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2화. (82/390)

82화.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모두의 시선이 단번에 나를 향했다.

“왜 그러냐.”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빠의 말에 나는 고개를 살래살래 저였다.

“그런데 제가 사교활동을 이제 막 시작하는 때잖아요.”

“그렇지.”

“유모의 역할이 엄청 중요할 텐데 신중히 고르는 게 낫지 않을까요? 경력이나 이런 거 저런 거를 다 따져서…….”

“그 경력을 생각해서 황궁 시녀장 출신이면 꽤 도움이 될 텐데.”

“그…… 렇긴 하지만요.”

그래. 그렇긴 하지만, 나도 알지만—

‘아샤 부인은 달리아의 개인 교사였다고!’

나는 그렇게 외치고 싶은 심정을 억누르며 머리를 감싸 쥐었다.

개인 교사.

이렇게만 말하면 그냥 시간에 맞춰 수업만 할 것처럼 들리고 달리아와 거리가 있어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달리아는 성인이 되어서야 아스트라 장원에 온다.

가르칠 건 산더미처럼 많은데, 나이가 있으니 유모를 못 붙이진 못했다.

그래서 개인 교사로 말만 바꿔서 아샤 부인을 달리아에게 붙여주었다.

유모 대신에.

달리아의 유모 대신이란 건 무슨 소리냐.

나랑 싸울 일이 엄청나게 많았다는 뜻이다.

“아가씨께서 주제를 아신다면 참 좋을 것인데.”

“뭐라고?”

“달리아 아가씨 눈물 한 방울이면 지하 옥사로 끌려갈 처지라는 걸 인지는 좀 하시라고.”

달리아는 가호를 세 개나 가진, 아주 특별하고 중요한 존재였다.

나처럼 가짜 가호가 아니라 진짜 가호를 지닌 존재.

심지어는 <치유>라는 가호가 4장까지 개발되기까지 했다.

즉, 숨만 붙어 있으면 어떤 환자이든 다시 되살려놓을 수 있단 소리다.

‘좀 오래 걸리긴 했지만.’

어쨌거나 그건 가히 기적이라고 불릴 만한 능력이었다.

그러니 세상 사람들 모두가 달리아를 찬양하고 우러러봤다.

아스트라 장원은 물론, 황궁에서도 달리아라면 껌뻑 죽었다.

아샤 부인은 그런 달리아를 매우 자랑스러워했다.

실제로 달리아의 유모 대신이라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권력을 누리기도 했다.

자신의 위상을 높여주고 실질적인 권력까지 주니 아샤 부인은 달리아의 일이라면 무슨 짓이든 하려 했다.

그리고 그 화살은 보통 나를 향하곤 했다.

‘내가 그 여자 때문에 몇 번을 죽을 뻔했는데!’

그딴 사람이 내 유모가 된다니.

절대로 싫다.

“아빠, 저랑 제일 오래 같이 있을 사람이니까 제가 마음에 드는 사람으로 고르면 안 될까요?”

“네가?”

“네!”

“흐음, 대귀족의 유모가 될 만한 사람은 구하기 힘들 텐데.”

아빠의 염려대로였다.

그냥 귀족도 아니고 아스트라 공작가의 직계다.

당연히 조건이 까다로웠다.

그리고 그런 조건에 적합한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그렇다고 부합하지 않는 사람을 고를 수도 없었다.

내 유모의 경력이나 지위에 조금이라도 흠이 있으면 사람들은 거기에 대해서도 입방아를 찧을 것이다.

저런 유모를 쓰는 건 아무래도 문제가 있어서 그런 것 아니겠냐—하고 말이지.

‘하지만 그렇다고 아샤 부인을 내 유모로 할 순 없잖아.’

“못 구하게 되면 도와달라고 말씀드릴게요.”

내가 강하게 원하자 아빠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네가 직접 고르렴.”

“네!”

나는 활짝 웃으며 각오를 다졌다.

온 제국을 다 뒤져서라도 반드시 다른 사람을 구해야지!

아샤 부인은 절대 싫다!

* * *

대귀족의 유모 조건이라고 명시된 건 딱 세 가지였다.

-귀족일 것.

-아카데미를 나왔을 것.

-다른 유모에게 추천서를 받을 것.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명시된 조건의 이야기였다.

최소한의 커트라인 같은 거고 명시하지 않는, 암묵적인 조건은 훨씬 더 많았다.

“여기 들어온 이력서입니다.”

미켈란이 내게 이력서를 정리해 건네주었다.

내가 유모를 구한다는 소문이 돌자마자 여기저기서 이력서를 넣은 것이다.

나는 이력서를 하나씩, 하나씩 꼼꼼하게 살폈다.

“으음, 음…….”

