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3세는 악역입니다-264화 (265/390)

264화.

* * *

데이몬드 관할성.

우리 가족이 없는 동안 관할령을 좀먹던 벌레들을 모두 잡아냈다.

고작 이틀 만에.

난 대회의장에 벌레들을 모아 놓고 물었다.

“너희는 간이 배 밖에 나온 거야, 죽여 달라고 눈치를 주는 거야?”

“…….”

“…….”

“무슨 횡령을 이렇게 성의 없이 해!”

나는 장부 내용을 콕 집으며 말했다.

“이중장부를 만들 거면 적어도 출납 내용은 맞춰야 할 것 아냐. 어?”

내용이 가관이었다.

“증축 공사에 의상 비용이 왜 필요한데? 인부들 드레스 맞춰 주려고? 그러면 더 성의 있게 일해 준대?”

“해서 저희를 전부 잘라 내시겠습니까?”

메기수염의 말이었다.

처맞은 보람이 없는 놈이다.

그는 입꼬리를 비죽 올리곤 나와 오라버니들을 쳐다봤다.

“29명의 지역 관리자들을 전부 축출하실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그 29명 외에도 이 일에 엮인 자들은 수두룩합니다. 모두 벌하면 관할령 업무는 마비될 테지요.”

콘라드가 인상을 찌푸렸다.

“감히 아가씨를 협박하는 거요?”

“설마요. 단지 현실을 알려 드리는 겁니다.”

“당신……!”

“엮인 자들만 해도 기백 명이 넘습니다.”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혼자 안 처먹고, 다 같이 해 처먹은 게 자랑이야?”

“저희의 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주인께서 정 용서하지 못하신다면 떠나야지요. 어쩌겠습니까?”

“그래서?”

“일을 키우면 아가씨께서도 손해를 보실 거란 말입니다.”

가뜩이나 우리 관할령을 손에 넣으려는 친척들이 잔뜩이었다.

그런데 벌레들을 전부 축출해서, 관할령 업무가 마비되면?

이때다 싶어서 다시 우리 관할령을 공격해 오겠지.

메기수염이 오만하게 웃었다.

“상황을 이해하신 모양이군요. 하면 저희는 이만 돌아가 보겠—”

“너 말이야. 내가 바보인 줄 알아?”

“……예?”

“한두 놈의 짓이 아닌 건 처음부터 알았어. 관할령이 이 꼴이 됐다는데 당연하지.”

“무슨…….”

“벌레들 따위는 하나도 안 아까우니까 꺼져.”

“뭐, 뭐, 뭐라고요?!”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미련 없이 대회의장을 나왔다.

* * *

회의장 안에 남은 가신들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나, 나가 버렸잖습니까!”

횡령한 가신 하나가 메기수염, 아노스에게 소리쳤다.

그러자 다른 가신들마저 당황한 얼굴로 동조했다.

“이대로 둬도 되는 겁니까? 이러다 정말 쫓겨나기라도 하면……!”

모두 망국이 된 나라의 왕족, 귀족 출신.

이대로 데이몬드 관할령에서 버려지면 살 방법이 없다.

아노스가 살벌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었다.

“시끄럽네. 진정하고 각 지역으로 돌아가 있게.”

“하, 하지만……!”

“현재 있는 가신들과 행정관들만으론 결코 우리의 자리를 메우지 못해.”

“그렇기야 합니다만…….”

“대체할 사람이 있다면 왜 관할령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불러오지 않았겠는가.”

“하면…….”

“어린 계집애가 자존심을 세우려고 발악하는 것이야.”

“그럴까요……?”

“물론이지.”

관할령의 관리 소홀 문제가 불거지는 건 저 계집애도 바라지 않을 터.

“우리는 손을 떼고 가만히 있기만 하면 알아서 고개를 숙이고 올 걸세.”

그가 히죽 웃었다.

* * *

“……알아서 고개를 숙이고 올 걸세.”

그가 히죽 웃었다.

나는 픽 실소를 흘렸다.

“아주 지랄을 하는구나.”

“<열람>으로 대회의장을 봤냐?”

