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3화. (143/390)

143화.

갈색 머리 하녀가 우물쭈물 말했다.

“옥사에 계셔요. 저는 원래 옥사 배식 담당이어서 밀란님을 뵈었고요…….”

나는 잠깐 생각하다가, 갈색 머리 하녀를 제외한 다른 두 하녀에게 말했다.

“저 아이만 남고, 너희는 나가보렴.”

“아, 네.”

“네…….”

하녀 둘이 남은 하녀의 눈치를 보면서 밖으로 나갔다.

걸음 소리가 멀어진 후, 난 갈색 머리 하녀에게 물었다.

“그 머리핀은 어떻게 받았니.”

“후, 훔친 건 절대로 아니에요! 지하 옥사에 계시는 밀란 님께 확인해보시면─!”

“훔쳤다고 생각하지 않아. 밀란은 조심성이 많은 성격이야. 옥사에 갇혀 있는 지금, 하녀에게 호감을 표현할 만한 사람이 아니지.”

“…….”

하녀는 일순 뚱한 표정을 지었지만, 내 눈치를 보고 표정을 재빨리 수습했다.

“카나리아 님을 챙겨달라고 주셨어요.”

밀란이 어머니를 챙겨달라고 했다고?

“카나리아 님을 왜?”

“처음엔 카나리아 님은 천식이 있으시니 관할성에서 약을 받아와 달라고 하셨고요. 다음엔 물이라든가, 음식을 좀 챙겨주라고 하셨고…….”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약이나 음식을 챙겨달라고 할 만큼 상황이 안 좋다고?’

난 지금까지 밀란과 카나리아 숙모님이 의례상 갇혀 있는 줄로 알았다.

아니, 내가 아닌 모두가 그렇게 알고 있었다.

방계 아이들처럼 옥사엔 있어도 제대로 귀족으로 대우를 받고 있다고…….

“넌 돌아가 보렴.”

그렇게 말하고 황급히 방을 나왔다.

‘평소에 지하 옥사를 들려둘 것을.’

방계들과 에레카를 옥사에서 만난 것을 할아버지에게 보인 이후로, 최대한 조심했다.

나와 아빠는 헤르난 사건의 일등 공신이었다.

행여나 으스대는 것으로 보일까 봐 사건을 멀리한 것이다.

난 급히 지하 옥사에 들어섰다.

멀끔하게 생긴 30대 초반의 남자가 나를 막아섰다.

경비병인 듯했다.

“어어, 들어오시면 안 됩니다.”

혈족 교육을 받으며 7년을 공작성에서 지낸 만큼, 경비병들도 꽤 알고 있었다.

거기다 난 첫 번째 삶에서도 이곳에서 지냈으니까.

그런데 본성에선 한 번도 본 적 없던 얼굴이다.

‘지하 경비병도 바꿔놨어?’

아마도 누군가 제가 오가기 편하게 자신 쪽의 사람을 넣어둔 듯싶었다.

나는 별말 없이 지나치려 했다.

그런데.

“들어가시면 안 된다니까요.”

경비병이 내 앞을 확 막아섰다.

“내가 누군지 몰라?”

“뭐, 직계 3세 중에 한 분이시겠죠. 3세라도 안 됩니다. 여긴 바스티나 님께서 각별히 살피고 계시는 곳입니다.”

“경고하는데, 한 번만 더 날 막아선다면 네 목, 보전하지 못할 거야.”

경비병은 하, 실소를 터뜨리곤 팔짱을 꼈다.

“암만 협박을 하셔도, 제 소임은 이 옥사를 지키는─”

“아, 아가씨!”

또 다른 경비병이 황급히 계단을 뛰어 올라왔다.

순찰을 마치고 왔는지, 손엔 랜턴이 들려 있었다.

‘이 사람은 본 적 있는 얼굴이네.’

또 다른 경비병이 얼른 길을 터주었다.

그러자 날 막았던 경비병이 눈살을 찌푸렸다.

하지만 막지는 않아서, 난 별말 없이 계단을 내려갔다.

등 뒤에서 경비병들이 속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뭐 하는 거유. 실뱅 님과 바스티나 님이 아시면 어쩌려고.”

“바스티나 님이 문제가 아냐, 이 사람아!”

“예?”

“데이몬드 관할령의 에릴로트 님이시다. 공작님께서 각별히 아끼는 3세란 말이야.”

“예, 예?”

“하이고……. 암만 끈 잡고 낙하했다지만, 저쪽에 까불면 어째?”

크게 당황한 소리가 내 그림자 위로 따라붙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옥사를 걸었다.