지원자들은 다들 입김깨나 있는 사람들이었다.

아스트라 공작의 3세에 데이몬드 장군의 딸이기까지 하니 웬만큼 자신 있는 사람이 아니면 이력서를 넣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나는 서류를 내려놓고 의자에 등을 푹 파묻은 채 미간을 찡그렸다.

미켈란이 그런 내 모습을 보더니 물었다.

“마음에 드는 사람이 없습니까?”

“응.”

이력서 자체는 완벽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다들 능력적인 면에선 훌륭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력서에 적히지 않는 부분이 문제였다.

특히 인성.

‘낭티 부인은 맡는 아이를 한미한 가문에 소개시켜주는 걸로 돈 받는 사람이고…….’

나는 낭티 부인의 이력서를 휙 밀었다.

루시용 부인은 친황비파.

‘내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다 로셀리아 황비에게 보고하겠지.’

루시옹 부인의 이력서 역시 쓰레기통행.

‘마케 부인? 이 여자는 리스트에 왜 있어?’

이 미친 자는 부모 모르게 애를 때린다.

‘아마 3년쯤 뒤에 알려져서 난리가 났었지.’

애를 학대하다니 그런 사람은 감옥에 처넣어야 한다.

“흠…….”

역시 아무리 살펴봐도 내 유모에 적합한 사람이 없다.

유모들은 거의 지방 귀족들이다.

그런 여성들이 황도에 올라와 유모로 성공하려면 보통 성격으론 안 됐을 것이다.

‘그러니 정말로 애를 위하는 사람이 없을 만도 하지만…….’

그래도 직업으로서의 소명 의식은 갖춰야 하는 거 아닌가!

이 정도로 인재 풀이 없다는 건 문제였다.

내가 끙, 하고 고민하는 걸 본 미켈란이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가씨의 어릴 적에도 유모를 구하려 한 적이 있었죠.”

“응.”

아빠가 붙여주려고 했는데, 내가 됐다고 했다. 

그땐 딱히 필요 없었으니까.

“그때 생각해둔 사람이 있다고 하시지 않으셨는지요.”

“있었지……. 근데 이제 없어.”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다면 더 큰 급료를 주고 데리고 와도 될 텐데요?”

“아니, 귀족 애들을 맡고 있지 않아.”

미켈란이 의아한 얼굴이 되었다.

“유모 일을 그만둔 겁니까? 하지만 그것도 큰돈을 준다면…….”

“아니, 다른 데 있어.”

“대체 어디에…….”

나는 시무룩한 얼굴로 말했다.

“교도소.”

“……예?”

“사람 때려가지구 교도소 갔어.”

미켈란은 할 말을 잃었는지 몇 번 입술을 달싹이다가 겨우 한마디 했다.

“……안 데려오길 잘했군요.”

“그러니까.”

나는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다들 겉만 번지르르할 뿐, 하나 같이 문제가 많았다.

하지만 조건에 적합한 사람을 더 구하긴 힘들 것이다.

‘마음엔 안 들어도 이 중에서 골라야 하나.’

조금 별로여도 아샤 부인을 유모로 들이는 것보단 백 배 낫다.

“누가 제일 낫겠어?”

나는 남아있는 이력서를 책상 위에 펼치며 미켈란에게 물었다.

이력서를 둘러보며 고민하던 미켈란이 이윽고 이름 하나를 찍었다.

“이 사람은 어떠십니까.”

[카넬라 미야]

나도 처음 보는 이름이었다.

“어디서 일했대?”

“일은 처음이랍니다. 하지만 황궁에서 1황자의 너서리 메이드(유모 보좌)로 일했던 경력이 있습니다.”

“그래?” 

비록 유모로서의 경력은 없지만 1황자의 너서리 메이드였으면 지원할 만했다.

“추천하는 이유는?”

“일에 열의가 있어 보였습니다.”

“열의?”

조금 모호한 기준이었다.

내 물음에 미켈란이 품에서 편지 하나 꺼냈다.

“카넬라 마야가 이력서를 넣으면서 주고 간 편지입니다.”

나는 편지를 받아 펼쳐보았다.

[미켈란 님.

송구하나 에릴로트 아가씨께서 풍요제 때에 큰일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남의 이야기를 듣고 다니는 것이 그리 좋은 일은 아니지만, 걱정되는 마음에 몇 자 적게 되었습니다.

아가씨께서 많이 놀라셨을 텐데, 마음은 괜찮으신지 걱정이 됩니다.

하루 아침에 바뀐 사람들의 태도에 아가씨께서 당황하시진 않으셨을지요.

그게 비록 좋은 시선이라고 해도, 이전에 받았던 것과 완전히 다르다면 세상에 대한 믿음을 잃을 수도 있는 일이니까요. 

