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 3세는 악역입니다-378화 (379/390)

378화.

세계수가 제물, 그러니까 달리아의 몸에 흡수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제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신호였다.

* * *

케에에에엑—!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푸른 용이 파드득 몸을 떨었다.

제를 시작할 때부터 기묘한 기운은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갑자기 새로운 용족의 길이 열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라온트라에도 새로운 길이 열렸는데, 다른 나라라고 이런 일이 없을까.’

십중팔구 칼소이에를 비롯한 다른 나라에서도 길이 열렸을 터.

‘이렇게 된 이상, 제를 서둘러 끝내는 수밖에 방법이 없어.’

나는 송신기를 향해 소리쳤다.

“제가 중지되어선 안 됩니다! 군사를 동원하여 방어하되, 제는 마무리하십시오!”

지금 와서 중지는 무리다.

‘라온트라는 전 세계 제의 중심.’

이곳이 무너지면 세계는 고대와 같은 멸망을 겪게 될 것이다.

“아스트라 군! 제단을 지켜라!”

와아아아아—!

창과 검, 활을 든 아스트라의 군사들이 용을 향해 뛰어들었다.

“라온트라 황군은 뭣들 하고 있느냐!”

엄마가 소리치자 라온트라의 황군 또한 합류했다.

용을 향해 돌진했던 서군 출신인 리암이 “빌어먹을!” 소리쳤다.

“투 핸드 급의 창조차 비늘을 뚫지 못하잖아…….”

창조차 뚫지 못하는데 화살이라고 뚫겠는가.

궁병들의 공격 또한 소용이 없었다.

“마기사…… 마법병!”

라온트라의 기사가 소리쳤을 때였다.

나는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마법은 안 돼! 제에 영향을 끼친다!”

“하지만 공격이 도무지 먹히지 않는데 어찌……!”

라온트라의 황군뿐만이 아니었다.

아스트라 군 또한 거무죽죽한 얼굴로 마른침만 삼키고 있었다.

그때였다. 푸른 용이 몸을 크게 들썩였다.

‘이런, 금제가 깨지고 있어!’

용은 가호를 깨뜨리는 존재.

내 가호 또한 용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라곤!”

부르자, 라곤이 두 앞발로 푸른 용을 짓눌렀다.

푸른 용의 눈에 광기 어린 이채가 번뜩였다.

외당숙인 만체 박사가 흠칫했다.

“도망…… 도망쳐라, 브레스다—!!”

푸른 용이 입을 쩍 벌리자 기묘하고 사특한 빛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브레스는 안 돼! 제단이 무너질 거야!’

나는 필사적으로 마력을 모았다.

푸른 용과 나의 사이에 빛나는 문자들이 또 한 번 펼쳐졌다.

[용의 숨결이 제단을 집어삼킨다.

화마가 제단을 뒤덮고, 감히 신을 제물로 한 인세의 광기 어린 마법은 중지된다.]

“중지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문자가 빠르게 재조립되었다.

[제단의 결계는 신의 종이 내뿜은 불길조차 견뎌낸다!]

푸른 용이 정면에 자리한 제단을 향해 브레스를 내질렀다.

캉——!

날카로운 소음과 함께 제단을 뒤덮은 결계가 윤곽을 드러냈다.

성어를 읊는 것도 멈추고 양팔로 머리를 가로막았던 신관들이 흠칫했다.

“무, 무사해…….”

“결계가 지켜냈어!”

그래.

균열이 가긴 했지만 브레스를 막아냈다.

브레스는 용의 궁극기나 마찬가지.

푸른 용도 이제 다시 브레스를 내뿜기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브레스의 영향은 용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 으, 으끅……!”

나는 경련하는 팔을 끌어안았다.

아파.

아파, 아파.

아파아파아파아파, 아파, 아파—!

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

온몸의 핏줄은 금세라도 파열할 듯 팽창했다.

“아가씨!”

“에릴로트!”

콘라드와 한지혁이 나를 향해 달려왔다.

“괘, 괜찮으신……!”

“제를, 제…… 어서…….”

눈부터 실핏줄이 터져 피가 섞인 눈물이 흘러나왔다.

나는 한 손으로 흐르는 피를 막아낸 채로 소리쳤다.

“성어를 읊어라! 길을 닫아!”

“예, 옛!”

“예!”

“그래.”

신관들과 이세즈, 셀레네 언니는 다시 성어를 읊기 시작했다.

외당숙인 만체 박사가 헐레벌떡 내게 달려왔다.

“블루드래곤을 서둘러 옮겨라! 아니지, 민가는 안 돼. 피해가 상당할 거야. 그럼…… 아, 그렇지. 바다! 바다가 좋겠다!”

“예?”

콘라드가 미간을 좁혔다.

한지혁도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만체 박사를 쳐다봤다.

“나가떨어진 용을 왜 옮겨야 합니까. 이대로 처리해야—.”

“블루드래곤은 목숨이 두 개야!”

“무슨…….”

“죽고 나면 탈피하여 성체가 된단 말이야!”

