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화.
코너를 돌아서 온 사람은 세바스티아였다.
알렉시스의 뒤에 있는 나를 발견한 세바스티아가 곧장 다가왔다.
“여기 계셨군요.”
알렉시스가 나를 쳐다봤다. 안전한 사람인지 확인하려는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서 그의 앞으로 나섰다.
“무슨 일이신가요?”
“살바토레 황자께서 당신의 사촌에게 호위를 붙여주셨어요. 아세요?”
세바스티아의 목소리가 날카로웠다.
내 얼굴은 대번에 굳어졌다.
“호위를요?”
“그래요. 아스트라의 호위가 아니라 황군을 붙여줬다고요!”
‘살바토레…….’
나는 치맛자락을 꽉 비틀었다.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사촌이 콜로세움에 가는 것도 아시나요? ……5시에요.”
“네.”
“서둘러 가보시는 게 좋겠네요.”
세바스티아의 표정은 매우 언짢았다.
나는 그녀에게 고개를 숙이고, 서둘러 리앙틴에게 향했다.
리앙틴의 유모에게 물으니, 그녀는 타국의 귀족들과 함께 정원에 있다고 했다.
정원으로 가자, 세바스티아의 말대로 정말 황군의 제복을 입은 자가 리앙틴에게 붙었다.
그 덕에 어제만 해도 리앙틴은 상대도 하지 않던 귀족 아이들이 상냥한 표정으로 이런저런 말을 걸고 있었다.
“살바토레 전하께서 황군을 붙여주셨다지요?”
리앙틴은 애써 입꼬리를 내리며 말했다.
“아스트라의 정규 기사도 아니고 관할령 병사를 데려온 것이 신경 쓰이셨나 봐요.”
“어머나……. 다음번에 뵈면 영애가 아니라, 저하(황자비의 호칭)라고 불러야 하는 건 아닌지요.”
“그런 말씀은 너무 일러요.”
“겸손하셔라.”
주변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리앙틴은 평정을 가장하고 있지만, 한껏 들뜬 티가 났다.
“언니.”
내가 부르니, 리앙틴이 “아!” 하며 반가운 듯 손을 흔들었다.
“이리 와, 에릴로트. 네 자리를 마련해놨어.”
그러더니 옆에 앉은 영애에게 오만한 투로 말했다.
“비켜주시겠어요?”
“아……. 네, 뭐.”
영애는 불편한 내색이었지만, 리앙틴은 날 향해 생글생글 웃었다.
난 굳은 얼굴로 리앙틴을 쳐다봤다.
“따로 얘기했으면 좋겠는데.”
“어? 어, 그래…….”
리앙틴은 의아한 표정으로 내게 다가왔다.
사람들에게 목소리가 안 들리는 곳까지 걸어오자, 리앙틴이 말했다.
“대체 뭔데. 아스트라에 무슨 일이 있대?”
“무슨 일은 언니에게 있지.”
“뭐?”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미간을 좁히던 리앙틴이 “아아.” 하며 웃었다.
“살바토레 황자님께서 황군을 호위로 붙여주신 것 말야? 굉장하지?”
“…….”
“나는 본 척도 안 하던 것들이 황군 호위가 붙자마자 친한 척을 한다니까!”
“…….”
“세바스티아는 어디에 있지? 찾아도 안 보여. 칫, 황군을 보여줘서 콧대를 눌러줘야 하는데.”
팔짱을 끼고 투덜거리던 리앙틴이 나를 잡았다.
“듣자 하니까 너도 여기 더 있을 거라던데. 그럼 콜로세움에 함께 가자. 재밌을 거야!”
“언니.”
“노예들만 나오는 게 아니고, 귀족들도 나온대. 얼마나 재미있겠어? 내가 가서 네 자리도 마련해달라고 할 테니까─”
“리앙틴!”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그제야 리앙틴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왜 그래?”
“황자에게 가서 당장 황군을 물려달라고 해.”
“……왜?”
“왜긴! 황자의 속셈을 모르겠어?”
“뭘 속셈까지……. 전하는 그냥 나를 위해서 황군을 붙여주신 거야.”
“그런 게 아니라─”
“다른 귀족들이 날 무시하니까. 황군을 붙여놓으면 전하의 위세를 나눠 받는 거잖아.”
리앙틴은 팔짱을 끼고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그러곤 말을 이었다.
“전하는 노력하는 애가 좋으시대. 딱 나지. 내게 호감이 있으셔서 날 도와주는 걸 속셈이라고 말할 것까진 없잖아.”
틀렸다. 완전히 홀려서 대화가 되지 않는다.
나는 리앙틴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자 리앙틴이 씩 웃으며 내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넌 내 덕을 볼 준비나 하고 있어. 이번엔 내가 널 도울 테니까. 황자 전하께 말해서 콜로세움까지 갈 마차를 보내줄게!”
