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아스트라 공작이 빠른 걸음으로 서재 안에 들어갔다.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쫓아 들어온 행정관들이 입을 열었다.
“당최 무슨 조화인지 모르겠습니다. 세 살밖에 되지 않은 아가씨께서 고대어를 해석하다니요!”
아스트라의 사람들은 어린애들이 시험에서 성적을 낼 수 있으리라 믿지 않았다.
얼떨떨한 말에 다른 사람이 입을 열었다.
“시험이 유출되었을 수도 있죠.”
“유출이라고요?”
“시험에 어떤 문장이 나올지 알고, 외워 두었을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고대어는 아직까지 해석이 난항인 글자였다.
해례도 없고, 현존하는 언어와 전혀 달라서 추측하기도 어렵다.
시험 문제를 발췌한 역사서조차 아직 반도 해석되지 않은 실정이다.
다른 행정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시험 문제는 직계님들의 시험 바로 직전에 결정되었습니다.”
“그래요. 무엇보다 ‘에릴로트 아가씨’께서 어떻게 시험관을 매수했겠습니까?”
어머니는 평민.
아버지는 공작과 가장 사이가 좋지 않은 아들.
‘어느 바보가 그런 아가씨를 위해서 감히 시험 문제를 유출할까?’
행정관들은 모두 납득하고서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대체 어떻게?’
모두가 침음하는 가운데, 한 행정관이 말했다.
“어쩌면 에릴로트 아가씨께서 능력을 개화하신 게 아닐는지요.”
“……!”
“……!”
이 세계의 귀족들은 특별한 능력을 타고 태어난다.
예지.
괴력.
식물을 빠르게 자라게 하는 힘 등등.
각자 능력이 천차만별이었다.
<가호>라고 불리는 능력이었는데, 이 가호를 가지고 태어나야만 귀족이라고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에릴로트 아가씨는 무능력자였지.’
한 행정관이 물었다.
“가호는 대천문(아기 머리에 있는 숨구멍)이 닫히기 전에 발현됩니다.”
“예, 아가씨께선 이미 대천문이 닫힌 지 오래이고요.”
그래서 대천문이 닫히자마자, 방계들이나 지내는 열두 번째 탑으로 보내진 것이 아니었던가.
생각에 잠겨있던 공작이 말했다.
“에릴로트를 데려와라.”
무섭도록 낮은 목소리였다.
* * *
할아버지의 서재로 온 나는 사람들을 슬그머니 돌아봤다.
행정관, 학자, 심지어는 가신들까지 빼곡했다.
그들은 내게 책 한 권을 보여 줬다.
“읽어 보시지요.”
“…….”
“72페이지 두 번째 줄부터입니다. 여기요.”
난 할아버지를 힐끔 보고서, 행정관이 가리킨 부분을 읽었다.
“첨타비 앙공대따. 고새에, 겨씰이어따.(첨탑이 완공됐다. 고생의, 결실이었다.)”
학자들이 모두 크게 숨을 들이켰다.
“마, 맞습니다.”
저 노인은 얼마나 놀랐는지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행정관들을 고개를 끄덕이고 공작을 쳐다봤다.
“역시 <가호>가 발현한 것이 맞는 모양입니다.”
‘그냥 한글이라서인데.’
한국인이 쓴 소설 속이니 고대어가 한국어인 게 이상한 일만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들이 저렇게 생각하는 건 예상 범위 안이다.
이 세계 사람들은 ‘특이한 상황’을 대부분 가호 때문이라고 생각하니까.
가신들의 표정은 미묘했다.
가호는 가문의 재산 같은 것인데, 겨우 ‘고대어를 읽는 능력’이라니.
딱 그런 표정이었다.
가신들이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나마 다행이지 않습니까. 가호를 받으셨기는 하니…….”
“아가씨께도 능력 개발을 위해 신관을 붙여야 합니까?”
“예. ‘고대어를 읽는 능력’을 개발시켜 무엇을 얻을 수 있을는지─”
사람들이 말하는 동안 나는 책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지점에 이르러 떠듬떠듬 내용을 읽었다.
“미루테, 펴야, 요에 뼈, 매잔하여…….(미르텐, 평야, 용의 뼈, 매장하여…….)”
“……!”
“……!”
