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6화. (76/390)

76화.

* * *

나는 공작성에 열심히 드나들며 소문을 수집했다.

물론 사람들은 나를 보며 엄청나게 수군거렸다.

심지어는 수군거리는 걸 숨길 생각도 하지 않았다.

지난번에 라곤 때문에 사고를 치고, 어떻게든 공작의 마음에 다시 들려고 한다며 내게 손가락질하는 것이다.

나를 보는 주변의 시선이 너무도 싸늘하다.

물론 눈을 마주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어색하게 웃지만.

‘이 오라버니들 때문에.’

나는 내 주변을 온통 감싼 채로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 리시먼드, 발자크, 요슈아를 쳐다봤다.

“괜찮대도 그래.”

“안 괜찮아!”

“그래. 당분간은.”

발자크와 리시먼드의 말에 요슈아까지 고개를 끄덕였다.

“관할성에 있는 게 어떨까. 이번 달엔 수업일수도 다 채우지 않았어?”

“수업 때문에 오는 거 아냐.”

“아니까 하는 말이야.”

요슈아가 이렇게 단호한 경우는 좀처럼 없다.

다른 사람에겐 칼 같아도 내게는 초봄의 꽃대처럼 부드러웠다.

‘날 걱정하기 때문이겠지.’

워낙에 분위기가 날카로우니까.

마침 복도 맞은편에서 사촌들이 걸어왔다.

조프리. 그리고 조프리의 금붕어 똥들인 애덤과 파비오다.

조프리는 히죽히죽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내가 그럴 줄 알았다고. 몬스터 좀 길들인다고 잴 때부터 언젠가 이 사달을 낼 줄 알았단 말이야.”

“난리도 이런 난리가 없지?”

“맞아. 백부님, 숙부님, 고모들까지 얼마나 난리냐고.”

“아, 황자 전하가 몸살을 앓고 계신 것도 혹시 몬스터의 영향인 것 아냐? 그럼 재밌을 텐데.”

저쪽은 히히덕 수다를 떠느라 우리를 못 본 모양이었다.

발자크가 비스듬히 서서 조프리 앞에 쿵, 발을 가볍게 굴렀다.

“정말 재밌는 게 뭔지 보여줘?”

“바, 발자크.”

“우리 실전 훈련을 한 지 꽤 됐지? 응? 그래서 입을 또 나불거리는 모양인데.”

“내, 내, 내가 뭐!”

이번 일로 데이몬드 관할령의 위상이 크게 실추되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우리 남매 앞에만 서면 고양이 앞에 생쥐처럼 쭈굴해지는 조프리가 저렇게 당당하지.

“이, 이번에도 사고 치면 너희 막내뿐만 아니라 너도 조부님의 눈 밖에 날걸!”

요슈아의 입매가 말려 올라갔다.

“눈 밖에 날지언정 버리시진 않을 거야. 너 같은 놈보단 훨씬 효용성 있는 패거든, 우린.”

“뭐, 뭐라고?”

“시험해볼래? 발자크가 널 죽도록 패서 발가벗겨 매달았을 때, 버려지지는 지 아닌지.”

조프리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그가 흠칫, 물러났을 때였다.

슉!

리시먼드가 가호를 발동해 조프리의 등 뒤를 가로막았다.

“조프리.”

“뭐, 뭐, 뭐야. 혀, 협박은 이, 이제 그만……!”

“부디 내가 선을 넘게 하지 마.”

“……!”

리시먼드는 3세들 가운데 가장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였다.

조프리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된다.

침착해서 웬만한 일엔 화를 내는 법이 없는 리시먼드까지 흉흉해지자, 조프리는 완전히 겁을 집어먹었다.

“수, 수업이 있으니까 가는 거다, 내가!”

그러며 홀랑 도망친다.

애덤과 파비오도 조프리를 따라서 꽁지 빠지게 도망쳤다.

험악하게 인상을 쓰며 그들을 노려보던 삼형제가 내게 시선을 돌렸다.

“에릴로트. 그냥 가자.”

“그래. 이제 가자.”

“가서 쉬는 게 좋겠어.”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대로 떠나면 아무것도 해결되는 게 없다.

“조금 혼자 있으면 괜찮아질 거야. 흉보는 것도 오래 하면 질리잖아.”

“에릴로트…….”

나를 바라보는 세 오빠의 표정이 모두 안 좋았다.

“그럼 이만 가 봐. 나는 산책 좀 할게!”

나는 웃어 보이고 오빠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리고 홀로 호숫가로 나갔다.

얼마쯤 지났을까.

스스슥, 소리와 함께 다가오는 검은 연기가 있었다.

휘오오─!

검은 연기가 맹렬히 휘몰아쳤다.

나는 다정히 웃고서 손을 뻗었다.

“너무 오래 혼자 둬서 삐졌구나, 옴브레.”

옴브레가 넝쿨처럼 팔에 감겼다.

어쩐지 오늘따라 더 찰싹 달라붙는 것 같다.

“너도 라곤이 없어서 외로워?”

옴브레와 라곤은 사이가 좋았다.

원래 마물은 인간만 싫어하는 게 아니고 같은 마물도 안 좋아한다.

하지만 라곤은 워낙에 착한 애라서 옴브레가 귀찮게 해도 얌전했다.

사이좋은 단짝 친구가 사라졌으니 시무룩할 만하다.

“그럼 이제 보여 줄래, 옴브레?”

옴브레가 내 눈 속에 스며들기 무섭게 처음 보는 광경이 펼쳐졌다.

선황녀의 방.

주인이 자리를 비운 방을 지키고 있는 건 황궁 시녀복 차림의 여성이었다.

분주히 움직이던 시녀는 침대맡에 이르러 멈추었다.

그러곤 침대의 매트리스를 들었는데, 그 안에 웬 가죽 주머니가 구겨져 있었다.

시녀가 주변을 살폈다.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한 뒤에야 주머니를 연다.

그 안에 있는 건 기묘한 약초였다.

다루는 것이 심상치 않아 보인다.

창을 열어 주변을 확인하고, 문밖을 살핀 후에야 시녀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벽난로에 불을 올리더니, 그 안에 약초를 집어넣었다.

그 순간.

옴브레가 엄청나게 날뛰기 시작했다.

시녀는 인상을 찌푸리곤 팔을 휘저었다.

“오늘은 왜 이렇게 연기가 크게 난담.”

날뛰는 옴브레를 연기로 오인한 시녀는 몇 번이나 기침했다.

그렇게 매운 연기라면 방을 나가거나, 창문을 열 법도 한데 움직이는 법이 없었다.

시녀는 약초가 남김없이 타고 난 후에야, 창을 열어 환기했다.

옴브레가 튀어나올 수 있던 것도 그 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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