“언니.”
“어?”
“모든 것엔 대가가 있어.”
“무슨…….”
“더 좋은 것을 소유하기 위해선 더 큰 값을 치러야 하는 게 당연한 이치야.”
“…….”
“분에 넘치는 것들이 얼마나 위험한지, 우리는 아스트라에서 매일 같이 배우고 있잖아.”
내가 냉랭한 표정으로 말하자, 리앙틴의 표정이 구겨졌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데?”
“…….”
“살바토레 전하의 관심이 내 분에 넘친다는 거야? 그러니까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언니.”
“왜? 나도 아스트라의 혈족이야!”
리앙틴이 날카롭게 소리쳤다.
양 주먹을 꽉 쥐고 숨을 헐떡인다.
저 애의 눈빛에서 흘러나오는 감정이 뭔지 나는 알고 있다.
서러움, 억울함.
아무리 애써도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질척한 감정들.
“그래. 난 별 볼 일 없는 가호를 타고났어. 하지만 노력했다고! 필사적으로!”
“…….”
“필사적으로 노력한 끝에 겨우 기회가 온 거잖아! 나도 이런 것쯤은 누릴 수 있잖아!”
“…….”
“알아? 사람들은 널 축복받은 아이라고 부른대. 엄청난 가호, 특별한 부모, 그 아스트라 공작에게 가장 사랑받는 손주!”
“…….”
“그런 넌 모르겠지. 네 뒤에서 내가 무슨 소리를 듣는지.”
비죽 입꼬리를 올린 리앙틴이 중얼거렸다.
“에릴로트에게 기생하는 벌레라고 해. 내가 죽어라 노력해도 네가 시험을 도와줬다고 말야.”
“…….”
“네가 내 마음을 어떻게 이해하겠어─!”
“…….”
“잔소리하지 마. 지겹다고! 넌 내 부모가 아니잖아. 나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 네 도움 없이!”
나는 눈을 부릅뜨고 말하는 리앙틴을 무감하게 쳐다봤다.
“그래. 난 언니의 부모가 아니지.”
“그래, 그러면…….”
“지금 언니에게 온 건 오로지 걱정 때문이었어.”
“……!”
“언니의 선택이 틀렸다고 힐난하는 게 아니야. 걱정하고 있는 거지.”
리앙틴의 시선이 가늘게 떨렸다.
나는 그 애를 똑바로 보며 말했다.
“나한테 언니는 경쟁자 사촌이 아니라, 친구이기도 했으니까.”
“…….”
“하지만 언니의 말이 맞아. 아무리 걱정하고 있다고 해도 선택은 스스로의 몫인데, 내가 과했어.”
나는 시선을 내리깔았고, 리앙틴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가볼게.”
말하자, 리앙틴이 우물쭈물하다가 “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 * *
그 후, 시간이 지났다.
4시.
콜로세움으로 갈 시간이 한 시간도 남지 않았다.
리앙틴은 에릴로트의 방이 있는 제2성을 힐끗힐끗 쳐다봤다.
리앙틴이 대화에 통 집중하지 못하자, 곁에 있던 귀족 아이가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아스트라 영애?”
“…….”
“영애!”
“아, 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별로…….”
“아하, 알겠다. 아스트라 백작 영애 때문이죠? 사촌 동생 말이에요.”
리앙틴은 대답하지 못했다.
귀족들은 우후훗, 웃으며 서로를 쳐다봤다.
“동생의 꼴이 우습게 되었어요. 전하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다고 잘난 척하다가, 결국 언니에게 밀린 꼴이라니.”
“네?”
“그렇잖아요? 영애는 모국의 황자 전하께서 그리 살뜰히 챙겨주시는데 말이에요.”
“그게 아니라…….”
“아니긴요. 하여간에 겸손하시다니까.”
귀족 아이가 손을 휘휘 저으며 키득키득 웃었다.
“에릴로트 아스트라 양이 오전부터 내내 방에 틀어박혀 있대요. 시위하는 게 아니고 뭐겠어요.”
“시위요?”
“네. 대─단한 본인이 아니라 사촌 언니에게 관심을 보이는 황자님께 불편한 내색을 하는 거겠죠.”
귀족들은 “말하자면 질투?” 하며 까르륵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며 턱을 괴고 리앙틴을 다정하게 쳐다봤다.
“한 가문에 저런 사촌이 있으니 피곤하셨겠어요. 평소에도 뭐든지 본인이 제일 잘나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나요?”
“아뇨.”
“……네?”
“에릴로트는 그런 애가 아니에요.”
리앙틴이 싸늘하게 말하자,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쾅! 테이블을 짚으며 일어난 리앙틴이 귀족 아이들을 쳐다봤다.
