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3세는 악역입니다-263화 (264/390)

263화.

* * *

내 말에 발데릭이 입을 벙긋거렸다.

“뭐, 뭐?”

예전엔 온갖 순진한 척으로 속을 뒤집어 놨지만, 겉으론 예의를 지켰다.

설마 일가친척까지 모인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할 줄 몰랐던 모양이다.

금붕어처럼 뻐끔거리던 발데릭이 꽥 소리쳤다.

“어디 감히 손윗사람에게 그따위 말을 지껄여—!”

‘이렇게 나올 줄 알았다.’

유혜민 시절에 다 겪어본 일이라 이거다.

예의는커녕, 양심도 없는 놈이 꼭 이렇게 나오더라고.

“감히 할아버지께 거짓을 고하는 건 예의인가요?”

“내가 무슨 거짓을 고했단 말이냐!”

“용병들의 가족을 인질로 삼아 거짓 민란을 꾸미셨잖아요?”

발데릭과 심문당하던 용병들이 흠칫했다.

특히 용병들은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이었다.

“어, 어떻게……!”

고신당할 때보다 얼굴이 더 새파랬다.

금붕어처럼 뻐끔거리던 발데릭이 겨우 정신을 차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나는 로브 안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그리고 용병대장에게 흐르는 피를 닦아주었다.

용병대장이 흠칫, 얼굴을 물렸다.

“겁먹지 말렴. 내겐 너와 연배가 비슷한 아버지가 있어.”

“…….”

“가엽기도 하지. 노모를 살리기 위해 갖은 방법을 쓰다가 결국 여기까지 온 것이로구나.”

“…….”

나는 슥, 용병들을 쳐다봤다.

“너희 모두 애썼다는 것을 알고 있단다.”

“영애…….”

“병든 누이, 풀뿌리 하나 먹이지 못해 죽어가는 자식……. 그들을 위해 애썼구나.”

용병들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용병 대장은 정신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내가 생긋 웃자, 용병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붉어졌다.

“한데 말이다.”

순식간에 표정을 굳힌 난, 이전과 다른 눈으로 그들을 쳐다봤다.

“너희 가족을 살리자고 남의 머리채를 잡아서야 되겠니.”

장내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요슈아와 발자크마저 눈을 크게 떴다.

이럴 때 보면 한지혁의 말이 영 틀린 건 아닌 모양이다.

“너, 갈수록 네 할아버지를 닮아간다?”

“내가?”

“말 한마디에 심장이 발밑으로 꺼질 것 같다고. 뭐랄까…… 위압감이 생겼다고 해야 하나.”

손수건을 콘라드에게 넘긴 난 다시 용병대장을 쳐다봤다.

그리고 그의 머리채를 콱, 쥐어 고개를 올렸다.

“네 놈들을 보낸 자가 누구인지 순순히 토설하는 게 좋을 것이다.”

“으윽…….”

“그렇지 않으면 화가 난 내가 너희들이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것에게 무슨 짓을 할지 모르잖아.”

“무, 무슨 짓을 할 생각이오—!”

용병대장이 버럭 소리쳤다.

다른 용병들도 흠칫, 나를 쳐다봤다.

나는 또 한 번 묘한 미소를 머금었다.

“글쎄. 무슨 짓을 할까.”

“……뭐?”

“그리고 나는 어디까지 알고 있을까. 구인스 트랑.”

“……!”

“아, 이제 구인스 페람이라고 불러야 하나.”

트랑 가의 혈족이었다는 것은 용병들 사이에서도 알려지지 않았던 것 같았다.

다른 용병들도 휘둥그레진 눈으로 용병대장을 쳐다봤으니까.

나는 용병대장의 뺨을 가볍게 두드렸다.

용병대장의 숨이 잘게 떨렸다.

이까지 딱딱 부딪치던 그가 발데릭을 쳐다봤다.

발데릭이 흠칫, 입을 벌리려다가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아, 아버님, 에릴로트가 용병들을 협박하여—”

“저 자입니다! 저 자, 발데릭 아스트라가 우리의 진지를 찾아와 거래를 제안했습니다!”

“닥쳐—!!”

“어머니의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을 주겠노라 약조했습니다. 그 대가로 데이몬드 관할령의 민란을 지원하러 왔노라 거짓 토설을 하라 명했습니다!”

“거짓입니다, 아버님!!”

사람들의 시선이 발데릭에게 모였다.

잔뜩 흥분한 발데릭이 계단을 내려왔다.

곧장 내게 다가온 그가 목청을 높였다.

“네년이 용병대장을 협박한 것이지! 그렇지!”

“안 본 새 노망이 들었나요?”

“뭐, 뭐?!”

“제가 이 짧은 순간에 용병대장과 말을 맞춰 숙부님을 지목할 리 없잖아요?”

