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계 마수가 사라졌다.
즉, 이곳을 보는 눈이 사라졌다는 뜻이었다.
달리아는 사색이 되었다.
“이, 이러지 마세요, 언니…….”
세바스티아 언니는 달리아의 멱살을 잡아 끌어올렸다.
“이 세상에서 나를 언니라고 부를 수 있는 건 내 혈족, 그리고 에릴로트뿐이야.”
“저한테 왜 이래요, 정말…… 왜 다들 나만 괴롭히는 거예요……!”
달리아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소리쳤다.
세바스티아 언니는 빙그레 웃으며 달리아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밀었다.
“한 번은 꼭 치고 싶었어, 그 얼굴.”
“……네?”
그 순간, 세바스티아 언니가 포효하듯 고함을 내질렀다.
“크루마투스 때문에 내 원화군이 몇이나 죽었는지 알아?!”
“……!”
그랬다.
달리아는 절망이 흡수한 사람들을 빼내긴 했으나, 절망에 당해 죽은 사람들까지 살려 내진 못했다.
“다들 앞길이 창창한 녀석들이었어!”
“…….”
“꿈 하나로 고된 훈련을 버텨 온 녀석들이었단 말이다! 이제야 목표를 이루려던 녀석들을 처참히 죽였어, 넌!”
“…….”
“유해가 찢어발겨져서 온전히 수습조차 하지 못했어! 그런데 성녀? 네가 성녀라고!”
“저, 저는 모르고…… 그, 그런 약초인 줄은 몰라서……!”
“그래, 이제 알았겠구나. 하면 죄인처럼 살아야지. 고개를 들고 살 수 없었어야지!”
“…….”
“한데 소름 끼치는 네 아비는 호사가들을 들쑤셔 너를 성녀로 만들고, 염치없는 너는 그 이름을 날름 받아먹더구나.”
“…….”
세바스티아 언니가 달리아의 멱살을 잡은 채로 날 쳐다봤다.
“원화가 무슨 의미인지 찢어 죽일 네 사촌에게 말해 주렴, 에릴로트.”
“원화는 불꽃의 근원. 불꽃이라 불리는 원화군의 어미, 그리고 보호자.”
“알겠니, 달리아 아스트라? 넌 내 새끼들을 사지에 내몰았어.”
달리아가 발발 떨었다.
곱게만 자란 달리아가 원화 가운데에서도 가장 위압감 있는 세바스티아 언니를 어떻게 상대하겠는가.
언니가 달리아를 몽마 옆으로 내던졌다.
쿵!
미끄러져서 널브러진 달리아가 사색이 되어 언니를 쳐다보았다.
“잘됐구나. ‘성녀’라는 네 가호, 천마를 만드는 데 써 주마.”
“이, 이러지 마세요…… 이러지……!”
세바스티아 언니가 허공을 향해 손을 펼쳤다.
순식간에 바닥에 신성인이 펼쳐지며 몽마와 달리아를 감쌌다.
나는 팔짱을 끼고 달리아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와 줘서 고마워, 달리아. 몽마를 잡은 후엔 너도 데려오려고 생각하고 있었거든.”
“……뭐?”
“몽마가 세바스티아 언니의 가호를 버티지 못할 테니, 네 치유력으로 도움을 받으려고.”
“시, 싫어, 싫어! 하지 마!”
소용없었다.
세바스티아 언니의 가호는 시작되어 버렸으니까.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방 안이 가늘게 떨렸다.
찬장이나 테이블에 있던 물건들이 깨지며 날카로운 소음까지 더해지자, 달리아는 더더욱 겁을 먹었다.
“시, 싫어. 아빠! 아빠……!”
몽마는 세바스티아 언니의 가호로 정화되다가, 달리아의 신성력으로 회복되길 반복했다.
오염된 마력이 조금씩 정화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렇게 30여 분쯤.
세바스티아 언니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나는 언니의 땀을 닦아 주며 말했다.
“괜찮겠어요?”
“물론.”
“얼마나 더 걸릴 것 같으세요?”
“글쎄, 앞으로 10분이면…….”
그때였다.
쾅! 쾅, 쾅, 쾅!
누군가 단단히 잠겨 있는 문을 공격하고 있었다.
“달리아 님!”
마시타브바 동생의 목소리였다.
‘하여간 장막 녀석들!’
한 시간도 안 돼서 내가 있는 곳을 찾아냈다.
‘어떻게 알았지.’
여긴 황도에 있는 내 축복의 땅.
주변에 사람이 전혀 없어서 찾기 힘들었을 텐데.
“계속 해요, 언니.”
“조심해.”
나는 문가로 향했다.
‘여기서 몬스터를 쓸 순 없어.’
세바스티아 언니의 가호에 휩쓸려서 정화되어 버리면 큰일이니까.
‘시간을 벌자.’
“물러나지 않으면 달리아는 온전히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손가락 하나라도 대봐! 가만두지 않을 테니까!”
마시타브바 동생은 거의 이성을 잃고 있었다.
“그분께 무슨 일이 생긴다면 너, 네 가족, 네 연인, 네 친구……! 모두를 도륙할 것이다!”
“대체 왜 그렇게 소중한 건데?”