“가볼게요.”
“아……. 네.”
귀족 아이들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리앙틴을 쳐다봤다.
그러나 리앙틴은 신경도 쓰지 않고 정원을 나섰다.
하여간에 저런 호사가들이 문제다.
‘내가 황태자비가 되면 다 입을 찢어줘야지.’
오만하게 턱을 치켜들고 있는데, 마침 익숙한 고용인이 보였다.
분홍 머리를 가진 잘생긴 고용인.
에릴로트의 전담 하인이다.
“거기, 너.”
“예?”
한지혁이 고개를 돌리자, 리앙틴은 그에게 걸어갔다.
“에릴로트에게 콜로세움에 갈 준비를 하라고 해.”
“저희 아가씨께요?”
“응. 마차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고. 황궁 마차에 함께 타면 되니까. 그리고 오늘 일은 내가 좀…….”
중얼거리던 리앙틴이 큼, 헛기침했다.
“어쨌든 데려와. 혼자 있으면 심심할 것 아냐.”
“말씀 여쭙겠습니다.”
“그래, 내 방으로 와.”
“예.”
리앙틴은 먼저 방으로 올라가서 콜로세움에 갈 준비를 시작했다.
유모와 하녀들이 잔뜩 신이 난 얼굴로 아이를 꾸며줬다.
“요정이 따로 없네요.”
유모가 흐뭇한 얼굴로 말했을 때, 통신석이 울었다.
데콘스 관할령의 호출이었다.
연결하자, 신이 난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금 출발하는 거냐?]
“네, 아빠! 살바토레 황자 전하와 한 마차로 이동해요!”
[으하하하! 대단하구나. 데이몬드 녀석이 알면 표정 한번 볼만하겠어!]
“네?”
[그렇지 않으냐. 내 딸은 제국의 황자에게 초청받았는데, 제 딸은 홀로 가게 생겼으니.]
“…….”
[리앙틴?]
“너무 그러지 마세요.”
딱딱하게 말하자, 통신석에서 모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요, 여보. 에릴로트가 그간 우리 리앙틴을 얼마나 도와줬나요.]
[으음……. 그렇기야 하지만……. 이럴 땐 좀 잘난 척이 하고 싶잖아요!]
[정말이지……. 리앙틴, 네가 에릴로트를 잘 챙겨주렴.]
“그럼요. 동생을 챙기는 건 언니의 몫인걸요!”
[기분이 좋아 보이는구나.]
리앙틴의 모친이 쿡쿡 웃었다.
딸은 늘 에릴로트에게 도움만 받는다고 의기소침했다.
이제야 같은 선상에 섰다고 생각하니 뿌듯한 모양이다.
“다녀와서 콜로세움 얘기를 해드릴게요.”
[그래. 조심해서 다녀오렴.]
“네!”
통신을 종료했을 무렵,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하녀가 문을 열어주니, 한지혁이 리앙틴에게 고개를 숙였다.
“저희 아가씨께선 따로 출발하시겠다고 전하셨습니다.”
리앙틴의 얼굴이 울컥 구겨졌다.
‘뭐야. 사람이 기껏 생각해서 부른 건데…….’
아직도 화가 난 모양이다.
리앙틴은 입술을 삐죽이곤 말했다.
“그럼 마음대로 하라고 해.”
“좋은 밤 되십시오.”
한지혁을 지나친 리앙틴은 마차대기소로 향했다.
걷는 내내 기분이 저조했는데, 대기하고 있는 황궁의 마차를 보자마자 우울한 감정이 싹 가신다.
‘와.’
황궁의 문양인 태양이 세공된 호화로운 마차.
아스트라의 것도 못지않게 화려하지만, 황궁의 문양 하나로 이쪽이 더 대단해 보였다.
‘내가 황궁 마차를 타고, 살바토레 황자 전하와 함께……!’
리앙틴의 얼굴이 발그레 달아올랐다.
그때, 뒤에서 인기척 소리가 들려왔다.
황자인가 해서 서둘러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보인 것은 밉살맞은 얼굴의 세바스티아 비페리였다.
세바스티아는 황궁 마차 앞에 선 리앙틴을 한 번, 살바토레가 붙여준 황궁의 호위를 한 번 쳐다봤다.
그러곤 헛웃음을 터뜨렸다.
“기어코 살바토레 황자 전하와 함께 콜로세움에 가시나요?”
“영애가 신경 쓸 일이 아닐 텐데요.”
“에릴로트 아스트라 양이 말리지 않던가요?”
“……그걸 어떻게 아세요? 혹시 그쪽이 에릴로트를 들쑤셨어요?”
날카롭게 대꾸하니 세바스티아는 질린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름이 뭐라고 했더라. 리앙틴 아스트라…… 맞나요?”
