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3세는 악역입니다-254화 (255/390)

254화.

쿠말.

난 이 이름을 알고 있다.

그리미에가 운영하는 단체 <장막>.

그 장막의 수하가 분명히 이렇게 말했다.

“네, 네 년 때문에 쿠말 님께서 화, 화가 나셨다.”

“바, 바보가 아냐. 쿠, 쿠말 님께서 내게 이름을 주셨다. 바, 바보가 아냐. 내 이름은…… 내 이름은 기르타브다─!!”

‘그래. 그때 분명히 쿠말이라고 했어.’

특이한 이름이라 기억하고 있다.

아이는 뚱한 얼굴로 쿠말이라 불린 소년을 쳐다봤다.

“매번 네가 일러바쳐서 잡혀 오잖아.”

“잡혀 올 일을 안 하시면 좋을 텐데요.”

“씨이…….”

“할 말 없으실 땐 그냥 입을 다무시면 됩니다. 욕할 필요는 없거든요.”

오, 한 마디도 안 진다.

깔끔하게 치고 빠지는 게 말싸움에 일가견이 있어 보였다.

아이가 쿠말을 향해 인상을 찌푸렸다. 쿠말도 피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격렬한 눈싸움을 하고 있을 때…….

“그만들 좀 하십시오.”

“어린애 같으시긴.”

“싸, 싸운다. 어, 어제도, 싸웠는데, 오, 오늘도, 그, 그제도 싸웠으면서.”

쪽문으로 들어왔던 애들이 두 사람을 말렸다.

“쿠말이 먼저 할 말 없게 했어.”

“따님께서 할 말이 있도록 수양하시면 좋을 텐데요. 그러니 제사장과 그 사자님들께서 ‘이름’을 주지 않으시는 겁니다.”

그 말에 사람들이 움찔했다.

말을 한 당사자인 쿠말까지 실수했다는 듯, 손을 멈추었다.

“……아픈 데 찌르기 있어?”

아이, 그러니까 세일론의 딸이 음산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세계의 이름은 특별한 의미인 것 같아.’

세상에 나며 신이 이름을 정해준다고 했다.

그러니까 ‘만들어진 자’에겐 이름이 없다.

‘보통 가호를 나누어준 창조인이 붙여주는 것 같던데…….’

그렇게 생각하던 중이었다.

“그래! 나 이름 없다. 내가 길가에 있는 돌멩이보다 못해! 걔들은 대명사라도 있지!”

아이가 씩씩거리며 쿠말을 노려봤다.

다른 애들이 아이를 말렸다.

“따님이 싫어서 이름을 주지 않으시는 건 아닙니다.”

“제, 제사장님의 자, 자리를 이을 자라서 위, 위대한 이름을 주려고 하, 하는…….”

아이가 입술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난 위대한 이름은 필요 없어. 그냥 평범한 이름도 괜찮아…….”

“따님.”

“쿠말이나, 마시타브바, 기르타브 같은 그런 이름이 좋아.”

나는 핫, 숨을 들이켰다.

‘기르타브! 나를 공격했던 살수의 이름이 기르타브였어.’

확실하다. 저들의 이름이 <장막>과 관계있는 것이다.

쿠말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희 이름도 그리 좋은 것은 아닙니다. 앞서 일하던 몸종의 이름을 물려받은 것이니까요.”

“……내가 아픈 데를 찔렀어?”

토라져 있던 아이가 우물쭈물 쪽문에서 나온 자들을 쳐다봤다.

쪽문에서 나온 자들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하나도요.”

“그, 그래요.”

쿠말이 아이의 머리를 탁! 튕겼다.

“악─!”

“쿠말! 그러다 따님께서 다치면 어찌하려고요! 제사장님과 사자님들께서 아시면……!”

쿠말은 그러거나 말거나 아이를 휙, 눕혔다.

그리고 이불까지 잘 덮어주었다.