하지만 아가씨께 단호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좋은 사람이 더 많습니다.

얼굴도 모르는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아가씨의 마음에 울리지 않을 것 같아서 미켈란 님께 대신 전합니다.

미켈란 님의 말이라면 아가씨께서도 마음에 담으실 테니까요.

마음을 진정시킨다는 카모마일 찻잎을 함께 동봉합니다.

아가씨께 우려주세요.

항상 아가씨께 행복한 일 가득하시길.

아이는 언제나 행복해야 합니다.

그럼 이만 줄입니다.

-카넬라 미야]

‘오…….’

나는 편지를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

섣불리 판단할 수 없지만 그래도 사람이 괜찮아 보인다.

“그나마 이 사람이 제일 나아. 일단 면접을 봐봐야겠어.”

“알겠습니다.”

미켈란이 이력서를 정리했다.

* * *

1구역 카르티에 거리.

이곳은 황도의 번화가 같은 곳이었다.

거리 가득 바글바글한 사람들을 보니 활기가 느껴졌다.

나는 한지혁과 함께 카넬라 미야가 자주 찾는다는 제과점으로 향했다.

한지혁이 내게 물었다.

“왜 이렇게 몰래 봐?”

“응?”

“약속 잡고 만나는 게 낫잖아. 타이밍이 엇갈릴 수도 있고. 오늘 안 올 수도 있잖아.”

“약속을 잡으면 내가 아스트라 영애인 줄 알잖아.”

“알면 안 돼?”

그건 당연한 소리 아닌가.

“실제로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하는 건데, 내가 고용주라는 걸 알면 사회 생활할 때의 얼굴을 보이겠지.”

바로 나처럼.

“하긴, 무슨 말인지 알겠다.”

한지혁이 나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니, 왜 그렇게 봐?

내가 사회 생활을 정말 잘하긴 하지만 이런 시선을 받으니 좀 억울했다.

제과점에 도착한 우리는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바닥이 뚫려 있어서 1층이 다 보였다.

대강 주문을 하고 우리는 1층을 내려다 보며 누가 오가는지 살폈다.

그러기를 얼마나 지났을까.

한지혁이 내 팔을 툭 쳤다.

“저 사람 아니야?”

한지혁이 가리킨 곳에는 한 여자가 빵을 고르고 있었다.

굽이치는 적발을 깔끔하게 틀어 올린 모습.

코 옆에 있는 점.

이력서와 함께 보낸 초상화 속 여자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유심히 살피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 같네.”

찾았다.

카넬레 미야.

카넬레는 사람들과 모여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카넬레는 척봐도 친화력이 좋아서 같이 있는 사람들 중에 단연 돋보였다.

대화 중에 동작도 컸는데, 과장되거나 일부러 그런다는 느낌이 없었다.

휘휘, 손을 내젓기도 하고, 입을 가리고 까르르 크게 웃기도 했는데 인상을 찌푸리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확실히 주변 사람들과 사이가 좋아 보이네.

‘친화력 있는 사람은 좋지.’

다른 가문의 유모들과 친해져서 은밀히 여러 가지 정보를 가져올 수 있으니까.

유모들에게서 원하는 건 엄청난 정보가 아니다.

작은 취향이나 흘러가는 근황 같은 것도 다른 정보와 취합하면 큰 정보의 실마리가 되기도 하니까.

“깔깔깔!”

갑작스레 카넬레에게서 터져 나온 큰 웃음소리에 한지혁이 깜짝 놀랐다.

한지혁은 약간 당황하며 내게 슬쩍 말했다.

“근데 목소리가 진짜 크네.”

“목소리 크면 좋지, 뭐.”

작은 것보다 낫잖아.

의사소통도 잘 되고, 무슨 일이 있을 때는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는 말도 있고.

“그리고 제과점이 작기도 해.”

“그렇네.”

제과점이 작은 덕분에 카넬레와 사람들의 대화 소리가 잘 들렸다.

바로 지금의 대화처럼.

카넬레가 손을 팔랑팔랑 흔들며 말했다.

“어머, 언니. 뭘 그렇게 고민하세요. 언니라면 충분히 잘하실 텐데요. 그러지 마시구, 이력서를 넣어보세요.”

“내가 아카데미를 나온 것도 아니고……. 너처럼 황궁 너서리 메이드 출신도 아니잖니. 뭐, 아스트라 공작가 같은 대귀족 가문에 이력서를 넣을 건 아니지만…….”

어?

어쩐지 갑자기 귀에 확 꽂히더라니, 우리 얘기가 나왔다.

나는 눈을 반짝였다.

쫑긋, 귀를 세우고 온 신경을 집중했다.

