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화. (6/390)

6화.

“고마씀미다─”

나는 고개를 꾸벅 숙이고 말을 이었다.

“─콘라드.”

“……!”

“……!”

“……!”

“꼬 애뻐. 콘라드 조아. (꽃 예뻐. 콘라드 좋아.)”

내가 양손을 모은 채로 말하니, 콘라드는 “아…….” 하며 웃었다.

“제가 드린 프리지아 말이군요. 좋아해 주셔서 다행입니다.”

콘라드는 내 인사가 매우 기뻐 보였다.

평소보다 더 눈매가 휘어져 있었다.

그때였다.

“크흡.”

어디서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자, 얼굴이 터질 것 같은 드뷔시 자작이 보였다.

어떻게든 참으려고 하는 것 같았는데, 곁눈질로 할아버지를 보자마자 터져 버렸다.

으하하학! 학학학!

저렇게 미친 듯이 웃는 사람은 처음 본다.

‘처음엔 점잖아 보였는데.’

할아버지 앞에서 이 정도로 크게 웃을 수 있는 것도 놀라웠다.

그러고 보니까 <빙.흑.손>에서 본 내용이 생각난다.

‘할아버지가 드뷔시 자작가와 절친하지.’

할아버지는 젊은 시절에 아무것도 없는, 선대의 열한 번째 아들이었다.

그런 할아버지를 그 시절부터 쭉 지지해 온 것이 드뷔시 자작가였다.

자작의 형이 할아버지를 지키다가 대신 죽을 정도로.

‘그래서 무서운 줄 모르고 저렇게 웃나 보다.’

눈가가 촉촉해질 정도로 웃던 드뷔시 자작이 말했다.

“아, 공작님의 이런 표정을 볼 줄이야.”

“…….”

“살다 살다 이런 구경을 다 해 봅니다, 제가.”

할아버지는 매우 무서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여차하면 자작을 찢어 죽일 것 같았다.

‘분위기가 나쁘네.’

오늘은 콘라드와 얘기하기는 그른 것 같으니, 할 일만 하고 가야겠다.

나는 방에서 챙겨온 것을 주섬주섬 꺼냈다.

꼬깃꼬깃 접혀 있는 그것은 내가 그린 그림이었다.

그리고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그림을 내밀었다.

“뭐냐, 이건.”

“하부지에요. (할아버지예요.)”

최근에 한가롭게 지내면서 난 그림을 많이 그렸다.

이 사람, 저 사람 많이 그렸는데 그중에 할아버지도 있었다.

“있지요. 하부지가요. 나 빵도 주구, 이불도 조요. (있지요. 할아버지가 나 빵도 주고, 이불도 줘요.)”

“…….”

“그리구요. 하부지 있으면요. 아무도 안 개로펴요. (그리고요. 할아버지가 있으면 절 아무도 안 괴롭혀요.)”

“…….”

“고마씁미다.”

원래 높은 사람 마음에 들려면 뇌물이 최고다.

더러운 사회생활을 배운 난 그 말을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내 그림을 펼쳐봤다.

삐뚤빼뚤 엉망이지만, 그래도 열심히 그린 게 티가 나는 그림이었다.

그림을 빤히 쳐다보던 할아버지가 버럭 소리쳤다.

“이거부터 줬어야지!”

나는 깜짝 놀라서 나도 모르게 하녀의 뒤로 숨었다.

드뷔시 자작은 다시 미친 듯이 웃었고, 할아버지는 그런 그를 노려봤다.

‘왜, 왜 그러는데.’

할아버지는 잔뜩 겁먹은 날 보다가 성큼성큼 걸어갔다.

손에 내 그림을 든 채로.

* * *

콘라드는 싱글벙글한 얼굴로 내 손을 잡고 있었다.

날 방으로 데려다주는 길이었다.

‘할아버지가 가 버려서, 대화할 시간이 생겼네.’

나는 하녀들이 멀리 떨어진 것을 확인하고, 콘라드를 쳐다봤다.

“콘라드.”