“우리는 창조인이 넣어준 가호를 발현하지 못하는 불량품입니다.”

“…….”

“처분될 예정이었던 우리를 데려와서 몸종으로 삼고 이름도 주셨어요.”

“…….”

“저희는 몸종이 되어 기쁩니다. 이름이 소중하고요.”

“…….”

쿠말은 아무런 말 없는 아이를 힐끗 쳐다봤다.

“왜 그렇게 쳐다보십니까?”

“불량품 아니야.”

“……예?”

“너희는 내 것이야. 제사장의 모든 것을 이어받을 나의 것.”

“그야…….”

“그러니까 긍지를 가져. 너를 불량품이라고 부르는 자는 내가 용서하지 않을 거야.”

쪽문에서 나온 아이들의 눈이 커졌다.

눈을 한참 깜빡이던 그들이 배시시 웃었다.

“예…… 따님.”

“예에…….”

다들 아이를 무척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본다.

쿠말마저도.

그는 싱긋, 다정하게 미소 짓고 있었다.

모두가 아이를 좋아했다.

제사장, 사자들, 그리고 몸종들마저.

아이를 보물인 양 아끼고 사랑하였다.

그렇게 계속해서 시간이 흘렀다.

* * *

아이의 스무 살 생일 며칠 전.

나라엔 큰 축제가 열렸다.

제사장과 사자들의 딸인 아이의 성년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곳곳에서 아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사절단이 올라왔다.

[귀하디귀한 혼의 성년을 감축드립니다.]

“고마워요!”

아이는 세일론을 비롯한 13명의 아버지들 사이에 앉아 사람들을 맞이했다.

의젓하게 인사를 받는 아이를 보고 13명의 사내들이 빙그레 웃었다.

[천둥벌거숭이 같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리 컸나.]

[만들어진 자의 성장은 정말이지 빠르구나.]

[제법 기품이 흐르는걸.]

“의젓하지요?”

아이가 뻔뻔한 투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글쎄. 정말 의젓한 사람은 그렇게 자랑스럽게 말하지 않을 테지만…… 그런 것으로 할까?]

“세일론 아빠만큼은 의젓해요!”

바키라가 헹, 코웃음을 쳤다.

[그 녀석보다 의젓하지 않은 자는 없어.]

그러자 손님들과 사내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세일론은 아주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화기애애하던 그때, 신하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왔다.

[제사장과 사자들께 아룁니다. 북동쪽에 용 떼가 창궐했나이다.]

[젠장, 그것들은 날을 가리는 법이 없군. 어째 나날이 흉포해져.]

이 시대에서도 용은 반신(半神)이라 불리는 강대한 몬스터였다.

제사장과 사자들이나 단신으로 상대할 수 있었다.

[아가야, 금세 처리하고 올 테니 잠시 기다리려무나.]

“네, 미카엘 아빠! 올 때 과자 사 오세요!”

[그래.]

그들이 모두 떠나고 아이는 홀로 남았다.

“다음은 타로샤 지역의 사절단인가? 황도와 가장 멀리 떨어진 곳이지?”

[예, 따님. 들일까요?]

“응.”

문이 열리고 새로운 사절단이 들어왔다.

새카만 흑발과 구릿빛 피부를 지닌 여인이 대표였다.

[세일론 님, 이노락스입니다~ 귀한 분을 뵙기 위해 한달음에─ 어머?]

자신을 이노락스라 소개한 여인이 미간을 좁혔다.

[세일론 님께선 어디 가시고 노예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느냐?]

[말씀 삼가십시오. 제사장과 사자들께서 피와 살을 나누어준 귀한 혼이십니다.]

[제작된 것이 귀해 봐야 얼마나 귀하기에. 침실 노예로라도 쓰는가 보지?]

순간 장내가 얼어붙었다.

이노락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세일론님도 참. 이 이노락스가 몇백 년 잠들어 있었다고 해도 그렇지. 놀이 수준이 너무 떨어지셨구나.]

