웠던 나이트워커 가문의 적.
그러나 이제는 그 얼굴이 너무나도 그리워서, 다시금 고향의 동창을 재회하는 것 같은 향수에 휩싸였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나?”
“꿈이라.”
시엔의 말에 체사레가 어깨를 으쓱였다.
“당신의 삶은 희극입니까, 비극입니까?”
으쓱이며 그가 되물었다.
“세상의 끝이 다가올 때까지, 영겁의 자유를 부여받은 삶. 그 무엇도 당신들을 해칠 수 없는 삶 말이죠.”
“어느 쪽이든 될 수 있겠지.”
시엔이 말했다.
그것은 희극이 될 수도 있고 비극이 될 수도 있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네가 꿈이 될 수도, 진실이 될 수도 있는 것처럼.”
“흠, 이것 참.”
그 말에 체사레가 웃었다.
“그럼 당신은 이 앞에 있는 제가, 무엇이 되길 바라시나요?”
“꿈이 되고 싶나? 진실이 되고 싶나?”
시엔이 되물었다. 되묻고 나서는, 대답했다.
“나는 그저 네가 바라는 게 되기를 바란다.”
“…….”
체사레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시금 내려앉은 정적 속에서, 체사레가 다시 웃으며 말했다.
“여전히 버릇없는 꼬맹이로군요.”
“그렇게 봐주니 다행이네.”
체사레의 말에 시엔 역시 웃었다.
“아직도 나를 꼬맹이로 봐주니 말이야.”
말하고 나서, 시엔은 자신이 살아온 삶의 궤적을 떠올렸다.
“너는 무엇을 바라지, 체사레?”
더 이상 시엔은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그 시절, 그 시대, 천년에 걸친 삶을 살아가며 너는 대체 무엇을 바랐지?”
시엔이 물었다.
“무엇을 바랐는가라.”
천년의 뱀파이어, 천년의 삶 속에서 끝없는 망집과 집착을 갖고 살아온 존재가 대답했다.
“실로 이루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바랐지요.”
동시에 그 대답에는, 어딘가 이루 말할 수 없는 공허가 깃들어 있었다.
“그리고 저는 천년의 삶 속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것들을 손에 넣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걸 손에 넣고도, 여전히 부족해서 나와 우리 가문을 상대로 지긋지긋하게 싸움을 걸었나?”
시엔의 물음에 체사레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답지 않은, 무척이나 인간다운 감정이 깃든 자조(自嘲)였다.
“아무리 갈망해도 채워지지 않는 것, 절대로 채워지지 않는 것, 바로 그걸 채우는 게 우리의 삶이니까요.”
체사레가 대답했다. 그 대답 앞에서 시엔 역시 웃었다.
“네놈도 결국에는, 마지막까지 인간이었구나.”
웃고 나서 시엔이 말했다.
그 시절, 체사레와의 마지막 싸움을 추억하며.
그것은 말 그대로의 추억(追憶)이었다.
“가져가라, 체사레.
내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이깟 창날 쪼가리 따위가 아니니까.”
“처음부터 나는 내 운명의 주인이었다.”
그렇게 말하며 손에 들려 있던 운명의 창을 넘겨줄 때의 일.
“그럼 여전히 그 운명은, 당신의 것입니까?”
체사레 역시 되물었다.
“그럼 기꺼이 시험해 드리지요.
네놈이 정말로 자기 손으로 운명을 결정지을 자격을 가졌는지.”
“운명은…….”
체사레의 말에 시엔이 대답했다.
“그 누구의 것도 아니야.”
“그럼 신의 것입니까?”
“아니.”
시엔이 고개를 저었다.
“신조차 운명을 가질 수는 없어.”
그리고 수 세기에 걸쳐 살아온 이 삶, 영겁의 자유를 손에 넣은 삶을 되새기며 대답했다.
“모든 삶과 이야기가 끝나고 나서, 그걸 부르는 이름일 뿐이지.”
그것을 사람들은 운명이라고 일컫는다.
“운명은 극복하는 것도 아니고, 극복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야. 그저 그 끝일 뿐이니까.”
시엔이 말을 이었다.
“의지에 선악이 없는 것처럼, 운명에는 희극도 비극도 없어.”
시엔의 말에 체사레가 웃음을 터뜨린다.
“그럼 부디 그 삶의 끝이, 당신이 바라는 형태가 되기를.”
웃고 나서 체사레가 말했다.
꿈은 거기까지였다.
* * *
일찍이 세상을 지배했으나, 다시금 세상을 지배할 제국과 인외(人外)의 존재들과 맞서 세상의 자리를 다투었고, 그렇게 끝없이 이어진 역사 끝에 나이트워커 가문이 새 세상의 주인이 된 이후.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이 흘렀다.
연도(年度)와 세기를 세는 것조차 무의미해질 정도의 미래, 끝없는 역사의 페이지가 채워졌다.
여전히, 별과 단검의 주인들은 그곳에 있었다.
그들이 바라든 바라지 않든, 삶은 계속되는 까닭에.
훗날 누군가가 그 삶을 평가할 때, 그것이 아름다웠는지 혹은 끔찍했는지, 이 순간을 살아가는 그들로서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가족이었다.
* * *
고대 지역에서 온 여행자에게 들은 얘기일세.
돌로 만들어 거대하지만 몸통은 없던 두 다리가
사막에 서 있었네. 그 옆의 모래밭에
부서진 두상이 반쯤 묻혀 있었는데, 찌푸린
얼굴과 입술에 차디찬 조소를 띠고 있었네.
그 조각가에게 말하더군, 죽은 돌덩이임에도
그가 자신의 손과 마음을 바쳐 새겨넣은 열정이
지금도 생생하게 살아남아 드러난다고.
그리고 그 주춧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네.
내 이름은 오지만디아스, 왕 중의 왕이라.
이 몸의 위업을 보라, 강자들아. 그리고 절망하라!
그 곁엔 아무것도 없었네. 무너져 닳아버린
그 거상의 곁에는 외롭고 한결같은 모래밭이
그저 머나먼 곳까지 끝없이 펼쳐져 있을 뿐.
Ozymandias Percy Bysshe Shell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