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5화. (55/390)

55화.

자이언트 타란튤라.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엄청나게 큰 거미 같은 몬스터다.

이 자이언트 타란튤라는 살상력이 강해 악명이 높았다.

‘사살하기도 어려운데, 죽이는 것보다 생포하는 건 몇 배로 더 어렵지.’

몬스터 토벌 전문 용병단이 뛰어들어도 사살할까 말까 한 게 자이언트 타란튤라다.

근데 그걸 산 채로 잡았다고?

‘대단하네.’

역시 남자주인공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었다.

알렉시스의 나이를 생각하면 굉장한 일이다. 고작 14살 꼬꼬마인걸.

원래 꼬꼬꼬마였던 알렉시스가 꼬꼬마로 성장했다고 생각하니 대견해졌다.

‘잘 자라줬지. 자이언트 타란튤라를 잡을 수 있을 만큼.’

그러고 보니 점점 더 걱정된다.

자이언트 타란튤라라는 악명 높은 몬스터를 잡으면서 상처 하나 나지 않기는 쉽지 않은 일일 터.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

‘왜 화상 통신석은 없는 거야?’

나한테 주인공 버프가 있다면 화상 통신석부터 개발해버릴 텐데.

아쉬움에 탄식이 흘렀다.

[왜? 자이언트 타란튤라, 싫어?]

알렉시스가 내 한숨 소리를 오해했는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

“싫을 리가 있어? 다만…….”

걱정이 되니까 그렇지.

혹시 너무 무리한 것은 아닌지. 괜히 몬스터를 생포하려다 어디 다친 것은 아닌지.

‘얘는 아무렇지 않은 척 무리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그렇지만 걱정만 해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이럴 때는!

‘역시 병원을 더 많이 지어야 해.’

계획을 세우는 것이 더 낫다.

혹시나 다치면 ‘근처에 병원 있지? 병원 가!’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도록.

물론 그래도 걱정은 되겠지만.

‘내 소중한 주식.’

1황자가 황제가 되면 아스트라는 망한다.

그래서 난 알렉시스한테 밑천을 깡그리 다 털어 넣었다.

얘가 상한가를 쳐주지 않으면 아주 곤란하다.

‘아냐, 내 주식은 지금 착착 잘 오르고 있어.’

아직 14살인데 자이언트 타란튤라를 잡아 오잖아.

의욕이 샘솟았다.

이렇게 의욕이 날 때는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

우선 알렉시스에게 명확하게 물었다.

“다치진 않았어?”

[별로.]

“별로라니. 다쳤다는 거야, 안 다쳤다는 거야?”

[안 다쳤어.]

진짜 안 다쳤냐고 되물으려고 하는데 곁에서 다른 목소리들이 들렸다.

[아가씨? 아가씨야? 나도 인사할래!]

[아가씨, 잘 지내시죠?]

[글리입니다!]

[목소리를 자주 들려주세요!]

이그리츠 훈련소의 종자였던 아이들이다.

이제 종자에서 승진(?)해서 훈련병이 되었다고 한다.

아이들이 오랜만에 내 목소리를 듣자 신이 나서 시끄럽게 통신에 뛰어들었다.

[아가씨, 우리가 윽─!]

[좀 비켜.]

알렉시스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아이들이 서슴없이 끼어드는 걸 보니 제법 사이좋게 잘 지내는 모양이다.

‘다행이다. 외롭지 않게 지내서.’

알렉시스를 훈련소에 데려다 둔 건 잘한 일이었다.

내가 알던 원작에서 알렉시스는 정말 엄청나게 고생한다.

거의 데굴데굴 굴렀다.

그래서 나는 알렉시스가 원작과 달리 구김 없이 잘 자라기를 바라고 있었다.

‘음, 출생의 비밀 때문에 구김 없기는 힘들겠지.’

그래도 앞으로 좋은 일만 있으면 좀 나을 거다.

고생하던 주인공 앞에 꽃길만 깔아주고 싶은 기분.

‘이게 바로 독자들이 댓글로 달던 랜선 맘의 심정일까.’

흐뭇하게 알렉시스와 아이들이 투닥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한바탕 우당탕탕 소리가 들리고 알렉시스가 통신석에 말했다.

[어쨌든 너한테 보낼게.]

“그런데 타란튤라는 국경을 못 넘을 거야.”

[그럼 알은?]

