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화.
내가 움찔하자, 곁에 있던 소녀가 물었다.
“어디 불편하신가요?”
“……아니요.”
그렇게 말하며 난 생각했다.
‘절대 안 돼.’
지금은 황제에게 미움받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내가 크림슨 구울을 데리고 있다는 게 드러나면 어떻게 되겠는가?
심지어 그 크림슨 구울이 귀족 아이를 먹는다면…….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을 것이다.
[나는 책을 읽었기에 이러한 상황을 알고 있다. 돌려 까기란 것이다.]
“…….”
나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허공을 쳐다봤다.
어떤 책에서 그런 걸 읽었지.
[저 아이들이 너를 무시하고 있단 것이지. 감히 이 아웬의 주인인 너를 말이야.]
‘아무튼 먹으면 안─’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블라썸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의자가 왔네요. 앉으세요.”
“네.”
적당히 어울려주고, 마부에게서 데본 님이 왔다는 연락이 오면 빠져야겠다.
그런데 이 소녀들…… 수다량이 장난이 아니었다.
“칼라 양이 최근에 누구와 어울리는지 아세요?”
“칼라?”
“왜 마…… 평민에게 말을 빌려주고, 나중에 가서는 ‘앞으로 그런 일은 하고 싶지 않아요! 소중한 서, 선물이라……!’ 하던 그 사람이요.”
“아하, 블라썸양이 ‘그럼 소중한 선물과 평생 놀면 되시겠어요.’ 하고 아웃된…….”
“맞아요.”
“누구와 어울리는데요?”
“헤린 양이에요!”
“맙소사, 닭털 모자를 쓰고 와서 우리를 부끄럽게 했던 그 헤린이요?”
“낙오자들의 모임 같달까.”
까르르르르.
소녀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 소녀들은 그야말로 지방 사교계의 미니 버전이었다.
블라썸은 눈꼬리에 눈물까지 달며 웃었다.
“아아, 배 아파. 리지는 어쩌면 그렇게 말을 재밌게 하나요? 낙오자들의 모임이라니.”
“감사해요~ 아니, 그런데 더 우스운 건 그 낙오자들이 오필리어 양과 어울린다는 거예요!”
순간, 블라썸의 얼굴이 딱 굳어졌다.
블라썸의 오른팔인 피네사 쿠롱이 흠칫, 눈치를 보았다.
그러더니 부러 목소리를 높였다.
“오필리어 파탱이요?!”
“네에.”
“동부에서 외기러기 같은 처지니 그런 낙오자들과라도 어울리고 싶었나 봐요.”
오필리어?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그렇게 생각하던 와중에 둥글둥글한 인상의 소녀가 고개를 갸웃했다.
“오필리어 양은 인기가 많다고 알고 있는데요? 제 숙모님께서 펜싱을 가르치시는데, 성품이 워낙 발라서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샤론 양.”
블라썸이 찻잔을 들며 말했다.
“네?”
“시원한 물이 마시고 싶어요. 가져다주시겠어요?”
“아, 네. 거기! 여기 시원한 물을 가져다주—”
“아니요. 직접.”
“……!”
귀족이 물을 직접 뜨러 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이런 파티에서는 더더욱.
샤론이라 불린 소녀의 얼굴이 붉어졌다.
“저, 그건…….”
“어서요.”
“…….”
“뭐해요?”
“……네.”
“고마워요.”
블라썸이 생긋 웃고 물잔을 떠넘기더니 고개를 돌렸다.
다른 소녀들도 못 본 척 고개를 돌렸다.
나는 고개를 푹 수그린 채로 테이블에서 떠나는 샤론을 쳐다봤다.
[이것도 책에서 봤단다. 따돌림이지.]
‘응, 맞아.’
이 무리의 힘의 균형을 알겠다.
‘모두가 블라썸의 눈치를 보는구만.’
하기야, 블라썸만이 황도에 저택이 있는 귀족이다.
