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3화. (23/390)

23화.

거인, 아니, 데이몬드 관할령의 병사 모스코는 힐끔 뒤를 쳐다봤다.

“맞아, 아니야?”

“그게…….”

“아니면 가고.”

“마, 맞는 것도 같습니다.”

그러자 모스코가 힘을 주어 외눈박이의 도끼를 떠밀었다.

외눈박이는 도끼를 놓치고 나뒹굴었다.

용병단 구역에선 가장 덩치가 큰 외눈박이가 모스코의 앞에선 마치 어린애 같았다.

한지혁은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모스코는 주먹을 우드득, 소리가 나게 주물렀다.

“우리 아가씨가 말씀하셨다. 친구를 괴롭히는 놈들을 혼쭐내 주라고.”

“무, 무슨……!”

“내 뒤에 딱 붙어.”

그날, 한지혁은 비 오는 날 먼지 나게 맞는다는 게 어떤 건지 보게 되었다.

* * *

나는 날이 밝자마자, 중정으로 내려왔다.

관할성은 정말이지 완벽했다.

‘보수만 하면 새로운 성인 줄 알겠다.’

미켈란은 하인들의 예법도 새로 가르쳤는지, 보이는 사람마다 격식 차린 인사를 했다.

나는 계단에 앉아서 모스코를 기다렸다.

얼마쯤 기다렸을까.

모스코가 서쪽 복도에서 중정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모스코.”

“으잉? 아가씨, 안 주무셨습니까?”

“일찍 일어나써. 칭구는?”

한지혁은 어떻게 됐는지 물었다.

모스코가 쪼그려 앉아서 나와 시선을 맞춰 주었다.

나는 계단을 세 개나 올라왔는데, 모스코는 얼마나 큰지 쪼그려 앉는 것만으로도 나와 눈높이가 비슷했다.

모스코가 주변을 살피고 속삭였다.

“그 미끈한 면상…… 가 아니고, 아가씨 친구분은 저기에. 습격한 놈들은 혼쭐을 내주었습니다.”

“고마어.”

“…….”

모스코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내가 “왜?” 하자, 그는 어허헛! 호탕하게 웃었다.

“아가씨는 항상 처음 듣는 말을 많이 해 주십니다.”

“고맙슴미다 안 들어 바써?”

“누가 노예에게 고맙다고 합니까? 부모한테도 머리 한 번 쓰다듬어진 적 없는 인생입니다.”

모스코를 빤히 쳐다봤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웃기만 했다.

난 그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모스코 이써서 나 조아.”

“…….”

“고마어.”

“…….”

모스코는 아주 쑥스러운 표정이었다.

하지만 머리가 쓰다듬어지는 건 썩 나쁘지 않은 기분인 모양이었다.

아주 오래 얌전히 내 손길을 받고 있었으니까.

내가 손을 거둔 뒤에야 그는 헤죽, 웃고는 날 번쩍 들었다.

“갑시다. 미끈한 면상…… 아니, 아가씨 친구에게 모셔다드릴 테니.”

나는 모스코의 무등을 타고 이동했다.

어젯밤, 나는 모스코에게 두 가지 부탁을 했다.

한지혁을 구해 달라.

구하면 성으로 데려와 달라.

“칭구 어디에 이써?”

“안전한 데에 놔뒀습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모스코가 데려간 곳으로 갔는데…….

‘안전해?’

어디가?

나는 스르륵, 시선을 돌려서 모스코를 쳐다봤다.

“모스코, 요기는…….”

“예, 이 관할성에서 가장 안전한─!”

“…….”

“─장군님의 침실입니다!”

아버지가 밧줄을 둘둘 메고 있는 한지혁을 어이없는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엔조는 모스코를 서군(데이몬드의 군대) 최강의 창이라고 불렀다.

아버지를 제외하면 모스코와 1 대 1로 붙어서 이길 수 있는 사람이 없단다.