“예, 아가씨.”

“오느 사람 마니 와써. (오늘 사람 많이 왔어.)”

“예, 방계분들께 인사를 받으셨지요.”

“내일도 마니 와?”

“아뇨. 내일부터는 다시 성이 조용해질 거예요.”

“그러면 내일은 모해?”

은근하게 콘라드에게 성의 일정을 물어봤다.

“아가씨께선 재밌게 노시면 됩니다. 두어 달 정도는 여유가 있으니.”

“왜?”

“여러 가지로 복잡해져서 수업이 한참 밀렸으니까요.”

“…….”

“톨리소령 뒤처리도 그렇고, 직계들의 사병 해체도 그렇고……. 뭐, 아가씨껜 너무 어려운 말이겠지요.”

나를 아주 좋아하는 콘라드는 여러 가지 얘기를 쉽게 해 줬다.

내가 잘 모른다고 생각해서도 있겠지만.

‘직계들에게 사병 해체를 시켰어?’

그런 일은 소설 속엔 없었는데.

가만 생각하던 난 속으로 ‘아하.’ 하고 깨달았다.

이번 일로 난 콘라드가 미끼였다는 걸 알았다.

콘라드가 배신하지 않았는데 호위 정보가 넘어갔다.

호위 정보를 알 수 있는 사람이 더 있다는 것이다.

최측근 부관만큼 정보를 잘 아는 사람이라면 하나다.

‘공작의 자식들.’

그것 때문에 사병을 해체 시켰구나.

‘잠깐만, 그러면 이거 기회 아냐?’

성에 무사히 들어오는 데엔 성공했다.

이제 다음 단계를 밟을 차례였다.

‘아버지를 살리는 것.’

지금은 적절한 기회였다.

직계들의 사병을 해체 시켰으니, 이제 그걸 메꿀 사람이 필요했다.

“오느 어른들이랑 아가들이랑 가치 와써.”

“예, 방계분들께서 자식을 데려오셨더군요.”

“아빠랑 아가들 같이 이써. 그런데 에릴로트는 아빠 엄써.”

“……!”

콘라드가 움찔했다.

한참 당황한 얼굴로 날 보던 콘라드가 이내 무릎을 굽혔다.

“아가씨께도 아버님이 계세요.”

그는 매우 마음이 아픈 표정이었다.

“지금도 멀리서 아가씨를 생각하고 계실 겁니다.”

“…….”

“아가씨껜 공작님도 계시고요. 공작님께서도 아가씨를 많이 생각하세요.”

“…….”

“오늘 방계들이 인사를 왔죠? 공작님께서 아가씨께 인사를 드리라고 한 거예요.”

그런 거였어?

어쩐지 너무 많이 몰려왔더라.

‘습격 사건으로 내가 눈에 들었나 봐!’

나는 신이 났다.

하지만 콘라드는 여전히 마음 아픈 표정이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속삭였다.

“아가씨는 혼자가 아닙니다. 아버님은 멀리 계신 거예요.” 

‘그래, 지금처럼 할아버지에게도 인지시켜 줘.’

내 아버지가 멀리 있다고.

습격 사건에 관여할 수 있지 않을 만큼 멀리.

그러니까 아버지는 할아버지에게 ‘현재 자식들 중에선 가장 믿을 만한 사람’이란 소리였다.

콘라드는 날 방에 데려다주고 떠났다.

난 양손으로 턱을 괸 채로 골똘히 생각에 빠졌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왜 화났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콘라드에게 먼저 인사해서.

나는 으음, 신음하며 팔걸이를 잡았다.

‘할아버지가 그렇게 치졸한 사람이었나?’

소설로 봤을 땐 흉악하긴 해도, 그렇게 치사한 사람은 아니었는데…….

그래도 다행히 날 어떻게 할 것 같지는 않았다.

그가 정말로 어떻게 해야겠다고 생각할 땐 오히려 냉정하고도 과묵했다.

‘어쨌든 당분간 조심하자.’

괜히 밉보여서 아버지를 데려오는 일에 차질이 생기면 안 되지.

