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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계 사람들이 자꾸만 보은한다-3화 (3/122)

3. 1화 드디어 만났습니다. (3)

차원 연결 장치?

[아! 차원 연결 장치는 이전에 아미르 님께서 개발해 두신 장치로, 이쪽 차원의 물질과 마력을 아르마이스 님이 계신 차원으로 이동시킬 수 있도록 해주는 물건입니다. 아미르 님께서는 아르마이스 님을 찾는 것과, 찾은 뒤 어떻게 보은할 수 있을지만을 생각하며 지내셨거든요. 물론…… 아르마이스 님을 찾는 데 예상보다도 훨씬 더 긴 시간이 걸려 영광스러운 재회에 함께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그러나 아미르님의 유지를 이어받은 후손들이 대신해서 아르마이스 님을 만났으니 하늘에서 매우 기뻐하고 계실 겁니다.]

차원 연결 장치라는 말을 듣고 의아해하는 내 표정을 읽은 세이라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는 생각에 잠긴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윙크를 하고 말을 이어 갔다.

[아르마이스 님을 어떻게 도와드릴지에 대한 계획은 모두 세워진 상태니 아무것도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차원 연결 장치를 가동해서 저희가 지닌 물품, 인력 그리고 카산트 대륙에 현존하는 모든 지식까지 필요로 하시는 것들은 모두 지원하도록 하겠습니다.]

세이라 씨의 상기된 얼굴과 힘이 들어간 목소리에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물품부터 지식까지 무엇이든 지원이 가능하다니…….

조금 전까지만 해도 다른 차원의 존재가 내 삶에 어떠한 영향도 끼칠 수 없을 거라 여긴 내 자신이 어리석게만 느껴졌다. 이제 비참했던 과거는 뒤로하고 화려한 미래를 그리는 일만 남았다.

덜컹!

설레는 감정에 푹 빠져 있던 그때, 세이라 씨의 뒤쪽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고, 곧이어 사람의 키보다도 더 큰 피라미드 형태의 물체를 든 사람들이 화면이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저게 바로…….

[자아, 이게 아미르 님께서 만드신 차원 연결 장치입니다.]

세이라 씨는 연결 장치를 바라보느라 정신없는 나를 보며 활짝 웃더니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그러자 그녀로 인해 가려져 있던 장치의 한쪽 면이 내 시야에 들어왔고 그 순간 난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르마이스?”

장치에 새겨진 얼굴을 본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그 이름이 튀어나왔다.

세이라 씨에 의해 가려졌던 면에는 어린 시절 꿈속에서 보았던 아르마이스의 얼굴이 정교하게 새겨져 있었다.

[네, 아르마이스 님을 그리워하는 마음으로, 또 절대로 잊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아르마이스 님의 얼굴을 조각해 두었답니다.]

피라미드 형태를 한 기기의 중간 지점에 사람 얼굴이 새겨져 있는 것은 충분히 그로테스크한 장면이었다.

피라미드와 사람의 얼굴이 같이 있으니, 왠지 모르게 스핑크스가 떠오르는 것 같기도 하고…….

눈을 가늘게 뜬 채 고개를 갸웃거리는 나와 달리 기괴한 형상을 바라보는 세이라 씨의 눈빛은 반짝반짝 빛났다.

[위대한 아르마이스 님의 모습은 오늘도 아름답기 그지없군요.]

닭살 돋는 멘트를 한 치의 어색함 없이 꺼낸 그녀는 천천히 나를 바라보았다.

[필요한 것이 있다면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보석이면 보석, 인력이면 인력, 현재 저희는 아르마이스 님을 지원할 준비가 완벽히 돼 있습니다.]

“아, 네…….”

무엇이든 말만 하라니.

상상으로도 해 보지 못한 꿈같은 상황이었다.

끝이 없는 터널과 같은 어두운 현실에 갇혀 있던 나에게 커다란 빛줄기가 들어온 격이었다.

돈, 무력, 지식…… 선택지가 너무 많다 보니 막상 뭐부터 요청해야 할지 몰라 말을 꺼내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고 있는데, 세이라 씨의 뒤쪽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황녀님!]

세이라 씨와 내 시선이 동시에 향한 곳에는 브루스 단장이 있었다.

조금 전 흥분했을 때와 비교하면 차분해진 모습이었지만, 단호한 표정과 쩌렁쩌렁 울리는 음성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무슨 일이신가요, 브루스 단장님?]

세이라 씨의 대꾸에 브루스 단장이 한껏 상기된 태도를 보이며 입을 열었다.

[저를, 저를 아르마이스 님께서 계신 차원으로 보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네?]

“네?”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나와 세이라 씨는 합을 맞춘 사람처럼 동시에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브루스 단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허리춤에 있는 칼집에서 칼을 꺼내 들더니, 두 손으로 칼자루를 잡고 칼을 곧게 세웠다.