알이야 몰래 들여오기 어렵진 않을 거다. 기본적으로 타조알과 비슷하게 생겨서.

하지만 자이언트 타란튤라의 알은 정말로 구하기 어려울 텐데.

자이언트 타란튤라는 알을 몸속에서 부화시키니까.

“알이 있어?”

[응. 운 좋게 하나 얻었어. 알부터 길들이면 너도 좋지 않아?]

당연하지!

그런 것까지 세심하게 생각하고, 역시 똑똑하다니까.

나는 뿌듯함에 고개를 끄덕였다.

‘투자한 보람이 느껴지네.’

나는 투자자다.

물론 마음으로만 투자하는 양심 없는 짓은 안 한다.

‘실제로도 야무지게 투자했지.’

난 알렉시스뿐만이 아니라, 이 이그리츠 용병단 자체의 투자자였다.

얼마나 많은 돈과 얼마만큼의 시간이 들었던가.

훈련소의 외벽 보수를 하고 나면 비가 새고.

천장을 수리하고 나면 계단이 무너졌다.

계단을 수리하고 나면 기사들이 전염병에 걸렸다.

‘지금 연락하는 통신석도 내가 구매해준 거고.’

엄청 비쌌지. 이 쪼끄만 통신석이 왜 이리 비싼지.

통신석을 살 때는 손이 발발 떨렸다, 진짜…….

공녀 에릴로트가 아니라 내 안의 소시민 유혜민이 ‘이거 가성비 너무 나빠!’하며 절규했었다.

‘가격 흥정도 파는 곳이 많을 때나 하는 거지.’

통신석 같은 고가의 제품은 공급자가 부르는 게 가격이다.

오버 좀 보태서 살 때 피눈물이 났지만, 통신석만큼은 꼭 필요했다.

내게는 여러 갈래로 뻗은 정보망들이 있고 그 정보가 내 힘의 원천이다.

그 정보망과 언제 어디서나 소통할 수 있다는 건 엄청 중요한 거니까.

돈보다 더!

게다가.

‘내가 지금까지 길들인 마물을 구해온 게 이그리츠 용병단이니까.’

그들에겐 아까운 게 없었다.

‘…….’

아니, 아주 안 아깝진 않고…….

아깝지만 쓰는 거지!

원래 돈 나갈 땐 다 아까워!

[생각할 게 있으면 천천히 해.]

다른 생각을 하느라 말이 없는 나를 알렉시스가 차분히 기다려 줬다.

‘아. 설마 돈 생각한 거 티 난 건 아니겠지?’

큼큼, 헛기침한 후 알렉시스를 불렀다.

“알렉시스.”

[응.]

난 깜짝 놀랐다.

목소리가 조금 전보다 더 낮아진 것 같아서.

‘그새 변성기가 오나.’

조금만 안 봐도 쑥쑥 크는 게 신기하지만, 잡생각은 일단 옆으로 치워두고 말했다.

얼굴도 보지 못하고 목소리로만 대화하는 거니까 내 걱정을 확실히 표현해주고 싶었다.

“조심해서 돌아와. 또 팔 하나 아작나지 말고.”

[알겠다니까.]

“그럼 끊는다?”

[……그래.]

‘뭐, 더 할 말 있나?’

알렉시스가 나를 기다려 준 것처럼 나도 말없이 기다려 보았다.

그렇지만 딱히 다른 할 말은 없어 보였다.

“그럼 끊을게!”

나는 먼저 통신을 종료했다.

그리고 통신 중엔 할 수 없던 격한 표현을 했다.

‘우와! 자이언트 타란튤라 알이라니!’

주먹을 쥐고 흔들다가 침대로 뛰어들었다.

푹신한 침대에 누워서 뒹굴뒹굴하며 팔다리를 파닥파닥 흔들었다.

많은 것들이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다.

‘우선 내 두 번째 가호가 그렇지.’

이제 사람들은 내 가호가 두 개인 줄 알게 되었다.

원래 사람들에게 알려진 내 가호는 <고대어 읽기>다.

초반에 할아버지 눈에 들 때는 무척이나 유용한 가호였지만, 고대 역사책을 다 읽은 이상 이제 써먹을 데가 없다.

‘그래서 책의 마지막쯤엔 최대한 천천히 읽기는 했지.’

그래도 책의 페이지 수는 정해져 있고 내 가호의 효용 가치는 날로 떨어져 갔다.

