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9화. (29/390)

29화.

* * *

요슈아는 방으로 돌아왔다.

근데, 침실 안에서 뭔가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인상을 왈칵 찌푸리곤, 침실 쪽으로 이어진 문을 확 열었다.

서랍을 뒤지고 있던 발자크의 어깨가 흠칫, 솟아올랐다.

“어, 왔냐……?”

“뭐해, 거기서.”

발자크가 흠흠, 민망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 등자 있지. 작은 거.”

“뭐?”

“아, 왜 리시안 공이 너한테 만들어줬던 거 있…….”

“발자크—!!”

요슈아의 고함소리가 방안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발자크는 움찔했다.

요슈아가 발자크의 멱살을 잡고는 그대로 벽으로 쾅! 밀어붙였다.

“리시안 공 얘기는 하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어.”

리시안 아스트라.

그 이름은 형제의 족쇄였다.

데이몬드를 독살하려 하고, 아스트라를 배반한 친부.

그는 아스트라에서 소유 중이던 신의 성물을 빼돌렸다.

리시안의 죽음도 성물 때문이었다. 성물로부터 저주를 받아서 그렇게 이른 나이에 사망하고 만 것이다.

만약 쌍둥이가 강력한 가호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리시안이 죽고 바로 버려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랬기에, 리시안의 이름은 쌍둥이 형제에겐 금기나 다름없었다.

발자크가 중얼거렸다.

“실수한 거야…….”

“그 실수는 대체 몇 번을 하는 건데.”

“…….”

요슈아가 싸늘한 얼굴로 발자크를 노려봤다.

“멍청하면 입을 다물고 있든가, 입을 못 다물겠으면 생각이란 걸 하든가.”

발자크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말이 좀 심하다?”

“심한 건 네 정신상태겠지.”

“이게—”

발자크의 손에서 기가 일렁이기 시작했다.

그가 손을 확 뻗었을 때, 요슈아는 재빨리 멱살을 놓고 물러났다.

발자크의 손에서 뻗어져 나온 파동이 그대로 벽에 꽂혔다.

쾅—!

둔탁한 소음과 함께 벽이 거대한 원형으로 푹 파였다.

“붙어볼까!”

“공격계 가호를 너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 멍청하긴.”

발자크가 인상을 찌푸리곤, 허리에 찬 단도에 손을 올렸다.

요슈아 또한 벽에 걸린 검을 잡았다.

공격에 먼저 들어간 건 발자크였다.

두 사람이 막 맞붙으려 했을 때,

“안 대!”

쫄랑쫄랑 달려온 에릴로트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았다.

흠칫, 놀란 발자크가 물러났다.

요슈아도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형제가 인상을 쓰곤 가로막은 아이를 쳐다봤다.

“야!”

발자크가 벌컥 소리를 질렀다.

“미쳤어? 왜 검 사이에 뛰어들어!”

하마터면 저 밤톨이 찌그러진 밤이 될 뻔했네.

“싸우니까 그러치.”

에릴로트가 아직도 둘을 가로막은 채로 말했다.

“아무리 싸운다고 해도 검 사이에 뛰어들면 어떡해!”

“네가 무슨 상관이야.”

발자크와 요슈아가 차례로 대답했다.

“형제끼리 싸우는 고 아냐.”

“아스트라는 형제끼리 죽이기도 하는 데야.”

“…….”

요슈아의 의견에 할 말이 없는지, 아이가 잠깐 침묵했다.

그리곤 고민하듯 음, 으음, 신음하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

“그러몬 아직 아가니까 위허마지 앙케 싸우는 고야. (그러면 아직 아기니까 위험하지 않게 싸우는 거야.)”

발자크가 헹, 코웃음을 쳤다.

“바보냐. 위험하지 않은 싸움이 어디 있어.”

“이써.”

“있다고?”

“응!”

에릴로트가 발자크와 요슈아의 손을 하나씩 잡았다.

‘……!’

‘뭐, 뭐야.’

요슈아가 흠칫, 놀랐고 발자크도 마찬가지였다.

발자크가 제 손을 잡은 에릴로트의 조막만 한 손을 쓱 쳐다봤다.

‘쟤는 왜 저렇게 사람을 덥석덥석 잡지?’