한지혁이 내게 속삭였다.

“응.”

“그런데 정말 이래도 되겠어?”

“안 될 게 뭐가 있어.”

“사람이 없는 건 사실이잖아. 남은 가신들은 자기 지역 다스리는 것만도 벅찰 거다.”

“그럼 새로 데려오면 될 일이지.”

“사람이 뭐 곡식이라도 돼? 어디서 사들일 수 있다면 진작에 했겠지.”

“사들일 수는 없지만, 수확은 가능해.”

“……뭐?”

나는 씩 웃고 마침 도착한 마차에 올라탔다.

한지혁과 콘라드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따라 마차 안으로 들어왔다.

난 마부에게 말했다.

“열두 번째 탑으로 간다!”

“열두 번째…… 어?!”

“설마!”

나는 씩 웃었다.

드디어 거둬들일 차례다.

내가 태어나자마자 눈독 들여 온 인재들을.

* * *

마차는 빠르게 달렸다.

……정말로 빠르게.

열두 번째 탑에서 내린 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마차를 쳐다봤다.

“엄청나게 빨라졌네. 발전했어.”

한지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칸시스를 겪고 왔더니 마차가 불편하긴 해.”

“거긴 웬만큼 돈 있는 사람들은 마법으로 단숨에 이동하니까. 아무튼 들어가자.”

미리 소식을 전하고 오지 않았기에, 마중 나온 사람은 없었다.

한지혁이 경비병에게 내 신분패를 보여 줬다.

“본가의 에릴로트 아가씨이십니다.”

신분 패를 확인한 경비병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보, 본가의 영양을 뵙습니다. 속히 만쉘 남작(열두 번째 탑 총관리관)께 소식 전하겠습니다.”

“내부를 둘러보고 있을 테니 천천히 하렴.”

“예, 예……!”

경비병이 부리나케 떠나고, 우리는 탑 안으로 들어갔다.

“콘라드, 그런데 두 사람은 왜 아직 열두 번째 탑의 교사로 있는 거야?”

“십여 년 전에 발데릭 관할령에 행정관직으로 들어갔던 모양인데, 상관의 죄를 뒤집어쓰고 좌천되었습니다.”

“이런저런 투자처를 많이 알려 줬는데. 거기서 벌어들인 돈만으론 뒷배를 만들기 힘들었구나.”

“돈으로 얽힌 관계는 언제나 위태로운 법이니까요.”

난 기억을 더듬으며 남쪽 복도에 접어들었다.

‘교사 사무실이 여기였던 것 같은데…… 옳지, 찾았다.’

복도 쪽으로 난 창문 안을 보자 시모릭과 앤워드가 보였다.

‘두 사람은 하나도 안 늙었네.’

나는 똑똑 노크 후, 문을 열었다.

두 사람이 멈칫, 나를 쳐다봤다.

“누구십…… 어어?”

“어어어?!”

나를 알아본 그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안녕하세요, 선생님들.”

“아가씨!”

“아이고, 아가씨─!!”

두 사람이 벌떡 일어났다.

“오, 오셨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열두 번째 탑엔 무슨 일로…….”

“이, 일단 앉으십시오.”

나는 모자를 벗으며 자리에 앉았다.

두 사람이 부랴부랴 차를 준비했다.

“우, 우유가 없는데!”

“아직도 세 살이신지 알아? 우유는 없어도 돼. 찻잎! 찻잎은 이게 다야?”

혼비백산한 그들에게 난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물이면 돼요.”

“예? 아, 예! 그, 말씀은 낮춰 주십시오.”

“내 선생님들이었는 걸요. 괜찮─”

두 사람이 달달 떨리는 손으로 물잔을 내밀었다.

얼마나 떨리는지 물이 출렁출렁 흔들리다가 반쯤 바닥으로 흘러내렸다.

“─지만 놓는 게 두 사람이 편할 듯하네. 그럴게.”

“예, 예…….”

나는 두 사람이 건네준 물을 마시며 주변을 둘러봤다.

그리고 사소한 안부 인사를 나누었다.