1구역에 있는 중앙귀족까진 아니어도.
다른 영애들은 남작가, 자작가, 단승작위를 가진 가문의 사람도 있다.
피네사 쿠롱이 블라썸의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전 정말 기가 막혀요. 오필리어 양이 동부 예비 원화전에 나온다니.”
그 얘기를 듣던 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맞다, 맞아!’
세바스티아 언니가 중앙 원화로 영전하고, 동군 원화 자리가 비었다.
동부에서 예비 원화전을 하는데, 오필리어 파탱 양이 가장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세바스티아 언니가 특히 칭찬하던 사람이라 기억이 난다.
“오필리어 양은 서포트형 가호도 아니잖아요!”
원화는 대부분 서포트형 가호를 가지고 있다.
뒤에서 군사들을 받쳐주는 게 주 임무이기 때문이었다.
“<검강> 같은 가호가 군사들에게 무슨 도움이 되겠어요?”
피네사 쿠롱이 블라썸의 눈치를 힐끔힐끔 보며 열변을 토했다.
블라썸의 표정이 유해지자, 다른 영애들도 얼른 말을 보탰다.
“블라썸 양처럼 신성 가호를 가진 사람이 원화에 어울린다고요.”
“블라썸 양의 가호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저는 평소에도 너—무 너무 멋진 가호라고 생각했어요.”
“가호 <가시 감옥>. 장미 줄기를 이용해서 감옥을 만들다니 너무 아름다워요~”
블라썸은 우후훗, 웃었지만 나는 떨떠름해졌다.
‘근처에 장미 넝쿨이 없으면 쓰지 못하는 가호란 거잖아.’
내가 만약 블라썸과 붙으면 절대로 장미가 심어진 곳에는 안 갈 거다.
그럼 무능력자로 만들 수 있으니.
‘결국 전투에는 도움이 안 되는 능력이란 건데.’
블라썸의 오른팔인 피네사 쿠롱이 나를 쳐다봤다.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동부 예비 원화전에 몬스터를 좀 빌려주시는 게 어때요?”
“……네?”
“이것도 인연인데 도움을 주시면 좋잖아요? 그러면 같은 원화가 되어서 서로 이런저런 도움을 받을 수 있고요.”
피네사 쿠롱이 “그렇죠, 블라썸 양~?” 하며 에헤헤 웃었다.
블라썸은 모른 척 생글생글 웃고만 있었다.
‘마사를 통해서 나를 만나려고 그렇게나 노력하던 이유가 이거구나.’
몬스터를 빌려서 동부 예비 원화전에서 이기려고.
피네사 쿠롱이 말했다.
“용을 빌려주면 제일 좋고요. 아니면 종년 축제에서 쓴 그림자 몬스터나…… 아, 늪요정도 있다고 들었는데요.”
“…….”
“그림자 몬스터와 늪요정을 다 빌려줘도 좋을 거예요. 아니, 뭐, 몬스터도 많은데 몇 마리쯤은 그냥 주시는 게 어때요?”
그러며 영애들은 아하하하, 웃었다.
그림자 밑에서 옴브레가 구우우…… 우울하게 진동했다.
‘내 새끼들이 무슨 물건인 줄 알아?’
[역시 내가 먹어버릴까.]
손가락 하나쯤은 괜찮을지도…….
울컥해서 생각하다가, 난 벌떡 일어났다.
‘이러다 진짜 아웬에게 먹어버려도 좋다고 하겠네.’
“전 이만 가볼게요.”
블라썸이 나를 빤히 쳐다봤다.
“바쁜 일이라도 있나요? 없을 텐데.”
순간, 그녀의 머리 위로 글자들이 떠올랐다.
[‘황제의 미움을 사서 아무도 안 엮이려고 하잖아? 그런 주제에 여전히 잘난 척은. 주제 파악을 좀 하지.’]
아웬이 하하 웃는 소리가 들렸다.
[저 @$#$#가.]