그런 그가 왜 아직 일반 병사인가 했더니,

‘바보, 아니, 순수하구나…….’

아버지는 팔짱을 낀 채로 한지혁을 지그시 쳐다보는 중이었다.

아버지의 눈빛이 얼마나 무서운지, 한지혁은 매우 창백해져선 어깨를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저러다가 숨넘어가겠다.’

일단 한지혁과 아버지를 떼어 놔야겠다.

“에리로트 칭구예요.”

“친구?”

“녜! 어제요. 케이크 머그러 가서요. 만나써요.”

“친구를 성에 초대한 건가? 이렇게 이른 시간에?”

“칭구가요. 나쁜 사람들하테 쫓기구 있대써요. 그래서요. 에리로트가 도와줘써요. 모스코하테 부탁해서요.”

“…….”

아버지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한지혁을 쳐다봤다.

나는 행여나 아버지가 의심할까 봐 뒤꿈치로 한지혁을 툭, 쳤다.

“예? 아, 예……. 맞습니다, 친구.”

“성인인 네가 아이인 내 딸과 친구라고.”

나는 얼른 대답했다.

“성인 아냐. 천소년이야. (성인이 아니야. 청소년이야.)”

아버지와 모스코가 미간을 좁혔다.

한지혁은 어느 모로 보나 스무 살은 되어 보인다.

키도 족히 180센티는 되고, 일단 차림이 너무 성인 같았다.

포마드로 넘긴 머리 하며, 백바지와 뾰족구두 하며…….

아버지는 잠시 한지혁을 뜯어봤다. 그러곤 이내 험악하게 인상을 찌푸렸다.

“너, 내 딸을 속인 게냐.”

“어디 그 얼굴로 청소년 운운을!”

모스코까지 버럭 소리쳤다.

만약 나를 속인 거라면 입을 쭉 찢어 버리겠다는 표정이라, 한지혁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속인 적 없습니다!”

그렇다.

그는 내게 나이를 말해 준 적도 없었다.

내가 소설을 보고 ‘이쯤이면 몇 살이겠다’ 하고 안 거지.

한지혁은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저는 열다섯이라고요…….”

아버지와 모스코가 무슨 헛소리냐는 표정으로 쳐다봤다.

변성기가 지난 데다가, 워낙 키가 크고, 불꽃 노안이라 그렇지. 쟤는 15세가 맞다.

사기꾼 짓을 하려면 성인으로 보여야 했다. 그래서 저 노안을 이용하여 최대한 나이가 많아 보이게 꾸민 것이다.

“거짓말.”

“어디서 감히.”

모스코와 아버지가 말하자, 한지혁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풀어 주시면 신분 패를 보여 드리겠습니다.”

아버지는 모스코에게 눈짓했다.

모스코는 곧 밧줄을 풀어줬고, 한지혁이 재킷 주머니를 뒤져서 신분 패를 꺼냈다.

[조이 카터.

1203, 플라우드령 출생]

아버지는 인상을 찌푸리며 신분 패를 쳐다봤고, 모스코는 “허…….” 신음했다.

“이야. 이놈 뒈지게 고생한 모양인데. 뭐, 이렇게 늙었어.”

한지혁은 이제 해탈한 표정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무릎을 잡고 말했다.

“칭구랑 놀고 시퍼요.”

“…….”

“쪼꼼만 노 꺼야.”

아버지는 한지혁을 쳐다보다가, 설렁줄을 당겼다.

얼마 지나지 않아 미켈란이 들어왔다.

“예, 주인님.”

“저놈, 씻겨다가 온실에 데려다줘라.”

용병단에게 호되게 당했는지 한지혁의 꼴은 엉망이었다.

미켈란은 곧 한지혁을 데려갔다.

* * *

온실.

나는 한지혁이 올 때까지 따뜻한 우유를 마시고 있었다.

우유가 막 바닥을 보이는데, 문 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니, 멀끔한 차림의 누군가가 들어오고 있었다.

