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늦은 밤이었지만, 신관 대교육실엔 사촌들이 모여 있었다.
세작 찾기 테스트가 중지되고, 다음 필기시험이 더 중요해져서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만년필 튜브 끝을 까득까득 씹으며 문제를 풀던 리앙틴이 날 쳐다봤다.
그 옆엔 죽상을 하고 있는 디오네라가 있었다.
디오네라가 반가운 얼굴로 얼른 몸을 일으켰다.
“에릴로트! 방에 있는 거 아니었어?”
“에릴로트 핑계로 도망칠 생각하지 말고 딱 앉아, 디오네라.”
“으……. 난 정말 공부가 싫은데 실기에서 더 열심히 하면 안 될까?”
“실기 점수도 그저 그런 게 무슨. 에릴로트, 너도 한 마디 해줘.”
난 서로를 쳐다보며 종알거리는 리앙틴과 디오네라의 말을 딱 끊었다.
“미안. 바빠서.”
그렇게 말한 난 대교육실 곳곳을 살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촌에겐 직접 가서 확인했다.
“저기─”
고개를 숙인 채 노트에 집중하던 로레이나가 인상을 확 찌푸렸다.
‘아니야.’
“뭐야?”
“다른 사촌들은 어디 있어요?”
“내가 그런 것까지 어떻게 알아?”
짜증 섞인 어조로 말하던 로레이나가 내 표정을 빤히 쳐다봤다.
숨지지 못한 초조함을 느꼈는지, 로레이나는 팔짱을 끼고서 말했다.
“조프리네는 신관에 있는 조프리의 방에. 아일라, 리오나, 카라는 온실에 있는 것 같았고, 셀레네는 도서관. 밀란이야 너도 알 테지.”
그 말에 디오네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다 알아?”
그러자 로레이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멍청이…….”
중얼거리는 말에 리앙틴이 핀잔을 줬다.
“가호 때문에 평소에도 코가 예민하잖아. 지나가다 냄새를 맡았나 보지.”
“아아.”
어쨌든 로레이나 덕에 살았다.
난 로레이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요.”
“……실의가 습격했을 때의 빚은 이거로 갚는 거야. 이제 우리 사이엔 아무것도 없다고. 알겠어?”
“네.”
로레이나는 쯧, 혀를 차더니 다시 펜을 들었다.
리앙틴과 디오네라가 물었다.
“그런데 다른 사촌들은 왜?”
“무슨 일 있어, 에릴로트?”
“다음에 얘기할게.”
그렇게 말한 난 얼른 대교육실을 나섰다.
등 뒤에서 리앙틴과 디오네라가 “에릴로트!”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난 뛰다시피 복도를 지났다.
그리고 로레이나가 말해준 ‘배신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도착하자, 문을 통해 사촌 둘이 나오고 있었다.
“안녕, 에릴로트.”
“안녕하세요.”
“여긴 무슨 일이야?”
“일이 좀 있어서……. 안에 남은 사람이 있나요?”
“응. 우리는 이제 방에 돌아가서 쉴 건데, 너도 같이 갈래?”
난 고개를 저었다.
“아녜요. 쉬세요.”
“응? 으응…….”
두 사람은 문을 확 열고 들어가는 날 묘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러나 난 황급히 문 안으로 들어갔다.
안엔 배신자로 예상되는 사촌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난 그 사람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티테이블엔 책이 펼쳐져 있었다.
책에 집중한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촌에게 나는 말했다.
“집중이 안 되나요?”
“에릴로트?”
날 쳐다본 사촌은 곧 눈살을 찌푸렸다.
“집중하고 있었어. 네가 방해하기 전까진.”
“집중을 못하는 것 같은데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난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그게 아니라면 시험 범위도 아닌 부분을 보고 있을 리 없잖아요.”
사촌이 흠칫, 책을 쳐다봤다.
이번 시험에서 동국의 문화 부분은 보지 않는다.
그런데 이 사촌이 펼치고 있는 책은 동제국이라 불리는 라온트라의 역사서.
사촌은 잠깐 당황한 표정을 짓곤, 책을 덮었다.
이 사촌이 책을 펼치기만 하고, 전혀 집중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다른 생각을 하느라.’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생각은 무슨. 헷갈린 거지.”
나는 사촌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찻물이 가득한 찻잔을 매만졌다. 다 식어서 미지근하다.
“좋아하는 차는 입에도 대지 않았군요.”
“말했잖아. 집중하느라─”
“네. 집중해서 생각하고 계셨겠죠. ……밀란 오라버니를 어떻게 해칠지.”
“……!”
사촌이 흠칫, 나를 쳐다봤다.
날 빤히 쳐다보던 그 애의 입매가 서서히 비틀렸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난 모르겠는데.”
“처음부터 기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어요.”
“……뭐?”
“에레카 길라르가 천지 분간을 못하고 날뛰는데, 다른 사촌들이 그 애를 처리하려고 나서지 않는 점이 아무래도 이상하더라고요.”
아스트라의 3세들은 난폭하기로 유명하다.
그만큼 자극했다면 누구 하나 정돈 에레카를 들이받았을 것이다.
“사촌들이 왜 그렇게 얌전했을까요?”
“3세 중에 세작을 찾던 중이었어. 괜히 움직였다간 수상하게 여겨질 테니 얌전하게 있던 것이겠지.”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알리바이…… 그러니까 내내 공작성에 있어서 세작이 아니란 것이 확정이 난 사촌들도 얌전했어요.”
“글쎄. 세작이 아닌 게 확정이 난 사촌들도 움직이지 않았다고 수상하다는 건 비약 아닐까? 다른 이유가 있었을 수도…….”
“맞아요. 다른 이유가 있었죠.”
난 찻잔을 내려놓으며 사촌을 빤히 쳐다봤다.
“에레카와 직계 3세가 싸워서 그 애의 힘을 증명했잖아요. 함부로 그 애와 싸웠다간 질 수도 있다고.”
“…….”
“방계들이 날뛰는 와중에 에레카와의 싸움에서 진다면 그 망신을 감당하기 힘들겠죠.”
“…….”
“그래서 일부러 에레카와 싸운 게 아닌가요? ……아일라 언니.”
내 앞에 앉아 있던 아일라가 굳은 얼굴로 날 쳐다봤다.
“처음부터 너무 쉽게 에레카에게 진 게 아닌가 싶었어요.”
“네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이겼을 수도 있잖아?”
“일부러 져주려고 했던 건 아니고요? 그 애가 다른 사촌들과 싸워서 행여나 실의를 불러올까 봐.”
“……!”
아일라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곤 하……! 실소를 터뜨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속 헛소리만 하니 상대를 못하겠─!”
난 아일라의 손목을 확, 잡았다.
“너. 밀란을 죽이려고 하지?”
가호로 읽었던 본문에서 얻은 힌트는 셋이다.
1. 배신자를 ‘그녀’라고 서술했던 것.
2. 밀란과의 3인칭 시점 대화에서,
“□□□, 네가…… 왜…….” “나를 원망하지 마, 오라버니. 모든 건 바보 같은 에레카 길라르의 탓이니까.” “…….” “망신을 무릅쓰고 도와줬는데도 결국 멍청하게 실의를 꺼내놓다니. 한심해.” “…….” “그 탓에 내 손에 피를 묻혀야 하잖아. 정말이지 귀찮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