지하 1층 귀족 구금용 방에는 밀란과 카나리아 숙모님이 없었다.

‘더 밑이란 소리야?’

밑은 고신 중인 사람들이 있는 곳이다.

지하 1층의 철창 안까지 꼼꼼히 살폈으나, 밀란과 카나리아 숙모님은 보이지 않는다.

난 입술을 꽉 깨물고 지하 2층으로 내려갔다.

철창 안의 사람들이 날 발견하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온통 피투성이가 되어, 사람처럼 보이지 않는 몰골이다.

아스트라의 고신이 얼마나 지독한지 알 수 있었다.

“아, 아가씨, 아가씨!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자식이 있습니다. 제가 이리 간다면 생떼 같은 아이가……!”

사건에 연관된 마탑의 마법사들, 귀족들…… 그리고…….

“극, 그윽…….”

홀로 철창 안에 갇혀 있는 짐승 같은 몰골의 사내는 길라르 자작이었다.

어찌나 지독한 꼴인지, 나도 모르게 굳을 정도였다.

그 순간, 철창 안에서 손이 쑥 빠져나와 내 다리를 잡았다.

“……!”

깜짝 놀라서 쳐다보니, 넝마 같은 꼴의 사내가 풀린 눈으로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사, 살려, 살려…… 주세요…….”

“…….”

“살, 살려…… 살려…….”

완전히 정신이 나간 것 같았다.

그래서인지 발목이 뜯겨나갈 것처럼 아프다.

“살려달라고─!!!”

내가 흠칫, 놀란 그때였다.

쾅!

누군가 검 자루로 내 발목을 잡은 사내의 손을 짓이겼다.

“아아아아악─!!”

찢어지는 비명에 옥사가 요동쳤다.

“괜찮니, 에릴로트.”

누군가 등 뒤에서 내 어깨를 부드럽게 잡았다.

돌아보자, 그리미에 백부님이 걱정 어린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백부님…….”

날 붙잡았던 손을 짓이긴 건 그의 기사인 듯했다.

백부님은 희게 질려 있는 날 보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밤에 무슨 일로 온 거야. 지하는 위험해.”

“아……. 확인하고 싶은 게 있어서요. 백부님은 무슨 일이세요?”

“밀란을 보러왔지.”

“밀란을요?”

“그래. 이틀 전에 고신 담당관과 경비병들이 교체된 것이 아무래도 이상해서.”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미에 백부는 내 등을 다정히 두드리고 말했다.

“밀란을 보러 온 거니?”

“……네.”

“목적이 같으니 함께 가면 되겠구나.”

그가 다정히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내가 그 손을 빤히 쳐다보자, 그리미에 백부가 “아.” 하며 긴 재킷 자락에 손바닥을 문질렀다.

“네 나이대의 숙녀들은 애 취급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가. 실례했구나.”

나는 힐끔 그를 쳐다보다가 백부의 손을 잡았다.

백부는 놀란 듯 날 쳐다봤지만, 이내 부드럽게 웃었다.

난 그와 함께 옥사를 걸었다.

등 뒤에선 그의 기사가 쫓아오고 있었다.

백부가 말했다.

“손 내민 내가 말하기엔 민망하지만, 귀족의 손은 함부로 잡지 않는 게 좋아. <저주>같은 가호를 가진 자들도 있으니까.”

“이런 곳에서 절 저주한다면 바보이니 무섭지 않아요.”

“응?”

“제가 지하 옥사로 가는 걸 많은 고용인이 목격했어요. 이 시간에 백부님께서 계셨다는 것도 다들 목격했겠지요.”

“그렇지.”

“단둘이 있던 시간에 저주받았다면 범인이란 걸 광고하는 꼴이잖아요?”

난 그리미에 백부님을 힐끔 올려다보며 말했다.

“생각 있는 사람이라면 저주할 리 없고, 만약 한다고 해도 상관없어요.”

“어째서?”

“적을 가려낼 수 있으니까. 또, 제가 나서지 않아도 할아버지께서 저를 저주한 적을 없애주시겠죠.”

“…….”

“어느 쪽이든 제겐 이득인데 손을 피할 이유가 없어요.”

“저주의 고통이 무섭지 않니?”

“등 뒤의 적을 아빠의 뒤에 두는 것보다 두렵지 않아요.”

내 목숨 정도면 싼값이지.

그리미에 백부는 날 빤히 쳐다보다가 무릎을 굽혔다.

나와 시선을 마주한 그가 말했다.