“그런데요.”
사뿐사뿐 다가온 세바스티아가 목소리를 죽이고 속삭였다.
“너, 정신 차려.”
“뭐, 뭐야?!”
리앙틴이 꽥 소리쳤다.
“이제 예의도 집어치우기로 한 거야?”
“살바토레 황자가 노리는 게 누군지 정말 몰라?”
“……뭐?”
“다른 귀족들도 널 동경하는 게 아니라 기다리고 있는 거라고.”
세바스티아는 리앙틴의 어깨를 쿡, 쿡, 누르며 말했다.
“네가, 실수를, 하길.”
“무슨 헛소리를…….”
“네가 실수를 하면 데려온 에릴로트 아스트라의 책임이 되겠지. 망신을 당해도 그 애의 탓이 될 거야.”
“…….”
“그걸 노리고 있는 거란 말야. 이 멍청아.”
“나, 난 실수 같은 거 안 해.”
세바스티아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스트라의 정원 안에서 온갖 보살핌을 받고 산 네가 정쟁의 소용돌이를 겪으며 자란 저들을 이길 수 있을 것 같니?”
“날 얼마나 무시하려는 거야!”
“네가 실수를 하게 만들 거야. 망신당하게 만들겠지. 그건 살바토레 황자의 특기거든.”
“…….”
리앙틴에게서 떨어진 세바스티아가 쯧, 혀를 찼다.
“멍청한 사촌 덕에 에릴로트 아스트라는 고생깨나 하겠구나.”
그러며 한숨을 내쉬었는데, 때마침 살바토레 황자가 도착했다.
그는 굳어있는 리앙틴과 매몰찬 표정의 세바스티아를 보고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내 파트너를 괴롭히지 말아줘, 비페리 영애.”
“괴롭힘이 아니라 충고였답니다.”
“영애의 충고는 연약한 아스트라 영애에겐 꽤 아플 거라.”
세바스티아는 코웃음을 치며 리앙틴을 돌아봤다. 그리고 황자에게 고개를 숙였다.
“하면 콜로세움에서 뵙지요.”
“그래. 그럼 우리도 출발할까, 아스트라 영애?”
“예…….”
살바토레는 리앙틴을 직접 에스코트하여 마차에 올려주었다.
그까지 착석하자 마차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노리기는 무슨.’
그럴 리 없다.
황자는 이렇게 다정한걸.
그와의 대화는 즐거웠다. 정말로 섬세한 소년이라 리앙틴의 마음을 잘 알아주었다.
“비페리 양의 말에 기분이 상했나?”
“뭐……. 그녀와의 대화는 힘들었어요, 전하.”
“아스트라 영애가 이해해줘. 이제 태양회마다 볼 사이이니.”
“다, 다음 태양회에도 초청해주실 건가요?!”
“물론이지.”
봐, 살바토레 황자에겐 흉심이 없다. 그저 자신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뿐이리라.
‘에릴로트에게 피해가 갈 일은 없을…….’
그렇게 생각 중이었을 때, 황자가 물었다.
“이번 서부 예비 원화전 말야.”
“네! 에릴로트가 굉장했지요? 그 애는 원래 뭐든 잘해요.”
“그래. 굉장하더군. 그 ‘용’이.”
“아, 맞아요. 라곤이라고 해요.”
“영애는 용을 잘 아는가 보지?”
“용이 되기 전엔 종종 봤으니까요.”
다정하게 미소 지은 황자는 “아아.” 하며 중얼거렸다.
그리곤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그 용의 레어(둥지)가 어디에 있는지도 알고 있겠군.”
“……네?”
“어디에 있어? 용의 레어.”
리앙틴이 굳어지자, 황자는 더욱 입꼬리를 끌어당겼다.
“내가 묻잖아.”
“…….”
“영애.”
순간, 에릴로트의 말이 떠올랐다.
“모든 것엔 대가가 있어.”
라곤의 레어가 어디에 있는지는 알고 있다.
그게 황가에 유출되었을 때 에릴로트가 위험해질 수도 있다는 것 또한.
치맛자락을 움켜쥔 리앙틴이 말했다.
“모, 몰라요.”
“다시 생각해보는 게 좋겠는데.”
“전 몰라요!”
“그래?”
“그게 전하의 목적이었다면 전 콜로세움에 가지 않겠─”
그때, 마차가 덜컹 멈추었다.
“아쉽지만 벌써 콜로세움에 도착해버렸네.”
“저, 전하.”
“정말 아쉬워.”
“…….”
“영애와는 친구가 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문이 열리고 콜로세움의 기사들이 다가왔다.
미소 지은 황자가 말했다.
“영애를 콜로세움의 대기실로 모셔라.”
“전하!”
“아스트라의 첫 출전이군. 기대하고 있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