난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의자에서 내려왔다.

문고리를 잡으려는데, 하녀 힐다가 날 불렀다.

“어디 가시려고요?”

“놀러가 꺼야.”

“본성 밖으로는 나가지 마셔요? 오늘 인사하러 온 방계들이 아직 성안에 있어서 혼란할 거예요.”

힐다의 말에 다른 하녀인 그레타가 인상을 찌푸렸다.

“왜 돌아가지 않는담.”

“일부러 미적거리는 거겠지. 어떻게든 성안에 있는 권세가와 대화 좀 나눠보겠다고.”

“복속한 톨리소 후작령 때문이죠?”

“그래. 그 땅을 맡을 사람이 아직 결정되지 않았잖아. 어떻게든 콩고물을 얻어먹겠다는 거야.”

“아가씨에게 그런 짓을 하고. 양심 없게.”

“언제는 양심 있는 사람들이었니.”

하녀들이 험악한 얼굴로 투덜거렸다.

그러는 동안 나는 문을 열었다.

그제야 이야기를 끝낸 하녀들이 복도로 나가는 날 향해 소리쳤다.

“다녀오세요!”

난 하녀들의 배웅을 받으며, 복도로 나왔다.

‘성의 지리를 익혀 놔야지.’

그동안은 경비 몬스터가 무서워서 잘 돌아다니지 못했다. 몬스터와 마주치면 이 작은 몸이 어떻게 될 지 모르니까.

하지만 오늘은 사람들이 잔뜩 출입하는 날이라, 몬스터를 치워 둔 모양이었다.

잘못해서 방계를 공격하면 안 되니까.

대신 엄청나게 많은 군사들이 성을 지키고 있었다.

그래서 난 이번 기회에 성을 탐방하기로 했다.

성을 돌아다니는 건 재밌었다.

‘모험하는 것 같아!’

엄청나게 크고 화려해서 보는 재미도 있고.

나는 본성 내부를 뽈뽈뽈 돌아다녔다.

‘와, 무기 창고. 진짜로 판타지 소설 같다.’

‘주방이 여기구나. 빵 굽는 냄새가 좋아!’

‘4층 복도 끝이 다른 건물과 연결되어 있네.’

얼마쯤 돌아다녔을까.

1층 서쪽 출구로 나왔는데…….

“와?!”

엄청나게 아름다운 정원이 있었다.

겨울임에도 싱싱한 장미가 피어 있는 넝쿨 담.

양탄자처럼 푹신한 잔디.

분수엔 물동이를 든 여신상이 있었는데, 물동이에서 맑은 물이 졸졸졸 나오고 있었다.

난 정원 안으로 신나게 뛰어갔다.

밖에서 볼 때보다 안에서 볼 때가 더 아름답다.

분수 주변에 예쁜 돌들이 깔려 있었다.

반질반질한 것으로 주워다가 하녀들을 주면 좋겠다.

나는 최대한 예쁜 돌을 찾으려고 쪼그려 걸었다.

‘그나저나 할아버지에게 아버지를 더 선명하게 인식시킬 계기가 필요한데……. 아, 이거 예쁘다.’

막 돌을 주우려는 순간, 머리에 뭔가 쿵! 부딪혔다.

“아욱─!”

너무 아파서 풀썩 주저앉아 버렸다.

‘뭐야?’

깜짝 놀라서 앞을 보니, 대여섯 살쯤 되는 어린애가 보인다.

내가 부딪힌 게 저 애의 정수리였나 보다.

옷이 호화로운 거로 봐선 귀족 아이였다.

권세가와 대화하기 위해 미적거리고 있다더니, 그들 중 하나가 데려온 아이겠지.

“으, 으으…….”

정수리를 매만지던 아이가 울먹거렸다.

이윽고,

“으아아아앙─!”

아이가 크게 울어 버렸다.

‘아, 안 돼.’

나는 머리를 박는 바람에 가뜩이나 놀랐다.

