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8/390)

8화.

난 분명히 <빙.흑.손>에서 초록 라벤더란 것을 보았는데.

대체 어떻게 된 거지?

“힝다. (힐다.)”

“예, 아가씨.”

“초로쌔 라벤더 아라? (초록색 라벤더 알아?)”

“그게 뭐죠?”

역시 모른다.

‘달리아가 처음 찾아서 초록 라벤더라고 이름을 붙인 건가?’

소설 속 서술을 생각하면 그런 느낌은 전혀 아니었다.

나는 흐으음, 신음했다.

그런 날 멀뚱멀뚱 보던 하녀들이 조심스럽게 말을 붙였다.

“저어, 아가씨.”

“녜.”

“며칠 동안 계속 책만 읽으시는데, 그러지 말고 나가서 노는 건 어떨까요?”

힐다의 말에 그레타가 동의했다.

“책만 읽으면 머리에 곰팡이가 생겨요.”

그렇게 말한 하녀들의 눈이 울망울망 했다.

친구도 하나 없이,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는 내가 매우 안쓰러운 모양이었다.

생각해 보니까 방 안에서만 지낸 지 벌써 나흘째다.

고대어를 읽어야 할 때가 아니면 식사도 방에서 했다.

‘조금 답답하긴 해.’

바람이나 쐬고 올까.

“나가는 거 조아.”

“역시 그렇죠? 그레타, 아가씨의 외투를 가져와.”

“네.”

외투를 입고서 힐다, 그레타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목적지는 산책로였다.

이 거대한 아스트라 성에는 정원 외에도 산책로도 몇 개나 있고, 온실도 있었다.

나는 산책로에 깔린 돌들을 폴짝폴짝 뛰어서 건넜다.

“밖에 나오시니 머리가 맑아지죠?”

“녜!”

하녀들이 추천해 준 산책로는 고즈넉했다.

여기는 다른 데보다 외진 곳이라, 굳이 인위적으로 꾸며놓진 않은 모양이다.

자연스럽게 자라난 들꽃들도 있었다.

“추운데 꼿 마나. (추운데 꽃 많아.)”

“마도구 때문이에요. 신기한 효과가 있어서 겨울에도 여러 가지 꽃을 피운답니다.”

“애뿌다. (예쁘다.)”

“화관을 만들까요? 들꽃은 줄기가 연한 게 많아서 화관을 만들기 딱이에요.”

나는 하녀들과 산책로 한편에 쪼그려 앉았다.

그리고 꽃을 똑, 똑, 따서 화관을 만들었다.

손이 작고, 근육이 아직 다 발달하지 않은 터라 꽃 하나 엮는 데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하녀들은 엄청나게 집중하는 날 흐뭇하게 봤다.

“그렇게 열심히 해서 누굴 주시려고요?”

“콘라드 주꺼야.”

“아가씨는 콘라드님을 아주 좋아하시는군요.”

당연하지. 내 소중한 정보책인걸.

현재까지 이 성에서 내가 믿을 수 있는 건 콘라드 하나다.

하녀들은 좋은 사람들이지만, 집사만 명령해도 따를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자주 보는 드뷔시 자작은 할아버지의 사람이고.

“벚꽃도 같이 엮으면 예쁠 거예요.”

그레타가 나무에서 꽃을 똑 따왔다. 그러자 힐다가 말했다.

“그건 벚꽃이 아니라 살구꽃이야. 이건 살구나무거든.”

“아…….”

그레타는 민망한 듯 앞치마에 손을 비볐다.

나는 그레타의 손에 들린 꽃을 가져왔다.

“살구꼬치랑 버꼿이랑 비슷하게 생겨써. 헤깔려. (살구꽃이랑 벚꽃이랑 비슷하게 생겼어. 헷갈려.)”

“그, 그렇지요?”

“응!”

정말로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다.

‘너무 비슷하게 생겼으니……. 어?’

눈을 동그랗게 뜬 나는 벌떡 일어났다.

쪼그려 앉아 있던 힐다와 그레타가 날 쳐다봤다.

“아가씨?”

“방에 가 꺼야.”

“콘라드님께 화관을 전해 주시지 않고요?”

“힝다가 전해조! (힐다가 전해줘!)”

그러고서 난 얼른 방으로 돌아갔다.

‘라벤더가 아니었어.’

살구꽃과 벚꽃처럼 구분이 쉽지 않은 꽃이 있다.

바로 라벤더와 맥문동이 그렇다.

달리아가 보기엔 맥문동이 라벤더처럼 보였겠지. 둘은 정말로 유사하게 생겼다.

‘사실은 초록 라벤더가 아닌 거야, 초록 맥문동이지!’

나는 식물도감을 펼쳤다.

그리고 책장을 재빨리 넘겨서 맥문동이 나오는 부분을 찾았다.

<맥문동> 

비짜루목. 꽃이 피는 모습이 라벤더와 유사하며, 건조한 그늘에서 잘 자란다. 아주 드물게 꽃망울이 녹색으로 피어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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