[이노락스 님……!]

[얘, 내려와라. 세일론 님께서 돌아오실 자리는 내가 데워놔야겠다.]

다들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였다.

아이가 무감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건 곤란하겠어. 세일론 아버님을 만나고 싶거든 잊은 예의를 갖춰 와라.”

[뭐라!]

우르르 쾅─!!

우레가 하늘을 갈랐다.

이노락스의 분노에 공명한 것이었다.

고대인들마저 당황했으나, 아이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몸을 일으켰다.

“나는 위대한 제사장의 뒤를 이을 자. 감히 내 앞에서 가호를 헛되게 쓰지 마라.”

[감히 내가 누군지 알고! 나는 사자들과 같은 뿌리에서 태어난 자! 제대로 되었다면 열셋의 사자에 포함되었을 자이노라!]

“제대로 되지 않아서 열셋의 사자 중 한 사람이 되지 못했다는 게로군?”

[이 계집이─!!]

이노락스의 그림자가 크게 일렁였다.

그리고 순식간에 송곳과 같은 형태가 되어 내달렸다.

아이가 있는 곳으로!

‘찔리겠어!’

깜짝 놀랐을 때였다.

쩡─!!!

둔탁한 소음과 함께 그림자 송곳이 분해되었다.

회색 로브를 뒤집어쓴 자들이 일시에 달려 나와 공격을 막은 것이다.

‘<장막>의 이름을 가진 자들이야.’

아이의 몸종들이었다.

“따님을 위협한다면 맞서겠습니다.”

중앙에 있던 쿠말이 날카롭게 이노락스를 노려봤다.

[말도 안 돼. 저 가호는 미카엘 님의 <분해>가 아닌가! 감히 그분의 가호로 날 막아서?!]

“따님을 지키라 내주신 가호입니다. 물러서지 않는다면 공격할 것입니다.”

[내 잠든 동안 세상이 변했구나. 감히 인형 따위가 인간에게 반항하다니!]

이노락스가 허공을 저었다.

허공에 틈이 생기더니, 기이한 형태의 무언가가 스멀스멀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궁인들이 소스라치게 놀라서 내게 달려왔다.

[따님, 지금은 물러서십시오. 이노락스님은 이세계를 오가는 가호를 가지신 분. 태초의 존재까지 불러온다면 골치 아파집니다.]

그러던 찰나였다.

“하, 하지마세요. 하지마세요. 따님을 고, 공격하지 마세요……!”

기르타브가 후다닥 뛰어와 이노락스의 다리에 매달렸다.

이노락스의 표정이 살벌해졌다.

[천한 인형 주제에 감히 누구의 존체에 손을 대는 것이야─!!]

이공간에서 기어 나온 것이 기르타브에게 몰려들었다.

그리고…….

“기르타브!”

“기르!”

“기르타브─!!”

기르타브가 갈기갈기 찢어졌다.

<장막>의 이름을 가진 자들이 무참하게 찢어발겨진 기르타브에게 달려갔다.

“기르타브, 정신 차려!”

“곧 제롬 사자님께서 오실 거다. 그분이 오시면 치유가 가능할 것이야. 그러니까─”

“따, 따님…….”

잘린 기르타브가 움찔거리며 아이를 향해 손을 뻗었다.

“따…… 님…….”

“……브.”

“…….”

“기르타브─!!”

아이의 동공이 새빨개졌다.

쾅─!

천지가 거세게 진동하며 먹구름이 나라의 상공을 뒤덮었다.

쩌저저저적…….

궁의 벽면에 금이 가기 시작하더니 먼지와 돌의 파편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이, 이게 무슨…… 이게 대체……!]

이노락스가 당황하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무수한 글자들이었다.

[감히 인형 주제에 세일론님의 옆을 꿰차?]

[……의 말이 사실이었어.]