그런데 상대가 이렇게 크게 울어 버리니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이렇게 되면 조연 페널티가 생겨버리는데.’

아니나 다를까 벌써부터 입술이 삐죽삐죽 튀어나온다.

코가 시큰거리고 눈에 눈물이 고였다.

정신이 슬슬 애가 되는 것 같았다.

나는 치맛자락을 꽉 비틀었다.

‘울면 안 돼. 여기는 할아버지의 집무실 근처야.’

우는 애는 성가시다.

할아버지가 날 귀찮다고 여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참으려고 해도 자꾸 콧물이 나왔다.

그때 정원 바깥쪽에서 어른의 목소리가 들렸다.

“줄리앙, 어디 있니?”

“엄마─!”

아이는 더 크게 울었고, 그녀는 허둥지둥 달려왔다.

그러곤 울고 있는 아이를 끌어안았다.

“왜 그러니. 응?”

“와아앙!”

“부딪혔어? 어디 보자.”

몹시 걱정되는 투였다.

“대체 누가 조심도 않고─”

여자가 인상을 찌푸리며 내게 홱,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제대로 얼굴이 보였다.

아까 내게 인사를 왔던 귀족이었다.

여자도 나를 기억하는지, 날 보자 눈이 커다래졌다.

“아가씨.”

“…….”

공작의 손녀인 내게 뭐라고 할 순 없는지, 여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제 아이가 실례했습니다.”

“…….”

“아직 어린지라. 모쪼록 이해해 주셔요.”

아이를 안아 들고 일어난 그녀는 내게 묵례했다.

“그럼 저는 이만.”

아이는 제 엄마가 안고 가는 동안에도 계속 울었다.

“그래, 그래.”

“엄마아…….”

“뚝. 아픈 것도 참을 줄 알아야 하는 거야. 그래야 너도 12번째 탑에 가지.”

“그치만 아파. 아프다구!”

아이가 몹시 칭얼거렸지만, 여자는 하나도 귀찮아 보이지 않았다.

도리어 사랑스럽다는 듯 몇 번이나 아이의 정수리를 쓰다듬었다.

“…….”

나는 모자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오도카니 서 있었다.

그리고 양손으로 머리를 매만졌다.

‘쓰다듬어도 아프네, 뭐.’

그러니까 하나도 안 부러워.

……안 부러워.

그때였다.

“에릴로트.”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얼른 고개를 돌리자 보인 건 할아버지였다.

“…….”

“후에…….”

어떻게든 참으려고 했는데, 눈물이 샘솟았다.

‘미쳤어, 미쳤어!’

어디서 눈물 바람이야!

앞으로 할아버지 앞에서는 조심하자고 결심했던 게 몇 시간도 안 됐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조연 페널티로 아이가 되어 버린 몸은 도무지 눈물을 참지 못했다.

나는 손바닥으로 눈을 가리고 훌쩍훌쩍 울었다.

“아빠아…….”

엄마는 없으니 부를 수 없고, 남은 건 아버지밖에 없었다.

‘이 망할 소설 같으니.’

달리아는 성인이 되어서 빙의시켰으면서, 나는 이렇게 어린 몸에 빙의시킨 데다가 페널티까지 줘?

생각하자 더 서러워졌다.

그런데 뭔가 커다란 것이 내 정수리에 올라왔다.

소파 팔걸이에라도 하듯 툭, 얹어진 그건 할아버지의 손이었다.

아주아주 어색한 손길이었다.

그치만.

그렇지만…….

“허엉─!”

내가 더 크게 울자, 할아버지는 뻣뻣하게 굳어졌다.

왜인지 진짜로 아까 그 애가 부럽지 않았다.

* * *

드뷔시 자작은 허, 하고 탄성을 흘렸다.

하루 종일 픽픽 웃는 자신이 꼴 보기 싫다고 나갔던 공작이 에릴로트를 안고 돌아왔다.

그러니까 저 흉악한 공작이, 겨우 자기 팔뚝만 할까 싶게 자그마한 아이를 안고…….

공작을 모신지 30년.