단추도 못 잠그던 어릴 때를 빼면, 누가 자신을 잡는 경우는 없었다.

검술 훈련을 받을 때나 타인과 닿았다.

그런데 에릴로트는 손잡는 데에 아주 거리낌이 없었다.

‘……내가 좋은가?’

생각해보면 그렇다.

킹갓울트라제너레이션초원을달리는야생마를 도와준 일도 그렇고, 간지럽다니까 약도 발라주고…….

에릴로트가 잡은 손에 발자크가 큼, 헛기침했다.

에릴로트가 양쪽의 두 사람을 끌고 테이블로 갔다.

두 사람을 각각 앉혀놓고, 발자크와 요슈아가 마주 보고 손을 잡게 했다.

“뭐야!”

“놔.”

두 사람이 벌레에라도 닿은 것처럼 얼른 멀어졌다.

에릴로트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파씨름이야.”

“뭔씨름?”

“파씨름. 이케 힘줘서 먼저 넘어뜨리면 대는 거야.”

에릴로트는 자신의 팔로 팔씨름을 흉내 냈다.

그걸 본 형제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고작 그딴 게 싸움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요슈아가 한껏 인상을 찌푸렸다.

“다 내방에서 나가. 헛소리하지 말—”

“흐응, 요샤는 질 꺼 가튼가 부지? (흐응, 요슈아는 질 것 같은가 보지?)”

“뭐?”

“슨부 피하니까. 발쟈쿠가 더 강한 고야. 그치?”

발자크는 득의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하지! 내가 형이라고.”

그러면서 요슈아는 자신과 상대도 안 된다며 으스댔다.

요슈아가 서늘하게 미소를 지었다.

“멍청한 만용은 여전하네.”

“방구석에서 책만 읽는 네가 날 어떻게 이겨.”

“잊었나 본데. 지난 검술 시합에선 내가 이겼어.”

“네가 비열한 수를 썼으니까.”

“당한 네가 멍청한 거겠지.”

형제의 시선이 다시 이글거리며 부딪쳤다.

발자크가 테이블을 쾅! 하고 두드렸다.

“누가 더 강한지 보자고.”

“난 대가가 없는 시합은 안 해.”

“네가 이기면 이제부터 네가 형해!”

요슈아가 한쪽 눈썹을 까딱였다.

두 형제는 자리에 앉았다.

에릴로트가 두 사람 사이에 의자를 놓은 후, 밟고 올라섰다.

그러곤 맞잡은 두 손 위에 제 조막만 한 손을 포개어 올려놨다.

“구럼 시—작!”

시작이라고 말함과 동시에 제 손을 떼어냈다.

두 형제는 주먹에 바짝 힘을 주었다.

* * *

나는 팔이 터질 것 같은 발자크, 요슈아를 흐린 눈으로 쳐다봤다.

벌써 팔씨름을 시작한 지 족히 10분은 된 것 같다.

나는 저러다 쟤들이 팔이라도 부러질 것 같아서 조마조마한데, 당사자들은 죽어라 힘을 주고 있었다.

‘어쨌든 잘 됐다.’

일부러 요슈아를 자극한 보람이 있네.

난 그동안 요슈아의 방을 뒤져볼 생각이었다.

요슈아는 나갈 때면 방을 잠가놔서 들어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요슈아의 행동이 이상하니까.’

두 사람은 날 신경도 안 쓰고 팔씨름에 집중했다.

나는 의자에서 폴짝 뛰어내리곤 방 구경하는 척 뽈뽈뽈 돌아다녔다.

‘요슈아 방은 엄청 깔끔하네.’

청색으로 꾸며진 방엔 쓸데없는 가구가 없었다.

책상도 깔끔하고.

꼼꼼한 성격답게 책상 서랍은 다 꽁꽁 잠겨있었다.

‘별로 특이한 건 안 보이는데.’

그렇게 생각하던 중에 벽난로가 눈에 들어왔다.

난로에는 타다만 장작 몇 개가 있었다.

‘이 날씨에 장작……?’

밤이라면 몰라도 낮엔 햇볕이 뜨거워서 더웠다.

그럼 밤에 쓴 건가 싶었는데, 아직 불씨가 조금 살아있다.

‘방을 데우려고 한 게 아냐. 뭔가를 태운 거야.’