깔끔한 흰 셔츠, 검은 바지.

약간 물기 어린 분홍색의 곱슬머리.

푸른 눈동자.

한지혁이었다.

‘오…….’

앞머리를 내리고, 옷을 갈아입은 것만으로도 볼만해졌다.

원래 세계의 아이돌 상이라고 해야 하나.

“이제 아저씨 아니네.”

내가 말하자, 한지혁이 울컥 인상을 썼다.

“이전엔 성인처럼 보이려고 수염 자국도 그리고, 다크 써클도 팍팍 그렸으니까 그렇지.”

“지금이 더 보기 조아.”

“……나도 알아.”

내 앞에 털썩 앉은 그가 무릎을 꼬았다.

“알면서도 안 한 거라고. 너 가난하고, 곱상한 남자가 살기 얼마나 험한 줄 알아? 귀부인들은 추파를 던지지, 간혹 징그러운 사내놈들도……. 으.”

확실히 한지혁은 잘생겼다.

‘소설 속 주역이 다 그렇지 뭐.’

얘도 설정이 특이한 만큼 <빙.흑.손>의 주역이었다.

마지막 남은 우유를 빨대로 쪽 빨고 있는데, 한지혁이 “흠.” 하고 헛기침했다.

“외눈박이가 날 찾아오는 건 어떻게 알았어.”

“소설에서 바써.”

“……왜 구해줬어? 외눈박이에게 돈을 다 빼앗기면 복수하겠다고 네 손을 잡을지도 모르잖아.”

“너, 외눈바기하테 맞아서 절름발이가 되고든.”

“뭐?”

“나뿐 짓 하기는 해찌만, 절름발이가 될 정도로 나뿐 사람인 고 아니니까.”

내가 아무렇지 않게 말하자, 한지혁의 눈이 커졌다.

그는 나를 한동안 빤히 쳐다봤다. 눈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이내 그가 탕! 테이블을 치더니 벌떡 일어났다.

“꼬시지 마!”

“내가?”

나 세 살인데?

한지혁과는 열두 살이나 차이가 난다.

이게 미쳤나.

어이가 없어서 미간을 좁히자, 한지혁이 소리쳤다.

“그거 말고, 인간적으로 말야!”

“머?”

“난 귀족 안 믿어.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당했는데……. 네가 아무리 그래도 난 절대 안 넘어가.”

“……누가 넘어오래써?”

“네가 다람쥐처럼 귀엽게 생겼다고 해도! 재수 없게 말해 놓고 사람 구해 주는 반전 매력이 있더라도! 난 절대……!”

“…….”

“알겠냐고.”

난 잠시 고민했다.

얘도 좀 정상이 아닌 것 같은데, 굳이 얘여야 할까…….

‘참자.’

내가 정체를 밝힐 수 있는 사람은 같은 차원 이동자인 한지혁뿐이잖아.

다른 사람들에게 밝혔다간 그날로 정신 상담가를 만나야 할 거다.

난 여전히 “절대 안 믿어!” 하며 씩씩거리는 한지혁을 쳐다봤다.

그리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지혁아.”

“……!”

“그동안 힘들었지.”

“이씨……. 꼬시지 말라니까…….”

“나도 알아.”

한지혁의 눈이 일그러졌다.

그러곤 칫, 혀를 차더니 고개를 돌린다.

얼핏 보이는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

‘그래, 얘도 얼마나 힘들었겠어.’

한지혁의 스토리는 나도 잘 안다.

술주정뱅이 나무꾼의 아들로 태어나서 어릴 때부터 죽어라 일했다.

아버지를 피해 도망쳤지만, 어른에게 이용당하는 건 마찬가지였다.

급료를 제대로 주지 않고, 자존감을 다 깎아 버리고…….

당하다 당하다 결심한 거다.

이제 당하지 않고, 되돌려 주는 사람이 될 거라고.