사람들한테 날이 갈수록 내 평가가 떨어지는 게 느껴졌으니까.

평민과 귀족의 근본적인 차이는 바로 가호의 유무였다.

‘가호가 없다면 평민이나 마찬가지지.’

특히나 나는 평민 어머니를 두었기 때문에 더욱 박한 평가를 듣곤 했다.

‘그 상황에서 가호까지 무용지물이 되면…….’

아예 평민과 같은 취급을 받겠지.

물론 그렇다고 해도 내가 아스트라의 직계라는 사실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어.’

아무리 발자크, 요슈아 쌍둥이가 뛰어나다고는 해도 나는 아빠가 가장 아끼는 딸이다.

내가 평민이나 마찬가지라면 우리 가족에 대한 평가도 함께 내려간다.

‘그래서 <마물 조련>이라는 가호를 새로 만든 거야.’

물론 내가 지금까지 일궈온 업적이 있기 때문에, 아스트라 령에만 있을 거라면 두 번째 가호가 없어도 상관없긴 했다.

하지만 현재 내 목표는 더 높은 곳에 있었다.

‘후후후.’

바로, 제국 중앙 정계에 입성하는 것!

중앙의 콧대 높은 귀족들은 쟁쟁한 가호를 갖고 있다.

이미 단물이 다 빠진 <고대어 읽기> 같은 가호를 인정해줄 리 없다.

‘그렇지만 <마물 조련>은 다르지.’

마물 조련.

그 누구도 갖지 못한 특별한 가호.

누구도 가진 적 없는 가호이기에 모두가 호기심을 느낄 것이다.

-모든 마물을 길들일 수 있는지.

-몇 마리의 마물을 길들일 수 있는지.

-길들인 마물들을 이용해서 어떤 능력을 펼칠 수 있는지.

궁금투성이일 것이다.

마물의 종류가 수없이 다양한 만큼, 내가 길들일 수 없는 마물도 수없이 많다고 생각할 터.

마물을 길들이는 내 모습을 보고 놀라 자빠질 중앙 귀족들의 모습이 선하게 그려졌다.

나는 히죽, 웃었다.

‘얼른 알이 도착하면 좋겠다.’

아무리 백경나무 피리로 교육해도, 역시 새끼 때부터 길들이는 것만은 못하다.

성체가 되어서 길들이는 몬스터들은 내가 백경나무만 들고 있지 않아도 공격하려 드니까.

하지만 새끼는 다르다.

부화하거나, 태어날 때부터 내 얼굴을 보여주고 백경 나무로 길들이면 날 가족으로 인식한다. 

‘그치만 새끼 마물은 구하기가 정말로 어렵지.’

마물들은 새끼를 자신들의 ‘둥지’에서 기른다.

그렇다 보니 새끼 마물을 구하려면 몬스터떼가 있는 ‘둥지’를 파괴해야 했다.

‘그건 거의 전쟁급이지…… 내 필요에 의해서 둥지를 파괴하고 싶지도 않고.’

결국, 지금까지 내가 제대로 길들인 몬스터는 둘 뿐이었다.

강철까마귀인 라곤.

그림자 마물인 옴브레. 

‘자이언트 타란튤라는 얼마나 귀여울까.’

한지혁은 또 내 취향이 이상하다고 하겠지만.

* * *

다음날.

나와 쌍둥이는 공작성으로 가기 위해 마차에 몸을 실었다.

졸려서 눈을 비비고 있으니, 발자크가 내 정수리에 턱을 괴었다.

“어제, 네 방에 늦게까지 불이 안 꺼지던데.”

타란튤라 알에 신이 나서 몬스터 관련 책을 좀 찾아보다가 잤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알지?’

“나 불 안 끈 거 어떻게 알아?”

“…….”

“…….”

쌍둥이의 침묵이 불안했다.

나는 매섭게 발자크와 요슈아를 노려봤다.

“또 나 잠들면 몰래 ‘둥지’에 가려고 살펴봤지?”

“아니!”

“……아니.”

딱 잡아뗄 거라면 말이라도 맞추지.

발자크는 너무 빨리 부정하고, 요슈아는 너무 늦게 부정했다. 요슈아 쪽은 발자크를 노려보느라 그랬다.

“라곤을 괴롭히지 말랬잖아!”

저 쌍둥이는 나의 강철 까마귀인 라곤을 원수 보듯 했다.