뒷골목 건달도 안 할 신랄한 욕에 나는 움찔했다.
‘그런 건 또 어디서 배웠어.’
[책에서.]
심심하면 읽으라고 저택의 도서관을 개방해줬더니…….
‘당분간 도서관 출입 금지.’
[음, 이걸 망했다고 하는 거지? 책에서 봤다.]
‘…….’
난 아웬과의 대화를 포기하고 블라썸을 쳐다봤다.
“타인을 본인의 잣대로 재단하는 건 예의가 아니랍니다, 로슈펭 영애. 특히 그런 것을 입 밖으로 내는 건 더욱.”
블라썸의 입매가 비틀렸다.
헛웃음을 흘린 그녀가 말했다.
“그러지 말고 앉으세요. 아직 얘기가 안 끝났으니.”
“로슈펭 양은 한마디도 하지 않으셨는데요.”
“제 친구들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말이랍니다.”
그런데 그때였다.
“서군 원화?”
익숙한 목소리에 나는 홱! 고개를 돌렸다.
“데본 님!”
데본 님이 나를 힐끗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얼른 그에게 다가갔다.
“언제 오셨어요? 마차는 안 가져오셨나요? 마부에게 데본 님이 오시면 말해달라고 했는데! 아, 일단 인사를…….”
내가 말을 쏟아내자, 데본 님이 가는 실소를 흘렸다.
“그리 급하게 묻지 않아도 대답해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네 질문에 대답할 것이다.”
첫 번째 삶에서 최초로 들었던 어른의 다정한 말.
“네 질문에 함께 고민할 것이고, 여러 날 심사숙고하여 답해주마. 그렇게 함께 세상을 익혀도 좋다면 함께 가자, 에릴로트.”
너무너무 잡고 싶었던 이 손.
‘난 역시 데본 님이 좋아.’
나는 헤헤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블라썸 무리가 데본 님을 힐끔힐끔 쳐다보며 말했다.
“로체 후작…….”
“황제 폐하의…… 그래요, 신임하시는…….”
속닥속닥 떠들던 영애들이 얼른 데본 님께 인사했다.
블라썸도 애교 섞인 표정으로 데본 님에게 다가왔다.
“로슈펭 백작가의 블라썸이랍니다. 뵙게 되어서 정말, 정말로 영광이어요, 후작님.”
“그래. 서군 원화와는 나눌 이야기가 있다. 데려가도 되겠지?”
“그, 그럼요! 물론…….”
블라썸은 대답하면서 나를 힐끗 쳐다봤다.
내가 제게 안 좋은 소리를 떠들까 봐 걱정인 모양이었다.
나는 그러거나 말거나 데본 님을 쫓아갔다.
데본 님은 나를 정원으로 데려갔는데, 아직 꾸며져 있지 않아서 사람이 별로 없었다.
“언제 오셨어요? 마차를 가져오지 않으셨어요?”
“방금. 탈로프의 마차로 함께 이동했다.”
아아, 아빠의 동창 중 하나라는 레오 탈로프.
“그보다.”
데본 님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너, 괴롭힘당하는 것이 아니야?”
“네?”
“저 아이들이 너를 괴롭히는 것으로 보였는데 내 오해인 것이냐?”
나는 눈을 끔뻑였다.
‘뭐, 괴롭힌 거라면 괴롭힌 거겠지만…… 잠깐.’
이거 기회 아냐?
데본 님은 굉장히 정의로운 사람이었다.
아카데미에서도 부학생회장 출신으로 따돌림당하는 학우를 대신해, 주동자를 패다가 정학을 당했다고 들었다.
약자의 편인 사람이니까…….
‘잘만 이용, 아니지, 수를 내면 따로 만날 자리를 마련할 수도 있겠는데?’
나는 음흉한 속내를 감추고, 고개를 떨구었다.
그리미에를 벼랑까지 몰고 갔던 아카데미 급의 연기력을 발휘할 순간이었다.