뭐라고?

나는 흠칫, 푸른 용을 쳐다봤다.

라곤과 나의 가호에 의해 큰 상처를 입은 놈이다.

‘가뜩이나 성치 않은 몸으로 브레스 같은 엄청난 공격까지 했으니…….’

푸른 용의 파르르 떨리던 동공이 뒤집혔다.

그 모습을 보던 만체 박사가 비명 섞인 고함을 내질렀다.

“피해—!!”

아아아아아악—!

푸른 용의 비늘이 오물처럼 녹아버렸는데, 그 액체에 닿은 자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마치 염산처럼 갑옷과 신체를 녹인 것이다.

“아, 으, 으, 대…… 장님…….”

아머 부츠부터 녹아들던 자가 휘청, 균형을 잃고 무너졌다.

그리고 흔적도 없이 비늘이 녹은 액체에 섞여 들었다.

“……!”

녹은 비늘에 닿은 자들은 더 있었다.

서군 출신 기사들조차.

“워, 원화…….”

죽은 기사와 마찬가지로 아머 부츠에 녹은 비늘이 닿은 고르고 마닌이 나를 쳐다봤다.

“안 돼, 안 돼, 안 돼…… 안 돼…….”

“원…… 화…….”

“안 돼!”

고르고가 균형을 잃으려던 순간이었다.

“비켜!”

쉭—!

날카로운 바람이 불어닥쳤다.

챙강—!

고르고의 검을 자를 만큼 강력한 바람은 종국엔 녹아들던 다리 한쪽마저 잘라냈다.

그리고, 휙!

누군가 고르고의 목덜미를 잡아서 녹은 비늘에서 끌어냈다.

“용에게 다가가지 마라—!”

“……!!”

이그리츠 군의 대장.

황군 직속 기사단의 대장을 역임한 그.

칼리 무소가 우렁차게 소리쳤다.

“칼리—!”

칼리의 뒤엔 켄달이 있었다.

공격계 가호 <바람>을 지닌 이그리츠의 공격대장이었다.

“으하하하! 황군이라고 재던 녀석들이 꼴 한번 우습군!”

칼리가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사색이 되어 있던 서군 출신의 중앙군이 흠칫했다.

“역시 돌격군이란 이름이 우리에게 허락된 건 이유가 있던 게지! 아니 그러냐, 켄달!”

“당연한 말씀을.”

켄달은 물론, 이그리츠 군의 참모인 할러드 또한 픽 실소를 흘렸다.

소년일 때부터 알렉시스와 함께 훈련받은 루카와 젊은 기사들 또한 싱글벙글하였다.

“우, 웃고 있잖아…….”

라온트라의 기사들은 어처구니가 없는 표정이었다.

칼리가 으하핫!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황궁의 안전한 후원에서 자란 저 도련님들께 사지라는 요람을 겪어온 이그리츠의 위용을 보여줘라!”

“예, 대장!”

“예!”

“옛!”

“자, 자, 비켜!”

칼리가 양손으로 들어도 버거울 정도의 크기의 도끼를 들쳐메고 내달렸다.

“잠깐, 칼리!”

“카, 칼리 님!”

“이런 멍청이……!”

나와 콘라드, 심지어 서군 출신의 리암 또한 소리쳤다.

녹은 비늘을 아무렇지 않게 밟고 푸른 용에게 달려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어?’

“영향이 없잖아…….”

“어떻게?”

“왜 칼리만이…….”

나는 흠칫 소리쳤다.

“초월 영역!”

“설마—!”

그래, 칼리의 수비계 최강 <강철 바디>가 초월 영역에 들어선 것이다!

“어디냐, 할러드!”

칼리가 소리치자 할러드 주변에 있던 안구가 푸른 용을 향해 날아갔다.

이그리츠의 참모 할러드.

그의 가호는 <망자의 시선>.

가호로 만든 36개의 눈이 틈 없이 감시하는 것인데, 가호를 개발하여 현재는 약점마저 찾을 수 있었다.

“뒷목. 뿔부터 6시 방향으로 2미터입니다, 대장.”

칼리가 도끼를 치켜들었다.

“탈피해서 더 강해진다면 완전히 탈피하기 전에 죽인다면 될 일!”

쾅!

도끼가 푸른 용의 뒷목에 박혔다.

그 순간, 땅이 거칠게 진동했다.

용이 단말마조차 지르지 못하고 눈을 감은 것이다!

“우, 우…… 우와아아아아아—!”

“칼리 무소!”

“칼리! 이그리츠!”

“이그리츠!”

사람들이 함성을 지르는 그때, 나는 환희에 젖어 그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칼리……!”

쿵!

도끼 밑동을 땅에 박은 그가 소리쳤다.

“이 칼리 무소! 에릴로트 아스트라의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섬멸하리라—!”

* * *

[이 칼리 무소! 에릴로트 아스트라의 앞을 가로막는 모든 것을 섬멸하리라—!]

와아아아아아—!

대륙 곳곳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칼소이에 제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광장에 모여있던 자들이 서로를 끌어안으며 기쁨의 비명을 내질렀다.