감히 상상한 적도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에릴로트는 공작의 품에서 평온하게 잠들어 있었다.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가만.’

에릴로트의 눈 주변이 새빨갰다.

“울리셨습니까?”

“소파에서 재킷이나 치워라.”

“아니, 이렇게 어린 아가씨를 울릴 데가 어디 있다고.”

“…….”

“저 작은 몸으로 공작님을 구하겠다고 절벽에서 뛰어내리신 분입니다.”

공작은 재킷을 들어 드뷔시 자작의 얼굴에 던져 버렸다.

윽, 소리를 낸 자작이 미간을 좁혔다.

“아가씨에게도 뭘 던지셨습니까?”

“정원에서 다친 거다.”

드뷔시 자작이 그제야 아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곤 공작이 소파에 눕혀둔 에릴로트에게 재킷을 덮어 주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방계 아이와 부딪힌 모양이더군.”

“절벽에서 뛰어내려서 손을 접질리고서도 울지 않았던 분이시잖습니까. 크게 다치셨나 보죠?”

“아픈 것보다는 다른 게 문제였겠지.”

공작은 정원에서의 에릴로트를 떠올렸다.

어미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방계 아이를 부럽게 보다가, 제가 직접 제 머리를 쓰다듬었다.

“뭔데 그러십니까.”

드뷔시 자작이 채근하자 공작은 쯧, 혀를 찼다.

“어미와 함께인 방계 아이를 부럽게 보더군.”

“…….”

드뷔시 자작은 에릴로트의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봤다.

“서러우실 만도 하죠.”

“…….”

“공작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아스트라 공작의 일생은 끔찍했다.

선대 공작은 특별한 가호를 가진 아이를 ‘제작’하기 위해 혈안이었다.

현 공작 크로노스 아스트라 또한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아이였다.

그의 아비는 비정했다.

제 자식을 온갖 실험이 벌어지는 실험실에 가둘 만큼.

“실험실에 계실 적에 모친과 함께 있는 아이를 부러워하신 적이 있으시잖습니까.”

“기억도 안 나는 일을 가지고.”

공작은 말없이 의자에 앉았다.

에릴로트를 잠깐 쳐다본 그가 드뷔시 자작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2세(공작의 자식들) 건은.”

드뷔시 자작은 서류를 넘겼다.

2세들의 행적을 조사한 보고서였다.

서류를 훑어본 공작의 눈이 서늘하게 가라앉았다.

가신 포섭에 혈안인 놈.

황실과 접촉하는 놈.

가문의 재산을 빼돌리는 놈.

가지각색으로 거슬렸다.

드뷔시 자작이 한숨을 내쉬었다.

“톨리소 후작과 관련된 행적은 없지만…….”

“…….”

“행보가 과합니다.”

“…….”

“2세들을 견제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겠지요.”

공작은 오늘 들은 말들을 떠올렸다.

“아가씨께서 아버지가 없다고 생각하신 모양입니다. 하기야 너무 멀리 계시니까요. 한번 아버지를 뵈면 좋으실 텐데…….”

콘라드에게 들은 말.

그리고,

“아빠아…….”

잠시 침묵하던 공작이 드뷔시 자작을 쳐다봤다.

“데이몬드를 불러와라.”

“……!”

드뷔시 자작의 눈이 커다래졌다.

데이몬드 아스트라.

공작의 둘째인 그를 부르는 말은 많았다.

이 아스트라에서 가장 강력한 가호를 가지고 태어난 자.

전장의 마물.

불패의 기사.

무력으로 제국 최강을 자랑하는 그가 바로 에릴로트의 아버지였다.

‘공작님과 사이가 최악이지만, 하나는 분명하지.’

멀리 있는 그는 습격 사건에 개입하지 못했으리란 것.

그런데 이상했다.

‘데이몬드 님께 관심도 두지 않던 공작님이 왜 갑자기……?’

도무지 모를 일이었다.

얼마 후, 데이몬드가 있는 북방을 향해 파발이 출발했다.

귀환 명령서를 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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