나는 좌중을 둘러보고 “안 그런가요?” 말했다.

좌중이 큼, 헛기침했다.

저들이 듣기에도 나보단 발데릭 쪽이 수괴에 가까울 것이다.

‘배를 타고 오면서 읽었거든.’

나의 <열람>으로.

용병이 주둔해있다는 것을 가장 먼저 눈치챈 자는 발데릭.

저들을 잡아들인 자도 발데릭.

심문을 담당하는 정보부에 가장 공을 많이 들였던 자도 발데릭이다.

발데릭이 뻣뻣한 목을 억지로 돌려서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아, 아버님…….”

“한심한 놈.”

“제,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이건 계략에 빠진—”

“용병들의 심문은 드뷔시 자작이 담당한다.”

드뷔시 자작이 고개를 숙였다.

할아버지는 그대로 등을 돌려, 본성으로 향했다.

난 발데릭을 힐끗 쳐다봤다.

“그러니까 내가 말했잖아요. 죽고 싶냐고.”

“이 계집애가……!”

“뿌려둔 돈이 있으니 목숨은 연명하시겠네요. 할아버지께서 뭘 빼앗으실진 모르겠지만.”

“너…… 너어…… 이 미친년이!”

난 발데릭의 어깨를 찰싹, 때렸다.

“숙부님 보시기에도 그런가요? 그럼 조심하셔야지요.”

“뭐, 뭐?”

“여기서 더 돌아버리면 무슨 짓을 하겠어요?”

나는 생글생글 웃으며 몸을 돌렸다.

“오라버니들, 가자!”

—소리치며.

발자크가 히죽히죽 웃으며 “어어!” 소리쳤다.

요슈아도 쿡, 웃고 발데릭을 지나쳐 걸어왔다.

드디어 6년 만에 데이몬드 관할령으로 귀환이었다.

* * *

“아가씨!”

“아—가—씨—!”

“아가씨~!!”

관할성으로 돌아오자마자, 고용인들이 냅다 달려왔다.

특히 내가 없는 동안 관할성으로 이동해 온 하이디와 베티가 유난이었다.

“세상에, 어쩌면 이렇게 자라셔서……!”

“어머, 키가 저희보다 더 크셨네요!”

“재작년에 저희가 칸시스 대륙에 갔을 때만 해도 아직 병아리콩만 하셨는데……!”

아주 어릴 때도 병아리콩만 했던 적은 없는데.

고용인들에게 둘러싸여 납작해질 뻔했던 나는 으윽, 신음했다.

그리고 내게 안겨든 하이디와 베티의 등을 토닥였다.

“나도 엄청나게 보고 싶었고, 이렇게 다시 봐서 정말 반갑고, 다시는 오래 너희 곁을 떠나지 않을 거고, 배가 고파.”

“배요?!”

“배가 고프시다고요?! 요리장—!!”

하이디와 베티가 혼비백산해서 주방으로 뛰어갔다.

그 뒤에야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목을 주무르고 있는데, 내 또래의 하녀와 눈이 마주쳤다.

‘신입인가 보네.’

하이디와 베티는 내가 얽히지만 않으면 매우 정상이다.

오히려 똑 부러지는 면이 있어서, 어려운 상사일 터였다.

그래서인지 하녀는 당황한 표정이었다.

“안녕.”

“아, 안녕하세요!”

하녀가 허둥지둥 허리를 굽혔다.

“내가 없는 동안 관할성이 많이 바뀌었구나.”

“아, 네! 작년에 산사태로 피해를 보아서 수리할 겸, 증축했습니다.”

산사태로 피해?

나는 등 뒤에 있던 쌍둥이를 쳐다봤다.

“결계는 어떻게 되고 산사태로 피해야? 오라버니들은 뭐 했는데?”

“우리야 임무 중이었지.”

“결계는? 마법사들이 가동 중이었을 것 아냐.”

발자크와 요슈아가 서로를 쳐다봤다.

이내 요슈아는 묘하게 웃었다.

“배가 부르면 자식이나 친인척에게 한 자리씩 주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수순이지.”

“행정관이나 가신들이 주변에 한 자리씩 챙겨주느라 제대로 된 마법사가 없었다?”

“뭐…….”

“그래서 결계는 개판이 되었고, 산사태조차 막아내지 못했다?”

발자크가 바로 그거라는 듯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이것들이…….’

주인들은 바쁘고, 총관리하던 미켈란은 부재.

그 탓에 마음 놓고 해 처먹고 지낸 모양이었다.

나는 신입 하녀에게 물었다.

“그래서 관리들은? 뭘 하기에 주인이 귀환했는데 나와 있지도 않지?”

“그, 귀환 소식은 전했는데 회의 중인 터라…….”

아빠가 계실 땐, 가족 중 한 사람만 귀환해도 꽁지에 불이 붙은 듯 튀어나왔다.

