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96화. (196/390)

196화.

소란을 듣고 지배인인 듯한 남자가 나타났다.

지배인이 볼프강에게 허리를 숙였다.

“실례합니다, 나리. 무슨 일이신지요.”

“대체 고용인 교육을 어찌 하는 것이냐! 어찌 이따위 계집이 감히 나를 무시해!”

지배인의 표정이 굳어졌다.

그러자 그에게 밉보인 종업원이 허둥지둥 말했다.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지배인님!”

“…….”

“저, 저는 그저 네 분이 예약되어 있었는데, 한 분만 계시기에 다른 분은 오지 않으시는지 여, 여쭈었을 뿐입니다……!”

아하.

‘어떻게 된 건지 알겠네.’

볼프강은 이전까지 샤토브리앙 공작의 충견이었다.

한데 샤토브리앙 공작이 망하자, 다른 뒷배를 찾으려던 모양이다.

‘모두 초청에 응하지 않았구만.’

그래서 ‘다른 분은 오시지 않느냐’는 말에 발작하듯 화를 낸 것이다.

열등감에 울컥해서.

죄 없는 종업원은 괜히 화풀이 당한 거다.

그러나 지배인이 노려본 것은 종업원이었다.

“서둘러 끌어내라.”

“지, 지배인님! 저, 저는 교육받은 대로 했을 뿐이에요! 나리께서 제게 괜한 트집을…… 꺅!”

끌려가면서도 억울한지 울음까지 터뜨렸다.

그러면서 확실히 보았다.

‘역시 아는 얼굴이네.’

나는 슬쩍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화장실에 다녀올게.”

핑계를 대고 복도로 나오자마자 주변을 둘러봤다.

‘방금 종업원들이 어느 쪽으로 갔더라…….’

두리번거리던 중에 멀리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저는 억울해요! 전 정말로―”

‘저기다.’

나는 서둘러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향했다.

누군가 볼프강에게 밉보인 종업원을 뒷문으로 떠밀고 있었다.

“대체 눈치는 어디다 팔아먹은 거냐?! 한두 번도 아니고, 젠장.”

“이, 이번엔 정말 억울해요. 서, 선배! 저는 정말로……!”

“시끄러워. 저 나리가 돌아가실 때까지 나가 있어!”

쾅!

문이 닫혔다.

난 코너 뒤에 숨어 있다가 남자가 떠난 후에 뒷문으로 향했다.

문을 통해 나서니, 종업원이 문 앞에 쪼그려 앉아서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난 기가 막힌 목소리로 물었다.

“대체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아?”

그러자마자 종업원의 눈이 커졌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말했다.

“마사.”

그렇다.

이 종업원이 바로 마리의 동생이자, ‘달리아의 육체’의 본주인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했던 그 아이.

마사였다.

* * *

마사는 흠칫 고개를 들었다.

“여, 영애님이 여긴 어떻게…….”

“식사하러 왔지. 넌 왜 여기서 일하고 있는 거야?”

“저, 그게 취직을 해서…….”

“취직하지 않아도 될 만큼 매달 충분히 주고 있을 텐데?”

“네, 넷! 충분해요. 과분할 정도로요. 그, 그런데 언니 약값을 생각하면 허투루 쓸 수가 없어서…….”

약값을 위해 돈을 모아 두느라 생활비가 부족했던 모양이다.

나는 눈가와 코가 새빨간 마사를 빤히 보았다.

“알겠으니까 짐을 챙겨서 나와.”

“네?”

“집으로 데려다줄게.”

“일이 아직 안 끝나서…… 마음대로 가면 해고될 거예요.”

“그러지 않아도 넌 해고될 것 같던데.”

마사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역시 그럴까요? 지배인님께서 귀족 나리의 말만 믿고, 절 오해하신 바람에…….”

‘이유는 그게 아닐걸.’

지배인이 마사를 끌어낸 건 아마도 다 쇼일 테니까.

‘문제는 다른 데에 있단다. 게다가 그건 네 탓이지.’

하지만 가뜩이나 속상해서 우는 애한테 그것까지 꼬집어 주는 건 좀…….