날의 길이는 브루스 단장의 상체보다도 훨씬 길었고 칼날의 두께는 30cm 족히 돼 보였다.

[아르마이스 님을 돕기 위한 선발대로 자원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아르마이스 님을 괴롭혔던 놈팽이 놈들에게 이 브루스가 천벌을 내리겠습니다!]

처음 등장했을 때도 했던 말이라 다소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는 멘트였다.

그러나 우락부락한 남성이 영화 속에서나 나 올 법한 무시무시한 무기를 내민 채로 이야기하니 강한 호소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석호건 김준석이건, 걸리면 반 토막 나겠네…….’

지금까지 그들에게 괴롭힘당했던 일들만 떠올리면 그것도 좋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바꿨다.

‘아니야, 저 거대한 검을 들고 밖을 돌아다녔다가는 금세 사람들의 눈에 띌 거야. 행여나 경찰에 신고라도 당하기라도 하면 수습하기 무척 어려울 거고…….’

여차하면 나까지 걷잡을 수 없는 사태에 휘말리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왕따를 당하던 소년, 신원을 알 수 없는 정체불명의 남성에게 가해자들의 암살을 의뢰하다.’

음…… 일단, 검을 사용하는 것은 막자.

“손에 들고 계신 검은 굳이 사용하지 않으셔도 괜찮을 것 같아요. 이쪽 차원에서는 그런 무기를 사용하지 않거든요.”

[아, 그렇습니까? 검을 사용하지 않는 세상이라니…… 참 신기하군요. 그러면 혹시 도끼나 모닝스타는 어떻겠습니까?]

“그런 것도 이곳에서는 좀…….”

[정말 아쉽게 됐군요.]

브루스 단장은 아쉬운지 입맛을 다시며 칼을 검집에 집어넣고 생각에 잠겼다. 그러다 문득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움켜쥔 두 주먹을 앞으로 내밀었다.

[괜찮습니다, 아르마이스 님. 저 브루스, 이 두 주먹만으로도 그 놈팽이들에게 충분한 벌을 내릴 수 있습니다.]

결의에 찬 표정을 짓던 브루스는 세이라 씨를 바라보며 외쳤다.

[그러니 허락해 주십시오, 황녀님! 저를 선발대로 보내 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리겠습니다!]

브루스 단장의 목소리에는 굳은 의지가 담겨 있었고 결국 세이라 씨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성공했다.

[알겠습니다, 단장님. 단장님을 아르마이스 님께서 계신 차원으로 이동할 선발대로 임명합니다.]

그녀의 말에 브루스 단장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발대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만큼, 먼저 가서 아르마이스 님의 힘이 되어 드리고 있겠습니다!]

내 의사와 상관없이 일단은 브루스 단장이 이쪽으로 넘어와 나를 도와주는 것으로 결정이 돼 버린 모양이다.

뭐, 선발대라고 말한 것으로 봐서는 브루스 단장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나 물품들이 넘어올 수 있을 것 같으니, 나에게 필요한 것들이 있다면 여유롭게 요청해도 되겠지?

게다가 브루스 단장이 넘어와서 김준석 무리들을 처리해 준다면, 그것만으로도 내 삶은 크게 변화할 테니 여러모로 괜찮아 보였다.

새로운 삶에 대한 생각에 푹 빠져 있던 그때, 차원 연결 장치에 손을 뻗는 세이라 씨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다들 차원 연결 장치에 마력을 모아 주십시오. 브루스 단장님을 아르마이스 님이 계신 차원으로 이동시키겠습니다!]

[넵!]

세이라 씨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뒤쪽에서 우레와 같은 외침이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 갖가지 기합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우오오오오오!]

[히요오오옷!]

[으라차차차차차차!]

[이야아아압!]

살면서 한 번쯤은 들어 봤을 온갖 종류의 기합 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차원 연결 장치는 한동안 미동도 하지 않았지만, 이윽고 빛을 내기 시작했다.

[오오오!!! 된다!]

[조금만 더 힘내면 돼!]

이 장면이 신기한 것은 나뿐만은 아닌 듯했다.

하긴, 이들도 차원 연결 장치가 실제로 작동하는 것은 처음 보겠지.

지금까지는 아르마이스의 환생인 날 찾느라 장치를 실행시킬 일이 없었을 테니까.

“어라?”

이들이 장치를 실행하지 않았을 거라는 결론에 다다르자, 문득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그렇다면 저 기계가 제대로 작동하는지 아직까지 확인이 안 됐다는 소리잖아?’

아니야.

아닐 거야.

괜한 걱정일 거야.

조금 전에 세이라 씨의 확신에 가득 찬 얼굴을 봤잖아.

장치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거…….

펑!!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달래기 위해 행복 회로를 열심히 돌렸지만, 장치에서는 굉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잠시 후, 반대 차원을 비춰 주던 화면은 검은 연기로 가득 채워졌다.

[콜록! 콜록콜록!]

[무, 무슨 일이야?]