원래 남이 하는 우리 얘기가 제일 흥미로운 법이니까.

카넬레가 깍지낀 손에 턱을 괴며 말했다.

“언니는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시잖아요.”

“그렇지.”

“그게 제일 중요한 게 아니겠어요? 암만 귀족 아이들의 유모가 할 일이 많아도, 제일 중요한 건 역시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죠.”

“그, 그럴까?”

한지혁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

“마인드가 진짜 괜찮은데?”

“응. 좋은 사람 같네.”

확실히 유모는 돈이나 야망보다는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우선인 사람이 좋다.

돈이나 야망을 추구하는 게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아이를 돌보는 일은 생각보다 고되고 힘들기 때문이다.

자신의 아이가 아닐 때는 더더욱.

아이는 아직 덜 자랐기 때문에 당연히 실수도 하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기도 한다.

아이니까.

그게 아이가 해야 할 일이니까.

그런 모습을 잘 교정해주고 이끌어야 하는 게 유모이기 때문에, 아이를 아끼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 낫다.

‘일단 아이를 싫어하면 매일 보기도 힘들지 않을까? 아무리 돈때문이어어도.’

카넬레의 말에는 진정성과 합리성이 있었다.

친구로 보이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조언해주는 것도 된 사람 같았다.

카넬레의 말을 듣다 보니 그녀의 앞에 있는 친구도 괜찮게 보일 정도니까.

그 뒤로 이어지는 대화도 흥미진진했다.

“그 신사 분이 마음에 들면 먼저 다가가라니까.”

“아우, 저는 예쁘지도 않고 잘난 곳도 없어서……. 그분은 황도에서 포목점을 크게 하시는 분인데 제가 어떻게…….”

“뭐? 너는 예뻐. 그리고 네 마음 이렇게 예쁜데 무슨 소리야. 그분이 정말 좋은 사람이라면 너 같이 예쁘고 배려도 잘하는, 이렇게 귀한 사람을 알아보지 못할 리 없어.”

아, 정말.

듣는 나까지 기분이 좋아지네.

대화를 엿듣던 나와 한지혁은 서로를 쳐다보며 끄덕였다.

‘면접을 보러 오라고 해야겠다.’

유모는 나랑 거의 24시간을 붙어있어야 하는 사람이다.

내 정체를 알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내가 나쁜 사람은 아니어도 막 좋기만 한 사람도 아니다.

물론 내가 어떤 일을 할 때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지만 그걸 이해해 주는 건 별개의 문제다.

‘저렇게 사람의 장점을 잘 봐준다면.’

그리고 인성이 제일 중요하지.

내 정보를 어디다 빼돌리면 큰일이거든.

카넬레와 친구들은 한창 대화를 나눴고 그 대화에서 걸리는 부분은 없었다.

얼마 시간이 흐른 후.

드르륵, 카넬레의 친구 몇 명이 일이 있다면서 의자를 끌며 먼저 일어났다.

카넬레는 직원이 치우기 쉽게 먹은 것들을 가볍게 정리해 두었다.

딸랑, 제과점의 문이 열리며 문에 달린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문 밖으로 나간 카넬레 일행이 한두 명씩 뿔뿔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집으로 가는 방향이 맞는 친구들 끼리 갈라진 듯했다.

적당한 시간차를 두고 제과점을 나온 나와 한지혁은 카넬레의 뒤를 쫓았다.

만난 김에 인사하고, 면접 보러 오라고 할 예정이었다.

그때, 저 앞에 가던 카넬레가 한 골목으로 쏙 들어갔다.

친구들 중 하나인 키 크고 삐쩍 마른 여자도 함께였다.

그래서 나도 조심하며 골목에 들어갔는데.

쿵!

“악!”

골목으로 들어가자마자 마른 여자와 부딪혔다.

상대적으로 키가 작은 나는 그대로 뒤로 튕겨서 엉덩방아를 찧으며 풀썩 주저앉았다.

“뭐, 뭐야? 웬 꼬마?”

마른 여자는 놀랐는지, 나를 돌아보고 말했다.

근데, 반말하네.

‘하긴 아무래도 내가 어리니까 놀라면 그렇겠지.’

갑자기 부딪치면 본능적으로 말이 튀어나오기 마련이니 말이다.

뒤따라온 한지혁이 날 바닥에서 일으켜 세웠다.

“괜찮아?”

“응.”

사실은 아니.

넘어질 때 꼬리뼈랑 제대로 부딪쳤나 봐.

‘아우, 아파.’

그래도 다른 목적이 있는데 아픈 티를 내기는 그래서 참았다.

밖이니 엉덩이를 문지르지도 못하고 끙끙거리는데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뭐하니? 부딪쳤으면 사과하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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