[제작된 것들이 인간의 우위에 선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아아, 세일론. 내 사랑.]

[오늘 먹은 도리아는 별로였어.]

[지역 따위 다스리고 싶지 않아. 귀찮은 신하들이 또 헛소리를 지껄이면 살인마의 짓으로 꾸며서 살해를…….]

.

.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거야! 왜 내 속내가 글자로 드러나는 거냔 말이야! 무슨 가호기에……!]

‘속마음이 허공에 쓰인 거구나!’

이노락스는 매우 당황했다.

하지만 곧 이를 악물었다.

[기묘한 가호로구나. 하지만 고작 이따위 가호로 뭘 할 수 있다는 거야!]

문자들이 다시 한 번 파라라락, 이동했다.

<이노락스는 매우 당황하였다. 저 글자들이 자신의 속내인 것이 알려질까 두려웠던 것이다.

대체 무슨 가호일까.

가장 특별한 존재인 세일론에게서도, 열셋의 사자들에게서도 이러한 가호는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우습다.’

공격형의 가호가 아닌 한 자신의 머리카락 한 올 건드릴 수 없을 터─>

아이가 허공을 저었다.

문자들이 빛나며 다시 한 번 재배치 되었다.

<이노락스는 숨 쉴 수 없다.>

[컥─!]

이노락스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켁, 케겍……!

그녀가 목을 잡고 크게 버둥거렸다.

‘정말 숨을 쉴 수 없는 거야!’

아이는 또 한 번 허공을 저었다.

<이노락스의 오른팔이 꺾인다.>

[꺄아아악─!!]

이노락스의 오른팔이 기괴한 형태로 꺾였다.

“되살려.”

[아파, 아파, 아팟……!]

“기르타브를 되살려.”

[모, 못해. 못한단 말이야. 그런 건……!]

“그래? 그럼 너도 죽어.”

문자들이 다시 한 번 빛났다.

<이노락스는 절망적인 고통을 맛본다. 온몸에서 피가 분수처럼 솟구친다. 이윽고 숨이 멎는─>

[그만─!]

세일론의 목소리였다.

벌컥! 문이 열리고 세일론과 다른 아버지들이 달려왔다.

세일론이 부드러운 캐러멜색의 머리칼을 가진 남자에게 눈짓했다.

그가 서둘러 아이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한 손으로 눈을 가리자 아이가 스르륵 주저앉았다.

‘정신을 잃었나 봐.’

세일론은 새파란 얼굴이었다.

[어째서 벌써 개화한 것이야.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노락스!]

주저앉은 이노락스가 숨을 헐떡였다.

[저, 저는 몰라요. 저 애가 갑자기 저를 공격했다고요!]

[딸은 난데없이 인간을 공격하는 자가 아니다!]

[저, 정말로 아니라고요. 저는 그냥 저 인형을 찢었을 뿐인데 갑자기 흥분해서……!]

[애초에 네가 어떻게 ‘강제 수면’에서 깨어날 수 있었지? 내가 분명 너를 잠들게 했을 텐데!]

[그, 그건 ‘그 사람’이…….]

그때였다.

쩌적.

마치 액정에 금이 가듯 주변이 갈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귓가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리 세일론의 힘이라도 더는 보여줄 수 없구나, 아이야.]

미카엘의 목소리였다.

“미카엘? 미카엘이죠?”

그는 대답이 없었다.

나는 허공을 향해 악을 내질렀다.

“나와봐요! 대답해줘! 이게 뭐야? 왜 내게 보여준 거야?!”

미카엘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으나 나는 소리쳤다.

“왜 당신들의 딸을 불렀듯 나를 다정하게 불러요?”

나와 봐.

궁금한 게 있단 말이야!

“내가 저 애인 거지? 그렇지? 그래서 당신이 날 다정하게 부르고, 세일론이 날 지켰던 거지……!!”

이 3세는 악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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