나는 슥, 시선을 돌렸다.

“하여간 얼른 나와. 여기 계속 있다간 감기―”

말하던 찰나에 뒷문이 열렸다.

나와 비슷한 키의 여자애가 밖으로 나왔다.

그 애를 본 난 깜짝 놀라서 소리쳤다.

“마리?!”

마사의 언니인 마리였다.

마리도 날 보고 놀랐는지 미간을 좁혔다.

“뭐야, 왜 네가 여기에 있어?”

“나야 식사하러 왔지! 너도 여기에 취직했어?”

‘마리는 황도 안으로 들어와선 안 되는데!’

마리는 아마도 그리미에 백부의 친딸일 터.

마사라면 몰라도, 친딸인 마리는 웬만해선 그리미에와 마주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마리는 고개를 저었다.

“난 잠깐 마사를 도우러 온 거야.”

“건강도 안 좋잖아.”

“네가 좋은 의사를 소개해 준 덕분에 전보다 훨씬 나아.”

나는 이마를 잡았다.

‘감시인은 대체 뭘 한 거야.’

어린 여자애 둘이서 살면 아무래도 위험할 테니까.

게다가 혹시 모를 그리미에와의 접촉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자매가 1구역 인근으로 들어온 것을 보고하지 않았어?’

이 자식이…….

내가 이를 가는 사이 마리가 마사에게 말했다.

“너 잘린대.”

“내 탓이 아닌데…… 아, 지배인님께 사정을 다시 설명해야……!”

“네 탓이야.”

“아냐! 난 교육받은 대로 인원수를 물은 거야! 식사 준비를 하려면 인원수를 알아야……!”

“네가 흥분한 멍청이 귀족 앞에서 그걸 말했다는 게 잘못인 거야.”

“……어?”

“가뜩이나 흥분해 있는데 그런 소리를 들으면 더 난리를 칠 거 아냐.”

“그건…….”

“최대한 빨리 진정시켜야 다른 손님들의 식사를 방해하지 않을 텐데, 너는 눈치 없이 더 흥분시킬 뻔했잖아.”

“…….”

“이런 곳에서 눈치 없는 너를 계속 쓰겠어?”

그랬다.

손님을 진정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더 소란을 가중시킨 것이다.

내가 지배인이라도 마사처럼 눈치가 없는 애는 위험하다고 여길 거다.

대귀족 중엔 볼프강보다 더 오만한 사람이 많은걸.

‘하지만 그걸 저렇게 바로 말해 버리네.’

안 그래도 마사가 엄청나게 속상해하고 있는데.

역시 마리.

가차 없다.

마사의 커다란 눈에 다시 눈물이 고이자, 마리가 무언가를 휙! 던졌다.

가만 보니 외투였다.

“갈 준비해.”

“그, 그래도 오늘까지는 일해야…….”

“계속 있다가 창피나 더 당하지 말고.”

“……그렇게까지 말할 건 없잖아.”

“내가 틀린 말 했어?”

“정말 너무해…… 내가 이렇게 속상해하는데 위로 정도는 해 줄 수 있잖아…….”

“확실하게 말해 줘야 앞으론 이런 실수를 안 하지. 그게 네게 더 도움이 되는 거라고.”

“나, 나중에 말해 줄 수도 있는 걸…….”

“집에 가서도 이런 얘길 계속하고 싶니, 넌.”

“왜 항상 그렇게 못되게 말해……?”

“너야말로 이런 소모적인 대화 좀 안 하게 해 줄 수 없어?”

자매가 싸우기 시작해서, 나는 어색하게 양손을 올렸다.

“그, 일단 진정하고, 남은 얘기는 집에 가서 하는 게…….”

그러고 있는데, 뒷문 안에서 종업원인 듯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마리? 마리, 어디 있니.”

마리가 얼른 문 안으로 들어갔다.

문틈 사이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여기 있어요.”

“벌써 돌아갔나 싶었는데 다행이구나.”

“무슨 일이세요?”

“정말 여기서 계속 일할 생각이 없니?”