“저는, 전…….”
“서군 원화.”
나는 눈썹을 늘어뜨리고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아니긴. 표정이 좋지 않은데.”
“모두 제 탓인걸요. 감당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하지만…… 신경 써주시니 기댈 데가 생긴 것 같아서…… 마음이 약해지네요.”
그리고 흡, 숨을 들이켜며 고개를 돌렸다.
‘좋아, 완벽했다!’
이게 통했으면 3초쯤 뒤에 데본 님이 나를 잡으실 터.
나는 눈을 감고 숫자를 세었다.
1…… 2…… 그리고.
탁!
데본 님이 내 어깨를 잡았다.
‘그렇지!’
나도 모르게 쾌재를 부를 뻔해서, 난 손목을 꽉 잡았다.
“무리 지어 하는 괴롭힘이라면 어른의 도움을 받아야 해. 네 아버지에게 말씀드려라.”
“데본 님도 아버님의 성격을 아실 텐데요……. 행여나 저 때문에 누군가를 폭행하거나 한다면 전 너무나 마음이 아플 거예요.”
데본 님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빠의 성격을 떠올린 모양이었다.
“하면…….”
“혹시 데본 님께서 상담해주실 수 있나요?”
“내가?”
“네…… 하지만 어려우시면 괜찮아요…….”
“…….”
잠깐 고민하던 데본 님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 2시에 황궁에 있는 내 집무실로 찾아와라.”
“정말요?!”
내가 눈을 반짝이며 기뻐하자, 데본 님이 픽 웃었다.
“혼자서 걱정이 컸겠구나. 함께 고민해보자.”
“감사합니다!”
그때, 부관으로 보이는 남자가 데본 님을 찾아왔다.
그가 무어라 속삭이자, 데본 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내일 보자.”
“네!”
데본 님이 부관과 함께 떠나고 나는 히죽히죽 웃었다.
‘만세, 만세!’
[굉장한 연기력이구나. 연극배우를 해도 되겠다는 건 이럴 때 쓰는 말이지.]
‘책에서 봤어? 맞아~!’
내가 신이 나서 콩콩 뛰니, 아웬이 쿡쿡 웃었다.
‘목적도 이뤘겠다, 이제 돌아가면 되겠네.’
흥얼거리며 정원을 벗어나던 때였다.
“에릴로트 양.”
블라썸 무리가 나를 향해 다가왔다.
내가 멈칫하자, 가운데에 있던 블라썸이 날 쏘아봤다.
“로체 후작님과 무슨 얘기를 나누신 거예요?”
블라썸의 머리 위로 글자들이 떠올랐다.
[‘저게 혹시 후작님께 내 흉을 본 것 아냐? 안 돼. 후작님은 젊은 사자라 불리는 능력 있는 정치인이라고. 정의로운 분이시니 혹시 할아버지께 이 일을 말씀드릴지도 몰라.’]
그 후작님은 말마따나 능력 있는 데다가 정의로워서 척 보자마자 따돌리는 걸 알았단다.
‘로슈펭 백작은 무서운가 보네.’
하기야, 거기도 아스트라만큼 후계 싸움이 치열한 곳이었다.
그러니 블라썸이 원화가 되려고 그렇게 애를 쓰는 거고.
“별말 안 했어요.”
“그러니까 정확히 무슨 말을 한 거냐니까요.”
“내가 그걸 왜 말해줘야 하죠?”
“내 흉이라도 본 거예요?”
분위기가 딱딱하게 경직되었다.
마침 블라썸의 명으로 찬물을 가져온, 눈치 없는 샤론 양도 느낄 만큼.
“저어, 블라썸 양? 어, 에릴로트 양은 왜…….”
피네사 쿠롱이 샤론에게 인상을 썼다.
“당신은 빠져요.”
그러곤 분위기를 풀려는 듯, “자, 자.” 하며 말했다.
“그러지 말고 자선 파티가 끝나면 따로 이야기하는 게 어때요?”
