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0/390)

10화.

나는 당황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왔지?’

물론 아버지를 돌아오게 하려고, 콘라드를 통해서 할아버지를 슬쩍 찔러 보긴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바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시간이 많이 필요할 줄 알았는데.’

아버지가 천천히 걸음을 옮겨서 데콘스 숙부에게 다가갔다.

데콘스 숙부는 버럭 소리쳤다.

“아버님의 생신에 이게 무슨 짓입니까!”

제법 기세등등해 보였지만, 뒷걸음질 치는 게 다 보였다.

나한테는 그렇게 험악하던 숙부가 아버지 앞에선 마치 고양이 앞에 생쥐 같았다.

아버지의 입매가 삐뚜름하게 올라갔다.

‘우와, 할아버지랑 엄청 닮았어.’

저렇게 비웃을 때는 거의 판박이였다.

“데콘스. 상황 가리지 않고 소리치는 버릇은 고치라고 했을 텐데.”

“…….”

“명줄이 짧아진다고.”

“내, 내가 뭘 어쨌다고! 형님이나 아버님 앞에서 방만하게 굴지 말고─ 힉!”

주절주절 떠들던 데콘스 숙부는 아버지가 어깨에 손을 올리자마자 숨을 들이켰다.

아버지는 피가 흥건하게 묻은 손으로 숙부의 뺨을 두드렸다.

무미건조한 표정이었지만, 기세는 무섭도록 흉흉했다.

다리를 벌벌 떨던 데콘스 숙부가 풀썩 주저앉았다.

‘개인의 힘으로 본다면 데콘스 숙부는 아버지에게 절대로 상대가 안 되지.’

아니, 이 성에 무력으로 아버지를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할아버지가 사이 안 좋은 아들을 처리하지 않는 건,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도 할 정도니까.

“그만.”

할아버지의 목소리였다.

아버지에게 건조한 시선을 고정한 할아버지가 말했다.

“그 오랜 시간 전장에 처박아 뒀어도 방종은 변하질 않는구나.”

“개새끼가 개 이상이 될 수는 없는 법이죠.”

개새끼는 개의 새끼.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새끼.

그러면 할아버지는…….

‘으악!’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시선이 허공에서 맹렬하게 부딪쳤다.

분위기가 날카로워지자, 드뷔시 자작이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시간이 늦었으니 만찬은 이만 파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공작님.”

할아버지는 여전히 아버지와 시선을 마주한 채로 대답했다.

“그래.”

그러자마자 하녀들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아가씨, 가실까요?”

“으응…….”

나는 아버지를 힐끔힐끔 쳐다보고, 만찬장을 나섰다.

* * *

다음 날.

나는 해가 뜨기 무섭게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하녀에게 얼른 옷을 갈아입혀 달라고 재촉했다.

“네, 아가씨. 어서 준비해 드릴게요.”

내가 동동거리는 이유를 알고 있는 하녀들이 우후후 웃었다.

힐다는 내 잠옷 단추를 풀어 주면서 말했다.

“데이몬드 경께서 오늘도 성에 계신다지요? 오셔서 기쁘시지요?”

난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내 동아줄인걸.’

할아버지가 지금은 날 조금 인정해 줬지만, 나중엔 어떻게 될지 모른다.

할아버지에겐 뛰어난 능력의 손주가 잔뜩 있으니, 그쪽으로 관심이 옮겨갈 수도 있다.

그땐 다시 낙동강 오리알이 되겠지.

‘무엇보다 할아버지가 혹시 돌아가시기라도 하면…….’

낙동강 오리알이 뭐야. 삶은 오리알이 되어서 그 친척들에게 으적으적 씹힐지도 모른다.

그때를 대비하기 위해서 아버지의 도움은 필수였다.

‘잘 보여 놔야지.’

어제는 막 귀환한 터라 이런저런 처리할 일이 있어서 인사도 못 했다.

나는 깨끗하게 세수하고, 옷도 잘 갈아입었다.

“데이몬드 경께 가실 거지요? 그럼 저희도 모실 준비를…….”

“아냐!”

“네?”

“혼자 가 꺼야.”

하녀들이 “어머?” 하다가 서로를 바라봤다. 그러곤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아버지를 만나는 게 수줍은 줄 아는 모양이었다.

그게 아니라 힐다랑 그레타는 공작성 사람이라서 그런 건데.

아버지는 공작성의 고용인을 믿지 않는다.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공작성 사람이 곁에 있다면 깊은 대화는 하지 못할 터였다.

하녀들은 내게 우산을 챙겨 주었다.

“데이몬드 경은 거의 병영에 계시거든요. 성 밖으로 나가셔야 하는데, 오늘은 비가 온다고 해요.”

날이 따뜻하다 싶더라니, 이제 슬슬 봄이 오려는가 보다.

“녜.”

우비까지 입은 후, 나는 하녀들에게 손을 팔랑팔랑 흔들고 밖으로 나왔다.

‘아버지라고 해서 나를 마냥 예뻐하지는 않을 거야.’

그랬다면 내가 12번째 탑에서 지내는 동안 편지라도 한 장 보냈겠지?

‘그것도 그렇고…….’

나는 <빙.흑.손>의 내용을 떠올렸다.

어두운 밤. 에릴로트는 숙부의 방 앞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고 있었다.

“에릴로트가 돌아가신 데이몬드 백부님의 딸이 아닐 수도 있다고요?”

“그래. 데이몬드는 에릴로트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전쟁터에 있었어. 전쟁터에서 어떻게 애를 만들겠느냐.”

“한데 할아버님께선 어째서 에릴로트를 받아 주신 겁니까?”

“실험으로 태어난 아이가 아니냐는 말이 있지.”

“실험으로 태어난 아이? ‘호문쿨루스’ 말입니까? 말도 안 돼! 인간 제작은 단 한 번도 성공한 적 없습니다. 무엇보다 실험하는 것조차도 법으로 엄히 금한 사항이고요!”

“그러니 아버님께서도 데이몬드의 딸로 공표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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