[황녀님! 괜찮으십니까?]

사람들의 기대감으로 잔뜩 고양되었던 분위기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자욱한 연기 너머로 허둥지둥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어떻게 된 겁니까? 차원 연결 장치는 괜찮은 겁니까?]

세이라 씨는 한 손으로 입을 막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연기를 휘저으며 장치의 상태를 점검했다.

하지만 그녀의 물음에 그 누구도 답하지 못했다.

그 순간, 세이라 씨 뒤쪽으로 연기가 서서히 걷히더니 차원 연결 장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 저거…… 불타고 있는 거 아닌가요?”

[네?]

세이라 씨는 황급히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곧이어 그녀의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가 주위를 흔들었다.

[꺄아아아아아악! 장, 장치가! 빠, 빨리 불을 꺼요!]

[네, 넷! 황녀님!]

당혹스러움에 굳어 있던 주변 사람들은 그녀의 외침에 정신을 차리고 급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둘러!]

[장치를 지켜라!]

잠시 후, 불은 꺼졌지만, 검은 그을음으로 뒤덮인 장치는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이, 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인 겁니까?]

흉측하게 변해 버린 장치에 충격을 받은 세이라 씨는 억지로 떨리는 목소리를 누르며 질문했다. 그러자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화, 황녀님. 아무래도 아르마이스 님을 찾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 탓에 장치에 문제가 생겼던 것 같습니다.]

새하얀 수염이 허리까지 내려온 노인이 황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주린 경…… 장치를 고칠 수 있을까요?]

노인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가에는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차원 연결 장치가 작동하지 않는다면 아르마이스 님에게 무슨 면목이 있겠습니까? 어렵게 만난 만큼 큰 도움을 드려야 하는데, 상황이 이렇게 돼 버리면 만남의 의미가 없어져 버린 거잖아요.]

[황녀님,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 주린, 수석 궁정 마법사의 명예를 걸고 차원 연결 장치를 조속히 수리해 내겠습니다.]

주린 경은 왼쪽 가슴 위에 오른 주먹을 가볍게 얹으며 말한 뒤 몸을 돌렸다.

[모든 마법사들은 나와 함께 하라! 지금부터 우리는 1분 1초라도 빨리 장치를 수리한다!]

[넵!]

그와 마법사들이 장치를 둘러싸고 수리에 몰두하는 동안 세이라 씨는 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녀는 눈물이 글썽이는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침묵을 지켰다. 그러다가 갑자기 무릎을 꿇었다.

[죄송합니다, 아르마이스 님! 조금 전 추태를 다 보셨겠지만…… 어떻게든 빨리 장치를 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정말,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제국의 황녀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임에도 누구도 그녀를 말리지 않고 있었다.

황녀라는 지위가 낮아서 그러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아르마이스라는 존재가 황제의 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인물이기 때문에 그러는 것일 테지.

하지만 세이라 씨의 진심 어린 사과에도 불구하고 나는 절망하고 있었다.

장치를 최대한 빨리 수리하겠다고 했지만,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이었고, 방금까지만 해도 부풀어 있던 나의 기대감은 모두 물거품이 됐으니 말이다.

처음부터 없던 것보다, 받은 것을 빼앗기는 게 더 비참하다고 했던가.

나는 지금 희망을 받았다가 빼앗긴 꼴이었다.

‘여기서 울분을 토해 봐야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후우

한숨을 내쉬고는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뭐, 뭐어어…… 괜찮습니다. 어쩔 수우 없죠오…….”

애써 태연한 척하려 해도 내 목소리에서는 실망감이 짙게 배어 나오고 있었다.

[저, 정말로 죄송합니다. 아르마이스 님, 실망이 너무 크시죠?]

“아, 아니라니까요. 저어는 저, 정말로오 괜찮습니다…….”

그러나 말하는 내용과 달리 실망스러운 감정은 좀처럼 진정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그 순간, 커다란 기합 소리가 들렸다.

브루스 단장이었다.

[핫! 아르마이스 님! 비록 제가 직접 그곳에 방문해서 아르마이스 님을 괴롭히는 자들을 혼내 줄 수 없게 됐지만, 도와드릴 방법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네?”

다 꺼져 가던 희망의 불씨를 다시 지펴 주는 말에 내 두 눈에는 힘이 들어갔다.

차원 연결 장치가 고장 났는데도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역시, 브루스 단장님이시네요! 도대체 어떤 방법을 생각하신 겁니까?]

세이라 씨는 가슴을 쫙 펴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는 브루스 단장을 보며 물었다. 그러자 그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저 브루스, 지금까지 이르젠 제국의 제1 기사단장으로서 수많은 기사들을 육성해 왔습니다. 따라서 저는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아르마이스 님을 훌륭한 전사로 만드는 데 주력하도록 하겠습니다.]

“네에?”

가뜩이나 힘이 들어갔던 내 눈은 브루스 단장의 말에 더욱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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