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세계 사람들이 자꾸만 보은한다-1화 (1/122)

프롤로그 - 영웅의 꿈

어린 시절, 나는 사람들이 똑같은 꿈을 꾼다고 생각했다.

내가 잠이 들 때면 같은 내용의 꿈이 어김없이 찾아왔기 때문이다.

꿈 속의 나는 다른 차원에서 살고 있었다.

그 세계에는 무시무시한 마왕이 존재했는데, 그는 모든 악의 세력을 통합한 뒤 세계를 정복하고자 했다.

그리고 난 마왕에 맞선 용사였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마력을 지닌 마왕과 그의 밑에 모인 엄청난 수의 몬스터 군단.

마왕과 군단의 위세는 대단했고, 세계의 운명은 풍전등화나 다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며 몬스터 군단에 대항할 이들을 규합했고 불리한 전선을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며 마침내 마왕의 앞까지 도달하게 됐다.

수하를 잃고 홀로 남은 마왕이었지만, 그는 단독으로도 엄청난 힘을 지니고 있었고 나와 마왕의 전투는 사흘 동안이나 이어졌다.

긴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싸운 나는 죽을 고비를 몇 번씩이나 넘겼지만, 그래도 마침내 내 칼이 마왕의 가슴을 꿰뚫는 것으로 전투가 끝났다.

그리고 꿈의 마지막은 늘 이랬다.

-“아르마이스…….”

이세계에서 아르마이스로 불렸던 나는 마왕을 쓰러뜨렸지만, 그 과정에서 회복하기 어려운 상처를 입었다.

세상을 구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영광과 명예와 같은 대가를 얻기는커녕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이었다.

더는 일어설 힘조차 없는 내 주변에는 동료들이 모여들었고 모두 눈물을 흘리며 나를 안타깝게 바라봤다.

-“다들 울지 마. 마왕을 무찌르고 세계를 구했는데 내 목숨 정도면 남는 장사니까.”

숨이 넘어갈 지경이라 말을 잇기 어려웠던 상태였지만, 동료들을 향해 나는 애써 태연한 척을 했다. 그러나 동료들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아르마이스, 네 희생은 잊지 않을게. 이 세계의 모두가 너에게 빚을 졌어. 그 은혜는 절대로, 무슨 일이 있어도 잊지 않을 거야.”

-“훗, 너희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여기까지인 듯해…… 뒤를 맡……길게…….”

나는 감사를 표하는 동료들을 바라보며 최후의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 어둠이 찾아오는 것과 동시에 꿈에서 깨는 것이 반복됐다.

꿈을 한두 번도 아니고 수십, 수백 번을 꾸다 보니 나로서는 꿈이란 것이 늘 똑같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점점 나이가 들면서 이런 꿈들이 나에게만 벌어지는 특이한 현상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왜 나는 같은 꿈만 반복해서 꾸는 것일까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할 무렵, 그 꿈을 더는 꾸지 않게 되었다.

꿈이 중단된 지 며칠이 안 됐을 때는 이러다가 금방 또 꿈을 꾸겠지 싶었지만, 1주가 2주가 되고, 또 몇 달이 되면서 나는 그 꿈을 꾸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됐다.

오랜 기간, 하나의 꿈만을 꿔서였을까, 아르마이스로 살던 이세계에서의 삶이 종종 그리워지는 순간이 있었다.

그러나 세월은 모든 것을 무디게 만들었고, 곧 아쉬운 감정도 사그라들었다.

다른 사람들은 못 해 봤을 어린 시절 나만의 독특한 경험.

그때의 기억은 그 어떤 경험보다도 강렬했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것이었다.

…….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말이다.

[제 말이 들리십니까?]

“어……어?”

갑작스럽게 들려온 목소리에 난 주위를 둘러봤다.

하지만 이곳에 있는 것은 나 혼자뿐이다.

‘뭐지? 잘못 들은 건가?’

피곤한 탓에 환청을 들은 것으로 여기고 다시 발걸음을 옮기려던 그때, 그 목소리가 다시 나를 불렀다.

[제 말이 들리시나요?]

단순한 환청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한 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들리는데요……?”

아직 확신까지는 없던 터라 소심하게 대답을 하던 그때, 목소리가 예상치 못한 이름을 꺼냈다.

[우왓! 마침내 찾았다! 아르마이스 님, 이렇게 뵙게 돼서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오직 나만이 알고 있어야 할 그 이름을 말이다.

1. 1화 드디어 만났습니다. (1)

혹자는 탄생과 죽음 사이에 펼쳐지는 인생 중 학창 시절이란 것은 극히 일부의 시간에 불과하다고 평한다.