‘원래 세계에서도 고작 스무 살이었던 애잖아.’

한참 훌쩍이던 그가 조그만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뭘 어떻게 하면 되는데?”

“견매장에 다녀오먼 대. (경매장에 다녀오면 돼.)”

“경매장?”

나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 * *

며칠 후, 경매장.

한지혁은 인상을 찌푸리며 단상을 쳐다보았다.

에릴로트가 구매하라고 했던 ‘그 물건’의 차례였다.

“고대 신전에서 쓰였던 화로입니다. 10만 골드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고대니, 신전이니 하고 대단한 척하지만, 고작 화로였다.

딱히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단지 고대에 만들어졌을 뿐인 화로.

이런 물건에 가치가 있을 리 없다.

자신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지, 시작 금액이 10만이었다.

다른 상품이 보통 100만으로 시작하는 것을 생각하면, 아주 낮은 금액이었다.

‘그 꼬맹이, 나한테 사기 치는 거 아니야?’

에릴로트가 쓸데없는 화로를 경매에 올려놓고, 자신이 큰돈을 주고 낙찰받는다면?

자신은 있는 돈만 털리고, 남는 것은 저 화로가 전부일 것이다.

사기라고 주장할 방법도 없었다.

좌우지간에 낙찰을 받은 건 자신이니까.

‘그럴듯한데?’

그 꼬맹이 꽤 똑똑해 보이던데…….

그때, 경매 참가자들이 피켓을 올리기 시작했다.

“15만.”

“20만.”

“23만.”

“100만!”

뭐?!

한지혁은 매우 놀라 뒤를 돌아봤다.

100만을 호가한 중년의 귀족이 의기양양하게 웃고 있었다.

‘바슬랭 남작이잖아.’

고대 유물 모으기에 심취한 것으로 유명한 부자였다.

100만이라니. 50만에 낙찰받아도 손이 떨릴 것을 100만이라니!

‘……빌어먹을.’

한지혁이 피켓을 올렸다.

“101만!”

소리치자 바슬랭 남작의 눈썹이 꿈틀했다.

“150만.”

한지혁은 눈을 크게 뜨고 남작을 쳐다봤다.

‘미친놈. 무슨 화로 하나에……!’

칫, 혀를 찬 그가 다시 피켓을 올렸다.

“151만.”

“200만.”

“2…… 201만!”

“300만!”

한지혁과 바슬랭 남작의 시선이 허공에서 날카롭게 부딪쳤다.

인상을 왈칵 찌푸린 바슬랭 남작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384만─!!”

50만이나, 100만 단위로 딱 떨어지게 부르던 남작이 애매한 금액을 불렀다.

‘저게 마지노선인 거다.’

한지혁의 입매가 비틀렸다.

하지만 순순히 그보다 높은 금액을 호가할 순 없었다.

고대의 화로 하나에 384만이 넘는 금액을 쓰라고?

몇 년을 뼈 빠지게 사기 쳐서 모은 돈이 400만이다.

죽을 위기를 숱하게 넘기면서 벌었다.

‘그런 돈을 고작 화로 하나에 처박을 수는…….’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에릴로트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지혁아.”

“…….”

“그동안 힘들었지.”

‘빌어먹을.’

양손으로 얼굴을 벅벅 문댄 그가 조용히 피켓을 들었다.

“385만…….”

한지혁은 하얗게 불태운 얼굴로 힘없이 말했다.

그러자 진행자가 소리쳤다.

“385만! 더 없으십니까?”

“…….”

“…….”

“385만! 고대 신전의 화로는 백바지의 신사분께 낙찰입니다!”

바슬랭 남작은 어이가 없는 눈으로 한지혁을 쳐다봤다.

자신도 자신이지만, 너도 참 너다…… 하는 표정이었다.

한지혁은 고개를 푹 숙였다.

* * *

데이몬드 관할성.

나는 한지혁이 내민 상자를 받았다.

얼른 포장을 풀어 보자, 원하던 물건이 보였다.