“이야, 칸시스 대륙에서 유학이라니. 세계 최대의 마도 강국들이 모인 만큼 물가가 상상을 초월하지 않습니까.”

“예, 역시 아스트라 본가의 자제께선…….”

나는 웃으며 가볍게 대꾸해 주었다.

그리고 슬쩍 화제를 돌렸다.

‘수확 전에 시험 정도는 해 봐야지.’

“두 사람은 아스트라의 각 관할령들을 어떻게 생각해? 역시 가장 기름진 땅과 넓은 토지를 지닌 데이몬드 관할령의 우세일까.”

“저, 그건…….”

“그게…….”

두 사람이 우물쭈물 서로를 쳐다봤다.

그리고 눈을 꽉 감고 대답했다.

“데이몬드 님께서 본성을 차지하지 못한다면, 가장 미래가 밝은 것은 그리미에 관할령입니다!”

“그, 그렇습니다!”

“그리미에 백부는 축출되었어.”

“하, 하지만 그리미에 관할령은 통신 거점입니다. 최근엔 통신 없이는 군사 작전조차 불가하지요.”

“게다가 이제 모든 귀족에게 통신석이 보급되지 않았습니까……?”

두 사람이 미묘하게 말을 흐렸다.

나는 빙그레 웃었다.

“통신 염탐이 가능하다? 하지만 백부님이 그런 짓을 하셨을까. 아스트라에서 가장 자애로운 분이시라고 불리는데.”

“사람의 속은 결코 단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상황에 따라서 무엇보다 변하기 쉬운 게 사람이지요.”

난 흐음, 신음하고서 물었다.

“중앙 통신 시설을 영지에 놓기 위한 연기일 수도 있다는 뜻이구나. 하지만 그래 봐야 영주가 없는 관할령이야.”

“그리미에 님께선 황도에서 생활하셨던 만큼 본인이 없어도 관할령을 움직이기 위한 환경을 구축해 놓으셨습니다.”

“매년 대시험을 열어 인재들을 모집하는 곳도 그리미에 관할령이 유일하지요.”

“가장 많은 인재가 있다는 거네. 하지만 재력과 군사력이 미진하다면 결국 도태될걸.”

두 사람이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가씨. 변화의 시작은 언제나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쿡쿡 웃었다.

콘라드와 한지혁도 미소 지었다.

‘역시 오랜 시간 잘 익도록 묵혀 둔 보람이 있네.’

그때였다.

벌컥! 문이 열리더니 붉은 손톱의 여자가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대체 언제까지 꾸물거릴 셈이야!”

두 사람이 움찔, 뒤를 쳐다봤다.

여자는 나를 보더니 헛웃음을 흘렸다.

“주제에 접대부까지 사무실에 들여?”

“이분은 접대부가 아니라……!”

“됐고. 수업 보고서는?”

여자가 시모릭의 책상을 마구 뒤졌다.

애써 작성한 서류들이 엉망이 될 만큼 거칠었다.

마침내 수업 보고서를 찾아냈는지 여자가 어느 문서 묶음을 잡았다.

그러곤…….

‘응?’

시모릭의 앞장을 뜯어내더니 처음부터 가지고 있던 양피지를 붙였다.

붙여 넣은 양피지엔 [스칼렛 롤로뱅]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시모릭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모양이었다.

여자가 인상을 찌푸리고 시모릭과 앤워드를 쳐다봤다.

“재깍재깍 가져왔으면 내가 올 일이 없잖아.”

그러더니 방을 나서려는 듯 휙, 등을 돌렸다.

막 문고리를 잡으려던 찰나.

나는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그건 시모릭이 준비한 보고서인 것 같은데.”

“이건 또 뭐야. 접대부 따위가 어디 더러운 손을─!”

거칠게 뿌리친 그녀가 내 얼굴을 향해 손을 치켜들었다.

스칼렛은 금발 접대부의 뺨을 향해 8시 30분 방향으로 손을 휘둘렀다.

나는 반대편으로 샥, 고개를 틀었다.

“이, 이게……!”

앙큼한 접대부가 얼굴을 피했다. 이번엔 왼손으로 3시 방향을 향해─

다시 반대편으로 샥.