한번 등에 타본 적이 있는데, 그걸 보고 기겁했다.

그 뒤로 양 옆구리에─

<새 맛있게 굽는 법>

<새로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요리>

<집밥 배크선생! -새요리 편->

─같은 책을 끼고 살았다.

내가 눈만 떼면 라곤을 풀어주려고 난리였다.

발자크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자, 내 말을 들어봐. 기른다는 건 말이야. 기왕이면 안전하고…….”

“발자크, 악어를 몰래 길렀잖아.”

“…….”

우연히 악어를 기르는 방에 들어간 한지혁이 씹어 삼켜질 뻔했다.

이번엔 요슈아가 웃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이 많이 기르고 있는 동물들을 곁에 두는 게 좋지. 아플 때도, 키울 때도 정보가 많으니─”

“요슈아, 배때지 검은 돼지 새끼들 기르는 게 재밌다고 했잖아.”

“…….”

착복한 관리에게 그렇게 말하면서 웃었으면서?

나는 두 사람을 새초롬히 노려보며 말했다.

“라곤은 공작성에서 기를 거야.”

“왜!”

“…….”

“맨날 풀어주려고 하니까 그렇지.”

발자크와 요슈아는 조용히 있다가 “공작성…….” 하고 중얼거렸다.

“이번에도 또 라곤에게 무슨 짓을 하면 그날엔 진짜로 가출할 거니까.”

“안 해!”

“그래.”

두 사람이 사색이 되었다.

얘기가 끝났을 땐 공작성에 도착했다.

우리는 다 함께 신관 홀로 걸었다.

오늘 공작성에 다 모인 건 이유가 있다.

‘바로, 오늘이 1년에 한 번 있는 연평가 날이니까.’

우리는 공작성에 새로 신축한 신관 홀로 향했다.

다른 시험이라면, 두 사람은 느지막하게 출발했겠지만, 오늘은 다르다.

나와 함께 일찍부터 출발한 것이다.

‘하긴. 그럴 만도 하지.’

최근 몇 년 사이 연평가의 결과가 엄청 중요해졌다.

2세들에게 실망한 할아버지가 3세들의 평가를 더 꼼꼼하게 진행하라고 지시하셨기 때문이다.

‘꼼꼼하게 진행된 평가인 만큼 그 결과가 확실하게 갈려.’

평가 결과의 신뢰도가 높아지자 할아버지는 연평가를 객관적인 지표로 여겼고, 중요성은 날로 높아졌다.

‘여기서 한 해 동안의 서열이 갈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니까.’

홀에 도착하자 웅장한 샹들리에가 우리를 맞이했다.

공작성의 다른 홀들도 아름답지만, 신관 홀은 새로 지어진 건물인 만큼 다른 홀에 비해 특별했다.

고풍스럽고 고전적인 양식과 최근 유행하는 양식을 적절하게 조합하여 꾸민 내부 인테리어.

눈이 다 즐거워지는 기분에 두리번거리는데.

‘어, 누가 먼저 와 있네?’

우리가 1등으로 온 줄 알았더니 누가 벌써 홀에 들어와 있었다.

제일 먼저 훤칠한 키가 눈에 들어왔다.

아빠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그래도 잘생긴 얼굴이 그다음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마지막에 들어온 것은, 나와 아빠와 똑 닮은 금발과 적안.

‘금발 적안은 흔하지 않지.’

우리 아빠와 내가 금발에 적안이다.

이렇게 2대가 금발에 적안인 경우는 별로 없는 굉장히 특별한 경우다.

이 금발과 적안은 아스트라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아스트라의 초대 가주가 금발과 적안을 가졌기에 아스트라 사람들은 금발과 적안에 큰 의미를 둔다.

얼마나 큰 의미를 두냐면, 아스트라답지 않게 오컬트적인 이야기가 내려올 정도다.

초대 가주가 기도해서 뛰어난 아이들에게만 금발과 적안이 유전되도록 했다!

―라는 설이 그 예다.

설이라고는 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이 설을 믿고 있다.

‘뭐. 내가 그 덕을 보긴 했지.’

오죽했으면 평민에게서 태어난 내가 금발과 적안이기 때문에 아스트라에서 받아줬다는 얘기까지 있을까.

3세들 가운데 금발 적안은 딱 둘 뿐이다.

나, 에릴로트 아스트라.

그리고 블리젠 아스트라.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