“…….”

“잘 생각해 보고 연락 주렴. 지배인님께서 섭섭지 않게 챙겨 주신다고 하셨단다.”

함께 대화를 들은 마사는 엄청나게 시무룩한 얼굴이었다.

언니는 인정받는데, 자신은 쫓겨나는 처지이니 속상할 만도 하겠지.

나는 마사를 힐끔, 쳐다보고 말했다.

“가자. 너희를 데려다주라고 하인에게 말해 둘게.”

“……네.”

“그래.”

나는 한지혁에게 통신을 넣어 두고, 자리를 떠났다.

코너를 돌아가며 힐끗 쳐다보자, 마사가 고개를 푹 수그리고 있었다.

* * *

그날 밤.

우리 가족은 식사를 끝내고 귀가했다.

난 돌아오자마자 방으로 올라갔다.

자매를 데려다주고 온 한지혁이 방 앞에서 날 기다리고 있었다.

“들어와.”

한지혁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잠근 뒤 그를 노려봤다.

“할 말 없어?”

“……죽을죄를 지었다.”

감시인을 고용하고, 관리하는 건 한지혁이었다.

그러니까 감시인이 보고에 소홀했던 것도 그의 책임이라는 것이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어떻게 된 건데.”

“자매가 내내 조용하니까 방심해서 업무에 소홀했던 모양이야.”

“진짜 죽을래?”

울컥 인상을 쓰니, 한지혁이 눈을 꽉 감고서 말했다.

“최대한 고통 없이 부탁한다.”

하여간에…….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감시인은 바로 해고해. 말이 새어 나가지 않게 확실히 단속하고.”

“그래.”

“새로운 감시인으론 이그리츠의 사람을 붙여.”

“루카는 어떨까. 실력도 있고, 꼼꼼하기도 하니까.”

“그래.”

지시 내용을 메모하던 한지혁이 슬쩍 날 쳐다봤다.

“그런데 그 자매 말이야. 그 식당이 아니라도 계속 일자리를 구하려는 모양이던데.”

“…….”

“차라리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게 낫지 않겠어? 황도에 있다가 그리미에와 마주치면 어쩌려고.”

“안 돼.”

“왜?”

“소설 내용이 바뀌어서 달리아가 언제 빙의할지 몰라. 손 닿는 곳에 둬야 해.”

이 세계는 가장 특별한 사람을 주인공으로 만들어 준다.

다른 세계에서 빙의한 소녀.

심지어 아스트라라는 엄청난 권세 가문의 숨겨진 딸.

‘오자마자 주인공이 될걸.’

주인공 버프는 정말로 엄청나다.

강철까마귀를 용으로 만들고, 가호를 2단계로 올려 주기까지 할 정도로.

‘주인공 버프가 생기면 빙의하자마자 그리미에나 할아버지를 만날 거야.’

<빙.흑.손>에서도 그랬는걸.

그러니까 차라리 바로 대응할 수 있게 내 손이 닿는 곳에 둬야 안심할 수 있다.

“하지만 생활비를 더 준다고 해도 굳이 일을 하겠다잖아.”

“대체 왜?”

“마리 말이 ‘아스트라가 평생 책임져 줄 것도 아닐 텐데 그 전에 자리를 잡아 놔야 한다’더라고.”

“씨, 이래서 영리한 애는 다루기 어렵다니까…….”

평생 책임져 주겠다고 하면 저의를 의심할 것이다.

‘의심이 커져서 도망이라도 치면 곤란해.’

최대한 잘 지내 놔야 혹시 달리아가 와도 적이 되지 않을 거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말했다.

“이렇게 되면 어쩔 수 없다.”

“뭘?”

“차라리 그리미에가 자매를 찾더라도 손댈 수 없는 안전한 곳에 취직시키는 게 낫겠어.”

“그런 데가 있어?”

이럴 때 써먹으려고 인맥을 그렇게 많이 만들어 둔 거라고.

나는 씩, 웃었다.

* * *

며칠 후.

자매가 에릴로트와 약속한 장소에 도착했다.

