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아버지가 미간을 좁혔다.
“마님, 찰스?”
“찰쓰가 저는 오눌 빰 마님에 진승이어라— 해써.”
“…….”
“마님이 슨립 버서서, 그래서─”
아버지가 황급히 내 입을 큼지막한 손으로 틀어막았다.
“알겠으니까 그만해.”
나는 입을 꾹 다물고 조용해졌다.
아버지는 한숨을 푹 내쉬곤 손을 떼었다.
난 조심스럽게 아버지에게 말했다.
“발쟈쿠 안 나빠.”
“……그래.”
아버지가 발자크를 조용히 쳐다봤다.
발자크가 순간 움찔했다.
“가서 쉬어라. 책은 두고.”
“……예.”
“하나만 묻자. 대체 어디서 구한 것이냐?”
“…….”
“발자크.”
“리시안 공의 제한 서재에서…….”
아버지가 멈칫했다.
요슈아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고, 발자크는 고개를 푹 숙였다.
나도 깜짝 놀란 얼굴로 발자크에게 시선을 돌렸다.
리시안 공이라면 아버지의 쌍둥이 동생이었다.
즉, 쪼꼬미 형제들의 친부라는 말이다.
‘리시안 숙부님이 오래전에 아버지와 사이가 틀어졌다고 했지.’
그전까지 이 아스트라에서 아버지가 믿던 유일한 사람이 리시안 숙부였다.
아버지에게 리시안 숙부는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상냥한 동생이었다.
아버지와 리시안 숙부는 둘도 없는 사이 좋은 형제였다.
그런데 어떤 사건으로 인해 사이가 멀어지고 말았다.
정확한 내막은 모르지만, 사람들이 추측하는 건 있었다.
‘리시안 숙부가 아버지의 음식에 독을 탔다.’
왜냐면 사이가 틀어졌던 시기에 마침 아버지가 중독되어 사경을 헤맸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가 쌍둥이를 입적하란 할아버지 말을 따랐을 때, 다들 매우 놀랐다.
‘어쩔 수 없는 일인데.’
장남에겐 입적시킬 수가 없었다.
제국법 때문이다. 가주가 후계를 지목하지 않고 죽었을 시, 장남이나 장남의 아들이 집안을 물려받는다.
장자 상속이 원칙이기 때문에.
그러니 장남에겐 입적시킬 수 없고, 다른 2세들은 전부 자식이 있었다.
결국, 당시에 자식이 없던 아버지가 입적할 수밖에 없었다.
‘하여간, 그래서 쌍둥이는 리시안 숙부님 얘기를 아버지에게 꺼내는 게 어려울 거야.’
방 안의 공기가 더욱 무거워졌다.
나는 눈을 데루룩 굴리며 쪼꼬미 형제들과 아버지의 눈치를 봤다.
그러다가 하품하는 척 후아암 소리를 냈다.
“졸려.”
“그래, 벌써 밤이 늦었구나. 가서 쉬어라.”
다행이다.
아버지는 별말 없이 우리를 보내주었다.
쌍둥이가 먼저 나가고, 문이 닫힐세라 나는 열심히 쌍둥이들을 쫓아나갔다.
그러고 쌍둥이의 뒤를 쫄랑쫄랑 따라 걸었다.
방이 같은 층, 같은 복도에 주르륵 나란히 있으니 어쩔 수 없었다.
아버지의 집무실이 있는 복도를 막 지나왔을 때, 요슈아가 말했다.
“잘하는 짓이군.”
“……시끄러워.”
“멍청하긴. 그래서 책은 의미가 없을 거라지 않았어.”
요슈아가 입매를 비틀곤 발자크를 홱 돌아봤다.
“제발 부탁인데, 망가질 거면 혼자 망가져. 가능하면 영영 사라져주는 것도 좋고.”
‘우와…….’
말이 신랄한데 목소리와 표정마저 더없이 차가웠다.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였다.
요슈아가 먼저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가 버렸다.
발자크는 주먹을 꽉 말아쥐고 있다가 휙, 밖으로 나가버렸다.
‘뭔가 일이 있나 본데?’
책은 의미가 없을 거라는 요슈아의 말.
그리고 옷장에 숨어있을 때 들었던 형제의 말다툼 소리.
원래 형제들은 휴식기엔 공작성 부근에 있는 사저에서 지낸다. 그런데 갑자기 데이몬드 관할령에 온 것도 이상하다.
‘찾는 게 있는 거야.’
대체 뭐길래 저 형제들을 데이몬드 관할령까지 오게 했을까.
특히 발자크 쪽이 더 애가 타는 것 같았다.
짤뚱한 팔로 팔짱을 끼곤 흐음, 신음했다.
‘뭐, 됐어.’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라고.
저쪽에서 그걸 찾느라 무관심 해주면 좋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을 한 칸씩, 한 발자국씩 오르고 있는데, 책 내용이 불현듯 떠올랐다.
발자크 아스트라는 불운했다. 어릴 적부터 누구 한 사람에게 기대지 못했다.
어미를 죽이고 태어나, 아비마저 비명에 가고 자아가 생기기 시작할 무렵, 그는 깨달았다.
자신은 평생 혼자일 것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