3시 방향 올려치기.

샥.

9시 방향 옆으로 치기.

샤샤샥.

여자는 분해서 어쩔 줄 몰랐다.

“이익……!”

칸시스 대륙에선 이 힘으로 20명 거지 떼도 피했다 이거다.

그때만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 봐야 귀족의 고통이었고 복지 국가의 가난뱅이였다.

칸시스에 가기 전까진 타국에서 가진 돈을 몽땅 도둑맞아 보름을 다리 밑에서 자 본 적은 없었던 것이다!

‘칸시스만 생각하면 분해서 이가 갈린다.’

어쨌든 나는 여자의 목을 콱, 잡았다.

“꺄악─!”

“다 읽히니까 그쯤 해.”

“이, 이게 무슨 짓이야! 죽고 싶어?!”

여자가 버둥대며 나를 향해 거칠게 손을 뻗었다.

그 순간이었다.

문밖에서 헐레벌떡 발소리가 들려왔다.

콘라드가 말했다.

“탑의 총관리자인 만쉘 남작입니다.”

여자는 울먹이며 만쉘을 쳐다봤다.

“나, 남작님…… 이 계집이…….”

“아, 아가씨!”

“아가씨?”

여자가 흠칫 나를 쳐다봤다.

나는 그제야 손을 놔주었다.

“그런 거니까 이제 그만 까불겠어?”

아스트라로 돌아오자마자 벌써 세 번째거든.

‘이젠 이런 전개는 좀 지겹네.’

여자는 사색이 되어 납작 엎드렸다.

앤워드와 시모릭은 서로를 붙잡고 감동 어린 얼굴로 날 쳐다봤다.

* * *

열두 번째 탑의 교사들이 내 앞에 납작 엎드려서 벌벌 떨었다.

저 여자의 일로 내가 매우 분개할 줄 알았나 보다.

“됐어. 나도 신분을 밝히지 않았잖아.”

“가, 감사합─”

여자가 움찔움찔 대답했다.

“물론 대뜸 손을 올린 네 탓이 제일 크지만.”

“소, 송구합니다…….”

만쉘 남작이 식은땀을 뻘뻘 흘렸다.

“교사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제 탓이 제일 큽니다.”

“그러네요. 수업 보고서의 이름만 바꿔 내도 되도록 허투루 관리했으니까요.”

“……예?”

나는 뜯어져서 나뒹굴던 보고서의 앞장과 스칼렛이 새로 앞장을 붙여 넣은 서류를 들었다.

만쉘 남작이 험악한 얼굴로 스칼렛을 쳐다봤다.

“당신…….”

스칼렛은 새파래져서 고개를 푹 수그렸다.

나는 말했다.

“열두 번째 탑의 아이들은 아스트라의 미래. 그런 아이들을 가르치는 곳에 문제가 있다면 좌시할 수 없겠군요.”

“아, 아가씨……!”

교사들이 땅에 머리를 박을 듯 조아렸다.

나는 서류를 탁, 내려놓고 만쉘 남작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만쉘 남작님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철저히 관리하시겠다면 융통성을 발휘할 수도 있겠지요?”

“그게 무슨…….”

“오늘부로 시모릭, 앤워드 교사를 데이몬드 관할령으로 데려가고 싶어요.”

시모릭과 앤워드가 눈을 홉떴다.

다른 교사들도 깜짝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만쉘 남작이 아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 하지만 아시다시피 열두 번째 탑은…….”

열두 번째 탑은 본성 관할이다.

그래서 사람을 빼 오는 것도 까다로운 절차를 거친다.

저들이 사직하더라도 새 사람을 찾고 인수인계하기까지 시간이 걸린다.

“정 곤란하시다면 어쩔 수 없고요.”

“이해해 주셔서 정말로 감사드립─!”

“한, 본성으로 간다. 할아버지를 뵈어야겠어.”

“예, 아가씨.”

만쉘 남작이 펄쩍 뛰었다.

“아, 아닙니다! 가능합니다! 가능하고말고요!”