“칼리 무소!”

“이그리츠 최강!”

“최강! 이그리츠!”

“아스트라 만세!”

“에릴로트 아스트라 만세……!!”

광장의 함성은 아스트라 공작성에도 전해졌다.

선대 가주 크로노스 아스트라의 딸인 바실레가 입을 틀어막았다.

“어머니…….”

디오네라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제 모친의 팔을 붙들었다.

언제 아스트라가 이러한 목소리를 들었단 말인가.

바지춤을 붙들고 있던 혈족들과 마른침을 삼키던 가신들 또한 얼떨떨한 표정으로 창밖을 내다보았다.

“아스트라 만세!”

“아스트라 만만세!”

“에릴로트 아스트라가 우리를 구해줄 것이다!”

“아스트라가 제국을 수호한다!”

리앙틴은 입술을 꽉 깨물며 말했다.

“저게 뭔 짓을 해도 단단히 할 줄 알았다니까…….”

“리앙틴.”

그녀의 모친이 빙그레 미소 짓자, 리앙틴이 울먹이며 말했다.

“에릴로트가 키웠어요. 이그리츠 말이에요!”

“그래…….”

“저 애가 내 동생이라고요! 내 사촌 동생이요!”

리앙틴이 소리치자, 다른 사촌들 또한 입꼬리가 떨렸다.

“용을 쓰러뜨렸네…….”

“그러게. 용을…….”

“용…….”

사촌들이 중얼거리던 그때, 아론이 주먹을 꽉 쥔 채로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존X 멋있어.”

흥분한 건 구 3세들 만이 아니었다. 구 2세들 또한 흠흠, 헛기침했다.

“하여간에 저 녀석 어릴 때부터 사람 모으는 재주는 있었어요.”

“아무렴! 아버님의 부관도 제 관할령으로 데려간 녀석이 아닌가!”

“그나저나 오라버니들은 두고 볼 거예요? 우리 셀레네가 세계를 위해 저렇게 애쓰고 있다고요. 우리도 어서 나서야지요.”

“그래, 그래!”

구 2세들과 구 3세들이 허겁지겁 움직이기 시작했다.

드뷔시 자작이 빙긋 웃으며 크로노스를 바라보았다.

“당신께서 자식, 손주들 눈에 띄면 목이 비틀릴까 방계들의 탑에 숨겨놓았던 병아리가 이리 컸군요.”

“…….”

“자랑스럽지 않으십니까.”

“……일찍이 알아봤어.”

열두 번째 탑에서 눈을 마주치던 그 순간에.

“하부지……. (할아버지…….)”

“…….”

그 달밤.

붉게 빛나던 눈동자와 조우하던 그 찰나 느꼈다.

변화의 바람이 불어왔노라고.

크로노스 아스트라가 몸을 일으켰다.

“아스트라 전군, 제국의 백성을 지킨다.”

최악의 가문이라 불리던 과거는 끝났다.

드뷔시 자작이 몸을 낮추었다.

“명 받잡습니다.”

그 시각, 황궁.

“와아아아!”

“섭정께서 리바이어던을 쓰러뜨리셨다!”

리바이어던의 눈에 검을 꽂아 넣은 알렉시스는 식은땀을 흘리며 소리쳤다.

“성어를 읊어라! 제를 계속하겠다!”

“예, 옛!”

“예!”

신관들이 부리나케 제자리를 찾아갔다.

알렉시스가 비틀거리자, 이시론 공작이 황급히 다가갔다.

“전하, 괜찮으십니까.”

“라온트라는요. 저쪽은 어찌 됐습니까.”

“……눈이 보이지 않으십니까?”

이시론 공작이 주변을 둘러보다가 재빨리 그를 부축했다.

알렉시스가 밭은 숨을 내뱉었다.

“리바이어던의 독에 중독된 모양입니다. 형태 정도는 보입니다.”

“…….”

그리미에, 살바토레와의 내전으로 많은 황군을 잃었다.

한 축은 에릴로트에게 내주었고, 대부분의 군사는 제국 곳곳을 수호하기 위해 내려보냈다.

리바이어던은 알렉시스 홀로 잡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고대 몬스터를 홀로……. 가공할 힘이나, 위험하구나.’

알렉시스는 유년기의 고통으로 기대는 법을 몰랐다.

그가 휴식하는 곳은 오직 에릴로트 곁뿐이었다.

“치유사들을 부르겠습니다.”

“지금 내가 자리를 비우면 신료들과 신관들이 동요할 것입니다. 제가 중지될 수도 있어요.”

“하지만…….”

“버틸 수 있습니다.”

“…….”

“그 어떤 순간에도 물러나는 법이 없던 녀석의 등을 보며 자랐습니다.”

마경 속의 에릴로트는 비틀거리면서도 기어코 제단을 향해 걷고 있었다.

알렉시스가 말했다.

“그러니 염려하지 마십시오.”

“…….”

“저 녀석이 돌아왔을 때, 무사한 제국을 보여주고야 말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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