“그런 말은 하지 마라.”

“네?”

“데이몬드가 크게 슬퍼할 것이다.”

“…….”

“자식으로 제 목숨을 지키고 싶은 아비는 없어.”

그리미에 백부는 떨리는 내 눈을 빤히 쳐다보다가 “응?” 하고 부드럽게 웃었다.

“네.”

“약속해라. 그 무엇보다 너를 우선하겠다고.”

그 어떤 티조차 없는 완벽하게 다정한 표정이었다.

“……네.”

그리미에 백부님이 내 머리를 다정하게 헝클이곤 몸을 일으켰다.

“그래. 착하기도 하지.”

난 그리미에 백부님과 함께 옥사를 걸었다.

아무리 뒤져도 밀란은 보이지 않는다.

“설마 지하 3층에 있나…….”

그리미에 백부가 드물게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깊은 곳에 있을수록 고문의 강도가 세다는 것이다.

나도 인상을 찌푸리고 있던 찰나였다.

탁. 탁. 탁. 탁.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균일한 리듬에 난 고개를 번쩍 들었다.

밀란은 생각을 할 때 돌을 던지는 버릇이 있는데, 그때 나는 소리가 이와 비슷했다.

나는 그리미에 백부의 손을 놓고, 황급히 코너를 돌았다.

횃불 하나만 덜렁 놓인 옥사 구석의 철창.

그 안에 밀란이 있었다.

“밀란!”

“……에릴로트?”

뒤이어 그리미에 백부가 나를 쫓아왔다.

“밀란.”

백부와 나를 본 밀란은 허……, 하고 실소를 흘렸다.

“두 사람이 여기서 뭐 하시는 겁니까?”

“내가 묻고 싶은 말이야. 왜 밀란 오라버니가 지하 2층에 있어?”

밀란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며칠 전에 지하 옥사로 옮겨졌어.”

“숙모님은?”

“3층.”

“뭐?!”

“……날 3층으로 끌고 가려고 했는데, 어머니가 막으셨어. 하녀에게 듣자니 뭔가를 계속 캐묻는 모양이야.”

“대체 뭘…….”

밀란이 그리미에 백부님을 힐끔 쳐다봤다.

그리미에 백부 앞에선 못할 말인 모양이었다.

그리미에 백부님이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코너를 돌아 멀찍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발걸음 소리가 멀어진 뒤, 밀란이 내게 다가와서 목소리를 바짝 낮췄다.

“아버지가 관할령에 뭔가를 숨겨놓은 모양이야. 어머니도 알고 계신데, 말씀을 안 하시는 것 같아.”

“누가 그런 짓을 해?”

“실뱅 백부나, 바스티나 고모겠지.”

“그게 대체 뭔데?”

“나도 모르겠어. 네가 가서 먼저 확보해라.”

“……알려줘.”

“아버지 서재에…….”

밀란으로부터 이야기를 들은 난 고개를 끄덕였다.

“곧 빼내 줄게. 바로 가서 할아버지에게 말씀드릴 거야.”

“어머니부터 부탁해.”

“응.”

“가 봐.”

난 밀란에게 인사하고, 얼른 코너를 돌아갔다.

그리미에 백부가 물었다.

“이야기는 잘 끝났니?”

“네. 가서 밀란을 보시겠어요?”

“상태를 보니 빼내는 게 우선일 것 같구나. 난 2세들을 집결시킬 거야.”

“네.”

혹시 모르니까 나도 아빠에게 소식을 전달해야겠다.

“가자.”

난 백부의 손을 잡고 걸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손을 잡을수록 기묘한 기운이 충만해진다.

가슴이 두근두근 뛰고, 내 안의 마력이 요동쳤다.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백부가 깜짝 놀라 날 쳐다봤다.

“속이 좋지 않니?”

“그게 아니라…… 으…….”

“아아, 미안해. 내 <신의 숨결> 때문이다.”

그리미에 백부가 가진 3가지 가호 중 하나인 <신의 숨결>.

신성계 가호인데, 가호를 강화시키는 힘이었다.

3세 중 최고의 마력을 가진 사람이 셀레네라면, 2세 중엔 단연 그리미에 백부님과 아빠가 최고다.

특히 백부님의 <신의 숨결>은 엄청나게 강력했다.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가호를 2단계로 진화시킬 수 있는 힘이다.

“이 나이가 되도록 조절을 못해서 조카에게 피해를 끼치는구나.”

이제 북을 두드리듯 쾅쾅거리는 심장께를 지그시 눌렀다.

그때.

그리미에 다정해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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