다른 영애들도 얼른 동의했다.
“좋아요. 어디로 갈까요?”
그러자 피네사 쿠롱이 짝, 손뼉을 쳤다.
“아스트라 제 2백작저는 어때요? 네, 블라썸양? 간 김에 몬스터도 보고요.”
그 말에서야 블라썸의 표정이 풀렸다.
“뭐…… 그렇다면야.”
얼씨구.
저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다 한다.
이쪽은 초대할 마음이 조금도 없는데.
블라썸이 피네사 쿠롱을 향해 생긋 웃었다.
“혹시 아직도 둘째 공자님을 노리고 계신가요?”
발자크?
그러고 보니까 피네사 쿠롱이 소개해달라는 둥 했던 것도 같다.
피네사 쿠롱은 손을 내저으며 호호 웃었다.
“무슨, 부모님이 어울릴 것 같다셔서 어떤 분인가 궁금했을 뿐이에요.”
“그래요?”
“네. 그런데 이제 보니까 첫째 공자님이 괜찮을 것 같더라고요.”
“리시먼드 님이요?”
난 저들끼리 신난 영애들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슬쩍 빠져야겠다.’
더 있다간 진짜로 귀찮아지겠어.
돌아가려고 했을 때, 피네사 쿠롱이 까르르 웃으며 말했다.
“네, 부모님 말씀이 양아들이라 재산 상속받을 일은 없지만, 부모가 없어서 쥐고 흔들기 딱이라고 하세요.”
난 멈칫, 피네사 쿠롱과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블라썸을 쳐다봤다.
“뭐라고?”
“네?”
“다시 말해봐.”
내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지자, 피네사는 매우 당황했다.
“아니, 뭐, 내가 틀린 말을 한 것도 아니고…….”
분위기가 경직되니 이번엔 블라썸이 중재했다.
“그만들 하세요. 차라도 마시고 기분 풀죠.”
피네사는 치, 입술을 삐죽이며 블라썸의 팔짱을 끼었다.
“갑자기 왜 성질이람.”
“이해하세요. 최근에 일이 많았잖아요. 신경질적으로 될 수밖에요.”
다른 아이들은 실실 웃고 있었다.
[아가, 역시 내가—]
나는 아웬의 목소리를 흘려 넘기고, 샤론 양에게 다가갔다.
“그 물, 제가 좀 써도 될까요?”
“네? 아…… 네.”
물잔을 받아든 난 시계를 확인했다.
파티가 시작하고 10분쯤 흘러있었다.
피네사 쿠롱이 날 불렀다.
“이봐요, 영애. 안 갈 거예…… 헉!”
“……!”
영애들이 모두 놀라서 나를 쳐다봤다.
왜냐면 내가 물을 확 뒤집어써버렸으니까!
“무, 무슨……!”
“미쳤어…….”
영애들이 정신이 나갔다며 수군수군거렸다.
블라썸은 이게 무슨 짓이냐며 입을 벙긋거렸다.
“대, 대체……!”
나는 다시 시간을 가늠하고서 소리쳤다.
“꺄악—!!”
그리고 얼마쯤 뒤.
“에릴로트?”
“에릴로트 양?”
“에릴로트 양의 목소리 아닌가요?”
등장했다.
언제나 파티 시작 후 딱 10분이 지나 등장하는, 사교계의 세 공주님들이.
세바스티아 언니, 루멜리사 파앙테, 캐서린 트랑의 등장이었다.
“주, 중앙 원화……!”
블라썸이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세바스티아 언니는 그런 블라썸을 거들떠도 보지 않고 내게로 걸어왔다.
“이게 무슨 일이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니긴! 물에 쫄딱 젖었는— 설마.”
세바스티아 언니를 비롯한 파앙테 영애와 트랑 영애가 블라썸의 무리를 쳐다봤다.
그러니까 이건 이런 뜻이다.
‘너희 죽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