인생은 길기에 학교가 인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적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충실하지 못했던 학창 시절을 잊고 자신에게 펼쳐지는 새 삶에 집중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학창 시절을 보내고 있는 학생들에게는 학교 담장 안에서 벌어지는 일상이 인생의 전부로 느껴질 수밖에 없는 법이다.

내가 왜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냐면, 내 인생의 전부로 느껴질 학교에서의 삶이 나락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킥킥킥.”

내 앞에서 낄낄거리고 있는 이는 우리 반 일진 무리의 우두머리인 김준석이다.

그의 손에는 내가 쓴 소설이 들려 있었다.

나름 신경 써서 쓴 글이었지만 소설이라고 볼 수 없는 저속한 야설, 준석은 내가 쓴 글을 보고 배꼽이 빠져라 웃고 있었다.

“오늘 건 읽을 만하네. 기대한 것보다 야하게 잘 쓰는데?”

막 글을 읽은 김준석이 내 쪽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린다.

실실거리는 그의 얼굴을 보니 욕지기가 올라올 것 같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억지웃음을 지으며 비위를 맞추는 게 전부였다.

“으, 으응. 고마워.”

빡!

표정 관리를 하며 애써 대답하는 그 순간, 뒤통수에 충격이 일었다.

“윽…….”

상체가 앞으로 숙여진 채로 때린 사람을 찾기 위해 고개를 돌리자 인상을 쓰고 있는 이석호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 새끼가! 독자님이 글을 읽고 평가를 해 주셨으면, 감사합니다라고 해야지 고마워가 뭐야? 하늘 같은 독자님이 우스워 보여?”

그렇지 않아도 투박하게 생긴 석호의 얼굴이 일그러지자 더 무섭게 느껴진다.

판타지 세계에 등장하는 오크가 저런 생김새였을까?

일단 나에게 있어서만큼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오크보다 당장 눈앞에 있는 석호가 더 무서운 것은 사실이다.

“미, 미안…… 내가 실수했어.”

내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겠지만, 힘이 없는 이상 강자 앞에서는 숙일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잘해라.”

석호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나를 뒤로하고 준석의 손에 있는 내 노트에 눈독을 들였다.

“준석아, 다 봤으면 나도 좀 보자.”

“그래, 여기.”

김준석의 손에 있던 내 노트는 어느새 석호의 손으로 넘어갔다.

석호가 다 보면 김준석의 무리 중 아직 읽지 않은 이들이 돌려 가며 읽겠지.

다들 석호가 들고 있는 내 노트를 보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독자들이 많은 건 환영할 일이었지만, 슬픈 감정만이 마음속을 맴돌고 있었고, 그저 힘없이 한숨만 쉴 뿐이었다.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된 것일까?

나는 지금의 이 비참한 상황에 처하게 된 과정들을 새삼 떠올려 봤다.

어린 시절, 판타지 세계 속 영웅으로서의 꿈을 꿔 왔던 신기한 경험 때문이었을까, 자라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만화나 소설 속 판타지 세계에 빠져들게 되었다.

책방에 배치된 모든 판타지 소설을 읽은 나는 스마트폰으로 간편하게 읽을 수 있는 웹소설이라는 것을 알게 됐고, 웹소설 작가가 되기로 마음을 먹었다.

내가 처음 판타지 소설을 쓰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1학년 때로, 첫 작품은 소설이라기보단 자기만족을 위한 활자조합물이었다.

나는 아르마이스가 마왕을 무찔렀을 때의 꿈을 꾸며 그때 느꼈던 감정들을 글로 표현하고 싶었지만, 그 당시의 나에겐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지한 상태에서도 글쓰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웹소설 연재 사이트 무료 연재 코너에 글을 올려봤지만, 결과는 참패였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고 그 뒤에도 더 여러 작품들을 집필하며 실력을 향상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런데 고등학교에 진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습작 노트를 이석호에게 들키게 되었다. 그전까지는 김준석 패거리와는 엮일 건덕지가 없던 나였다.

성적도 중간, 외모도 평범.

반에서 전혀 돋보이는 거 없이 조용히 지내는 나는 학교 일진들과 접점이라고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쉬는 시간에 글을 끄적이던 나를 이석호가 발견한 순간, 내 학교생활은 송두리째 뒤바뀌어 버리고 말았다.

“어, 뭐야? 너 소설 쓰냐? 판타지 소설이네?”

이석호는 잽싸게 노트를 빼앗아 들었다.

“어엇, 도, 돌려줘.”

글쓰기에 매진하느라 옆에 이석호가 오는지도 몰랐던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노트를 돌려달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답 대신 돌아온 것은 복부에 느껴지는 강한 통증이었다. 석호의 발차기에 명치를 얻어맞은 나는 몸을 웅크린 채 숨을 헐떡였다.