순식간에 시선이 모여들었다.
가신이 뻣뻣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뭐, 뭐라고 하셨습니까?”
“미루테 펴야. 뼈 이써요. 요기.(미르텐 평야. 뼈 있어요. 여기.)”
내가 문장을 가리키니, 사람들은 입을 떡 벌렸다.
용의 뼈는 아주 소중한 자원이다.
강도가 철을 뛰어넘기 때문에, 용의 뼈를 이용해서 만드는 무기는 모두 극강의 위력을 자랑한다.
하지만 수가 아주 적어서 이젠 돈을 준다고 해도 파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다이아몬드 광산을 발견한 거나 마찬가지지.
“지도! 지도를 가져와라!”
행정관이 서둘러 지도를 가져왔고, 어른들은 모두 모여 위치를 확인했다.
“이곳이 고대에 미르텐 평야라고 불리던 곳이었습니다.”
가신들은 서둘러 할아버지에게 지도를 넘겼다.
가만히 지도를 바라보던 할아버지가 말했다.
“사실인지 확인해라.”
행정관은 헐레벌떡 뛰어나갔다.
난 태연한 표정으로 할아버지를 보고 있었다.
‘진짜야.’
이 역사서란 것에 분명히 적혀 있으니까.
‘게다가 이제 곧 발견되거든.’
몇 달 후에 신전을 건립하는 과정에서 발견된다.
나는 속으로 킬킬 웃었다.
‘어차피 발견될 건데 내가 미리 말했으니, 내 공이네.’
할아버지가 내게로 시선을 돌렸다. 가느다란 눈에서 등골이 오싹한 이채가 느껴졌다.
평범한 애라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법한 위압감이었다.
나는 치맛자락을 꼭 부여잡고, 어색하게 웃었다.
‘저는 분수를 알아요.’
밥만 주고, 괴롭히지만 않으시면 얌전히 지낼 거예요.
─라는 어필이었다.
할아버지의 눈썹이 미미하게 꿈틀거렸다.
* * *
나는 진이 다 빠진 기분으로 마차에서 내렸다.
성에서 내준 마차 덕에 몸은 편했지만, 기분은 거의 제트코스터를 열 번쯤 탄 것 같았다.
‘사람 눈빛이 뭐 그리 흉흉해.’
영화 속 범죄자들도 그런 눈은 아닐 거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터덜터덜 열두 번째 탑으로 들어갔다.
해가 져서인지, 탑은 고요했다.
애들의 침실에서나 말소리가 흘러나왔다.
“본성은 엄청 멋있어요. 문마다 몬스터가 지키고 있다니까요!”
[무서워서 울지는 않았고?]
“하나도 안 울었어요.”
[그래. 우리 델런은 용감하니까.]
부모와 통신하는 소리.
“당근 싫어. 유모 미워.”
“세상에나. 유모는 가슴이 아파요. 사랑하는 아가씨가 저를 미워하시다니.”
“아냐! 거짓말이었어…….”
“그럼 당근도 드셔 주시겠지요?”
“으으응…, 싫은데…….”
유모에게 어리광부리는 소리.
나는 어두컴컴한 복도에 오도카니 서서 방마다 흘러나오는 다정한 소리를 듣고 있었다.
“…….”
‘어린애의 몸은 정말 불편해.’
어른이었다면 이런 것쯤은 하나도 안 부러웠을 텐데.
난 엄마도 없고, 아빠는 멀리 전장에 있었다.
‘거기다 유모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여기 애들은 부모가 유모를 붙여준다. 방계라도 귀족이기 때문에 유모는 곁에 있는 게 당연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스트라 가문의 투명 인간이었던 나를 챙겨 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니 유모도 붙여주지 않았다.
‘탑의 하인이나 교사들을 잘 꼬셔 놔서 불편하진 않지만…….’
난 손바닥으로 치맛자락을 문지르다가, 이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빨리 가서 목욕해야지.’
여기는 따뜻한 물이 펑펑 나온다.
유혜민의 자취방과는 달리 욕조도 있고.
따끈한 물에 담그면 금방 기분이 좋아질 거다.
‘암만 기분이 나빠져 봐라. 내가 영원히 그러고 있나!’
난 씩씩하게 복도를 걸으며 앞으로의 일을 구상했다.