‘고대의 화로!’

나는 확 밝아진 얼굴로 말했다.

“잘해써!”

“……그래.”

가뜩이나 불세출의 노안이던 한지혁은 며칠 새 더 늙어 보였다.

“너, 그거 내 전재산이니까 조심해서 다뤄─ 뭐 해!”

그가 말하는 동안, 나는 화로를 뒤집고 있었다. 안에 든 검은 돌이 우르르 떨어지면서, 화로에 생채기가 생겼다.

한지혁이 소스라치게 놀라서 나를 잡았다.

“이고 놔.”

“너, 내가 무슨 생각으로 저걸 낙찰받아 왔는지─”

“화로는 쓸모 엄써.”

“뭐?”

“중요한 고는 이 돌이란 마랴. (중요한 건 이 돌이란 말야.)”

한지혁은 쏟아져 있는 손톱만 한 돌멩이를 쳐다봤다.

화로가 커다랬던 만큼 족히 300개는 되어 보인다.

“이게 뭔데?”

“강하석. (강화석.)”

“강화석?”

“그래, 가호를 2배로 강하해 주는 인뉴애 보물이지. (그래, 가호를 2배로 강화해 주는 인류의 보물이지.)”

한지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 *

귀족 원로 회합.

지난 습격 사건 이후로 중지되었던 회합이 재개되었다.

물론 아스트라 공작 습격 사건의 수괴로 밝혀진 톨리소 후작 일파는 갈려 나갔다.

빈자리를 새로 차지한 귀족은 원로들의 눈치를 보았다.

‘살얼음판이로군.’

노회한 귀족들 가운데서도, 피라미드의 정점을 차지한 자들이 모인 자리.

웬만한 간덩이로는 감히 입조차 열지 못했다.

“하면 논의는 여기까지 할까.”

부셰즈 후작의 말에 다른 귀족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스트라 공작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스트라 공은 벌써 가십니까.”

“더 나눌 이야기가 있나.”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회의가 끝나면 늘 바삐 가시는지라. 함께 늙어 가는 처지에 술이라도 좀 기울이면서─”

“쓸데없는 소리.”

부셰즈 후작은 어깨를 으쓱했다.

다른 원로들이 하하, 웃으며 하나둘 말을 건넸다.

“술자리도 꽤 도움이 된다네. 취하면 사람이 유해지는 법이거든.”

“그럼. 취한 부셰즈 후작이 인심 쓴다고 고대의 돌을 팔아 준 것도 그렇고.”

고대의 돌 이야기에 부셰즈 후작은 손을 내둘렀다.

“말도 마십시오. 술이 깨고 나서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약속했는데 안 팔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고대의 돌.

그건 가호의 지속시간을 10분가량 늘려 준다는 특별한 돌이었다.

전투에서는 그 10분으로 생과 사가 갈리므로, 누구든 손에 넣지 못해 안달이었다.

하지만 어렵게 고대의 돌을 찾아낸 부셰즈 후작이 좀처럼 넘어오지 않아서 다들 입맛만 다시고 있었다.

‘능구렁이 같은 놈.’

공작은 인상을 찌푸렸다.

일부러 술자리에서 고대의 돌을 푼 이유는 짐작하고 있다.

원로 회의에 새로운 파벌을 만들려는 것이다.

그러니 자신이 억대의 골드를 제시해도 절대 팔지 않던 것을, 고작 술자리에서 푼 것이겠지.

부셰즈 후작이 하하, 웃었다.

“공들의 마음에 드신다면 다행입니다.”

“말이라고 하나. 전투에도 도움이 되고, 앞으로 또 값이 얼마나 오르겠나. 덕분에 재미 좀 보겠어.”

“하긴 강화석 같은 전설 속 보물이 아닌 이상, ‘고대의 돌’의 가치는 절대 떨어질 리 없지요.”

아스트라 공작의 눈빛이 싸늘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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