“헉, 헉…….”

이석호는 배를 걷어차인 후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나를 경멸의 눈빛으로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

“이 새끼가 어디서 주제도 모르고 기어오르고 있어? 어디 보자.”

그는 비열한 미소를 한 번 짓더니 노트에 적힌 내용을 큰 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카인은 칼을 들었다. 어디에도 희망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의 안광만큼은 어둠 속에서도 또렷이 빛나고 있었다. 마치 아무것도 없는 공허 속에서 그 혼자만이 희망을 보고 있는 듯했다.”

석호는 반 아이들 앞에서 날 조롱하고 싶었을 뿐, 애당초 내 글에 어떤 흥미도 갖고 있지 않았다.

분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의 발길질에서 현격한 힘의 차이를 느낀 나는 어떠한 저항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나를 비웃으며 글을 읽어나가던 석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애들의 관심이 점점 줄어들자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그러다 문득 재밌는 생각이 떠올랐는지 나를 보며 심술궂은 표정을 짓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야, 소설을 쓸 거면 이딴 오타쿠스러운 거 말고 끌리는 것 좀 써 봐. 요즘 애들이 읽는 야한 소설 같은 거 있잖아.”

‘나를 뭘로 보는 거야…….’

이야기를 듣자마자 싫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나를 바라보는 석호의 날카로운 눈빛이 내 입을 콱 틀어막아 버렸다.

그날 이후, 나는 내가 쓰고 싶던 글 대신 김준석 패거리를 위해 야설을 갖다 바치는 신세가 됐다.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된 과정을 떠올리며 상념에 잠겨 있던 내 시야에 다가오는 석호의 모습이 보였다. 보아하니, 내가 쓴 글을 모두 읽은 모양이었다.

“진우야, 오늘 진짜 좋았다. 내일도 찐한 장면들 많이 넣어서 화끈하게 써 봐. 알았지? 자식, 방구석에서 혼자 끄적대는 삼류작가인 줄 알았는데, 제법 글솜씨가 있잖아?”

이석호는 짐짓 호탕한 척을 하며 내 어깨를 강하게 두들겼다. 잠시 후, 그는 배가 고팠는지 김준석을 바라보며 물었다.

“준석아, 배고프지 않아? 매점에 빵 먹으러 가자.”

석호의 제안에 김준석은 피식 입꼬리를 올리더니 나를 노려보았다.

“강진우, 매점 가서 빵 좀 사 와라.”

김준석은 우락부락한 외모를 가진 이석호와는 달리 깔끔하고 잘생긴 얼굴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길게 뻗은 날카로운 눈매와 오랜 일진 생활을 통해서 형성된 분위기로 인해 석호와는 차원이 다른 위압감을 뿜어내고 있었다.

“으, 으응.”

나는 그의 눈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황급히 교실을 빠져나오는 수밖에 없었다.

매점으로 가기 위해 복도를 지나가는데, 창가에 있던 여학생들의 대화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변태 지나간다.”

“요새 교실에서 돌아다니는 저질 소설을 쟤가 쓴다면서? 정말 쓰레기다.”

여자애들이 저렇게 생각하는게 오해라고만은 할 수 없다.

강압에 의해 억지로 쓰고 있긴 하지만, 내가 쓴 글이 맞으니까.

김준석 패거리들의 요구로 야한 글을 쓰게 된 이후, 주변 학생들의 시선이 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나를 바라보는 몇몇 여학생들의 눈빛에는 경멸을 넘어 혐오의 감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 이제는 그러한 시선에 어느 정도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빵셔틀을 나가는 처량한 상황이 더해지자 사라지고 싶다는 생각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어쩌다가, 어쩌다가 내가 이런 꼴이 됐을까?

“씨발…….”

갑갑한 마음에 입에서 절로 욕짓거리가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슴이 후련해지는 일은 조금도 없었다. 김준석 패거리 앞에서는 찍소리도 못 하고 홀로 소심하게 욕하는 내 모습이 비참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 * *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방 한구석에 가방을 집어 던진 뒤 컴퓨터를 켰다.

절전모드가 해제되자 워드 파일과 인터넷 브라우저가 각각 모니터의 절반씩을 차지한 채 모습을 드러냈다.

워드 파일에는 최근에 집필 중인 소설이 적혀 있었다.

김준석 일행의 행패로 인해 마음에도 없는 야설을 쓰고 있었지만, 내가 쓰고 싶은 글을 포기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암담한 현실에 당당히 맞서지 못함으로써 생성된 자기 혐오적 감정을 털어 내기 위해서라도 나는 글을 써야만 했다.

학교를 마친 후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시간은 갈수록 늘어났고 전보다 많은 양의 글을 쓸 수 있었다.