미르텐 평야였던 곳에서 용의 뼈가 나오면 내 주가는 급상승할 거다.
그렇게 되면 여러 가지로 혜택이 생길 터였다.
혜택을 이용해서 앞으로 살 궁리를 해야겠다.
‘돈을 모아서 뜨는 게 최고인데…….’
그렇게 생각하며 막 방문 앞에 다다랐을 때였다.
“아욱!”
누군가 내 옷깃을 홱, 낚아챘다.
깜짝 놀라서 위를 보니,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호쭈기…….(홀쭉이…….)”
어제 내가 괴롭히는 걸 일러바치는 바람에 반성문을 열 장이나 쓴 애였다.
그 애는 날 질질 끌고 복도 깊숙한 곳으로 데려갔다.
“너 때문에 내가 어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그야 네가 날 괴롭힌 탓이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홀쭉이는 왈칵 인상을 찌푸렸다.
“어디 반편이 따위가.”
“…….”
“너, 오늘 시험에서 부정행위를 했지? 그래서 본성에 남아서 혼이 나고 있던 거잖아.”
내가 본성에 있던 동안, 이 탑의 사람들이 알아서 그렇게 추측한 모양이었다.
세 살짜리가 고대어를 읽는다.
부정행위라고 밖엔 설명할 수 없긴 했다.
홀쭉이는 비열하게 웃었다.
“가뜩이나 공작님께 미움을 사는데, 부정행위까지 했으니 탑에서도 쫓겨날걸?”
“…….”
“이런 반편이 때문에 내가 그런 망신을……. 우리 아버지가 누군지 알아? 관할령을 가진 봉신이란 말이야!”
“…….”
“나한테 사과해. 무릎 꿇고 빌라고!”
그러며 나를 퍽! 밀쳐서 나는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야!”
눈물이 쏙 빠지게 아프다.
너무 아파서 끙끙대는 와중에도 홀쭉이는 계속해서 소리쳤다.
“내 말 안 들려?!”
홀쭉이가 내게 손을 치켜들었다.
난 애들과 진짜로 싸우지 않는다.
보통 어른들에게 일러서 일을 해결했다.
그게 편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애들인 만큼 유하게 대처한 것이다.
‘하지만 폭력은 말이 다르지.’
그것도 한 번이 아니고 몇 번이나.
“당장 무릎 꿇고 빌…… 아악!”
난 홀쭉이의 다리를 콱 깨물어 버렸다.
그리고 그 애가 날 떼어 내기 위해 몸을 숙인 순간.
“악!”
머리채까지 야무지게 잡았다.
자꾸 밀치고─
“악!”
반편이라고 부르고─
“악!”
협박하고, 조롱하고!
“아악!”
위, 아래, 좌우 양옆으로 머리를 흔들자 홀쭉이는 울음을 터뜨렸다.
“어허엉! 엄마……!”
얼마나 크게 우는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순식간에 주변이 와글와글해졌다.
곧이어 교사들이 달려왔다.
사람들을 헤치고 우리에게 온 교사들은 벙찐 얼굴로 우리를 쳐다봤다.
* * *
홀쭉이와 나는 방으로 끌려왔다.
나는 치맛자락을 잡은 채로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홀쭉이는 방이 떠나가라 울었다.
열두 번째 탑의 총 관리자인 모로 남작이 이마를 잡았다.
“이게 무슨 짓들입니까.”
“저게 저를, 어헝, 깨물고 때리고, 으허엉……!”
홀쭉이의 말에 모로 남작이 날 노려봤다.
나는 침착하게 상황을 전달하려 했다.
“호쭈기가 먼저─”
“그만!”
모로 남작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그는 내게 발언의 기회도 주지 않고서 다그쳤다.
“함께 수학하는 동료를 폭행하고 변명이라니요.”
날 보는 눈빛이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이렇게 나올 줄은 알았지만, 너무 하잖아.’
다른 교사들은 날 예뻐하지만, 저 모로 남작은 아니었다.
애초에 내가 교사들이라도 내 편으로 만들자고 생각한 것도 저 남작 때문이었다.
저 사람은 지독한 혈통주의자에, 기회주의자다.
내가 갓난쟁이일 때는,
“하필이면 이런 머저리를 맡게 되다니. 차라리 죽어야 마음이라도 편할 터인데.”