화장실에 있을 때조차도.

“회의장은? 그것도 증축하면서 바뀌었니?”

“아, 네! 안내하겠습니다.”

나는 하녀를 따라 걸었다.

오라버니들과 콘라드, 한지혁, 그리고 루카와 이세즈가 나를 쫓았다.

회의장은 서쪽 복도 끝에 있었다.

가장 큰 방으로 햇살이 잘 드는 곳.

멀리 공작성이 보여서 우리 남매의 놀이방이던 장소다.

‘오라버니들이 내줬을 것 같진 않고…… 그럼 멋대로 회의장으로 쓰고 있다는 건데.’

나는 콘라드에게 물었다.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는데 어떻게 생각해?”

“요슈아 도련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배가 부르면 부패가 따라오는 법이지요.”

“그렇다고 주인을 만만히 여기는 건 지나치지 않아?”

“리시먼드 도련님께선 황도에 계시고, 두 분 도련님께서도 관할령에 머무는 기간이 일 년에 보름 남짓입니다.”

“아빠와 오라버니들의 성정을 다 알 거 아냐. 그런데 틈이 생겼다고 해서 이렇게 놀아난다고?”

“워낙 관할지가 넓어져 새로운 사람이 많이 들어오기도 했습니다.”

우리 가족을 겪어본 적 없는 놈들이 잔뜩이라는 소리다.

그러니 간이 배 밖에 나왔을 테고.

‘하긴, 내가 없는 동안에도 우리 관할령은 계속 늘어났지.’

아빠가 황명으로 이곳저곳을 정벌하고 다닌 덕이었다.

오라버니들을 본 경비병이 흠칫, 달려왔다.

“도, 도련님들을 뵙습니다.”

여기 아가씨도 있는데, 날 못 알아보는 걸 보니 이쪽도 신입이다.

“회의장에 고하겠습니다.”

“집주인이 방마다 내가 왔노라 고하고 다니진 않지.”

내 말에 경비병이 눈을 크게 떴다.

난 생긋 웃었다.

“비켜.”

“예? 저, 그게, 잠시…… 앗, 레이디!”

나는 경비병을 지나쳐 회의장의 문을 열었다.

쾅! 문을 열자, 으하하 웃던 소리가 뚝 멎었다.

“누가 감히…… 이런, 도련님들이 아니십니까.”

상석에 앉아있던 메기수염의 사내가 하하 웃었다.

그러곤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한데 이쪽은…….”

나는 메기수염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콘라드에게 물었다.

“못 보던 얼굴인데 누구?”

“과거 플루드노 왕국을 정벌하여 복속한 현 센시아 지역의 관리자입니다. 플루드노 선왕의 7남이지요.”

센시아 지역은 데이몬드 관할령에서 가장 넓은 곳이다.

심지어 땅이 기름진 데다가, 마철도가 지나는 지역이라 상업이 부흥했다.

‘그래서 상석을 차지하고 있구만.’

메기수염이 눈썹을 까딱 들어 올리며 물었다.

“누구냐 묻지 않느냐.”

“누구겠어?”

묻자, 회의 테이블 끝에 있던 사람들이 눈을 홉떴다.

“설마…… 아가씨!”

“아가씨이십니까? 세상에, 장성하셨군요!”

“아이고, 아가씨. 언제 귀환하셨습니까!”

저들은 내가 막 데이몬드 관할령에 왔을 때부터 보던 자들이다.

‘구석에 앉아있던 걸 보면 가신들의 알력 싸움에서 밀렸구나.’

처음의 데이몬드 관할령은 아스트라에서 가장 한미한 지역.

당시에 머리를 쓸 줄 아는 관리들은 죄다 다른 2세들의 관할령으로 떠났다.

해서 남은 건 순박한 자들뿐이었다.

‘미켈란이 데려온 일 잘하는 자들은 그와 함께 타국에 파견되어 있고.’

“오랜만이야. 칼리아 남작, 브루스 남작, 누벨 경.”

빙그레 미소 짓자 그들이 헐레벌떡 달려와 몇 번이나 허리를 굽혔다.

그제야 메기수염 일파는 내가 누군지 깨달은 모양이었다.

메기수염이 하하 웃었다.

“그 유명한 아스트라의 보물이시로군요. 플루드노의 아노스라고 합니다.”

“센시아.”

“예?”

“이제 센시아 지역이라고 해야지. 플루드노는 패망해서 사라진 나라잖아?”

메기수염이 이를 악물었다. 모욕이라고 느낀 모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가신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장부를 가져와라.”

메기수염이 흠칫했다.

“장부는 무슨 일로 찾으십니까.”

“성을 증축했다면서. 어디에 얼마나 썼는지 확인해야지.”

메기수염 일파들도 몹시 당황했다.