“그래요? 일이 커지지 않아서 다행이네요.”

나는 생긋 웃고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시모릭 경과 앤워드 경을 쳐다봤다.

“밤에 마차를 보낼 테니 이동할 준비해 놔.”

“아, 알겠습…… 니…… 다…….”

“예에…….”

두 사람은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나와 한지혁, 콘라드가 밖을 밖으로 나와 문을 닫은 순간.

“이얏호─!!”

“으리아읏챠─!!”

탑이 떠나갈 듯한 환호성이 들렸다.

창을 통해 들여다보니 두 사람이 허공에 주먹질을 하고 있었다.

이윽고 서로를 끌어안고 꺼이꺼이 눈물을 흘린다.

“이, 이 나이 이때까지 여, 열두 번째 탑에서 죽어라 비빈 노력이…… 크흑……!”

“그, 그래, 허사가 아니로구나……!”

나는 쿡쿡 웃었다.

그러다 허망한 표정의 스칼렛이 눈에 띄었다.

맙소사. 저 여성이 에릴로트 아스트라라니. 카셀리엄 학술원에서부터 그녀를 동경해 왔다. 지독하게 얽히고 싶었기에 그 많은 자리를 전부 물리고 고작 열두 번째 탑의 교사가 되었다.

‘제기랄!’

칸시스 대륙에 계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혹여나 접점이 생길까 모든 일을 물리고 구스타프 관할령의 서류 보기 기계가 되기도 했건만. 모든 노력이 허사였다.

“아가씨?”

콘라드가 무슨 일이 있냐는 듯 물었다.

“<열람>의 시동을 끊을 수가 없네. 한번 시작하면 이렇다니까.”

“원체 대단한 가호인 만큼 제한이 많지요.”

“그런데 칸시스에서 귀빈이 와?”

“예? 아직 그런 소식은 들어온 바가 없습니다만…….”

본성에 끈이 많은 콘라드가 아직 파악하지 못하는 귀빈이라고?

난 흠칫, <열람>을 다시 가동시켰다.

<망나니 차남, 세상을 뒤집다>

이제 이야기의 제목은 <기사단의 꼬마 대장님>이 아니었다.

내가 원화군을 나온 직후 변경되어 여러 가지를 거쳐 아빠가 주인공인 세계가 되었다.

그래서 아빠와 얽히거나, 상대가 내 20미터 반경 안에 없으면 읽을 수 없었는데…….

라온은 발데릭 관할성의 입구를 통과했다.

“릴은 대체 이곳의 어디가 좋다고 그리 귀향을 노래 불렀지?”

‘그 자가 아빠와도 얽혔어.’

아스트라에 왔다는 귀빈이 그 자인 것이다!

“맙소사…….”

내가 희게 질려서 중얼거리자, 한지혁과 콘라드가 날 쳐다봤다.

“뭐야, 무슨 일이야?”

“그놈이 왔어…….”

“사람을 찾는다. 아스트라 출신으로 칸시스 대륙, 나의 왕궁의 하녀로 지냈던 여자다. 이름은 릴. 그녀를 내 앞에 데려와라.”

“이름만으론 찾아내기 어렵습니다. 다른 정보는 없는지요.”

“없어.”

“……예?”

“전혀.”

“그놈이라시면…….”

“라온 말이야! 그 미친놈!”

“예?!”

“뭐?!”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사직한 내게 라온은 검을 들며 다정하게 웃었다.

“괜찮아, 릴. 발목 한두 개를 잃는 것쯤은 별 게 아니거든.”

“미, 미치셨어요, 전하?”

“그렇게 겁먹지 마. 가장 찬란한 보석으로 대신할 발을 만들어 줄게, 나의 릴.”

그때였다.

통신석이 깜빡였다.

연결하자, 로레이나의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칸시스 대륙, 바란 왕국의 왕세자가 왔어. 조부님께서 만찬을 여신다니까 본성으로 와.]

“……난 아플 예정이에요.”

[뭐?]

“아니, 아파요.”

[뭐라는 거야. 헛소리 말고 본성으로 와.]

살려 주세요!

이 3세는 악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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