마사는 마리를 힐끗 쳐다봤다.

자리에 앉아서 책을 읽고 있는 언니는 어쩐지 귀티가 나는 것 같다.

“왜.”

마리가 책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물었다.

“아니야.”

“최근에 계속 그런 식으로 날 보잖아. 신경 쓰이니까 이유를 말해.”

“…….”

마리가 탁, 책을 덮곤 마사를 노려봤다.

“사람 짜증 나게 하지 말고.”

“……이쪽으로 이사하고서 언니가 좀 바뀐 것 같아서.”

이전엔 마리를 좋아하는 사람이 없었다.

매번 엄청나게 패악을 부렸으니까.

제 약값을 위해 손이 다 부르트게 일하는 동생에게 온갖 신경질을 부렸다.

고함을 지르는 건 예삿일에, 물건을 던지기까지 했다.

마리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몸이 나아져서 덜 예민하니까 그런가 보지.”

“내가 일하던 식당에서도 언니를 좋아하고…….”

나보다도 더.

원래 어른에게 귀여움을 받는 건 자신이었다.

그런데 이곳에선 마리를 더 좋아했다.

일하던 식당에서도 서류 보조가 급해서 소개해 줬는데, 계산이 빠르고 정확하다며 계속 일해 달라고 했다.

‘난 해고했으면서…….’

집 근처에 사는 부자들도 언니를 좋아했다.

그곳은 치안이 좋아서, 귀족은 아닌데 돈이 많은 자들이 산다.

주민들은 언니를 ‘교양 있고 똑똑하다’며 귀여워했다.

“어떻게 그런 계산을 할 줄 알아? 부자 어른들과도 어려운 얘기를 막 하잖아.”

“난 집에만 있었으니까 할 수 있는 게 책 읽는 것밖에 없잖아.”

“…….”

“하고 싶은 말이 뭔데.”

“아니, 난 그냥…….”

그러던 찰나, 주변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거리를 걷던 사람들이 멈춰 서서 수군거렸다.

몇몇 아이는 “와―!” 하고 탄성을 지르기도 했다.

“서군 원화! 어머니, 서군 원화예요! 에릴로트 아스트라 님이요!”

“맙소사, 저분이 이 거리엔 무슨 일이시지. 말이라도 걸어 볼까? 어떻게 생각해요, 오라버니?!”

마차에서 내린 에릴로트가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마사는 깜짝 놀라서 에릴로트를 쳐다봤다.

‘영애님이잖아. 그런데 저렇게 유명한 사람이었나?’

고향은 황도에서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조용한 마을.

이곳에 와서도 집 밖으론 잘 나간 적이 없다.

그래서 마사는 에릴로트의 활약상을 잘 알지 못했다.

자매를 발견한 에릴로트가 걸어오기 시작했다.

“안에서 기다리지 그랬어.”

마리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돈을 누가 낼 줄 알고 저렇게 비싼 곳에 들어가?”

“설마 네게 내라고 하겠어?”

“혹시 모르지.”

“으이구.”

마리의 말에 에릴로트는 킥킥 웃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주변에선 열심히 쑥덕이고 있었다.

“서군 원화와 함께 계시는 저분들은 어느 댁 아가씨일까요?”

“글쎄요. 모르긴 몰라도 엄청난 권세가의 따님이 아니시겠어요? ‘저 아스트라 백작 영애’와 어울릴 정도라고요.”

“하기야, 꽤 절친해 보이니까요. 서군 원화와 막역한 분은 비페리 영애나, 파앙테 영애, 트랑 영애 같은 엄청난 가문의 아가씨들이시니…….”

귀를 쫑긋 세우고 주변의 목소리를 듣던 마사는 수줍게 웃었다.

‘내가 귀한 아가씨로 보이는 걸까…….’

고개를 숙이고 손을 꼬물대고 있으니, 마리가 미간을 좁혔다.

“뭐 해?”

“어, 어?”

“가자니까. 에릴로트가 소개해 줄 분이 계시다잖아.”

마사의 눈이 동그래졌다.

소개?

누구를?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