─라며 분통을 터뜨린 적도 있다.
물론 내가 어린애라 말귀를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해서 한 말이겠지만.
커서도 날 볼 때마다 쓰레기를 보는 것 같은 눈이었다.
그래서 다른 교사들이라도 내 편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총책임자가 저 모양이면 살기 힘드니까.
“게다가 시험에선 부정행위를 하셨다지요.”
‘사실은 그것 때문에 화난 거였구나.’
성에서 부정행위를 해서 제 평판에 먹칠을 했다고 생각하는 거다.
모로 남작은 쯧, 혀를 찼다.
“벌입니다. 점심시간마다 양동이를 들고 서 있으세요.”
그렇게 말한 남작이 홀쭉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꿀이 뚝뚝 떨어지는 눈빛이었다.
“이제 눈물은 그치십시오. 아버님이 아신다면 얼마나 마음이 아프시겠습니까.”
“예, 남작…….”
“어제는 곤란한 일이 있으셨다고요?”
“그것도 저 반편이 때문에─!”
홀쭉이가 씩씩거리며 날 노려봤다.
모로 남작은 부드럽게 웃었다.
“염려 마십시오. 기록이 남는 일은 없을 테니.”
“정말이요?”
“예, 아버님께도 걱정하지 마시라 전해 주시고요.”
그렇게 말한 모로 남작은 하인을 불러서 물이 가득 든 양동이를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 날 내보내서 양동이를 쥐여주었다.
“꾀부릴 생각은 마십시오.”
단호하게 말한 그는 홀쭉이와 함께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선 하하 호호 웃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과자를 드시겠습니까?”
“좋아요.”
“그나저나 아버님께선 어떤 취미를 가지고 계시는지……. 아아, 승마. 저도 좋아합니다.”
홀쭉이가 신이 나서 떠드는 동안에도 난 양동이를 들고 있었다.
‘일단 들자.’
본성에서 처음으로 내게 관심이 생겼다.
여기서 괜히 잘못 움직였다간, 초기 이미지부터 망가질 수 있었다.
한참 끙끙거리는 중에, 같이 수업을 듣는 애들이 다가왔다.
“아기는 왜 여기 있어?”
같은 테이블 애들은 이 탑에서 제일 어린 날 아기라고 불렀다. 내가 아기라고 부르는 영향이었다.
“버 바다. (벌 받아.)”
“왜에?”
“세사이 다 그론 고야. (세상이 다 그런 거야.)”
“아아, 세상이 다 그래서 벌을 받는 거구나.”
애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기들 방 가. 추어. (아기들은 방에 가. 추어.)”
저 애들은 홀쭉이와 달리 한미한 방계였다.
괜히 같이 있는 걸 보면 성질 더러운 모로 남작이 저 애들까지 벌줄지도 모른다.
애들이 “으응.” 하고서 들어갔다.
나는 그렇게 한참 벌을 받아야 했다.
10분.
20분.
30분.
아무리 지나도 남작은 나오지 않았다.
‘언제까지 해야 하지?’
시간이 지날수록 손이 너무 아팠다. 어깨도 떨어져 나갈 것 같다.
끄응, 끙, 소리가 절로 나는 중에 모로 남작이 복도로 나왔다.
“어허. 꾀부리지 마십시오.”
그러고는 양동이를 퍽, 쳤다.
“제대로 들란 말입니다!”
‘앗!’
가뜩이나 힘이 빠져있다 보니, 양동이 무게에 비틀거리다가 쓰러져 버렸다.
촥!
물이 바닥에 쏟아지며, 난 젖은 생쥐 꼴이 되었다.
“정말이지 쥐새끼와 다를 바가 없군요.”
모로 남작이 매섭게 날 노려봤다.
그때였다.
“에릴로트.”
‘……!’
이곳에서 날 리 없는 목소리에 나는 휙, 고개를 돌렸다. 모로 남작과 홀쭉이 또한 황급히 뒤를 바라봤다.
탑의 그림자에 삼켜졌던 실루엣이 어둠 속에서 걸어 나왔다.
은제 지팡이를 짚은 채로 우리를 보고 있는 건─
“하부지……. (할아버지…….)”
아스트라 공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