다들 수장인 메기수염을 쳐다보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부패한 놈들이 횡령은 안 했겠니.’

부패와 횡령은 한 단어나 마찬가지지.

메기수염이 울컥, 인상을 쓰며 소리쳤다.

“아무리 아가씨라고 해도 사사롭게 장부 열람을 요구하실 순 없습니다—!”

“주인이 내 집에서 돈이 어떻게 쓰이는지 확인하는 게 이상한 일인가?”

“그런 법도는 없……!”

“내가!”

소리치자, 고함을 내지르던 메기수염이 움찔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를 쏘아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데이몬드 관할령의 법이다.”

“……!”

“……!!”

가신들이 얼어붙었다.

상황을 지켜보던 한지혁이 픽 웃으며 콘라드에게 속삭였다.

“저 녀석, 폐관 수련했다고 생각할 겁니다.”

“폐관…… 수련이 뭡니까?”

“엄청나게 세졌다고요.”

“뭐, 칸시스 대륙에선 아스트라의 혈족인 것을 드러내지 못하고 활동하셨지 않습니까.”

“엄청 고생했죠. 세질 만도 합니다.”

나는 메기수염에게 뚜벅뚜벅 다가갔다.

“뭐해. 가져와, 장부.”

“장부는…… 그, 그러니까…….”

“가져오지 않는 건 감히 내 아버지의 재물을 빼돌려 배를 불렸다는 거겠지?”

메기수염이 벌떡 일어났다.

“말도 안 됩니다. 저희는 오로지 데이몬드 관할령에 대한 충심으로……!”

“네가 이 일을 해결할 방법은 두 가지야.”

나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다 토해내고 알몸으로 나가든가, 뒤지게 처맞고 성문에 목이 걸리든가. 그리고 말이야—”

“포, 폭정입니다! 본성에 고발을……!”

“—자꾸 고함을 지르는데, 아까부터 마음에 안 들었어.”

뻐어어어억—!!

이세즈와 루카가 동시에 메기수염을 공격했다.

이세즈의 주먹이 메기수염의 배에 꽂혔고, 루카의 검집이 자비 없이 메기수염의 장딴지를 가격했다.

그래, 난 칸시스 대륙에서 진짜 고생했다.

그곳에서 루카와 이세즈에게 한 가지를 가르쳤다.

<내 마음에 안 드는 놈은 때려줘라.>

‘음, 잘 배웠네.’

메기수염이 개처럼 주저앉아 배를 붙잡았다.

나는 메기수염이 비켜난 자리에 앉아 가신들을 쳐다봤다.

“폭정 맞아. 고발하려거든 해. 물론 내게서 살아날 자신이 있다면.”

“…….”

“…….”

“…….”

메기수염 일파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난 깍지 낀 손에 턱을 괴며 생긋 미소 지었다.

“일단 장부 건부터 시작할까. 아, 미리 말하는데 채용 비리 건에서 사소한 불법까지 전부 털 테니까 각오들 하고.”

발자크와 요슈아가 픽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뒤집을 필요가 없었는데? 네가 계획하던 건 쓰지 않아도 되겠어.”

“아쉽네.”

—하나도 안 아쉬운 얼굴로.

이로써 관할령은 빠르게 안정되기 시작했다.

* * *

항구.

배에서 내린 세 명의 귀족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기가 제국에서 제일 부흥했다는 아스트라 장원인가.”

예상과는 다른 꼴이었다.

가장 큰 항구에도 ‘예술’은 존재하지 않았다.

여기저기 널브러진 건어물 하며, 꾀죄죄한 주민, 쓰레기 냄새를 풍기는 뒷골목.

“‘그 애’가 그토록 돌아가고 싶어 하던 이유를 모르겠군.”

“릴은 특이한 구석이 있으니까.”

“하지만 사람들만은 칸시스 대륙인보다 낫다고 말하지 않았던가.”

중앙에 있던 주홍색 머리칼의 남자가 헛웃음을 흘렸다.

“저 꼴이 말이야?”

각 가문의 문양이 새겨진 정복을 입은 자들이 다투고 있었다.

“귀빈은 제르모 공작가에서 모셔갈 걸세!”

“헛소리. 귀빈 접대는 대대로 파앙테가 맡아왔소!”

“정식으로 초청된 분들이 아니시잖습니까. 비페리 공작께서 애타게 기다리고 계시니—”

“아스트라 항구를 통해 오셨습니다! 응당 우리 발데릭 관할령에서 모셔야지 않겠습니까!”

“무슨! 발데릭 님은 조사 중이시지 않습니까! 이 건은 우리 구스타프 관할령이……!!”

‘꼴들 하곤.’

주홍색 머리칼의 사내가 신랄한 어조로 말했다.

“릴에게 이런 곳은 어울리지 않는다. 역시 데려가야겠어.”

이 3세는 악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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