“드디어 만났단 말이다. 평생을 기다려 이제야……!”
그 소리를 들은 달리아가 울먹이며 소리쳤다.
“마시타브바!”
“달리아 님!”
절절하기도 하다.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문을 열고 들어온 즉시 달리아는—”
“살려줘! 살려줘, 마시타브바! 살려줘……!!”
나는 달리아를 노려봤다.
‘하여간에 저 입.’
세바스티아 언니에게 말했다.
“오래 버티긴 힘들겠어요.”
“출력을 높일게.”
“허어어어엉, 마시타브바! 꺄아악! 꺅!”
‘저게 진짜!’
저 애의 몸에서 빠져나가는 건 마력뿐이다.
세바스티아 언니의 가호는 강력하지만, 오직 오염된 마력에만 효과를 발휘했다.
언니가 목숨 걸고 수련하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인간에겐 효과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달리아는 죽는다고 비명을 내질렀다. 마시타브바들에게 어리광을 부리는 것이다.
“너 좀 조용히 못해? <정화>는 위험한 가호가 아니라 도리어—”
쾅—!
문이 폭발하여, 부러진 나무판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그것에 의해 떠밀린 난 달리아와 몽마가 있는 곳까지 나뒹굴었다.
“으윽…….”
“달리아 님!”
“마시타브바!”
달리아가 마시타브바 동생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마시타브바 동생이 미친듯이 달리아를 향해 내달렸다.
그의 뒤로 그리미에 군사들, 마시타브바 형, 흰 후드를 뒤집어쓴 자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그런데 그 순간.
“꺄아아아악—!”
“아악—!”
나와 달리아가 동시에 비명을 내질렀다.
“에릴로트!”
세바스티아 언니가 소리쳤다.
“언니…… 힘을 끊…… 끊어요…….”
“끊으려고 하는데 힘이……!”
“달리아 님!”
마시타브바의 동생이 막 세바스티아 언니의 신성인 안에 들어오려던 찰나.
나와 달리아가 허공에 붕 떠올랐다.
눈앞이 새카매졌다.
“아, 으, 으윽…….”
“끄, 끄으으, 으윽……!”
달리아와 나의 몸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이 보였다.
‘……보인다고? 내 몸이?’
마시타브바 동생은 달리아가 떨어지기 직전에 그녀를 받아냈다.
나는 그대로 추락해 바닥에 떨어졌다.
[에릴로트! 정신 차려, 에릴로트!]
나와 달리아가 떨어지고 나서야 힘을 끊어낸 세바스티아 언니가 달려왔다.
[달리아 님, 정신 차리십시오. 달리아 님!]
목소리마저 기이하게 뭉개져서 들린다.
마치 물속에서 바깥의 목소리를 듣는 것처럼 무언가 기이한 한 겹이 감각을 막고 있었다.
“어, 어떡하지, 마시타브바……! 내 목소리 안 들려?”
옆에서 선명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건…….
“유세은.”
풍성한 펌을 한 갈색 머리카락과 다갈색의 눈동자.
나보다 손가락 두 마디쯤 작은 키.
……세은의 모습이었다.
세은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혜, 혜민 언니? 언니야? 언니가 어떻게……!”
“…….”
“뭐야, 이게…….”
세은은 허공에 떠 있는 나와 에릴로트의 육체를 바라보았다.
“언니가…… 에릴로트였어?”
나와 세은은 굳어져서 서로를 쳐다보았다.
“아이고, 영체가 되었구만.”
“만들어진 자들이 영체가 되는 건 처음 보는…… 어? 어어, 다른 녀석들이 보이잖아!”
“대체 어떻게 된…… 저 빛이다! 저 애에게서 흘러나오는 빛이 우리가 서로를 볼 수 있게 만든 거야!”
그리미에의 군사들이나 세바스티아 언니의 곁에 부유하던 수호성들이 나를 가리키며 호들갑을 떨었다.
“달리아, 나 이제 내 몸으로 들어가면 되는 거지?”
마사까지 흥분한 얼굴로 달리아를 향해 날아왔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기다려!”
소란스러운 와중에 나는 멍하니 ‘누군가’를 쳐다보고 있었다.
마시타브바들의 사이에 있는 스무살쯤 되어 보이는 청년들이었다.
……나는 저 청년들을 알고 있다.
고대의 기억에서 보았으니까.
그들 또한 나를 멍하니 쳐다봤다.
마시타브바 형 쪽에 선 청년의 맑은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나쁜 사람.”
“…….”
“당신을 뵈려 얼마나 긴 세월을 버텨냈는지 아십니까.”
“……마시타브바.”
달리아가 흠칫 나를 쳐다봤다.
“뭐?”
나는 천천히 땅을 향해 내려갔다.
마시타브바들의 수호성, 그러니까 고대의 ‘진짜 마시타브바’들이 나를 향해 다가왔다.
그리고 동시에 숨 막히도록 꽉, 나를 끌어안았다.
“보고 싶었어요.”
“매일 같이 신에게 빌었어요. 당신을 다시 보게 해달라고.”
두 사람이 동시에 말했다.
“나의…… 우리의 메시아.”
달리아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