문제는…… 내 글이 독자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 데 있었다.

“후우…….”

화면 오른 편에 띄어 놓은 웹소설 사이트에는 내 연재 성적이 표시되어 있었다.

가장 최근에 내가 올린 소설의 최신 화 조회 수는 54.

이 사이트에서 무료 작품 베스트 랭킹 끝자락에라도 들려면 조회 수가 150은 나와야 한다.

두터운 팬층을 보유한 작가들에게는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겠지만, 무명 작가에 불과한 나로서는 어렵게만 느껴졌다.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뚝뚝 떨어지는 조회 수에 가슴이 답답해진 나는 냉수라도 들이켜야겠다는 생각에 방을 나섰다.

아무도 없는 집에는 적막만 흐르고 있다.

웹툰 회사에서 근무하시는 부모님은 거의 매일 같이 야근이셨고, 여동생은 아직 들어올 때가 되지 않았다.

정수기에서 냉수를 받은 뒤 얼음까지 동동 띄워 단숨에 들이켰다. 가슴에서 느껴지는 청량감에 기분이 나아질까 싶었지만, 컴퓨터 앞에 앉으니 우울한 감정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후, 괜찮아. 시행착오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거야. 생각을 떨치자.

고개를 젓는다.

손바닥으로 머리를 두들기며 고개를 계속 저어 봤지만, 한 번 번지기 시작한 부정적인 감정들은 내 통제 범위를 벗어나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좋은 작가로 인정받는 것만이 지옥 같은 현실을 잊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었지만, 이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자 마음은 평정심을 잃고 격동에 휩싸였다. 이후에도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지만, 부정적인 생각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결국 더 발악하기를 포기하고 고개를 그대로 떨궜다.

시야가 빙빙 돌고 세상이 흔들린다.

제길…….

이대로 흔들거리다가 확 세상이 뒤바뀌어 버렸으면 좋겠지만, 그런 일이 일어날 리야 없겠지.

[……시나요?]

“응?”

머리를 감싸 쥔 채, 눈을 붙이고 있는데, 어떤 목소리가 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물을 마시러 나갔을 때만 해도 부모님과 여동생은 없었기에 집에 나 혼자 있다는 것은 확실했다.

“뭐지? 스트레스를 너무 받아서 이제는 헛것도 들리는 건가?”

혼자 중얼거리고 있던 그때,

[제 말이 들리십니까?]

이번에는 조금 더 또렷한 목소리가 귓가에 와닿았다.

‘뭐, 뭐야. 잘못 들은 게 아니었나?’

당황한 나는 정신없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 어?”

하지만 방 안에는 나 외에 어떤 존재도 보이지 않는다.

쭈뼛.

설마…… 귀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살면서 귀신이라는 것을 본 적도 없고 믿지도 않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건 귀신과 같은 영적 존재였다.

[제 말이 들린다면 부디 답해 주세요.]

귀신이 들러붙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목소리를 외면했지만, 음성은 점점 더 간절해졌다.

그러다가 마침내 들려오는 한숨 소리.

[후우…… 결국 이번에도 실패인 건가?]

깊은 한숨 소리에 왠지 모르게 안쓰러운 감정이 들었다.

‘그래, 시발. 아무리 귀신이라도 나를 이 정도로 애타게 부르면 답해 주는 게 맞겠지.’

“저…… 들리는데요……?”

두려움을 떨치기 위해 주먹을 강하게 쥐고 입을 열었지만, 목소리는 고무풍선에서 바람 새는 소리처럼 작았다.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못 들었으면 어떡하지? 아니, 애초에 대화 자체가 가능하기는 한 걸까?’

어렵게 대답을 했지만, 난생처음 겪는 상황에 내 머릿속은 여러 생각들로 뒤죽박죽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정체불명의 목소리가 깜짝 놀랄 만한 말을 했다.

[우왓! 마침내 찾았다! 아르마이스 님, 이렇게 뵙게 돼서 진심으로 영광입니다!]

“엣!?”

아르마이스

어린 시절 매일 꾸던 꿈에서 나왔던 그 이름.

위기에 빠져 있던 세상을 구한 영웅.

그런데…… 그 이름이 왜 귀신(?)에게서 나오는 거냐고?

“아르마이스……라고요?”

[네, 그렇습니다!]

사람은 알지 못하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기 마련이다. 아르마이스라는 이름에 아련한 추억을 느낀 것도 사실이었지만, 영문 모를 상황에 잔뜩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순간 내 눈앞에 어떠한 문구가 스르르 떠올랐다.

<다른 차원의 존재가 당신과 대면하기를 희망합니다.>

<승인/거절>

“어?”

이건 또 뭐야?

나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화면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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