그리고 귀족인 요슈아가 태울 만한 거라면 뻔하다.

‘편지.’

요슈아를 힐끔 쳐다봤다.

두 사람은 여전히 팔씨름에 여념이 없었다.

“이제……! 포기……! 하지 그래!”

“너……나.”

‘더 파봐? 말아?’

요슈아가 만약 관할성에서 문제를 일으킨 게 아니라면 적당히 모른 척했을 것이다.

나섰다가 괜히 일이 잘못 풀리면 낭패니까.

‘하지만 내 영역 안에서 문제를 일으켰잖아.’

만약 그가 아버지나, 나를 노리고 있다면?

일이 터지기 전에 문제의 싹을 싹둑 잘라놔야 했다.

그때였다.

우지끈─!

테이블이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며 갈라져 버렸다. 저들의 힘을 버티지 못한 모양이었다.

‘히익!’

나는 깜짝 놀랐는데, 발자크가 소리쳤다.

“내 승리야. 테이블이 부서지기 전에 네가 밀리고 있었으니까!”

“헛소리하고 있네.”

“맞잖아!”

“그 전엔 네가 두 번이나 넘어갈 뻔했지.”

‘저렇게만 보면 딱 어린애들인데.’

뭔가를 숨기고, 암투하고, 이권을 잡기 위해 필사적으로 살지 않아도 될 어린애.

나는 흠, 하고 신음했다.

* * *

밤.

저녁 식사를 잔뜩 한 나는 동그랗게 오른 배를 통통 두드렸다.

“오늘 식사를 맛있게 하셨나 봐요, 아가씨.”

“응!”

오늘은 쌍둥이와 식사를 따로 했다. 아버지도 관리들과 식사했고.

그래서 난 오랜만에 여유롭게 저녁을 즐겼다.

“이─러케 큰 고기 머거써.”

“어머나, 잘됐네요. 양치는 하셨지요?”

“녜.”

하이디가 웃으며 내 옷의 단추를 풀어줬다.

“자, 만세 하셔요.”

“만세.”

하이디는 “우우.” 하고 황홀한 표정을 짓더니 뺨에 얼굴을 비볐다.

“너무 착한 우리 아가씨.”

한참 뺨에 얼굴을 문대던 그녀가 아차, 하며 떨어졌다.

‘응?’

보통 한번 시작하면 5분은 걸리는데, 오늘은 웬일로 일찍 떨어진다.

“서둘러야지, 참.”

그녀가 그렇게 중얼거리길래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오디 가?”

“두 분 도련님의 옷도 챙겨드려야 해서요.”

“발쟈쿠랑 요샤랑 하녀 안 데려 와써?”

“그럼요. 유모도 대동하지 않으시는데요. 옆에 사람 두는 걸 무척 싫어하셔서요. 그래도 이번엔 웬일로 자하뱅 남작과 오셨더라고요.”

하이디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요슈아 도련님께서 싫어하신다고 들었거든요.”

싫어해?

싫어하는 사람을 그렇게 감싸준단 말야?

“왜 시러해?”

“자하뱅 남작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걸요. 권력의 하이에나 같은 사람이라서…….”

“하예나? (하이에나?)”

“네, 이번에 평가 의원이 된 것도 권력에 빌붙어있기 때문이라던 걸요?”

“…….”

“데콘스 님을 그렇게 추종하고 다니더라니, 결국 원하는 바를 이뤘나 봐요.”

“…….”

“아가씨껜 너무 어려운 얘기겠지요.”

하이디는 에헤헤, 민망하게 웃고 일어났다.

“이불 꼭 덮고 주무셔요?”

“응.”

“좋은 꿈 꾸세요. 아가씨.”

하이디가 나가고 나는 침대에 풀썩 누웠다.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 너무 많단 말야.’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도 자꾸만 거슬리는 것투성이다.

‘그러면 어쩔 수 없다.’

나는 단전에 마력을 흘려보냈다.

그러자 눈앞이 번쩍 빛나며, 창이 떠올랐다.

‘웬만해선 가호는 쓰고 싶지 않았는데.’

지난번 미켈란 사건 때 가호를 쓰고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댓글 보면 속이 터져.’

빨리 달리아가 와서 분위기 좀 반전 시켰으면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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